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마스터즈 시리즈 I – 베토벤 교향곡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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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김선욱은 아직 판단 보류다. 경기필하모닉도 도깨비 같다. 곡마다 아니, 심지어 한 작품의 악장마다 연주력이 달라서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 이번만이 아니다. 일정한 기간 내 연주회에서 각각 다른 클래스를 보여주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1부의 첫 곡인 바그너의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은 경기필의 현으로는 하기 버거운 작품이다. 바이올린의 고음으로만 시작하는 처음부터 엉키고 갈라지고 보잉도 맞지 않았다. (악보 1 참조)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천상의 신비로운 구원을 노래하기에는 경기필의 바이올린 능력으로는 벅차다. 4대의 솔로 주자가 내는 극단적인 고음의 A장3화음은 완벽하게 구현하는 건 정말 신의 경지다. 한국 작곡가가 창작곡에 그렇게 썼다면 아마 연주를 거부했을거다. 목관이 합류하는 지점에서도 밸런스가 깨지고 소리가 너무 컸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소리를 내주어야 할 부분에선 사운드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작았다는 거다) 이런 섬세하고 미세한 디테일은 초일류 연주자나 구현할 수 있는 거니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을 레퍼토리로 정했다는 자체가 무모하다 할 수 있지만 김선욱이 묵직하게 끝까지 밀고 나간 점은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악보 1>

리스트 협주곡에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곡에 대한 전개가 균형 있었으며 구성력이 탁월했다. 김선욱 지휘의 모든 반론과 설왕설래를 잠재웠다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기엔 오늘 리스트의 2번 협주곡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바딤 콜로덴코의 역할도 지대했다. 둘의 케미가 잘 맞았다. 둘 다 겉멋에 취하지 않고 음악에만 헌신하면서 리스트 헝가리안 랩소디와 교향시를 합한 악풍을 무난하게 이끌어내었다. 다만 여기서도 오보에, 호른 그리고 첼로 솔로가 좀 더 서정적이면서 유기적으로 흘러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강했다. 피아니스트 바딤 콜로덴코는 너무 여리고 섬세했다. 강약과 프레이즈 상의 대비가 극명했다.
베토벤 <영웅> 교향곡은 어떤 게 진짜인지 정말 몰라몰라다. 경기필이 꼭 그런다. 어떨 때는 정말 ‘우와’ 하게 잘하다가도 또 어떨 때는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1악장이 그랬다. 특히나 발전부 후반부의 1주제가 연결되는 부분(악보 2 참조)에서는 악기들의 음정이 제각각이고 너무 지저분했으며 재현부 2주제에서는 심지어 나와야 할 주제 선율이 먹혀버리고 심형래 영구 머리의 땜방과 같은 커다란 공백까지 생겨버렸다. 포디엄에서 방방 뛰면서까지 소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김선욱과는 상반적으로 모션과 사운드가 불일치했다.

<악보2>

그런데 2악장은 또 다시 엄중 집중모드로 밀도가 진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지루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게 정통파 다운 해석이랄 수도 있을 만큼 2악장은 엄격했다. 오케스트라가 틀리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건 연주자로서 명예를 걸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핵심 지점인데 3악장의 트리오 호른과 4악장에서 g-minor 파사칼리아 행진곡 전의 8마디 플루트 솔로가 그렇다. 그런 데서 꼭 틀리고 박자가 안 맞으면 절로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선욱의 경기필은 5월 말러를 듣기 전까진 판단 보류지만 확실한 건 조련사형 지휘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일주일 전의 윤한결의 모습에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비쳤다면 오늘 김선욱에게서는 정명훈의 후광이 드리워진 듯했다.

평: 성용원(작곡가, 월간리뷰 상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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