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만난 시간_얍 판 츠베덴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과거와 현재가 만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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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5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비가의 느낌을 잘 살린 연주

전반부 연주곡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 E minor, Op.85였다. 협연자는 독일의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Daniel Müller-Schott)였다. 1976년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하인리히 쉬프(Heinrich Schiff)와 스티븐 이설리스(Steven Isserlis)에게 첼로를 배웠다. 그 후 그는 일 년간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Ростропович)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다.

1악장 Adagio-Moderato. 도입부부터 뮐러 쇼트의 연주가 강렬하고도 깊이 있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케스트라는 그의 구슬픈 비가 레치타티보를 이어받아서 풍성하고도 웅장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첼리스트는 클라리넷, 바순, 호른과 짧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부드럽게 연주해 나갔다. 지휘자 츠베덴 또한 가볍게 물결이 치는듯한 지휘를 선보였다. 2악장 Lento-Allegro molto. 뮐러 쇼트는 피치카토와 스피카토를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여유있는 해석을 보여주면서 리타르단도를 하다가, 빠르게 스케르초 풍으로 전환하면서 뛰어난 속주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의 스피카토는 매우 현란했다. 3악장 Adagio.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가 서정적이면서도 우수 어린 선율을 느린 템포로 연주했다. 첼리스트는 몸을 크게 움직이면서 연주해서, 악기뿐만 아니라 몸 전체로 비감 어린 선율을 전달하려고 했다.

4악장 Allegro-Moderato. 웅장한 오케스트라 서주에 이어 첼리스트가 깊은 울림을 주는 비가 풍 카덴차를 연주했다. 뒤이어 뮐러 쇼트와 서울시향은 차분하게 행진곡풍 선율을 연주했다. 중반부가 지나가면서 저음현의 단호한 보잉은 검객의 짧게 끊어치는 검술을 연상시켰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목관악기들이 첼리스트와 짝을 이뤄 연주했을 때 그 소리가 너무 작게 들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뮐러 쇼트와 서울시향은 엘가가 느꼈을 1차세계대전의 슬픔을 잘 드러내면서 힘차게 연주를 마무리했다. 뮐러 쇼트는 앙코르곡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3번 C major BWV 1009중 6번 Gigue를 연주했다. 그는 능숙하고도 재빠르게 더블 스토핑을 구사했고, 리듬을 잘 살려서 연주했다.

작곡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연주

후반부에 연주된 곡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C major, Op.60 ‘레닌그라드(Ленинград)’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때에 이 작품이 연주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했다. 왜냐하면 이 곡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대조국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때, 독일군이 포위한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레닌그라드는 872일 동안 독일군에 의해 포위되었고, 2백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레닌그라드에서 이 작품을 3악장까지 완성했고, 레닌그라드에 있을 때 그는 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며 타임(Time)지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그는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맞서 음악으로 자신의 저항을 표현했다. 만일 그가 지금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비극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 자못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을 떠나 러시아인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워낙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서, 평소와는 달리 이날 공연에서 러시아 청중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현재 전쟁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러시아인들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 그 자체에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1악장. Allegretto “전쟁”. 제시부부터 현악기가 힘차고도 장엄한 주제를 들려주었고, 뒤이어 목관이 전쟁 전 평화롭고도 고요한 레닌그라드의 모습을 묘사했다. 제1 바이올린과 피콜로가 들려준 밝은 주제의 선율은 맑고 고요한 레닌그라드의 하늘과 그 하늘 아래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발전부에 접어들자 여느 때와는 다르게 비올라와 더블베이스 옆으로 전진 배치된 3대의 스네어 드럼이 현악기의 피치카토 지원 속에 피아니시모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아니시모 연주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아직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삶을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플루트를 포함한 목관이 다음에는 현악기가 ‘침공의 행진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라벨의 <볼레로(Boléro)>를 연상시키듯 오스티나토 연주가 지속되었고, 피아니시시모부터 포르티시시모에 이르기까지 점차 크레셴도 되는 22마디의 선율이 전부 12번 반복되었다. 레닌그라드 도시가 포위되었다는 심각한 사실을 암시하듯, 현악기는 포르티시모로 주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호른을 포함한 관악기가 연주하는 주선율과 현악기가 전달하는 절망적인 느낌의 선율이 힘차게 교차하기 시작했다. 스네어 드럼은 점차로 커지는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를, 팀파니, 큰북, 심벌즈는 항공기의 폭격을 묘사했다. 금관악기는 적군의 심한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도시의 모습과, 극도로 비참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시민들의 공포를 표현했다. 재현부에서 클라리넷과 바순 솔로를 포함한 목관은 공황 상태에 빠져 멍하니 있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냈다. 종결부에서는 스네어 드럼이 피아니시모로 연주했고, 트럼펫 솔로와 타악기는 ‘침공의 행진 주제’를 다시 재현했다.

