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은 배려와 상호존중의 ‘소셜 무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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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예술총감독

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 김희철 예술총감독

“합창은 블렌딩입니다. 섞는 것이죠. 무엇이든 자기 목소리만을 높이려고 할 때 다툼이 있고 갈등이 발생합니다. 제주국제합창축제는 블렌딩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 프로 합창단과 아마추어 합창단이 하나가 되어 ‘화합과 비상’을 연출하는 ‘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이하 제주합창축제)의 김희철 예술총감독. 제주국제합창축제는 아마추어와 프로만의 브랜딩이 아니라 세계 어느나라든 참여할 수 있고 어린이합창단을 비롯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른 비율로 참여하는 글로벌 페스티벌이라고 설명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이태리 코스타리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국제 합창단들이 줌으로 참여하지만 그래도 그 열정은 그 어느 해보다도 뜨겁다.
“서로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경연대회나 전적으로 누군가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행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제주의 합창축제는 여타 축제와는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아마추어와 프로합창단이 함께 하지만, 국제 합창축제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개막축제’는 프로합창단들이 두루 참여한다. 올해에는 부산시립합창단과 제주도립합창단, 성남시립합창단, 코다이합창단 등이 출연하다.
제주합창축제는 국제적인 성격을 띄지만 제주를 기반으로 하는 축제이기 때문에 지역합창단들도 적극적으로 참여, 제주만의 특징을 살리고 있다. 탐라합창제 우승팀과 한국국제학교제주캠퍼스 고교합창단 등 축제기간 동안 매일 한개 이상의 제주지역 합창단이 출연하도록 구성했다.
‘오래되면 스스로 밝아진다’는 말이 있다. 맹자의 존구자명(存久自明)이다. 도자기가 진품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골동품을 오래도록 지켜볼 때 싫증이 나면 가짜, 싫증나지 않으면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제주합창축제가 그렇다.
“합창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제주도민들이 합창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합창축제는 6회째이지만 상당히 오래전부터 해왔던 축제입니다. 강문칠 선생님께서 시작했을 때로 거슬러 오르면 합창축제의 역사는 6회가 아니라 훨씬 오래되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선명회합창단과 과천시립합창단 등을 25년 이상 이끌어왔기 때문에 합창축제와 저의 경력을 고려하면 합창노하우가 보통은 넘겠죠.”
김희철 감독은 합창은 무엇보다 ‘블렌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합창단원들간의 블렌딩, 합창단들과의 블렌딩, 지역주민과 참가팀간의 블렌딩을 뜻한다. 다행히 제주합창축제는 제주도민들과의 블렌딩 역시 해가 갈수록 조화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자평한다. 지속가능한 합창축제로서 세월이 흐를수록 합창의 ‘존구자명’은 분명해지고 있다. 김희철 감독의 보람은 여기에 있다.
“합창은 누가 잘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블렌딩의 행복을 느끼는 게 합창입니다. 노래 자체가 즐거움이죠.”

김 감독은 소리의 블렌딩을 뛰어넘어 마음의 블렌딩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인드의 블렌딩은 마치 부부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과 같으며, 타인의 잘못과 단점을 후벼파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어야 할 음악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파내기 보다는 사랑으로 보듬고 덮어줘야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고 평화가 깃드는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합창은 이벤트나 행사가 아니라 배려와 상호존중을 위한 ‘소셜 무브먼트’가 되는 거죠.”
맞다. 축제란 경쟁이 아니다. 축제에서는 오페라 가수들을, 오케스트라들을 A급 B급으로 구분하거나 프로연주자들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노래할 수 있다’는 비아냥과 자만심도 찾을 수 없어야 한다. 상대측의 합창실력을 무시하거나 서로 오해할 일도 없다.
한편 김 감독은 축제의 일환으로 펼치는 심포지엄에도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제주도 합창지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휘자를 위한 워크샵’을 펼치는가 하면 이영조 교수가 리드하는 심포지엄을 통해서도 제주지휘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제주 출신 지휘자들은 모두 무료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합창지휘자들의 기량을 높이는 한편, 우수 합창인을 발굴하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좋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제주합창축제는 프로그램에서도 그 특색이 엿보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제주해녀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해녀의 삶’을 주제로 한 창작 합창곡을 메모리합창단과 탈북청소년합창단 등이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인다.
“특히 이영조 작곡가의 창작곡 ‘오! 제주’는 제주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많습니다. 여전히 독일 등 유럽에서 가장 자주 초청받을 만큼 훌륭하신 분이죠. 선생님의 작품에는 주옥같은 합창곡이 많지만 이번에는 제주의 영혼이 담긴 곡을 작곡해 주셨습니다.
아직은 저희가 원하는 만큼 창작곡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와 관련한 시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죠. 공모도 자주 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좋은 시가 있어야 좋은 곡이 나오는 법이거든요.”
김희철 감독은 제주합창축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더욱 발전하려면 ‘전문성’과 ‘다양성’이라는 두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현재 치르고 있는 제주합창축제는 그런 방향과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누가 봐도 훌륭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 합창단이 꺼리낌없이 제주를 찾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예산문제와 상충할 수 있지만 축제를 지원하는 단체가 축제정신을 이해한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양성이란 무엇일까? 축제란 지자체나 정부가 예산을 풍성하게 지원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축제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과 충족감이 중요하다. 축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히 개최하되, 관객을 동원하는 식이 아니라 관객이 축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합창단이 참여하고 관객 역시 이들의 합창을 듣기 위해 스스로 찾아오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는 말이다.
“저뿐 아니라 김현동 총괄본부장도 오랫 동안 쌓아온 네트웍과 행정력, 기획력 등 모든 노하우를 축제에 몽땅 쏟아내 전문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모든 노하우를 모두 동원해도 해결되지 않는 걸림돌이 있다. 세계적인 합창지휘자들을 직접 대면으로 모실 수 없는데다 국내 팀들도 오미크론 때문에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수잔나 쏘우(Susanna Saw)와 미국의 합창지휘자 티제이 하퍼(T. J. Harper)와 남아공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미카엘 바렛(Michael Barett) 역시 오미크론 때문에 발이 묶였다.
“줌으로 참여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죠. 어쩌면 이런 장애들 때문에 4차 산업혁명에서의 합창 역할을 탐구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세계인들이 마음으로 하나가 될지 고민하게 됩니다. 축제의 주제가 ‘새로운 비상’인데 다시 일어나 마음을 열자는 뜻도 있습니다.”
내 마음도 열고 네 마음도 열어보자! 합창은 미풍이다. 마음을 여는 건 이벤트와 같은 강풍이나 태풍이 아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오페라도 좋겠지만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스스로 열게 하는 건 미풍이다.
김희철 감독은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 부족한 예산과 코로나19라는 장벽이 있지만 그러기에 더욱 감동적이라는 절대 긍정의 감독이다.
“예술에 시련이 없으면 감동이 없습니다. 지칠 때도 있지만 후배들을 위해 꿋꿋하게 해내갈 각오입니다.”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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