현대음악 작곡가 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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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곡 기법이 가미된
경건한 신앙과 영혼이 녹아있는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

“2022년 3월 어느 날, 일면식도 없는 웨스트민스터 음악원 겸임교수 Timothy P. Urban 박사의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날 심야에 이불속에서 저는 만세를 부르고 눈물 흘리며 감사 기도를 드렸고 이방 저방 뛰어다녔죠. 그 주일 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 편지에는 미국의 5월 ‘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 섬 주민 유산의 달’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라이더 대학교 웨스트민스터 음악원 교수 음악회를 여는데 올해의 주제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클래식 선구자로 김성태, 김순남, 윤이상, 엄대호를 선정했고 저의 2018년 작품 ‘거제도 모음곡’ 중 2번 곡 ‘와현의 노래’를 연주할 수 있게 요청하는 편지였지요. 그리고 그는 전곡을 연주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어요. 저는 흔쾌히 허락했고 2022년 5월 14일 미국 프린스턴 시 라이더 대학교에서 ‘와현의 노래’가 그들로부터 초연되었던 겁니다.”

몇 해 전 본지에 실렸던 ‘판타가’(Fantaga) 창시자요, 현대음악 작곡가인 엄대호가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의 출판과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일찍이 전인평 작곡가(중앙대 명예교수)는 판타가 창시자인 엄대호를 향해 “엄대호 작곡가의 새로운 시도는 세계 음악계에 큰 자극을 주고 있다. 그가 새로 창안한 새로운 양식 ‘Fantaga’는 작곡가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획기적인 양식이다. 특히 그의 깊은 신앙심과 경건한 정신은 그의 음악에 잘 녹아있다. 그는 아직 젊은 작곡가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활동을 눈여겨 주목하고 있다”고 호평한 바 있다.

엄대호(嚴大號, Dae-Ho Eom, 1972)는 경일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대구예술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국내에서의 활동보다 외국에서 많이 알려진 작곡가인 그는 타인의 경우와는 다르게 삶으로 음악을 먼저 담았고 기술은 단지 그 위에 얹기만 한 경우라고 한다. 꾸준하고 절제된 생활을 바탕으로 독학을 해온 그에게 선배 작곡가들이 남긴 좋은 작품들은 훌륭한 선생이 되었다. 한 예로, 바르톡의 어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산과 들로 다니며 비슷한 환경에서 오래 연구했는데 결국 악보에 그가 나타나는 상상도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엄대호는 2006년 데뷔곡이자 조성 음악곡인 ‘Violin Rhapsody’를 발표한다. ‘Violin Rhapsody’는 3번 곡까지 만들어진 피아노 반주의 곡으로 음악인으로서 첫 곡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는 기억이 잊힐 만하면 습관적으로 미국의 워싱턴 D.C와 스웨덴의 스톡홀름의 시간과 세계지도를 자주 본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음악을 발표하는 플랫폼에 변화가 생겼다. 이때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등에서 동영상 ‘개인기 콘테스트’가 경쟁적으로 생겼다. 그는 ‘아나탈’(Anatal)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나탈은 Analog와 Digital을 합하여 만들었다. 그가 만든 ‘즉흥연주로 쓴 수필’은 뜻밖의 큰 관심을 얻었다. ‘즉흥연주로 쓴 수필’이라는 카테고리로 그의 도전은 200일 동안 매일 한 곡씩 그날의 세계적인 이슈 중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연주하였고 2년에 걸쳐 200곡을 발표하게 되었다. 전위적인 요소도 있고 실험적이었지만 완성미가 부족했고 조성 음악과 무조성 음악을 방황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곡의 형식을 탈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도는 당시 세상에는 파격적이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그의 동영상 연주를 언급하고 연구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브람스, 브루크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하차투리안, 말러의 계보를 이으며 그들의 경계를 넘는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 스스로 작곡가가 숙명임을 확신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불사르기를 작정한 작곡가 엄대호와의 일문일답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최근 음악 행보를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 작곡과 출판 이후 영문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 기획은 영문판이었지만 한글판을 원하는 다수의 소리가 있어 먼저 출판하였습니다. 영문판은 이 작품을 헌정하기로 한 스웨덴 왕실과 그 외 국가의 특정 단체에 자발적으로 전해질 예정입니다. 그 후 곧바로 오케스트라 버전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작품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작곡가 엄대호만의 독창적인 작곡 기,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 등 작품에 남다른 애착과 감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작곡하기 전 몸을 만듭니다. 운동선수가 경기에 나가기 전에 몸을 만들 듯이 저 또한 정신과 육체를 만듭니다. 정(淨) 한 몸이 되고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의 육(肉)이 갖추어지면 그때부터는 정신(spirit)을 가다듬습니다. 그러고는 주어질 때까지 저의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제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2016년 낯선 경남 거제의 대형 조선소, 하청 노동자 신분으로 이곳에 왔을 때부터 8년을 준비하여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전의 ‘성경 묵상 앨범’ 시리즈들은 경북 김천의 두산전자 하청업체 노동자 시절 완성한 곡들입니다. 이렇듯 저의 곡들은 평탄한 곡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작곡가는 제게 천직입니다. 벌써 다음 곡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엄대호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 악보집 표지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작품인가요? 현대음악 기법의 오페라이지만 종교음악장르에 들어갈 것 같은데요. 소개 부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뜻이 많이 알려졌기에 기존 오페라에서 많이 사용되는 내용 전개식 대화와 연극적인 부분은 절제하고 들어냈습니다. 음악적인 부분으로 이를 대신하고 여러 춤곡을 삽입하여 예술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프렐류드(Prelude)와 인터메조(Intermezzo)를 적절하게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2막 ‘십자가 처형’에는 교향적 춤곡(Symphonic dance)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붙였습니다. 전 곡에 걸쳐 판타가(Fantaga) 작곡 기법을 기본으로 더 발전된 대위법으로 작곡된 종교음악이며 인류의 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오페라입니다.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의 작곡 동기가 궁금합니다. 또한 연주 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때가 되어 오페라를 만들어야 되겠는데 어떤 작품이 적당할까? 라는 이성적 판단으로 접근했다기보다는, 솔직한 심정으로 어느 때에 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숙명을 직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내가 작곡가 행세를 하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 즉, 경제 활동에서 받는 모욕과 하대(下待), 부실한 육체, 극단적인 성격, 불평등, 인간이 겪어야 하는 수많은 번뇌 등 속에서 의를 찾아 나선 인생 여행자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은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섞이지 않고 끊임없이 내적인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에 오셔서 인류가 겪는 일들을 다 겪고 우리의 허물을 다 가지고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사실이 믿어졌습니다. 그분과 깊은 유대관계를 느꼈고 순간순간 교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처한 상황 속에서 탈피, 해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시간이 차매 가슴에서 격발되어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이자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연주 일정은 2024년 창단 예정인 작곡 단체 ‘인투로네이쳐’(Intro-Nature)에서 연주할 계획입니다. 연주가 필요한 단체는 누구나 자유롭게 편곡과 연주할 수 있도록 권장합니다.

