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음반 : KBS교향악단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143

2018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말러 교향곡 제9번 실황음악을 발매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은 이후 6년 만에 KBS교향악단은 워너뮤직 코리아의 워너클래식 레이블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음반으로 발매했다. 작년 3월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도이치 라디오 필하모닉의 제1 톤마이스터 시몬 뵈켄호프 감독이 참여해서 3일간 강도 높게 녹음했다. 인간 감정의 복잡성과 내면의 조화에 대한 탐구를 현대미술 정현주 작가의 작품 ‘Passion’을 커버의 사진으로 선택해 작품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며 보는 사람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함으로 치유를 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은 연주 효과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여러 교향곡 중에서도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인기 레퍼토리이다. 역으로 그만큼 유튜브에도 좋은 연주가 산처럼 쌓여있고 클래식 음악 매니아라면 누구나 적어도 1-2장은 소유하고 있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음반으로까지 녹음한 이유는 무엇일까?

1악장: Con anima라는 지시어 ‘생기 있게’라는 단순한 번역보다 이 지시어는 ‘마음을 다하여’, ‘영혼을 불어넣어’ 등의 의미로 다가오면서 클라리넷과 바순에 의해 1주제가 서주의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제시되고 바이올린의 당김음이 효과적으로 2주제에서 나와 1주제와 대조를 이룬다.

2악장 : 독특하고 신비로운 현악의 서주는 신비롭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호른으로 이슬이 맺힌 조용한 새벽, 수줍게 해가 떠오르듯 제1주제가 등장한다 오보에의 소리는 맑기만 하다.

3악장: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바순의 멜랑코니와 해학이다. 3/4박자 왈츠지만 앞박에 액센트를 두고 테누토를 두면서 뒤에 밀려나는 힘의 무게와 박의 분별을 바순이 효과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박의 마지막에서 시작하는 3박 단위의 12개의 16분음표 움직임 모티브(차이콥스키 특유의 모토릭) 역시 날렵하고 Coda에서의 2박 단위 중간의 악센트로의 뒤로 밀림 등 시시각각 바뀌는 리듬꼴을 아기자기하지만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4악장: 현악이 여러 차례 등장하였던 운명의 주제를 받아 그것을 밝고 장엄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악장을 열었다. 그렇게 나아가다 3분 즈음 팀파니의 강렬한 연타가 나오는데 장엄한 서주를 마치고 Allegro vivece의 전개부로 들어가서 8마디 내내 지속되는 팀파니의 활용은 짜임새를 더욱 뚜렷하게 해주었다. 일단 팀파니는 그전부터 G음을 밑에서 트레몰로로 깔고 있다. 그런데 57마디부터 개시하는 크레센도의 유의할 점은 “빵” 때리고 들어가는 현의 삼중음이 f가 아니고 거기가 팀파니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팀파니는 계속해서 현의 강한 데타쉬에 G음 트레몰로를 하면서 쥐었다 폈다 압박과 수축을 하면서 66마디의 오케스트라 튜티에서 터지는 거다. 현악기들이 제1주제를 서로 투쟁하듯 강렬하게 연주하다, 오보에가 부속 주제를 연주하며 현악이 다시 이를 받아 진행된다. 목관 앙상블이 연주하는 제2주제는 긴장을 한껏 머금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을 관통하는 운명적인 비극을 강렬한 에너지로 승화시키며 마치 베토벤의 <운명>교향곡과 같은 서사를 만들어내었다.

결론: 카라얀도 아니요, 므라빈스키도 아니지만 잉키넨과 KBS교향악단의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 음반을 소지해야 하는 이유를 이제 설명할 때다. 첫 번째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출시된 한국악단의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라는 거다. 잉키넨은 “오케스트라에는 어떤 순간들을 계속해서 기록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앨범은 관객들이 듣는 것이기도 하지만 세계 비평가들한테 악단을 보여주는 ‘창문’ 역할도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래서 더 도전적이었고, 그만큼 결과가 값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고 기록물로서 역사를 남겨야 된다는 사실에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두 번째는 해외 유수악단과는 다른 KBS만의 휘광이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일어서는 영웅 서사의 클리세가 2024년 4월,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끝낸 대한민국에 이긴 쪽은 투쟁에서 승리로, 진 쪽은 개인의 곤경에서 집단의 해방으로 이어질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다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과 연결짓는다면 베토벤 사망 직후 있었던 파리 공연장에서 <운명 교향곡>의 승리의 마지막 악장이 끝나자 한 늙은 보병이 자신도 모르게 감격에 겨워 “황제다! 황제 폐하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옛 주군인 나폴레옹을 기렸다고 하니 우리도 언젠가 이 음반을 듣고 그때는 없을 잉키넨을 그리고 2024년의 정국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테니 말이다.

평 성용원(작곡가, 월간리뷰 상임음악평론가)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