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공연기획’을 하고 있는가?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교양필수과목에 도덕이란 수업이 있었다. 도덕 과목이란 것이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나 있는 그런 과목인 줄 알았는데 대학이란 곳에 와서도 이 과목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지라, 대학에서의 도덕 수업에는 대체 어떤 식의 이야기를 할까 무척 신기해하며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수업내용은 별반 기억나지는 않지만,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왜 인간은 도덕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말씀은 똑똑히 기억에 남는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배우는 모든 수업의 목적은 도덕을 배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철학과 교수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도덕을 가르쳐야 하며, 법대 교수는 법을 통해 도덕을 가르치고, 역사 교수는 역사라는 도구를 가지고 도덕을, 음악이나 미술 역시도 그 도구를 통해 도덕을 가르쳐서 인간이 이 사회에서 도덕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다. 이 도덕 시간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 말씀이야.”
당시에는 그 교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인기 없는 수업을 해야 하는 그분만의 정당성을 설명하시는 것 같이 들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무대 위에서, 연주도 하고 또, 그런 공연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보니 문득, 그 당시 교수님의 설명이 참 멋진 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에 올리는 그 작품으로 도대체 무엇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에 내가 늘 애를 쓰며 고민하는 내용이 있다면,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는 항상, 자신이 만드는 공연에 본인의 철학이 담아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감독의 철학이, 책에는 작가의 철학이, 심지어 축구팀에도 그 팀을 운영하는 감독과 코치의 철학이 담아져 있듯이…
공연물에도 그 공연물을 만드는 기획자의 철학이 담아져 있어야 하고, 그런 공연물을 만들어 내는 자를 가리켜 우리는 공연기획자, 공연 제작자라 부른다.
모든 공연물에는 많든 적든 만든 사람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어야 하고, 아주 적은 관중에게라도 그 메시지가 기획자의 의도대로 잘 전달된다면, 그 공연은 좋은 공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국, 공립 극장을 보자 치면, ‘기획공연’이라는 말로 제작되는 숱한 공연물 중에 과연 그 극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철학을 바탕으로 기획을 하며 공연물을 선택하고 제작하는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운 패션아울렛 방식의 기획물들이 판을 친다. 다른 곳에서 잘 팔리던 철 지난 물건들을 줍줍해서 나열해 놓고 사람들 불러대는 방식이 지금 우리나라 국, 공립 극장들에서 너무나 자주 보이는 형식의 공연들이다.
남들이 애써 만들어 팔던 기획물을 가져다 패션몰 매대에 주욱 걸어주는 사람을 기획자라 부르지 않는다. 재개봉관 직원들을 영화인이라 부르지 않고, 미술관 직원을 작가 내지는 미술가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극장에서 공연물 사다가 올리는 사람은 기획자라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화두 중에 하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극장에서 공연물을 코디하거나 진행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획자… 즉, ‘플래너’나 ‘크리에이터’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공연의 작은 하나하나에서부터 자신의 철학과 의도, 본인의 소위 플랜이 들어있지 않는 공연물이면, 극장 관계자들이 쓰는 용어인 ‘기획공연’이라는 글자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철학이 담긴 공연의 계속성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 공연기획자의 첫 시작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말이다.
벌써 오래전 이탈리아 유학 시절의 일이다. 당시 이탈리아 라스칼라(La Scala)의 음악감독으로 리카르도 무티가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명의 거물 지휘자라면, 베를린필을 지휘하던 아바도와 라스칼라를 지휘하던 리카르도 무티였는데, 성악을 하던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무티의 인기가 그닥 별로였다. 그가 동양인, 특히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특히나 그의 오페라 해석은 너무 악보에만 충실하는 소위 (Come Scritto / 작곡자가 쓴 그대로)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극적인 엔딩 부분을 역시 악보대로만 연주하다 보니 청중들이 열광할 수 있는 부분을 앗아가 버린다는 악명으로 유명했던 그런 지휘자였다. 그래서 한번은 방송 인터뷰 중에 한 음악기자가 그리 질문을 했다.
“마에스트로! 청중들이 오늘 당신의 공연에서 테너 아리아의 제일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그렇게 쓰여진 대로만 해서는 감동이 없다고 불만들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때 무티는 이렇게 아주 정나미 떨어지는 답을 했다.
“청중들이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 이 얼마나 정나미 떨어지는 대답이고, 어찌 보면 참 오만한 표현이다. 하지만 무티는 평생을 이런 그만의 철학, 즉, “연주자는 작곡자의 의도를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으로 그의 경력이 시작되어야 한다.”라는 철학을 단 한 번도 타협한 적이 없다.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그만의 철학을 실현해 내는 그것. 제작자나 기획자 역시도,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내는 공연물을 만들어 내는 그것, 그때야 비로써 기획자, 제작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도 자신의 예술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고자 고민하며 애쓰는 찐 예술인들에 대한 예의이고 공경이 아닐까 싶다.