작곡가요, 평론가인 정순영 선생의 대본이 무척 인상적인데요.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지요.

제일 중요한 대본을 쉽게 구할 수 없어 몇 년 동안 발만 동동거리다가 음악평론가 정순영 교수님께 정중히 의뢰하였습니다. 그분은 제가 활동한 작곡 단체인 한국국민악회 회장을 역임하셨기에 흔쾌히 승낙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사람은 모든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신앙적 자세가 토대가 되어 이 대본을 만들었고 주된 이야기는 성경에서 출발하였으며 사실적 근원을 두고 이야기를 이어갔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어 “사실 대본의 방향을 잡을 때 픽션과 논픽션 등 드라마적 요소를 더하는 것에 큰 유혹을 받았지만 자기 의(義)가 들어가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 본연의 숭고함이 퇴색될 것”이라는 우려로 “고심 끝에 성경에 기인한 대본을 쓰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한 에피소드라면, 오페라를 작곡하던 때였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대형 파이프를 배에 설치 중이었습니다. 대형 크레인과 연계한 공동작업이었는데 크레인과 파이프를 맨 1톤의 체인블록이 순간 힘을 이기지 못해 끊어져 버렸습니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이었습니다. 체인은 제 겨드랑이를 끼고 있었고 제 온몸을 타고 쓸려 올라갔습니다. 몸이 두 동강 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는데 기적처럼 다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도 공포가 가시지 않았는데 그때 오페라 2막의 ‘십자가 처형’을 작곡하고 있던 때입니다. ‘아!, 이 곡은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곡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이 늦둥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듯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오라던 예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렇듯이 오페라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고 그것을 통과하며 완성하였습니다.


