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중용의 연주 ‘2024 교향악축제 춘천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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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송유진과 춘천시립교향악단은 2024 교향악축제 열네 번째 무대에서 한결 같은 중도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경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여유롭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동안 연습해온 바를 차분하게 풀어 놓는 무대였다.
첫 곡인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부터 살펴보자. 포르티시모(ff, 아주 세게)의 총주와 이어지는 바이올린의 서주는 오페라에 등장할 어둠과 혼돈을 예고하지만, 이날 송유진과 춘천시향은 훨씬 담담하게 연주했다. 16마디 템포가 갑자기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로 바뀌며 활력 넘치는 제1주제가 제시되는 부분에서도 변화의 폭은 크지 않았으며, 다이내믹 레인지도 좁은 편이었다.

두 번째 곡은 클래식 무대의 영원한 강자,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협연자는 피아니스트 주희영. 이 곡의 관현악 서주는 상당히 긴 편이다. 따라서 지휘자가 전체적인 연주의 분위기에 영향을 크게 미치곤 한다. 송유진은 모차르트의 서곡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어쩌면 독주 피아노가 충분히 활약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선 해석이란 생각도 들었다.
주희성은 이날 신중에 신중을 기한 연주를 들려줬다. 예컨대 2악장 라르고(Largo, 아주 느리게)를 살펴보면 매우 느리고 여린 연주를 들려주는데, 마치 손대면 부스러질 꽃잎을 두 손으로 잡는 듯한 인상마저 전해졌다. 한 음 한 음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듯 신중한 진행은 따뜻한 음색으로 다가오는 한편 너무 신중해 패시지가 다소 경직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3악장에 접어들며 자연스러워졌다. 이전 악장에서와는 다르게 풍부한 다이내믹을 얻기 위해 밸런스가 다소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경쾌함이 묻어나는 연주였다.

이날 송유진의 연주를 돌아보고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경유형으로 표현하자면 ‘J’형 지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획한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송유진과 춘천시향은 프랑크 ‘교향곡’을 꽤 오랜 시간 연습한 듯했다. 전체적으로 튀는 소리도 없고 특히 현의 사운드가 정돈돼 있었다. 그렇기에 주요 주제가 반복해 등장하는 ‘순환 형식 모델’이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는 효과를 얻었으며, 전체적으로 연주가 통일된 인상을 남겼다. 연습을 통해 마련한 청사진을 따라 무대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만약 현장의 분위기를 템포를 당긴다던지 다이내믹의 폭을 확장하는 등의 즉흥성을 발휘할 경우 세밀하게 쌓아올린 구조가 열기에 묻혀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송유진은 그런 연주를 지양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로 프랑크의 ‘교향곡’은 빛과 그림자처럼 무게감과 우아함이 조화를 이루고, 이로 인해 템포의 변화가 잦은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밸런스를 중시하고 안정적인 진행으로 일관한 송유진의 해석은 작품에 담긴 음악적 드라마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이날 연주에서 춘천시향의 음색은 깔끔했다. 또한 정확한 음정에도 많은 신경을 쏟는 듯했다. 2악장 도입부 현의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뜯어서 연주하는 방법) 연주에서 비브라토를 전혀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대 연주 또는 원전 연주에서 만날 수 있는 방식인데, 풍부함이 덜한 대신 명료한 소리를 얻기 위한 시도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랑크 ‘교향곡’처럼 고딕 성당과 같은 작품에선 명료함 대신 풍부한 울림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2024 교향악축제_춘천시립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송유진
협연: 피아노 주희성
연주: 춘천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 KV 620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op. 37
프랑크: 교향곡 D단조 FWV 48

평 권고든(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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