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 교육 스즈키메소드의 연륜과 함께 한 교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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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스즈키 원장 김미순

교사연수를 통해 스즈키에 대해 대(大)각성
연륜이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박웅현의 책 ‘여덟단어’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올해는 한국스즈키음악협회 30주년이다. 한국스즈키음악협회가 30주년이라니 얼마나 든든한 연륜일까? 그런데 협회만 그런게 아니다. 조직이 크다 보면 비슷한 아류의 협회의 유혹, 또는 스즈키 교재만을 사용할 뿐 그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 스즈키 철학으로부터 궤도를 벗어나는 교사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동안 한국스즈키음악협회와 같이 성장한 소나무 같은 교사들이 있다. 언제나 푸른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태양처럼 쏟아지는 스즈키의 정신을 가르치는 연륜!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안산스즈키 김미순 원장이다.
김미순 원장이 스즈키를 늘 사용해 왔지만 스즈키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 그 골갱이를 알게 된 것은 아주 아주 늦은 나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사용했다는 점에서 늦은 나이에 진정으로 만났다는 의미다. 국민대 대학원에 입학하고서야 스즈키를 어떻게 가르치고 나 또한 어떻게 새롭게 배워야 하는지 깨달았다. 스즈키는 윤동주의 참회록과 같은 교습법이었다.
“나비야, 작은 별 같은 곡은 정말 단순하잖아요. 그런데 스즈키교육 입장에서는 결코 단순한 곡이 아니거든요. 왜 그 곡을 연주해야 하는지 아무런 느낌도 없으면 무작정 보잉했던 부분들을 국민대 대학원 재학 중 교사연수를 받을 때에서야 배웠습니다. 교육에서 깨달음은 단순히 수학공식을 배우는 정도가 아닙니다. 감동입니다. 감동…”
김미순 원장은 대학원에서 깨닫기 전까지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쳤기에 그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이런 ‘대오각성’은 김미순뿐만이 아니었다. 교사 연수에 참여한 수많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스즈키 교사연수를 제대로 받으면 생각이 완전히 바뀌거든요. 무심코 가르쳤던 내용들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고 스즈키 메소드에 열정이 생기면서 교사 본인도 기초부터 천천히 다시 배우게 되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집중력과 참을성을 키우는 스즈키 메소드
바이올린은 단순히 악기에 불과할까? 지금까지 겪어본 스즈키 메소드는 악기만을 가르치는 교수법이 아니었다. 대상이 누구든지, 특히 어린이들에게 개인주의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협응정신을 심어주는데 매우 중요한 교수법이었다. 이는 황경익 회장이 교수 연수에서 늘 가르쳐온 ‘인문학’을 어린이 교육에도 적용한 결과가 아닐까? 황 회장은 ‘우리의 미래는 인문학에 달려 있으며 세월이 흐르면 아이들의 인간성이 반드시 변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미순 원장은 이처럼 인간의 정신까지도 고양시키는 스즈키 메소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아요. 개인주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 역시 그런 음악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즈키 교육법을 제대로 접하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4세, 5세, 6세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단체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거든요. 저 같은 나이대의 연주자들이라면 어린아이들처럼 연주하지 못할 거예요. 그룹으로 연주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 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으로서 오히려 겸손해졌습니다. 함께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한 거예요.”
김미순은 어떻게 하면 스즈키 메소드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지 방법을 배워나갔다. 전에는 ‘나비야’를 악보대로 가르치는 데 그쳤지만 스즈키 메소드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기초부터 탄탄해지고 더 발전하면서 학습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을 발견했다. 또 부모님들이 참여하는 오픈 수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신뢰를 얻게 되는데 이런 점들이 스즈키 교육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교사로서는 불안할 수 있다. 부모들 앞에서 레슨을 하는 게 불편할 수 있지 않을까? 김미순 원장은 그래서 교사 연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즘에는 어느 교육기관이든 흔히 말하는 ADHD(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장애)에 가까운 아이들이 1-명 중 3~4명은 존재한다. 주의가 산만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말을 거르지 않고 함부로 내뱉는 아이들이다. 한 명의 자녀를 둔 가정이 많아지고 그에 따른 부모님의 과잉보호로 인해 아이들의 인내와 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미순 원장도 이 점에 동의한다.
“그래서 스즈키 메소드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하체 근육을 강화하는 등 집중 훈련을 시킵니다. 먼저 서 있는 연습을 통해 하체 근육을 강화하고, 다리를 꼬는 습관을 교정시켜 줍니다. 그러면 자연히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죠. 처음에는 아이들이 힘들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오래 버티는 등 변화하는 부분이 보입니다. 현악기는 온몸을 집중해야 연주가 가능한 악기이기 때문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의 경우도 그렇고 집중력 훈련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제 생각에 아이들은 올곧게 만드는 악기 교육 중 현악기만 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 학부모와 원아에게도 필요
그런데 이 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주의가 산만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 법한 아이, 예컨대 자폐 스펙트럼 ADHD가 심한 아이들을 일반 아이들과 함께 배우게 하면 학부모들이 싫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 중에서는 부모님들이 스스로 먼저 합주 시간에 아이를 참여시키지 않기를 원합니다. 처음에는 참여시키는데 내 아이로 인해서 수업 전체에 피해를 주는 것을 발견하고 부모님들께서 자발적으로 참여시키지 않다가 꾸준히 가르치면서 인내력과 집중력이 키워지게 되면 참여시키거든요.”
김미순 원장은 아이들은 어쨌든 변화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했던 아이들 중 석판에 끌을 새기듯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를 떠올린다. 가장 극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악기를 전공하고 있다.
“교실에 들어오면 가만히 있지 못할 뿐 아니라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1년, 2년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는데 나중에는 점점 악보를 읽기 시작하고 생활 태도도 굉장히 차분해졌거든요. 무엇보다 교사를 믿고 꾸준히 함께해준 부모님 덕분이죠. 스즈키에서는 학부모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거든요.”
신은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별하기 위해서 인간의 얼굴을 다르게 창조했다’는 말이 있다. 비교가 아니라 구별! 스즈키 메소드 중 가장 중요한 철학 중 하나가 바로 ‘비교하지 말자’는 것이다.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자녀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 것을 늘 강조하고 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 학부모들 중에는 비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비교하지 말자’고 늘 강조하지만, 대부분 교육 현장에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바이올린 전공하는 대학생 자녀가 있고, 입시생도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들을 콩쿠르에 내보냅니다. 그걸 우리는 경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쟁이죠.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경쟁이 아니라 나의 실력을 그저 평가받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력과 비교하는 순간,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자만심에 빠지는데 스즈키에서는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 대해 평가받는 자리라고 늘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두 아이가 연주할 때 실력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한 명은 잘하고 한 명은 그보다 못할 수 있다. 또 한 명은 진도가 빠르고 한 명은 느릴 수 있다. 조금 실력이 떨어지고 진도가 늦은 아이 학부모들의 태도가 중요한데 이때 비교하려는 충동을 교사가 차단, 시간의 차이일 뿐 결국 해낼 것이라고 인지시킨다.
“나중에는 두 아이가 정말 같아지거든요. 처음부터 누구나 똑같을 수는 없으며 나중에는 모두가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물론 조심스럽게요.”

