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 합창으로 한마음 – 제6회 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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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 25일 제주문예회관에서 개최

하멜도 효종 앞에서 합창을 부르다

‘산은 홀로 울지 않는다. 바람도 홀로 울지 않는다. 강물도 홀로 울지 않는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홀로 울지 않는다. 사람도 홀로 울지 않는다.’
2022년 2월 22일(화) 오후 7시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 개막연주회에서 축제 참가팀들로 구성된 연합합창단이 작곡가 이현철의 창작곡 ‘해녀의 삶’을 부르자, 시 한 수가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게 바로 합창이야!’

‘바다가 설움을 부를 때 석양 메고 가는 어멍
궁창의 천사로 바다에 나려온 나의 해녀
청춘 치마 바다에 풀고 석양빛 맨살 남았네
……
치마 대신 바다가 준 얼굴의 파도 주름에
내 맘은 석양보다 붉은 그리움 일렁이네
바다에 갈 때마다 붙잡는 그리움, 해녀어멍’

‘해녀의 삶’을 듣는 동안 약 4년 전에 쓴 시 ‘해녀어멍’이 떠올랐다. 인간은 태초에 실력을 뽐내기 위해 ‘솔로’로 노래하지 않았다. 이스터섬에 영국탐험대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들을 환영했던 원주민들은 합창으로 맞이했고, 스페인 장군 코르테스가 베라쿠르즈에 도착해 멕시코를 약탈하기 전에도 원주민들은 노래로 맞이했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환영의 노래가 바로 합창이다. 성경에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도 이스라엘 민족의 합창과 함성이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로 참여한 김정섭 교수(성신여대)의 말처럼 하멜도 효종 앞에서 최초로 합창을 했다지 않은가. 그러기에 산도, 나무도 홀로 울지 않듯 사람도 영혼도 홀로 울지 않는다. 인간은 원래 합창의 동물 ‘호모 코러스’가 맞다.
‘태왁’ 십여 개를 무대 위에 놓고 명창 안복자가 구슬픈 솔로로 해녀의 고달픈 생활을 그린 ‘해녀의 삶’은 향토적인 창작곡을 토대로 세계적인 합창의 융합을 도모하려는 제주국제합창축제의 본질과 딱 맞아떨어지는 개막공연으로 볼 수 있다.

‘해녀의 삶’과 ‘오! 제주’ 제주토속적인 창작곡 감동

오프닝곡에 이어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이번 축제의 협력감독인 티제이 하퍼를 비롯, 구만섭 도지사 권한대행,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 제창축제 이영조 위원장 등의 축하인사와 함께 코리아합창단, 제주레이디스콰이어, 메모리아합창단, 제주프라임필하모니오케스트라, 구미시립합창단 등으로 구성된 ‘제주국제합창축제페스티벌콰이어’가 또다시 무대에 올랐다.
홀 안에 세계적인 한국 작곡가 이영조의 창작곡 ‘오! 제주’가 흘러넘쳤다. 예술총감독 김희철 지휘자의 손선율은 파도의 일렁거림 그대로였다. ‘해녀의 삶’에서의 손선율은 고통과 애환이 혼재하는 아픔의 지휘였다면, ‘오! 제주’에서는 낙천과 해학이 너울지는 제주 바다의 흐름이었다.
후반부에는 제주도립서귀포합창단이 상투스(Frank Martin)에 이어 2021 도립서귀포합창단 위촉곡인 전경숙의 ‘선작지왓’을 대금 김순이의 뭉근한 국악 리듬과 함께 노래했다.
서귀포합창단의 곡 중 특히 인상적인 곡은 Byron J. Smith의 ‘He’ll Make a Way’로 치고 들어가는 매력이 마치 해녀가 보이지 않는 물속 세계로 퍼스트펭귄처럼 뛰어드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콜레기움보칼레서울의 전범적 연주 일품

이날 가장 합창의 전범(典範)적 실력을 보여주었던 합창단은 ‘콜레기움보칼레서울’이었다. G.P. Palestrina의 ‘Exsultate Deo’(하나님께 환호하라) C. Monteverdi의 ‘Cantate Domino’(칸타테 도미노), Felix Mendelssohn의 ‘Sech Lieder’(op.88) 등 다섯 곡에서 풍기는 합창 향기는 저절로 정화된 숲속의 호숫물처럼 맑고 깨끗한 화음과 정격연주의 깊은 맛을 선사했다. 자휘자 김선아의 해석과 어디에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꿰뚫는 손맛이기도 했다.
첫날 공연의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 부산시립합창단도 관록 있는 이기선 지휘자의 연출과 지휘 또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Prelude for the Voices’는 여러 측면에서 합창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작곡가 이영조 교수는 이번 워크샵 인사말에서 ‘음악은 의미있는 소리’라고 강조했다. 이기선은 이 작품에서 합창은 의미있는 부르짖음으로 해석한 듯 소리를 최대한 정제하되 공간을 파열하는 박진감과 점점 사라지는 피아니시모 소리를 오가며 미려하게 다듬어냈다.
‘도라지꽃’과 ‘정선아리랑’도 우리 리듬이어서 좋았지만 역시 합창의 이모저모를 보여준 것은 William Schumann의 ‘Prelude for the Voices’였다.