예수의 고난을 그려낸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작품명이나 내용 등이 겹치는 것 같은데요. 음악적인 면에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작품은 장르가 다르고 내용 면에서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것에 차이가 있습니다.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현대음악입니다.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3막으로 구성된 풀사이즈 오페라라고 하셨는데요. 풀 오케스트라 버전의 작품이 아닌 현악4중주로 작곡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케스트라 곡들은 규모와 시대적인 악기의 다양한 개성으로 인하여 같은 곡이지만 다르게 들려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의 이전 작품 ‘벤허 발레모음곡’과 마찬가지로 잘 알려진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할 땐 다양한 규모의 연주 단체들이 쉽게 접근하길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작곡가에게는 번거롭더라도 중·소규모 실내악 단체를 위해 현악사중주 버전과 그랜드 오케스트라 버전 모두 기획하였고 2024년에는 오케스트라 버전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어느 시기가 도래하게 되면 저보다 훌륭한 음악가의 편곡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국내외 음악계의 반향이 클 것으로 예견되는데요. 작품을 통해 음악계는 물론이고, 오페라 애호가 및 청중들과 함께 어떻게 소통하고 공감할 계획인지요?

컴퓨터로 렌더링 된 데모 음원과 실 연주 영상을 유튜브를 통하여 공개하고 모든 악보를 원본 그대로 ‘엄대호재단’ 홈페이지(http://7song.org/)과 IMSLP(International Music Score Library Project)에서 무료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추후 각 단체에서 연주 계획이 생기면 협력하여 공연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새로운 악곡 형식인 판타가를 비롯해서 벤허 발레 모음곡, 피아노 로마서, 교향곡 3익투스’, 4노아의 방주등 다양한 현대음악 작곡과 작품집 출간을 펼쳐내는 선생님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이렇게 방대한 레퍼토리의 작곡과 작품집 출간을 할 수 있는 음악적 근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의’(義)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할아버지와의 일화로 시작됩니다. 할아버지는 겨우 6살이던 저에게 겨울의 따듯한 햇살을 벗 삼고 수확이 끝난 논을 바라보며 흙담 곁에 앉아 자연의 의(義)를 알려 주셨습니다. ‘해는 저 산에서 뜨고 저 산 너머로 져서 내일 저곳으로 다시 뜬다.’ 그리고 저의 가문의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단종은 계유정난(1453년)으로 세조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시신이 동강에 버려집니다. 조카를 죽이고 왕권을 친탈한 세조는 “누구든지 손을 대면 삼족을 멸한다”라는 어명을 내립니다. 이때 저의 선조이자, 영월의 호장(戶長)인 엄흥도(嚴興道)는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의를 행하다 화를 당할지라도 기꺼이 내가 달게 받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동강에 던져진 단종의 시신을 선산에 장사지내고 아들을 데리고 영월을 떠나 세상을 등지고 숨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영조 때까지 약 300년 동안 이름을 감추고 숨어 화전을 일구며 고대 로마의 카타콤베(Catacomb) 인처럼 살아야만 했습니다.

‘의’란 무엇인가?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고 어느 참고서에도 답은 없었습니다. 그저 사전적인 해석만이 전부였습니다. 명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조인 엄흥도의 의에 대하여 궁금했고, 그의 기질이 분명 제게 전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의란 무엇이란 말인가?’ ‘왜 그런 판단을 하여 우리 가문을 수 세기 동안이나 어려움에 빠트렸는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없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도대체 그런 양심은 ‘무엇이 바탕이라는 말인가!’. 그는 단지 사고(思考)만이 아니라 의를 행위로 나타냈습니다. 단종 시해 사건 이후 사람들은 그 사건을 기억하며 단종과 엄흥도, 그리고 사육신과 일부 생육신의 위패를 영월 장릉 창절사에 모시고 그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뜻이 높고 혈기가 왕성한 사춘기 때, 마치 돈키호테처럼 삶의 바다에서 파도를 만난 무모한 풋내기의 이유 없는 용기가 되었습니다.

