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악곡의 형식‘FANTAGA(판타가)’의 창시자 작곡가 엄대호의 음악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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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차적으로 걸어온 음악가의 길이라면 국내 예중·고를 거쳐 국내음대 수학 후 대학원 또는 외국 유학의 과정을 거치는 게 통상적인 음악가의 길일 것이다. 여기 국내의 여느 작곡가들과는 남다른 음악행로를 걸으며 작곡가의 행보를 쌓아온 이가 있어 관심이 쏠린다. 바로 작곡가 엄대호의 이야기다. 그는 어떻게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까? 그의 작곡가가 되기까지의 처음 시작을 살펴보자.

문경의 탄광촌, 가은에서 가난한 광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던 작곡가 엄대호에게 음악은 어릴 적부터 운명이었다. 가정 형편 탓을 하며 포기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해야 되겠다 마음먹고 삶을 통째로 걸었던 그에게 작곡 공부는 한 마디로 의를 찾기 위한 길고 긴 과정이었다. 시류에 휩싸이지 않는 독창적인 작곡가가 되기 위해 때로는 고립되고 스승을 찾아 불경과 성경을 탐독하며 산의 높은 바위, 바다와 섬, 삶의 치열한 현장, 학교, 심야의 절과 새벽 교회,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응급실의 침대, 이성의 따뜻한 손, 물질의 세계와 비 물질의 세계 등 모든 것이 음악 스승이었다. 문득, 작곡가 엄대호의 작품에 대한 리뷰가 궁금했다. 그의 음악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작곡가_엄대호와 판타가 작품집 표지

작곡가 엄대호 교향곡 3번 ‘익투스’
[요한복음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는 살면서 모진 풍파 속에서 끊임없는 삶의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 속에 새 희망을 품고 진리를 증언하고자 자기 방식대로 몸부림치고 있던 엄대호는 2022년 4월 교향곡 3번 ‘익투스(ΙΧΘΥΣ)’를 완성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부름 받은 백성이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 됨을 총 3악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1악장 Allegro innocente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두려움), 2악장 Grave parlando (지하 무덤(Catacombs))에서 ‘익투스(ΙΧΘΥΣ)’를 말하며 성도임을 확인, 3악장 Presto con slancio (지하 무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예배하고 로마 군인들에게 처형당하는 상황) 등인데 엄대호 교향곡 3번 ‘익투스’에 대해 음악평론가 정순영은 다음과 같은 리뷰를 남겼다.

“엄대호 작곡가는 각 악장의 내용을 화려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진정한 완성과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1~3악장의 선행과 후행의 관계가 결속되어, 주제의 응집된 패턴과 구조적 갭이 결합 되어, 영혼을 감각적 갈증으로 채워준 작품이라 평가된다.”

2021 한국국민악회 연주- 한국민요 자장가 주제의 Fantaga 초연, 소프라노 김경희, 피아노 김태연

작곡가로서 다양한 형식의 음악 세계를 일궈온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형식인 ‘FANTAGA(판타가)’의 창시자이기도 한데요. 음악용어로서 조금은 생소한 ‘FANTAGA(판타가)’가 어떤 형식의 음악기법인지 의미와 내용을 설명 부탁합니다.

“판타가(Fantaga)는 악곡의 형식입니다. 푸가(이탈리아어:Fuga)와 판타지(영어:Fantasy)를 합한 말로 제가 창시하였고 2008년 8월 15일 최초로 ‘12 Violin Fantaga’를 발표하였습니다. 기존 푸가와 다른 점은 모방과 전개에서 형식이 자유로운 곡이 삽입됩니다. 만들게 된 이유는 주제 제시, 모방, 주제 전개 과정에서 이전보다 다양성을 보장받기 위해서입니다. 모방과 전개에 경과를 거쳐 새로운 판타지가 삽입됩니다. 판타지의 끝에 경과를 두어 재현부로 나와서 곡을 끝맺습니다. ‘12 Violin Fantaga’에는 론도, 소나타, 민속 음악, 재즈, 변주곡 등이 사용되었고, 1번곡이 사단조로 시작하여 완전 4도씩 상승, 12번 곡은 라단조로 마칩니다.”

해체와 무질서, 우연적 요소로 만든 형이상학적인 현대 음악, 7장의 피아노 앨범 , 전 세계 10여 개국에 소개된 현대 음악으로 만든 실내악 모음곡 ‘거제도 모음곡’,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번’과 ‘벤허 발레모음곡’, ‘교향곡 1,2,3번’ 등등 각각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부탁합니다.