합창의 수준을 한층 높이는 워크샵 인기

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워크샵을 뺄 수 없다. 제주도내 합창지휘자들은 물론, 서울 등 전국에서 찾아온 지휘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합창수업은 단순히 제주국제합창축제의 수준을 높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전체의 합창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권위있는 행사로 치러졌다.
올해에는 이영조 교수의 강의 ‘한국 합창의 세계화’를 시작으로 티제이 하퍼 교수의 ‘Through ‘the Microscope’(Online), 김선아 교수의 ‘바로크 연주 기법’, 민인기 교수의 ‘효과적인 리허설테크닉’, 수잔나 쏘우 교수의 ‘Musician ship in Choir Rehearsals’(Online), 박신화 교수의 ‘합창발성법’ 수잔나 쏘우 교수의 ‘Experiencing Choral Works from the Southeast Asia Region’ (Online), 민인기 교수의 ‘합창지휘자가 알아야 할 오케스트라 지휘’ 등 다양한 강의로 구성됐다.

강동구청의 축제와 노을동요제, 잘츠부르크 등 축제 소개

한편 제6회 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은 ‘예술축제와 지역발전’을 주제로 한 특별포럼을 개최했다. 이정훈 강동구청장, 평택시사신문의 임봄 국장, 김현동 총괄본부장 등이 발제자로 나선 가운데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강동지역의 선사유적축제를, 임봄 국장은 평택의 노을동요제를, 김현동 총괄본부장은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 대해 각각 주제를 발표했다.
임봄 국장은 동요 최현규의 ‘노을’의 탄생 지역이 평택인 점을 참작해 지난 2010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노을동요제’의 성공적인 축제 현황을 소개하고 심사위원으로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동요축제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훈 구청장의 강동구의 대표축제인 선사유적축제가 지역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발표했고 김현동 본부장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국가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하고 도시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1차세계대전 패망 후 잘츠부르크 예술가들은 빵을 구걸할 만큼 굶주림에 시달려야했다. 김현동 본부장은 이때 시당국은 이들 예술가들에게 생계형 공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페스티벌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뭐니 뭐니 해도 페스티벌의 가장 큰 효과는 ‘오스트리아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 있다. 100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범국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축제가 활성화되면서 전범(戰犯)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도시 전체가 축제의 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한달 티켓 판매액은 무려 367억원에 달하고, 세금만 1천 50억원을 거둬들이며, 축제기간 동안 2800여 개의 직장이 생기는 등 축제 하나로 25만 시민들이 먹고 산다는 것.

음악은 의미있는 소리, 순수예술에 대한 확신 가져야

이번 특별포럼에서 이영조 교수는 순수음악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합창축제의 진정한 음악를 되새기게 했다.
“일반인들은 클래식을 모를 수 있지만, 순수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신을 갖게 되면 이 축제는 100년 이상 갈 수 있습니다. ‘싸이’의 음악은 전세계인들이 좋아합니다. 이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 대중음악입니다. 그러나 클래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음악은 의미있는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창도 그렇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대중에 비해 그 숫자는 적지만 사회를 끌고 간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제주국제합창제가 앞으로도 영원성을 갖고 꾸준히 이어져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제발표에 이어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을 비롯, 이상균 평택문화재단 대표, 문형석 유네스코 IVO-KOREA 사무총장, 유수영 제주CTS운영이사장, 김정섭 성신여대 교수, 김대근 신한대 교수, 임효정 무브 발행인, 월간리뷰 김종섭 발행인 등의 토론이 이어지면서 ‘축제와 지역발전의 선순환’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교환되었다.
이번에 참가한 합창단은 코리아합창단, 제주레이디스콰이어, 메모리아합창단, 구미시립합창단(박진우 지휘자), 제주도립서귀포합창단(최상윤 지휘자), 콜레기움보칼레서울(김선아 지휘자), 부산시립합창단(이기선 예술감독), 서울코랄소사이어티(지현정 지휘자), 조아여성합창단(이건륜 지휘자), 제주아트콰이어, 서울코다이싱어즈(조홍기 지휘자), 성남시립합창단(손동현 지휘자), CTS콘서트콰이어(김혜림 지휘자), 금천구립여성합창단(조현우 지휘자), 분당구여성합창단(황주연 지휘자), 대구CTS합창단(이재준 지휘자), 한국국제학교제주캠퍼스 고등학교합창단(크리스틴 힝스먼 지휘자) 등 국내 팀 이외에 인도네이사 우니마합창단(안타리크사 코르넬리스 지휘자), 코스타리카 엘카페코랄(다비드 라미레즈 지휘자), 이태리 보컬앙상블 무지카픽타(안드레아 안젤리니 지휘자) 등이 영상으로 합창축제와 함께 했다.
김희철 예술감독은 이번 축제가 코로나로 인해 예년에 비해 참가팀들이 적었지만, ‘합창의 본질은 크고작음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데 있다’며 “내년에도 더 큰 합창축제를 통해 제주가 세계의 합창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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