사춘기 시절부터 음악만 듣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특이한 신체 반응을 알았기에 그것을 무조건 억압하기보다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통기타 동아리와 헤비메탈 밴드를 결성하여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습니다. 음악 동료들은 비록 취미로 했지만, 재능이 저보다 월등히 뛰어났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은 데도 가슴속 어딘가에 열망과 열정이 더욱 선명하고 강하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높은 산에 올라가도 답이 없고 넓은 바다에 가도 답은 없었습니다. 그럼 가문의 내력을 찾아보자고 본관인 영월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여행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엄자릉(嚴子陵)의 후예인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당나라의 파악사(波樂使) 신분으로 통일 신라 때 당악을 전하러 이 땅에 왔다는, 음악가 가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내력이 내 어딘가에 숨어 있었구나. 분명 한가지 답을 찾았고 그것은 비록 내가 화려하고 부러워할 학력과 이름난 선생에게 배울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음악가로 살 수 있는 밑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끝없이 솟아나는 열정은? 도대체 하나를 깨치면 열을 아는 사람들이 세상에 허다한데 나의 둔함은 새로운 벽에 부딪혔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철학적이었던 같습니다. 음악에 이런 철학과 삶이 담겨 있는 듯하고요. 그동안 한 명의 인간으로 걸어온 길, 음악과의 이끌림이 궁금합니다.

저는 스무 살에 대구에 있는 경일대학교로 진학하며 음악에 대한 본격적인 행보를 합니다. 경일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대구예술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문경의 탄광촌 가은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고요. 부모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소박하셨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가정에서 예능 교육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유년기와 청소년기 대부분은 산과 들, 강가에서 자연과 시간을 보내는 복을 얻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인 일제시대 지어진 판자촌 사택은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마을 자체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문경 석탄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되어있습니다. 어린 시절 광부들의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사내 방송에서 폴모리 악단, 벤처스 악단 같은 경음악과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사택 스피커에 흘러나왔습니다. 가끔 정해진 시간에 음악 방송이 나오지 않을 때는 직감적으로 ‘광산에 사고가 났구나!’라고 느껴 ‘아버지들이 무사해야 할 텐데’하며 기도했습니다. 이심전심 사택 사람들은 가장이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조아렸습니다.

세상의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소년은 친구 손에 이끌려 일찍 교회 예배당에 나갔지만 두드러지게 음악적 재능이 나타나진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 기타를 들고 단짝 친구에게 유행가를 작곡해서 들려주었는데 목사가 된 그 친구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나날을 보내다 인근 도시인 점촌의 문창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고요한 호수 같은 삶에 바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와 집이 멀어 통학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온종일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운명과도 같은 육체의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몸에 땀이 나면 피부에 발적이 생기는 현상이었습니다. 대인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심해져서 교련 시간과 체육 시간은 수업을 참석할 수 없어 혼자서 교실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교실 창으로 다른 친구들의 수업 광경을 멀뚱히 구경했고 게다가 독한 피부약은 의욕을 떨어뜨려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에는 미지근한 삶을 정리하고자 당시 군기가 잘 잡힌 해병대를 스물한 살 때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삶의 태풍을 만났습니다. 홀로 던져진 바다에서 태풍의 만남은 바로 생사의 문제였습니다. 머리를 빡빡 깎고 포항의 해병대 신병 훈련소에서 본격 훈련을 받기 위해 며칠 동안 대기하는데, 훈련소에서 신체검사 결과 집으로 돌아가라고 통보했습니다. 알레르기 피부병이 있었지만, 많이 좋아져서 정상인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현역병 판정 1급을 받고 입대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이유는 2가지 지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병을 처음으로 알게 된 때입니다. 집에 돌아온 후 처음 겪은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다음 해에 육군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요양 후에 재입대하라는 답변이었습니다. 두 번째 입대 불허 판정이었습니다. 인생이 비틀어 짐을 짐작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이른 새벽 대구의 팔공산 갓바위를 매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알게 된 지병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가슴속 불이 되었고 팔공산 갓바위 돌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위로하기 시작했고 그 행위는 고등학교 시절 재미 삼아 해본 명상의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칠성각과 산신각에 절하고 갓바위 부처의 큰 힘이 내 가슴속 화를 식히고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길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혈기가 한 창일 그 시기에 산 아래 사람들을 눈물을 머금고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은 호전되었고 1996년 1월 대학 졸업식을 한 달 남겨놓고 강제 징집 명령으로 육군 입대를 통보받아 의정부 306보충대대에 입대하여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당시 군의관은 “지병이 있어 입대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또한 공무원과 대기업 취업도 지병으로 인하여 제한될 것이야”라는 말을 했습니다. 다른 의사에게 들었던 말이 스쳤습니다. ‘마흔 살이 고비가 될 수 있어’. 순간 이십 대 초반의 동생 같은 이들과 함께 신체검사를 받는 이십 대 중반의 저는, ‘아버지는 강제로 폐광이 되어 퇴직하고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였고 어머니는 파출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간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군의관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를 꼭 입대시켜주세요!” 때 쓰며 애원했습니다. 잠시 그는 고민하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입대를 허락하였습니다. 그 후 철원의 한 포병부대에 배치받았습니다. 당시 정혼했던 여인은 아마도 지병이 있는 저와의 결혼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 입대 후 다른 이와 결혼했습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5군단 최우수 포반장이 되어 O.C.S 장교 지원 대상이었지만 지병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철옹성 같은 제 의를 단단히 쌓았습니다. 그런데 만기 제대 후에도 끝없이 일어나는 음악에 대한 갈증은 식지 않았습니다.