글 김현동(평택시립예술단 총괄팀장)
진정 ‘공연기획’을 하고 있는가?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교양필수과목에 도덕이란 수업이 있었다. 도덕 과목이란 것이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나 있는 그런 과목인 줄 알았는데 대학이란 곳에 와서도 이 과목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지라, 대학에서의 도덕 수업에는 대체 어떤 식의 이야기를 할까 무척 신기해하며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숱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수업내용은 별반 기억나지는 않지만,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왜 인간은 도덕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말씀은 똑똑히 기억에 남는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배우는 모든 수업의 목적은 도덕을 배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철학과 교수는 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도덕을 가르쳐야 하며, 법대 교수는 법을 통해 도덕을 가르치고, 역사 교수는 역사라는 도구를 가지고 도덕을, 음악이나 미술 역시도 그 도구를 통해 도덕을 가르쳐서 인간이 이 사회에서 도덕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다. 이 도덕 시간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 말씀이야.”
당시에는 그 교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인기 없는 수업을 해야 하는 그분만의 정당성을 설명하시는 것 같이 들렸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무대 위에서, 연주도 하고 또, 그런 공연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보니 문득, 그 당시 교수님의 설명이 참 멋진 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에 올리는 그 작품으로 도대체 무엇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에 내가 늘 애를 쓰며 고민하는 내용이 있다면,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는 항상, 자신이 만드는 공연에 본인의 철학이 담아져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감독의 철학이, 책에는 작가의 철학이, 심지어 축구팀에도 그 팀을 운영하는 감독과 코치의 철학이 담아져 있듯이…
공연물에도 그 공연물을 만드는 기획자의 철학이 담아져 있어야 하고, 그런 공연물을 만들어 내는 자를 가리켜 우리는 공연기획자, 공연 제작자라 부른다.
모든 공연물에는 많든 적든 만든 사람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어야 하고, 아주 적은 관중에게라도 그 메시지가 기획자의 의도대로 잘 전달된다면, 그 공연은 좋은 공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국, 공립 극장을 보자 치면, ‘기획공연’이라는 말로 제작되는 숱한 공연물 중에 과연 그 극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철학을 바탕으로 기획을 하며 공연물을 선택하고 제작하는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운 패션아울렛 방식의 기획물들이 판을 친다. 다른 곳에서 잘 팔리던 철 지난 물건들을 줍줍해서 나열해 놓고 사람들 불러대는 방식이 지금 우리나라 국, 공립 극장들에서 너무나 자주 보이는 형식의 공연들이다.
남들이 애써 만들어 팔던 기획물을 가져다 패션몰 매대에 주욱 걸어주는 사람을 기획자라 부르지 않는다. 재개봉관 직원들을 영화인이라 부르지 않고, 미술관 직원을 작가 내지는 미술가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극장에서 공연물 사다가 올리는 사람은 기획자라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화두 중에 하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극장에서 공연물을 코디하거나 진행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획자… 즉, ‘플래너’나 ‘크리에이터’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공연의 작은 하나하나에서부터 자신의 철학과 의도, 본인의 소위 플랜이 들어있지 않는 공연물이면, 극장 관계자들이 쓰는 용어인 ‘기획공연’이라는 글자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철학이 담긴 공연의 계속성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 공연기획자의 첫 시작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말이다.
벌써 오래전 이탈리아 유학 시절의 일이다. 당시 이탈리아 라스칼라(La Scala)의 음악감독으로 리카르도 무티가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명의 거물 지휘자라면, 베를린필을 지휘하던 아바도와 라스칼라를 지휘하던 리카르도 무티였는데, 성악을 하던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무티의 인기가 그닥 별로였다. 그가 동양인, 특히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특히나 그의 오페라 해석은 너무 악보에만 충실하는 소위 (Come Scritto / 작곡자가 쓴 그대로)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극적인 엔딩 부분을 역시 악보대로만 연주하다 보니 청중들이 열광할 수 있는 부분을 앗아가 버린다는 악명으로 유명했던 그런 지휘자였다. 그래서 한번은 방송 인터뷰 중에 한 음악기자가 그리 질문을 했다.
“마에스트로! 청중들이 오늘 당신의 공연에서 테너 아리아의 제일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그렇게 쓰여진 대로만 해서는 감동이 없다고 불만들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때 무티는 이렇게 아주 정나미 떨어지는 답을 했다.
“청중들이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 이 얼마나 정나미 떨어지는 대답이고, 어찌 보면 참 오만한 표현이다. 하지만 무티는 평생을 이런 그만의 철학, 즉, “연주자는 작곡자의 의도를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으로 그의 경력이 시작되어야 한다.”라는 철학을 단 한 번도 타협한 적이 없다.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그만의 철학을 실현해 내는 그것. 제작자나 기획자 역시도,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내는 공연물을 만들어 내는 그것, 그때야 비로써 기획자, 제작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도 자신의 예술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고자 고민하며 애쓰는 찐 예술인들에 대한 예의이고 공경이 아닐까 싶다.
글 김현동(평택시립예술단 총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