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시쉬킨 피아노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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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일 금요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결론부터 내리면 훌륭한 피아니스트다. 기교적으로도 탄탄하고 무엇보다 구성력이 돋보인다. 1부는 유튜브에 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곡들 위주였는데 유튜브에서와 똑같아 데자뷔가 심했다.

바흐-부조니의 코랄 전주곡 “제가 주 예수 당신을 부르나이다”부터 프랑크의 <전주곡, 푸가와 변주곡 Op. 18>까지는 경건하고 엄숙하게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나갔다. 두 곡이 원래 오르간에 기반한 거라는 걸 새삼 상기시키면서 절제된 페달과 구성미로 꾸미지 않은 탄탄함을 보여주었다. 이어진 차이콥스키는 시쉬킨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는 걸 보고 싶을 정도로 카프리치오적이었다.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에 와서는 속전속결이었고 이런 기교 과시형 오락곡은 청중들과의 교감에 100프로 화답하기 때문에 차이콥스키부터 관객들은 조금 릴랙스하면서 피아노 독주회의 재미를 느끼게 환기되었다.

2부 첫 곡인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은 전체적으로 좀 빠르고 성급한 감이 있었다. 특히나 단락이 바뀐대서 의도적으로 뜸 들이지 않고 과장된 루바토와 리타르단도 하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들을 프로그램에 명시된 순서가 아닌 뒤죽박죽이어서 좀 헷갈렸다. 연주 순서와 상관없이 연대순으로 정리하자면 23의 1번에서는 센티멘털한 단선율로 안개 낀 밤거리의 애환을, 3번에서는 흐트러지지 않은 탄탄한 구성력을, 5번(오늘 제일 마지막으로 연주했던)은 모범적이었다. 32의 10에서는 폭넓은 고적감과 정서의 풍부함을에 점진적인 빌드 업하면서 1부의 모노톤적인 요소를 일거에 상쇄하고 다양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면서 각각의 프렐류드를 흥미 있게 나타내었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2번에서는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폭주하기 쉬운 전형적인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중 하나인 2번의 1과 4악장에서 과장되지 않게 프로코피예프의 익살과 아이러니한 점을 더 부각시키면서 전개해나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시쉬킨도 약점이 있었는데 그건 양손 교차다. 2악장에서 본인이 설정한 속도에 따라가지 못해 손이 꼬여 실수려니 했는데 A’부분에서도 여전히 버거워했으며 그건 4악장의 C#음 때리기에서도 똑같이 외줄을 타듯 불안했기 때문이다.

다시 결론을 반복하자면 탄탄한 기교와 모범생적인 해석 그리고 방대한 레퍼토리와 스태미나를 갖춘 피아니스트인데 서두에서 언급한 발렌티나 리시차나 임현정 같이 유튜브에 노출되고 이미지를 소비하는 한국형 인플루언서로 소모될까 봐 우려가 든다. 오늘 보여준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집에서의 그런 장점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음악장인으로서 정진한다면 본인 또래 고만고만한 경쟁자들 틈바구니에서 한 단계 더 도약, 키신과 루간스키를 이을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가로 우뚝 솟을 거다.

평: 성용원(작곡가, 월간리뷰 상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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