작곡가로서의 감동, 어떨 때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나요? 이렇게 꾸준히 또, 끊임없이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가슴에는 불이 있습니다. 불을 안고 세상인 바다로 뛰어든 것입니다. 저의 삶의 목적이 작곡이라는 것을 오래전 깨달았습니다. 연어처럼 그 길을 찾아 거꾸로라도 강을 거슬러 올라갔고 마침내 작곡이 제일 쉬웠고 무엇을 작곡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현 클래식계의 전반적인 미래는 어떻다고 보시나요? 국내외 클래식 음악계의 발전방향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혹(惑)한 것에 영혼을 빼앗긴 채로 살아가던 인류(人類)에게 코로나 사태 이후 전쟁으로 세상이 혼란한 이때, 우주(宇宙)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인간과 나의 관계에 문제가 있진 않았니?” 인류는 이 질문에 당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數) 논리가 선(善)이 되어 ‘다수가 가는 길이 옳다’라고 공공연히 주장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라는 속담처럼 소홀한 생각들과 집단 오해는 의(義)에 대한 인식의 아둔함을 가져왔습니다. 마치 길이 없는 사막을 대중들이 간다고 하여 무작정 따라나서서 사람만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의심 없이 나아가다 결국 사막의 깊은 곳에 이르러 ‘앗!, 내가 너무 깊게 왔구나. 이런! 무작정 바다로 뛰어드는 레밍 같이 되어버렸네. 이제 어떻게 하지?’라고 후회하는 제 잘났던 인류였습니다. “미래는 고도의 발전된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리성과 의학의 발달로 지금보다 생명이 훨씬 길어질 것이다”라는 장밋빛 예측을 그동안 미디어는 경쟁하듯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쓸쓸해 보이는 미래와 방황하는 인류의 모습을 담은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나 마츠모토 레이지의 만화 ‘은하철도 999’에서는 인간과 기계, 반 인간과 기계간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진리는 사라졌고 우주의 창조자는 다른 신들에 견제받을 만큼 약하며 그런 세계를 사는 인류는 평안 없어 우주의 고아처럼 방황하고 불안해합니다.

2022년 미국 웨스터민스터 콘서바토리 연주 포스터

음악의 대가 모차르트도 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다단조에서 꿈에서 깨는 자아를 부끄러운 듯이 표현함은, 세상이 나날이 발전됨과는 별개로 인간은 결국 불안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먼저 주어진 모형(模型)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속의 에덴의 동산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기 전의 세상은 가장 이상적이었습니다. 그 정신을 바탕으로 인류가 해석되고 그 위에 음악인의 행위가 입혀져야 합니다. 근본이 굳건히 확립되었다면 다음은 소통(疏通)입니다. 음악은 말과 글보다 전달이 빠르기에 자연스러운 표현이나 감정을 전달할 때나, 예시(豫示)할 때, 혹은 무엇을 의도(意圖)할 때는 계층 간 또는 인종 간, 이념 간의 벽을 쉽게 무너지게 하는 강한 감정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의 정신을 바탕으로 인류가 해석되고, 그 위에 음악인의 행위가 입혀져야 한다. 알 듯하면서도 어렵네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와 관련해 저는 2021년부터 리투든(RETODEN) 운동을 제창했습니다. 리투든은 ‘에덴으로 복귀(Return to Eden)’를 의미하며 만든 말입니다. 리투든 시대의 소통은 전략과 전술의 관계입니다. 에덴 때의 정신으로 복귀하여 창조주와 개인의 소통이 복원되고 음악은 색채로 그 위에 칠해질 때 참다운 아름다움이 있고 인류의 질서는 회복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음악인의 당면에 처한 인간고(人間苦)가 해결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이런 결과는 회개를 전제합니다. 그다음 비로소 음악인들 서로 간에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인한 결과에 순종해야 합니다.