피아노 앨범 ‘Quiet time Bible’ 시리즈는 성경을 묵상하며 만든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언어와 형상이 갖추어진 이전 상태,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상태에서 꾸밈없는 인간의 모습에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상태를 무조성과 무질서 음악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거제도 모음곡’은 무조성과 무질서의 거대한 산을 넘고 양자역학의 관점으로 만든 8개의 실내악으로 경상남도 거제도와 주변의 아름다운 비경을 주제로 만든 모음곡입니다. 또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번’은 바이올린 주법의 발전보다는 음악에 중심을 두고 더 다양해진 현대음악 어휘로 만든 곡입니다.
루 윌리스(Lewis Wallace)의 소설 벤허 (Ben Hur: A Tale of the Christ)를 바탕으로 만든 현대음악 ‘Ben-Hur Ballet suite for Orchestra’는 3막, 모두 16곡으로 구성된 발레모음곡입니다. 현악사중주와 오케스트라 두 가지 버전이 있고 이 중 오케스트라 버전은 스웨덴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프에게 헌정되었습니다. 2022년 발표한 ‘교향곡 3번 익투스(ΙΧΘΥΣ)’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예술 단체 ‘THE FLOWERS OF MUSIC’의 Paolo Campanini 회장이 엄대호에게 헌정한 피아노 연주곡 ‘Letters of love’의 감사 표시로, 이탈리아 정부에 헌정한 교향곡입니다. 핍박받는 로마의 초기 기독교 신자들을 주제로 현대음악의 기법으로 만든 교향곡으로 음의 질감을 살리기 위하여 유포니움, 콘트라바순 등의 악기가 사용된 무조 음악입니다.

작곡가 엄대호 2008년 대구 북구문화예술회관 연주

현재 엄대호 재단설립 이사장,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 한국국민악회 부회장, National Association of Composers/USA 회원, 창악회 평생회원, ISCM KOREA 회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각각의 직함을 갖고 있는 음악단체 소개를 부탁합니다.

‘엄대호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종교와 이념, 국경을 초월하여 사회적 약한 자의 예술 활동 기회를 넓히기 위하여 2018년 설립되었습니다. ‘한국음악평론가협회’는 음악평론가의 평론 활동을 활성화하며 국내외 평론가의 국제적 유대강화와 우리의 음악 문화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1983년 설립된 국내 대표 클래식 음악평론가 단체로 ‘서울음악대상’과 학술지 ‘음악평론’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1980년 설립된 ‘한국 국민악회’는 서양음악과 차별화된 순수 우리 음악을 지향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단체입니다. National Association of Composers/USA는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Henry Hadley이 1933년 창립된 미국의 대표 작곡가 단체입니다. 창악회는 1958년에 설립된 한국의 대표적인 순수음악 작곡가 단체입니다.

요즘 특별히 음악적으로 관심을 갖고 진행하시는 일이나 관심사가 궁금합니다.

‘엄대호재단’의 이념에 흔쾌히 동참하신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인들과 함께 재단을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해 사업 방향 설정과 재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 작곡가협회와 교류를 위하여 여러 해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페라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세계와 작곡 특징이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구약성경의 다윗처럼 오직 저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음악인이 되기 위해 전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악회 제37회 작곡발표회’에서 연주된 엄대호 작곡 ‘한국민요 “자장가” 주제의 FANTAGA’를 평론가요 작곡가인 김형주 한국 작곡가회 명예회장은 “무조 음악이며 변화가 많고 발전된 음악이다”라고 연주회장에서 말씀해 주셨지요. 저는 인위적인 무조 음악이 아니라 더 다양한 음악 어휘를 사용하기 위해 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성을 음악가의 솜씨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옥같은 수많은 작품을 남기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곡은 무엇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본인의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지요.

‘12 Violin Fantaga’ 중 7번은 올림 다단조로 된 특별한 곡입니다. 판타지 부분이 주제와 변주로 이루어졌는데 네 번째 변주곡은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를 주제로 사용하여 잘 알려진 곡입니다. 이 곡에 대한 정순영 음악평론가의 작품 평입니다.

“이 곡은 단조 풍의 조 순환을 이루며 두 성부가 얽혀 특이한 리듬으로 발전한다. 특히 바이올린과 피아노 앙상블에서 푸가 주제의 내적 결합이 확고하다. 곡 중심부는 3성과 4성이 교차하고 감7도 코드가 혼합된 화음이 마치 꿈속에서 영혼의 절규와 같은 절정 감을 느끼게 한다. 네 겹의 스트레토와 푸가의 스트레토가 마찰을 준 7번은 판타가의 특성과 주관적인 감정표현의 극치를 이룬 곡이다.”

