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머에 영광 있으라 ‘2024 교향악축제 광주시립교향악단’

14

4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24 교향악축제 프로그램 중 유난히 쇼스타코비치가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스물한 번째로 무대에 오른 광주시립교향악단의 프로그램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 때문이었다. 단지 베이스 독창자와 남성합창이 등장하는 대편성 교향곡이란 점 외에도 좀처럼 한국에서 들을 수 없던 작품인 까닭이다. 그리고 광주시향은 지난해 10월 이 곡을 한국 초연했단 점도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었다.

연주회 1부를 장식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피아니스트인 아들 막심을 위해 쓴 곡이다. 그래서일까.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2악장의 선율은 감미롭기까지 한다.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신창용의 연주는 너무 힘들이지 않은 경쾌함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패시지를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심각하지 않고 무표정한 느낌의 연주가 때론 냉소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바순과 오보에, 클라리넷이 빚어내는 행진곡 풍의 도입부를 피아노가 그대로 받아 유쾌한 걸음으로 주제를 연주했다. 때때로 피아노가 끼어들어 속도를 더하고 급기야 피아노는 질주를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됐는데, 신창용의 테크닉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의 연주는 2악장에서 매우 감각적으로 펼쳐졌다. 약음기를 낀 현을 바탕으로 피아노의 흐름이 우아하게 이어졌다. 중단 없이 3악장으로 이어진 연주는 다시금 속도를 높여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피날레까지 진행됐다. 1, 3악장과 2악장이 뚜렷이 구분되는 해석은 물론 감각적인 음색까지 여러모로 기분 좋은 연주였다.

앙코르는 역시 쇼스타코비치였다. <발레 모음곡 3번> 중에서 ‘엘레지’를 연주했는데, 빠르게 달려 온 연주로 숨을 헐떡이는 관객들을 포근하게 보듬듯 편안하게 이뤄졌다.
양파와 보드카 냄새가 진동하는(I pakhnut vodkoy s lukom popolam, 1악장 합창 가사 중)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 ‘바비 야르’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근처의 마을 이름으로, 독소전쟁 중이던 1941~43년 나치 친위대의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주도로 3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과 집시,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소련군 포로들이 집단 학살된 곳이다. 이 곡의 1악장 표제도 동일하다.

베이스 독창과 남성합창이 가세하는 3관 편성 규모이기에 무대는 연주자들로 북적였다. 이날 베이스 독창자는 지휘자의 왼편에 섰고, 합창단은 오케스트라 뒤편에 위치했다. 콘서트홀은 합창석이 따로 마련돼 있지만, 무대에 함께 합창석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다분히 현실적인 선택이라 볼 수 있다. 합창단이 앉고 서는 경우가 낮은데, 합창석의 좌석은 모두 접이식이기에 소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석원의 해석과 지휘는 전체적으로 효율적이었다. 오케스트라는 물론 독창자와 합창단까지 일사분란하게 조율했으며, 음악적 표현도 상당부분 챙겨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해석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스케르초 악장인 2악장 ‘유머’였다. ‘어떤 지배자도 유머는 어찌할 수 없다’는 풍자가 담긴 부분이다. 홍석원은 연습번호 34번의 스타카토로 이뤄진 4분 음표들을 마치 ‘하하하’하는 웃음소리처럼 표현했는데, 2악장의 표제인 ‘유머’는 물론 냉소적인 뉘앙스를 함께 전달해 연주에 입체감을 더했다. 이러한 유머가 있었기에 전체적인 연주의 밸런스를 이룰 수 있었다.

베이스 김대영과 노이오페라코러스도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다. 오페라 무대를 방불케 하는 김대영의 가창과 더불어 거친 울림으로 군중의 고통을 전달한 노이오페라코러스의 합창도 이날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였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대곡을 실연으로 만날 수 있게 땀흘린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2024 교향악축제_광주시립교향악단
일시·장소: 4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홍석원
협연: 피아노 신창용
연주: 베이스 김대영, 노이오페라코러스, 광주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2번 F장조 op. 102
쇼스타코비치: 엘레지 – 발레 모음곡 3번 중에서 (피아노 앙코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B flat단조 op. 113 “바비 야르”

평 권고든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