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음반: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Chopin: Études)’

11628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4월 19일 출시한 데카(Decca)에서 첫 스튜디오 앨범 ‘쇼팽: 에튀드(Chopin: Études) 음반평

1833년에 출판된 에튀드 Op. 10

1번: 16마디에서 A단화음으로 살짝 숨을 숙이고 새롭게 단락을 여는 그 부분이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서도 완급조절을 해준다. 왼손 베이스의 온음표는 두 마디로 이어지다가 한 마디가 결합 되는데 그때 종지음은 박이 분절되고 오른손의 아르페지오가 흔들리지 않게 균형을 맞춰주고 있다.

2번: 오른손의 레가토가 부드럽게 지속되며 왼손의 스타카토와 맞물리면서 마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과 같은 반음계 스케일을 연출하고 있다.

3번; 서정과 드라마의 혼합체

4번: 20세기에 폴리니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임윤찬이 있다.

5번: 검은건반만 치는 게 아니다. 악센트에 주목하라. 그리고 왼손의 I-IV-I 화음의 종지가 짧게 아멘이라고 외치고 있음을 들어보라.

6번: 9번째 마디부터 ‘뎅’ 하고 울리는 4마디 단위의 왼손 베이스 Eb-F-D-Db의 4음을 들어보라! 그리고 C#-minor로 전조 되었다가 다시 원조인 Eb-minor 복귀해하는 대목에서의 프레이즈의 악절을 종지와 시작음으로 처리하고 다시 노래하는 대목은 어린 나이답지 않은 풍부한 연륜이 드러나있다.

7번: 오른손의 3도와 6도 음정을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따로 연주해서 붙여놓은 것처럼 완벽한 AI 같다. 간혹 울리는 4도 음정은 약방의 감초이며 종지에서의 왼손 fz는 2/4박자 리듬형과 어울려 생기를 더해준다.

8번: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육중하면서도 고전적인…

9번: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9번에서 접근하는 과도한 감성과 센티멘털을 지양하고 베토벤의 ‘열정’소나타와 같은 바단조의 수줍은 정열(情熱)

10번: 12/8이 아닌 2/4와 같은 악센트와 분절로 왼손과의 2대3 효과.

11번: 하프와 같은, 손가락이 벌어지는 게 절로 눈앞에 펼쳐지는, 달빛이 비치는 호숫가의 엘프와 같은 자태

12번: 격렬하게 몰아가는 폭풍과 혁명 전야. 빗발이 거세게 날리는 마차에서 비애와 울분을 가슴에 품고 새 시대로 향하는 거부할 수 없는 격정.

4년 뒤인 1837년에 출판한 에튀드 작품 번호 25번

1번: 흔들리지 않은 편안함

2번: 왕벌은 여기서도 날아다니지만 수직 강하를 하는 10-2가 아닌 반음계 꽃 주변을 윙윙 맴도는 우아함이 감돈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사랑을 전하는 전령사 ‘퍽’의 모습이로다.

3번: B-Major로 전조 되는 중간 부분에서 리타르단도를 줄이는 대신 F-Major로 돌아오는 부분에서는 앞에서 하지 않은 리타르를 뒤로 당겨 하는 묘미가 있으며 왼손은 슬러에 이은 1박 끝음에서 스타카토로 튕기면서 반발력을 동원 더욱 말 달리는 보폭이 넓어지게 하였다.

4번: 도약이란 이런 거. 현기증이 일만큼 현란하다…
5번: 16분음표의 짧은 계류음을 연속적으로 씹히지 않고 정확하게 해결해 가면서 짧은 순간이지만 선율을 부각시키고 꾸밈음이 아닌 선율이라는 걸 인식시킨다. 중간부 렌토(Lento)의 파도와 같은 오른손 넓은 아르페지오에 왼손의 브라스(Brass)와 같은 온화한 선율이 풍부하고 따뜻하다.

6번: 오른손의 3도음정은 10-7과는 다른 완벽함이다. 가만히 앉아서 오른손의 중지와 약지만 움직여보라. 당신이 2-30번 정도 두 손가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움직일 수 있다면 다행이다. 마비가 오지 않은가? 경련은? 운동이 아니다. 그런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깔고 이제 피아노 건반의 무게에 맞서 균열 없이 움직이며 왼손의 3+4+4 프레이즈와 맞물려야 한다. 3도 운동은 같은 장소에서만 그러는 게 아닌 그걸 또 위로 쭉 끌어오려야 하고 또 쭉 내려와야 한다.  3부 형식의 A’복귀 전의 고음에서의 양손 3도페시지는 화려하다. 4마디의 프레이즈 마무리에 2도음정이 끼어있음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7번: 봄비 내리는 ‘곡우’에 꼭 맞는 왼손의 중후하고 절절한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8번: 레가토지만 레가토 같지 않은 레가토 같은 10번. 삼연음부지만 삼연음부가 아닌 2개의 8분음표 조합의 2+2+2라는 구조로 만들어간 6도 음정.

9번: 8분음표로 된 첫 음을 찍고 슬러로 옥타브 상승한 다음, 옥타브 스타카토로 내려와야 하는 음형을 빈틈없이 처리하면서 곡의 마지막에 한 옥타브 위로 더 올라가 반복되는 4마디와 Gb장화음의 연속이 여운으로 남는다.

10번: 같은 옥타브로 양손이 치지만 다르다. 곡의 앞과 뒤가 휘몰아치는 리스트(Liszt) 식이라면 중간은 슈만(Schumann)과 같다. 작품 안에서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전개해 나가는 임윤찬의 모습에 쇼팽 리스트 그리고 슈만이 오버랩된다
.
11번; 칼날 같은 겨울바람. 바람이 불기 전의 앞 4마디 전주가 더 무섭고 오싹하다. 언제 겨울바람이 날카롭게 얼굴을 비수같이 그어댈지 몰라서…
12번: 이건 눈으로 봐야 한다. 임윤찬이 치는 모습을 보면서 들어야 한다. 그럼 더욱더 아리. 이 곡이 왜 큰 파도라는 대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지. 차라리 성난 파도라는 노도(怒濤)라고 부르고 싶다.

총평: 10-4의 감상평으로 갈음한다. 무조건 구매하라! Must have it.

평 성용원(작곡가, 상임음악평론가)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