작곡가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 작곡가 엄대호가 있기까지 함께해 준 이들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지루한 과정을 지켜봐 준 형, [엄대호재단] 이사장을 맡아주신 정순영 교수님, 마지막으로 저를 음악계에 데뷔하도록 이끌어 준 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님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의 음악 계획 및 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신가요?

2024-2025년 시즌에는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 5번 마라나타를 작곡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소재로 일렉트릭 기타와 피아노 앙상블 앨범을 여러 장 준비 중입니다. 2021년 12월 스웨덴 작곡가 협회로부터 스웨덴에서 활동하길 정식 제안받았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한국에서 활동하길 주변에서 권했습니다. 저는 그 뜻을 따랐고 그리하여 한국에서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를 발표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작곡가로는 교향곡 9번, 오페라 두 작품 그리고 발레모음곡 세 작품을 작곡하고 다양한 앙상블 앨범을 발매할 예정입니다. 저서는 ‘은혜로운 작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곡가 엄대호는 끊임없이 의(義)에 대해 고민했고, 그 끝에서 창조주를 만났다. 창조주의 마음에 다가가고자 노력한 그에게 신은 ‘진정한 자유’를 선사했다. 세상에서 말하는 단순한 자유가 아닌, 극한의 고통과 신음에서 해방되는 ‘참된 자유’를. 그렇기에 그는 음악으로 말한다.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 안에 인간의 근본이 담겨 있고, 세상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참된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인간의 근원에 대해 음악으로 소통해 나갈 작곡가 엄대호. 그의 행보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응원한다.

글 김순화


작곡가 엄대호

작곡가 엄대호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 선구자로 김성태, 김순남, 윤이상과 함께 2022년 미국 라이더 대학교의 웨스트민스터 음악원에서 선정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음악원은 1926년에 설립된 미국 뉴저지 주 로렌스빌에 있는 역사적인 음대 웨스트민스트 음대가 운영하는 콘서바토리이다. 그는 2008년 새로운 음악 형식 판타가(Fantaga)를 창시하였고, 엄대호 재단 상임이사,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 1933년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헨리 해들리(Henry Hadley)가 설립한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단체인 NACUSA(National Association of Composers/USA) 회원, ISCM KOREA 회원, 창악회 평생회원이며 ‘한국국민악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작품]

12 Violin Fantaga, Ben-Hur Ballet Suite, 피아노 로마서, Violin Concerto No.1, Symphony No.3 “ΙΧΘΥΣ”, Symphony No.4 “Noah’s Ark”, Opera 《Jesus Christ》

[작품 목록]

1. 작품집(도서)

1) 12 Violin Fantaga (2008)
2) Geojedo Suite (2018)
3) Piano Works released 2011 – 2013 album (2020)
4) Symphony No.1 & No.2 (2020)
5) Ben-Hur Ballet Suite for string quartet (2020)
6) Ben-Hur Ballet Suite for orchestra (2021)
7) Violin Concerto No.1 & No.2 (2021)
8) Symphony No.3 “ΙΧΘΥΣ” (2022)
9) Symphony No.4 “Noah’s Ark” (2022)
10) Opera 《Jesus Christ》 for Ballet, Voice & String Quartet (2023)

2. 피아노 음반

1) Quiet Time Bible 1 (2011)
2) Quiet Time Bible 2 (2011)
3) Quiet Time Bible 3 (2011)
4) Quiet Time Bible 4 [치유] (2012)
5) Quiet Time Bible 5 [피아노 로마서] (2013)
6) Quiet Time Bible 6 [창세기 1] (2014)

3. 일렉트릭 기타 음반

1)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를 위한 찬송가 1집 (2022)
2) 주는 나의 모든 것 찬송가 2집 (2023)

4. 판타가(Fantaga) 음반

1)정선아리랑 주제에 의한 판타가 (Fantaga) (Feat. 바리톤 전기홍, 피아노 유지혜)

5. 공동 저자

1) 한국민요 주제에 의한 창작곡집 (2021)
2) 한국음악 작곡가의 작곡 기법 (2022)
3) 한국민요 주제에 의한 창작곡집 (2022)
4) 인물로 본 한국 현대음악사 (2023 발간 예정)

6. 주요 논문

1) 불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다! (음악평론22집)

7. 작곡

[한국민요 주제의 2곡의 Fanatga], [결혼하는 이를 위한 피아노 사중주], 가곡 [바람의 말씨], 동요 [하늘], [여섯 개의 가사 없는 사성부 찬송가], 현악사중주 [그리스도와의 독대를 보고], [3 Violin Rhapsody],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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