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갖춘 추모의 2악장 <2024 교향악축제_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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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교향악축제 열두 번째 오케스트라는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지휘 김홍식)이다. 가장 멀리서 참가한 악단이이기도 한 제주교향악단은 김홍식의 지휘 아래 큰 스케일의 호방한 연주를 선보여 왔다. 반면 협연자로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김홍기는 섬세한 연주로 각광을 받아온 터라 전혀 다른 두 스타일의 연주자가 어떤 합을 보여줄지 흥미를 자아냈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이날 무대에서 김홍기는 둥글고 따뜻한 음색의 연주를 들려줬다. 또한 패시지도 잘 정돈돼 있으며, 프레이즈 사이의 연결도 부드러웠다. 전체적으로 매끈한 연주였다. 이러한 특징은 2악장 라르고(Largo)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영롱한 음색으로 진행되는 온화한 선율은 봄날의 햇빛처럼 부서지며 콘서트홀 전체로 퍼져나갔다. 아울러 김홍기의 연주는 성실하고 세심했다. 예컨대 2악장 두 번째 마디의 16분음표를 살펴보자. 스치듯 지나가는 작고 여린 음표일지도 모르지만 김홍기의 손끝에서 풍부한 뉘앙스를 지니며 연주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김홍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는 분명 따뜻하고 듣는 이를 기분 좋게 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것이 베토벤의 음악인가’ 하는 것이다. 작곡가의 초기 작품이기에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강세나 조옮김 등에서 이미 베토벤의 개성이 묻어나는 까닭이다. 또한 독주 피아노와 교향곡을 관현악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대립구도 또한 베토벤의 색깔이라 할 수 있다.

김홍기의 해석은 여전히 남아있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색감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베토벤의 개성 사이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시선을 고정한 연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김홍식과 제주교향악단의 반주 또한 김홍기의 연주에 동화된 모습을 보여줬기에 피날에에서도 부드럽고 온화하게 마무리됐다. 피아노 앙코르 또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중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를 선택해 부드러운 터치로 솜털 같은 음악을 들려줬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낭만적”>의 시작은 이른 바 ‘브루크너 개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피아니시시모(ppp, 아주 여리게)로 연주되는 현의 트레몰로(tremolo)는 브루크너의 시그니처다(심지어 71마디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악보를 살펴보면 도입부의 다이내믹이 흥미롭다. 현의 트레몰로는 피아니시시모이지만 3마디부터 등장하는 호른 솔로는 메조포르테(mf, 조금 세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연주에서 호른 솔로는 극도로 여린 현의 트레몰로에 맞춰 고용하게 연주하는 게 보통이다. 다이내믹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제주교향악단의 연주로 눈을 돌려보자. 모호하고 신비한 도입부는 김홍식의 지휘봉 아래서 훨씬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이 호른의 메조포르테에 맞춰진 듯 느껴질 정도였다. 선이 굵고 격정적인 해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브루크너의 매력이 희석된 아쉬운 선택이었다.

이날 연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2악장이었다. 엄숙한 종교 행렬 또는 장례 행렬이 연상되지만 브루크너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소년이 소녀에게 구애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식의 해석은 전자에 훨씬 힘이 실려 있었다. 실제로 연주에 앞서 열린 프리렉쳐(사전해설)에서 김홍식은 감상 포인트로 2악장을 꼽으며 오늘이 4월 16일이란 점과 제주의 4월을 언급했다. 4월 16일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를, 제주의 4월은 ‘제주 4·3사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2악장은 추념의 의미를 담았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가 2악장을 일종의 장송행진곡으로 바라본 이유일 것이다.

브루크너의 또 다른 시그니처 ‘브루크너 리듬’이 3악장에서 활약했다. 평소 스케일 큰 연주를 지향하는 김홍식의 장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어진 4악장 또한 약동하는 움직임으로 피날레까지 긴장감을 쌓아올리고 결국엔 타오르듯 장대한 교향곡의 방점을 찍었다.

평 권고든(음악평론가)

2024 교향악축제_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김홍식
협연: 피아노 김홍기
연주: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

프로그램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C장조 op. 15
피아노: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중에서 (피아노 앙코르)
브루크너: 교향곡 4번 E flat장조 “낭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