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의 벽, 마음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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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는 아프리카의 진주.” 처칠의 말이다. 와보니 과장이 아니다. 1년 내내 15~29도의 온화한 기후, 심기만 하면 쑥쑥 자라는 비옥한 땅, 풍부한 비와 호수, 지천에 널린 망고, 아보카도, 바나나, 석유와 광물까지 못 살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가, 찢어지게 가난하다. 거리마다 해진 옷, 비위생적인 음식, 쓰레기를 뒤지고 아기를 업고 구걸을 하는 여자들, 집도 없이 길가나 창고에 기대 사는 사람들. 통계는 20%가 절대 빈곤이라지만, 내 눈에는 한 절반쯤은 그렇게 보인다.
이건 우간다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나이지리아, 콩고, 등 아프리카에 자원도 인구도 풍부한 나라들이 하나같이 빈곤의 늪에 빠져 있다. 왜일까? 게으름? 나태함? 정치 부패? 교육 실패? 대답은 많지만 결국 사람의 문제다. 풍족한 자연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아도 살아남는 환경은 언젠가 의지를 갉아먹는다. 그 위에 부패한 정치가 덮이면, 희망은 방향을 잃는다.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 분단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여기보다 잘 사는 이유는 뭘까. 나는 한국인의 근면성과 지도자의 역량이었다고 본다. 그 말을 꺼내면 누군가 눈을 흘기겠지만, 아프리카의 문제는 결국 ‘지도자’에서 시작된다.
개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발전하지 못할까?” “왜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그 답은 오래된 습관 속에 있다. 부족 사회의 낡은 자존심, 못난 것을 전통이라 착각하는 헛된 자부심, 무지와 이기심. 심지어 노예로 살면서도 “우린 위대한 종족이야”라며 자위한다.
그건 근대 조선의 쇄국 정신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라가 36년간이나 이웃 나라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가?


우간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그러나 그 예의는 배려가 아니라 복종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다.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다. 부족에서 내려온 굴종의 습관이다. 순한 미소지만 좀 지나면 본색이 드러난다. 오랫동안 믿을 수가 없고 신의가 없다. 겉으로 표시는 안 하지만 억지를 부리거나, 거짓말을 한다.
그건 자존감 부족의 문제다.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면 타인을 존중할 수도 없다. 인구 80%가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하나님”을 외치지만 행동은 하나님을 닮지 않는다. 기도는 열심이지만, 책임은 외면하는 사람들이 우간다인들이다.
다행히 지금의 MZ세대는 좀 다른 것 같다. MZ 혁명이라도 생기면 나라 시스템이 제대로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도 걸어본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와 있는가.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좋은 교사를 길러 교회와 학교의 음악문화에 씨앗을 심기 위해서. 그러기에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음악교육의 기본은 ‘문해력’이다. 글이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지듯, 음악도 음정과 리듬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읽고, 듣고, 나눌 수 있다. 코다이가 말한 Solfege(솔페이지), 즉 ‘뮤직 리터러시’ - 음악 문해력! 그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간다에서 그 문해력은 쉽지 않다. 그들은 자기 방식이 옳다고 믿는다. 영국 식민지의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레미파솔라시도’. 이건 좋다. 세계 표준이니까. ‘숫자 악보’ 이것도 문제없다. 프랑스에서 시작했지만 영국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우간다 학교나 찬송가에서 쓰인다.


‘작은별’을 예로 들어보자.


도 도 솔 솔 라 라 솔 - 1 1 5 5 6 6 5
문제는 리듬이다. 이들이 쓰는 영국의 커웬이 만든 리듬 이름은 단순했다.
‘타(ta)’와 ‘테(te)’만 구분해서 “♩ ta ta / ♪♪ te te” 식으로 가르친다.
코다이는 여기에 의미를 더했다. (사실 코다이 손기호도 커웬의 것을 발전시킨 것이다)
모든 리듬꼴에 이름을 붙여 아이들이 ‘리듬의 모양’을 들으며 익히도록 했다.
그래서 “♩ ta / ♪♪ ti-ti / ♩♪♪ ti-tiri” 이런 식이다.
그런데 우간다에서는 ‘te-te’를 그대로 ‘테-테’라고 읽는다. 영국이나 미국식 ‘티티’가 아니라 철자대로. “Come back”을 “콤 박”이라 읽듯이. 이쯤 되면 음악도 언어도 바벨탑이 된다. 서로 다르게 말하니, 통할 리가 없다.


얼마 전, 학교에서 일이 터졌다. 리듬 이름 문제였다. 내가 맡은 신입생 반이 ‘테테’를 안 쓴다고 학과장이 문제를 삼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재즈 피아노를 하고 최근 돌아온 이 학교 토박이다. 나를 향해 “강의 중단하라”고 했다.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봉사하러, 내 차비로 와서, 이 고생을 사서 하는데...”
목구멍까지 이 말이 올라왔다. 누가 이 친구에게 완장을 채워 주었을까? 하지만 참았다. 내가 바꾸는 게 모두에게 좋다면, 조금은 양보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의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해하려고, 섞이려고.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무겁다. 결국 이 작은 갈등의 근본 원인도 이 땅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바뀌지 않는 습관, 틀린 것을 고치지 않으려는 고집,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자존심. 그게 개인의 성장을 막고, 결국 공동체의 발전을 늦춘다.
음악도 다르지 않다. 제아무리 음악 문해력을 잘 가르쳐도 사람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음악은 자라지 않는다. 언젠가 이곳의 음악이 진짜로 피어나려면 악보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는 요즘 마음이 열리기 전에 지갑이 먼저 열렸다. 돈만 바라는 음악이 성행하려고 한다. 돈이면 뭐든 해결되는...


아프리카의 진주가 빛나지 못하는 이유, 그건 가난이 아니라 마음의 굳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굳은 마음은 음악을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도 여전히 벽이 된다. 그 벽을 허무는 데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 리듬이 다시 자유롭게 울릴 날을 나는 믿고 기다리겠다.


글 조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