콩쿠르는 가장 좋은 동기부여책
안산스즈키는 일단 등록하면 그만두는 일은 거의 없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등원을 포기하는 경우는 있지만 전공을 하든 하지 않든 안산스즈키를 떠나지 않고 대부분 초등학교 때문에 대학 때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편이다. 아무리 바이올린 연주가 즐거워진다 한들 포기할 아이들이 있을 법한데 어찌 된 일일까?
“저희 학원에 온 아이들은 바이올린 연주가 어려워서 그만두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학년이 올라가거나 다른 진로를 찾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는 종종 있어요. 저는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어려워할 때 오히려 콩쿠르에 도전하도록 응원하는 편입니다.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무작정 배우기만 하면 목표가 없기 때문에 연습도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4개월에 한 차례씩 콩쿠르에 내보내거든요. 수상 목적이 아니기에 잘하는 아이들만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도 본인이 원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30명씩 콩쿠르에 참가합니다.”
콩쿠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어쨌든 성취감을 느낀다. 한 곡을 외워서 무대에 서야 하므로 우선 자신감이 생기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음 콩쿠르를 준비한다. 열없던 아이들도 흥분하기 마련이다. 연주회나 콩쿠르를 많이 이용하면 아이들의 실력이 향상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발표회에 참여할 때도 자신감 있게 나선다는 것이다.
“또 저희 학원은 자체 오케스트라를 조직해서 정기연주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습니다. 단원으로, 때로는 협연자로 함께하기 때문에 이 또한 원생들의 실력향상과 자신감 향상에 더없이 좋은 교육이지요.”

