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돌아온 무대 ‘2024 교향악축제 김천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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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예열이 필요했던 것일까. 2024 교향악축제 열세 번째 무대에선 김천시립교향악단(지휘 김성진)의 시작은 다소 어긋나 있었다. 앙상블도 다소 성긴 구석이 있었으며, 전체적인 음색도 건조한 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열기와 윤기를 찾아갔다.

첫 곡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팀파니를 제외한 모든 악기가 뿜어내는 포르테의 울림으로 연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소리의 결이 다소 정돈되지 않은 인상이었다. 앙상블도 다소 삐걱거렸다. 이어지는 느린 리듬에서도 다소 불안정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연주가 계속되며 앙상블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피날레에 이르러 전체적인 템포가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로 변하는 시점에선 건조하던 음색도 초반과 비교해 촉촉해져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낭만적인 피아노 협주곡은 어쩌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음악 최상단에 위치할 것이다. 그만큼 이 곡은 사람들의 귀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만큼 녹록지 않은 곡이기도 하다. 익숙하기에 작은 실수도 금방 드러나는 까닭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충실하게 재현하기만 하면 감동은 보장되는 양날의 검과 같은 곡이다.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한지호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사이었다. 정확한 타건과 진행으로 충실하게 드라마를 쌓아나갔다. 음울한 종과 같은 첫 9마디의 피아노 독주를 살펴보자. 화음이 워낙 두텁게 쌓아올려진 까닭에 자칫 텁텁해지기 십상이다. 한지호는 절묘한 밸런스로 이를 영리하게 피해갔다. 이어 현이 제시하는 제1주제에서 다시 ‘에그몬트 서곡’ 초반 연주에서 받았던 인상이 재현되는 듯했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나타난 것이다.

1악장을 마치고 숨을 고른 덕분일까. 2악장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모두 안정을 되찾았다. 소리의 윤기도 훨씬 생생해졌다. 한지호의 밸런스 좋은 터치는 노래하듯 호소력 있게 객석으로 흘러들었다. 한지호는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고 섬세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런 점에서 스케일이 필요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과 상성 면에서 좋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부족한 스케일을 서정성으로 채우며 인상 깊은 연주를 선사했다. 또한 볼도로스가 편곡한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중 3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했는데, 섬세한 터치와 특유의 서정성이 빛났다.

메인 프로그램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이었다. 김성진은 목가적인 분위기 때문에 으레 느리게 시작하는 도입부를 꽤 빠른 템포로 연주했다. 실제로 작곡가가 부여한 빠르기는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로서 이날 김성진이 선택한 템포는 작곡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 결과 플루트가 표현하는 새소리, 시골마을의 경쾌한 분위기가 잘 살아났다. 3악장 역시 비교적 빠른 템포를 선택함으로 특유의 춤곡과 같은 리듬이 드러났다.

김성진은 이날 연주에서 이면에 숨어있는 선율을 앞으로 끄집어 내 연주에 다채로움을 선사했다. 최근의 많은 지휘자들이 잘 알려진 곡에 새로움을 불어 넣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어떤 방법이든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자칫 새롭게 드러낸 선율이 균형을 깨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날 연주에서 4악장 75마디부터 등장하는 플루트 솔로 선율에 대응하는 트럼펫의 리듬이 있는데, 김성진은 트럼펫의 리듬을 플루트의 주선율과 동등하게 다뤘다. 그로인해 신선한 느낌도 있었지만, 주선율이 희석된단 인상도 함께 들었다. 또한 158마디부터 169마디까지의 목관악기군의 밸런스도 생경한 구석이 있었다.
생경하고 어색한 인상이 있다고 해서 김성진의 시도가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말 그대로 생경하기에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성진과 김천시향의 신선한 시도가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천시향은 17년 만에 교향악축제에 참가했다. 그리고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편곡 아돌프 슈미트)로 경쾌하게 이 무대를 자축하며 모든 연주를 마무리했다.

2024 교향악축제_김천시립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김성진
협연: 피아노 한지호
연주: 김천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op. 84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 18
라흐마니노프: 3악장 안단테 – 첼로 소나타 op. 19 중에서 (편곡 볼도로스, 피아노 앙코르)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G장조 op. 88
드보르자크: 유모레스크 (편곡 아돌프 슈미트, 오케스트라 앙코르)

평 권고든(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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