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으로 물든 무대 ‘2024 교향악축제 대전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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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창단 40주년을 맞은 대전시립교향악단(지휘 여자경) 2024 교향악축제 열 번째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봄기운으로 가득했던 주말이었기 때문일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미묘한 흥분이 감돌았다.

첫 무대는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Julius Berger)가 연주하는 블로흐의 <셀로모 – 히브리 랩소디>가 장식했다. 구양성경의 전도서를 기반으로 셀로모(솔로몬) 왕과 유대 백성 사이의 대화를 표현한 음악이다. 독주 첼로가 셀로모를, 오케스트라가 유대 백성을 나타낸다.

지혜의 왕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신중하고 섬세한 목소리에서 왕다운 위엄과 진중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이 허무하다 부르짖은 셀로모의 고뇌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베르거의 연주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휘감겨 있었다. 여자경이 이끄는 대전시향의 연주는 독주 첼로가 제시하는 셀로모의 인상과는 반대됐다. 리드미컬한 춤곡 모티브가 궁중으로서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한편 다소 충동적이란 인상마저 던져줬다. 이 같은 정반대의 성향은 2부로 접어 들어 셀로모와 백성의 갈등이 표출될 때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베르거는 이날 앙코르로 총 네 곡을 연주했다. 바흐의 코랄 전주곡 <진심으로 바라오니>를 시작으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프렐류드’, 이탈리아의 민속노래 <산 정상의 제왕>. 카잘스의 <새들의 노래> 등이었다. 특히 마지막 곡인 <새들의 노래>는 카잘스가 고향이 카탈루냐 지방의 민요를 첼로에 맞게 편곡한 작품으로 고향과 조국에 대한 사랑,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갈망을 새들의 노래에 빗댄 것이다. 베르거의 섬세한 연주는 작품에 담긴 심상을 왜곡 없이 그대로 객석에 전달했다.

이날 콘서트홀에 감도는 묘한 흥분감의 이유는 아마도 <봄의 제전>일 것이다. 평소 쉽게 접하기 힘든 난곡이며, 봄의 한가운데서 그 생명력을 넘어 야성과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사실이다.

오케스트라는 무대는 가득 채우고, 조율이 마치자 여자경이 무대로 등장했다. 그의 지시에 파곳이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목가적인 순간을 연주했다. 파곳 연주자는 첫 4분음표의 늘임표를 아주 길에 늘여서 연주했으며, 그 음색은 아주 밝았다. 어쩌면 시작과 끝을 완전히 대비시키려는 청사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봄의 제전>의 구조는 베토벤이 제시한 ‘어둠에서 빛으로’란 구조를 역전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밝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의 이미지로 시작해 마을의 처녀가 제물로서 희생하는 광란의 어둠으로 이어진다. 말 그대로 전락(轉落)의 드라마다.

1부 ‘대지에의 찬양’ 특히 제2곡인 ‘봄의 태동 – 젊은 여자들의 춤’에서 보여주는 생명의 역동성이 인상적이었다. 둔기로 내려치기보단 예리한 칼로 저미듯 표현된 복리듬(Polyrhythm)은 순식간에 귀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초반에 에너지를 쏟아냈기 때문일까. 2부 들어 제12곡 ‘조상의 초혼’즈음부터 소리의 끝이 약간 무뎌지기 시작했다. 물론 전체적인 타격감은 상당했지만 1부에서 보여준 예리함의 미학은 희석됐으며,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부분도 발견됐다.

이날 연주에서 독특한 점은 바로 조명 연출이다. 마지막 곡인 ‘희생의 춤’에서 붉은 조명이 무대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춤이 격렬해 질수록 진해지더니 마지막 패시지에선 검붉은 빛을 띠었고, 급기야 마지막 울림과 함께 무대는 어둠의 장막으로 휩싸였다. 그 효과 만큼은 상당했다. 다시 불이 커지자 객석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피날레를 앞두고 연주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명 연출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다. 작위적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연출이 작품의 메시지를 명쾌하게 드러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24 교향악축제_대전시립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여자경
협연: 율리우스 베르거
연주: 대전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블로흐: 셀로모 – 히브리 랩소디
바흐: 코랄 전주곡 “진심으로 바라오니” BWV 727 (첼로 앙코르)
바흐: 프렐류드 –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중에서 (첼로 앙코르)
산 정상의 제왕 (이탈리아 민속노래, 첼로 앙코르)
카잘스: 새들의 노래 (첼로 앙코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평 권고든(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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