스즈키메소드를 권하는 김미순 원장만의 전략
김미순 원장은 스즈키가 아무리 좋아도 학부모들에게 스즈키 메소드를 권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러워한다. 생각 같아서는 ‘스즈키 메소드 교육을 받으시라, 아이들의 인생이 바뀐다.’ 이렇게 알리고 싶다. 그러나…
“학부모님과 상담할 때 당장 스즈키 교육을 권하고 싶죠. 그러나 무작정 권유하면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피한답니다. 악기를 잘 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악기를 통해서 국어, 영어, 수학 등 기타 과목의 학습효과는 물론, 남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게 우리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고요.”
악기를 연주하는 것 자체가 참을성, 성실함을 키워준다. 그래서 김 원장은 아이들에게 악보를 보고 연주하기보다 모든 곡을 외워서 연주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회, 과학과 같은 기타 과목은 암기해야만 학습을 따라갈 수 있는데, 암기는 참을성과 지속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스즈키는 악기교육을 통해 다른 과목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데 초점을 두고 설명한다.
“이렇게 이야기해드리면 학부모님들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무조건 음악이 아이에게 좋으니까 바이올린을 가르치세요. 이게 아니라 악기를 배움으로써 인내심, 성취감, 시간 활용, 예습, 암기 등 많은 것을 습득할 수 있고 다른 과목들도 잘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드리거든요.”

한국스즈키음악협회의 캠프를 통해 점점 성숙해지는 아이들
스즈키 메소드에서는 캠프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일부 선생님들은 학부모들로부터 참가비가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한국스즈키음악협회로서는 행사 자체만으로 적자를 본다 해도 반드시 캠프를 치른다. 왜 그렇게 캠프가 중요할까?
김미순 원장은 캠프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한다. 참가해야 하는 아이들을 모집해야 하고 그 비용을 학부모들에게 설명하는 일도 물론 부담스럽다. 일주일 동안 배워야 하는 프로그램을 짜야 하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수송하는 문제, 캠프 장소에서의 숙식 문제 등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이 함께 하는 캠프는 누가 이끌더라도 힘든 것은 사실이다.
“캠프에 가게 되면 선생님들은 평소보다 훨씬 바빠집니다. 수업에 더해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잖아요. 요즘에는 아이들이 부모님과 거의 떨어져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캠프에 가면 씻고 먹는 것, 머리, 옷입기 등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처음 부모없이 자기 매무시를 스스로 해야 하는 거죠. 첫날은 시행착오가 있지만 하루 이틀 지나고 3일이 지나면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캠프는 그런 효과까지 거두는 것이죠.”
김미순 원장은 걱정하는 학부모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누차 강조한다. 부모를 찾느라 자녀가 울지는 않을지 걱정하지만 캠프를 수 차례 진행해본 결과 결코 그런 일은 없다고 설명한다.
“실제 캠프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 엄마 아빠 생각은 금세 잊어버리거든요.(웃음) 부모님들도 첫날에만 전화하지만 둘째날이 되면 전화도 안 하십니다.”

존중과 초심의 배가 스즈키메소드의 강물에 흐르다
이렇게 아이들은 성장해간다. 성장이란 어쩌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아닐까? 스즈키는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을 연습하면서 홀로 서는 법을 가르친다.
“캠프에서는 학원 앙상블, 오후 음악회, 이브닝 콘서트, 그룹수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데 이런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다른 학원 아이들과 교류합니다. 선생님들 역시 다른 교사들의 교육 방식을 배우고 공부하는 시간이 되고요.”
김미순 원장은 이 부분에서 항상 ‘초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초심(初心)! 그게 김미순 원장의 모토다. 아이들을 늘 존중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역시 초심이다.
“아이들이 어리지만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항상 존중해주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른 선생님들은 얼마나 존중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 강사 선생님들께도 항상 존중과 존경의 마음으로 대합니다. 제가 원장이지만 바이올린 교사를 먼저 시작했을 뿐이지 잘 나거나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김미순 원장은 20년 이상 한 자리에서 수많은 학생들의 인격 형성을 도와왔다고 자부한다. 그 밑바닥에는 학부모와 강사와 학생들에 대한 존중, 그리고 ‘초심의 배’가 스즈키메소드 강물로 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글 김종섭
정리 박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