2악장. Moderato — Poco allegretto “회상”.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언급했던 대로 스케르초와 서정적 인터메조 풍의 2악장은, 전쟁 전 레닌그라드에서의 생활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회상을 나타내는 듯했다. 오보에 솔로가 먼저 변주를 선보이자 더블베이스가 변주를 가볍게 이어받았다. 그러다가 목관이 회상에 잠겨있는 쇼스타코비치를 깨우고 다시 전쟁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듯, 갑작스럽게 불협화음 선율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 선율은 실로폰과 금관악기의 행진곡풍 연주와 합쳐졌다. 그것은 해학적 스케르초가 전쟁의 심각한 분위기와 뒤섞인 것이었다. 트리오에서는 제1 바이올린이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던 선율이 저음부 목관의 대위법적 선율로 이어졌다. 뒤이은 베이스 클라리넷 선율을 하프와 플루트가 지원하면서 왈츠풍으로 연주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3악장. Adagio “조국의 대지”. 목관악기들과 호른, 하프가 도입부에서 장대한 코랄 풍 선율을 들려주었고, 고음현은 비가 느낌의 선율을 연주했다. 그 선율은 쇼스타코비치가 말한 대로, 전쟁 전 땅거미가 지는 레닌그라드 거리와, 레닌그라드 시내를 유유히 흐르는 네바(Нева)강의 강변 모습을 떠올려주었다. 쇼스타코비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있기 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과 음악원을 포함한 학창 시절을 레닌그라드에서 보냈다. 심지어 그의 생가는 네바강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따라서 쇼스타코비치가 네바강을 포함한 레닌그라드와 그 대지를 보면서 조국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인상을 선율에 반영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리라. 서울시향의 연주는 저음현의 피치카토가 지원사격을 해주는 가운데 회상적인 느낌의 플루트 솔로로 이어졌다. 중간부에 들어서자 폐허로 변한 레닌그라드를 바라보며 깊은 절망감에 빠진 작곡자의 심경을 반영하듯, 바이올린의 유니즌은 빠른 템포의 연주로 발전했다. 뒤이어 2대의 스네어 드럼과 금관악기가 들려준 선율은 절망이 깊어지고 있음을 잘 드러냈다. 게다가 크레셴도에서 데크레셴도로 이어진 현악기 연주는, 크게 요동치고 있는 작곡자의 감정을 묘사했다. 다시 현악기가 들려준 평온한 서정적 코랄 풍 선율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일시적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은 작곡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시 바뀐 비가 풍 선율은 전쟁으로 죽은 군인과 시민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음악이었다.

4악장. Allegro non troppo “승리”. 아카타로 이어지며 탐탐과 팀파니가 길게 트레몰로 연주를 들려준 것은 다시 긴장감을 유발했다. 느리지만 단호한 현악기 연주는 저음현이 갑자기 행진곡풍 선율을 들려주자, 프레스토 템포의 오케스트라 전체 연주로 바뀌었다. 실로폰을 포함한 타악기의 타격은 현악기와 금관악기의 연주와 어우러지면서, 다시 심각해진 전쟁의 상황을 표현했다. 전투적인 연주가 시작된 것이다. 츠베덴의 지휘는 역동적이면서도 리듬을 잘 살리는 명확한 지휘였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피치카토는 고음현이 들려준 셋잇단음표 주선율을 지원했다. 그것은 베토벤이 사용했던 ‘운명의 주제’에 상응하는 ‘승리의 주제’였다. 후반부에서는 팀파니와 금관이 현악기와 함께 승리의 환희를 팡파르 풍으로 연주했다. 그것은 현재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게 될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승리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연주는 큰 북의 타격과 함께 포르티시모로 장엄하게 마무리되었다.

평 이호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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