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즐거움 보여준 무대 ‘2024 교향악축제_원주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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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풍성한 잔치였다. 2024 교향악축제 열한 번째 무대에 선 원주시립교향악단(지휘 정주영)은 각기 다른 나라의 네 명의 작곡가의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잔치와 같은 무대를 선사했다. 체코슬로바키아(스메타나)를 시작으로 독일(베토벤)과 러시아(차이콥스키)를 거쳐 헝가리(버르토크)까지. 이날의 연주회는 음악에 올라타 유럽을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주영과 원주시향이 이끄는 유럽 일주는 그 시작부터 활기찼다. 스메타나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으로 막이 오른 연주회는 순식간에 체코 시골의 춤곡의 정서가 무대를 가득했다. 이번 연주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두터운 현이 음색이었다. 최근 들어 선이 가는 음색과 해석을 선보이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많아져 오늘 같은 선이 굵고 풍성한 소리를 듣기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소리였다. 현이 선 굵은 흐름을 만들어내자 관악기 역시 그 위에서 풍성한 울림을 들려줬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독주자로 나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첫 마디 온 음표에 부연된 다이내믹은 포르티시모(ff, 아주 세게)다. 하지만 정주영과 원주시향의 포르테(f, 세게) 정도의 다이내믹으로 연주했다. 이전 곡에서 보여준 호쾌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내 독주 피아노의 연주가 시작되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정원은 웅장하거나 강렬하기보다 서정성이 드러나는 해석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정주영은 김정원의 해석에 발맞춰 다이내믹을 다소 줄이고 피아노의 서정적인 선율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 그렇지만 오케스트라가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에 단단하고 우렁찬 소리를 들려줬다. 

김정원은 고요한 정서가 지배적인 2악장에서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바이올린이 여린 소리로 주제를 제시하자 김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 환상곡풍의 연주를 들려줬다. 그리고 3악장에 접어들어서는 강렬하기보다는 경쾌한 느낌을 앞세워 상쾌하게 연주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앙코르로 브람스의 <간주곡>을 연주해 다시 한 번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정주영의 본모습이 돌아왔다. 풍성한 울림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큰 강처럼 유려한 음악의 흐름은 러시아음악의 낭만적인 특징과도 잘 어울렸다. 또한 전체적으로 묵직한 음색은 작품의 비극적 정서 또한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연주회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버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나>나 <봄의 제전>의 영향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목관악기의 반음계, 금관악기의 글리산도, 바이올린의 4분음 등 다채로운 테크닉이 스코어 곳곳에 등장한다. 이처럼 다채로운 음색을 구사해야할 때 오케스트라 ‘각 악기의 분리도’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현대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연주단체들의 무대를 보면 콘트라베이스처럼 묻히기 쉬운 악기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경우가 있다. 버트토크의 음악에서도 각 악기가 분리도가 선명할 때 음향효과도 살아난다. 그런데 정주영과 원주시향의 사우드는 한데 어우러지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기에 버르토크의 음악에서만큼은 이전의 곡들에서처럼 세부가 명징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유럽 일주를 마치고 정주영이 꺼내 놓은 앙코르는 디저트처럼 달콤했다. 브라질 작곡가 아브레우(Zequinha de Abreu)의 <옥수수 가루 위의 작은 새>는 남미 특유의 즐거운 리듬으로 객석에 웃음꽃을 선사했다. 그리고 청중들의 박수를 유도함으로 이 날의 무대가 축제였음을 확인시켰다. 

2024 교향악축제_원주시립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정주영 

협연: 김정원 

연주: 원주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스메타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 flat장조 op. 73 “황제” 

브람스: No. 2 간주곡 A major – 6개의 피아노 소품 op. 118 중에서 (피아노 앙코르)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 

버르토크: 중국의 이상한 관리 op. 19 

아브레우: 옥수수 가루 위의 작은 새 (오케스트라 앙코르) 

평 권고든(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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