집중적으로 어떤 음악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브랜드 상품이 된 게 있습니까? 음악적 성과는 무엇인가요?

‘아나탈(Anatal)’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습니다. 아나탈이란? 제가 1998년에 만든 단어입니다. 아날로그(analog)와 디지탈(DIGITAL)을 합한 단어입니다. 자연현상과 현대문명의 생산품인 집적회로, 연속과 단절, 우리 영혼의 모호함과 긍정과 부정, 어떤 한 부분도 묵고 할 수 없이 융화되어 살아가야 하는 개념입니다. 이 신조어는 대한민국의 뜨거운 화제가 되었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 이어령 교수는 ‘디지로그’라고 2006년 그의 저서에 다르게 표현하였습니다.

음악 인생에 영향을 받은 분이나 대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듣고 싶군요. 특별히 작곡가로서 한국 음악계에 끼친 영향이라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고인이 되신 신석필 화백은 가끔 저의 안부를 묻는 정도였습니다. 화가로서 그의 열정과 검소한 삶은 예술가의 삶의 모범이 되셨고 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는 “선생님과 같이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 진정한 음악가요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늘 용기를 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제가 한국음악 계에 끼친 영향은 새로운 음악 어휘와 기승전결의 확대, 축소 그리고 새로운 악곡 형식인 ‘판타가(fantaga)’를 발표하여 클래식 음악의 종주국들과 당당할 수 있는 용기를 음악인들에게 준 것입니다. 또한 분명한 의(義)를 바탕으로 한 행보일 것입니다. 저의 논문 ‘불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다! (음악평론22집)’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향후 한국 음악계의 방향성은 어떻게 진화하면 좋을지 한 말씀 하신다면요?

음악인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습니다. 한 예술가에게 어떤 것이 담겨 그것이 행위로 나타나는가? 예를 들면 자신처럼 타인을 사랑하는 행위를 확산한다면 그 결과는 따뜻할 것입니다. 또한 음악인과 음악인의 관계가 지나친 경쟁 구도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모두가 파가니니, 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예술의 중심이 아닙니다. 음악계는 한결같이 “이전 같지 않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부르짖던 복지 국가들조차 지금은 한계에 봉착하여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입니다. 지구상 곳곳에서 더 진보적, 더 현대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지나고 보면 눈 내리는 날, 눈 위를 걷는 발자국처럼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무엇에 의(義)를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바뀜을 한국 음악계는 명심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음악활동 계획 및 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신가요?

2022년 5월 14일 미국 프린스턴시 라이더 대학교에서 거제도 모음곡 2번 ‘와현의 노래’가 초연되었습니다. 이 연주회는 웨스트민트터 콘서바토리 교수 연주회인데, 올해의 주제가 “한국”입니다. 제가 한국 클래식 음악의 선구자로 고인이 된 김성태, 김순남, 윤이상 작곡가와 함께 선정되었습니다. 저는 브람스, 브루크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하차투리안의 계보를 잇고 경계를 넘는 음악인이 되길 늘 꿈꿉니다. 그래서 꼭 만들 작업 목록 ‘Vision 2044’를 세웠는데 그 계획 중에는 교향곡이 9번까지 있습니다. 미국과 스웨덴 작곡가들과 교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엄대호재단’을 정상적인 괘도에 올리는 것입니다. 음악가로는 인류 문화의 향상과 세계 음악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 10여 개국에 작품집을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국제 악보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리투든 운동(RETODEN Movement)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리투든은 ‘에덴으로의 복귀(Return to Eden)’를 의미합니다. 저 엄대호가 2021년 4월 제안한 운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심연의 깊은 내면이 묻어나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세계를 펼치며 국내 작곡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완성하고 있는 작곡가 엄대호. 남다르게 출발한 작곡가의 길이기에 지금 우리 음악계는 그의 음악 작업을 주목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다음에 나타날 음악적 성과를 보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 작곡가 엄대호 필모그래피

음악형식 ‘FANTAGA(판타가)’ 창시
엄대호재단 상임이사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
한국국민악회 부회장
National Association of Composers/USA 회원
창악회 평생회원, ISCM KOREA 회원

<대표적인 작품>
12 Violin Fantaga, Ben-Hur Ballet Suite for orchestra, 피아노 로마서, Violin Concerto No.1, Symphony No.3 “ΙΧΘΥΣ”

글 김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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