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가지 마, 가지 말란 말이야.”
딸이 아버지에게 던진 절박한 외침이다. 제발 가지말란 말이야! 공연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그 외침은 좀처럼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연극 속의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 머릿속에서 되풀이되는 소리.
그 외침은 단지 연극 속에서 딸이 아버지를 살리고 싶어 외친 사적인 탄식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가지 않으면 안되는지 뒤늦게 던지는 만류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왜 그들이 그 길을 가야만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질문을 촉발시켰다.
‘위대한 청춘’ 공연장 답사 차 진천예술의전당을 찾았을 때 마침 공연되고 있는 연극 ‘숙희책방’(문의영 작, 김서현 연출)을 보게 되었다. 극단 ‘청년극장’이 만든 이 작품은 대한민국연극제 은상과 한국연극 베스트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1980년 5월이라는 과거의 광주와 현재의 광주를 한 무대 위에 겹쳐 놓으며 ‘과거’가 ‘현재의 삶’ 속으로 불쑥 들어와 말을 걸고, 현재 또한 과거와 단절된 별개의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연결된 시간임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란 5·18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군인들에게 쫓기던 청년 ‘철수’가 작은 책방으로 숨어들고, 그곳에서 책방 주인의 딸 ‘숙희’를 만나며 벌어지는 서툰 사랑이 펼쳐지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곧 뒤쫓아온 공수부대들이 철수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책방 주인인 숙희 아빠를 끌고 가 사살하면서 광주학살의 단면을 상기시킨다. 숙희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철수와 서로를 의지하지만, 철수는 민주화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한 채, 책꽂이에 ‘사랑한다. 날 잊지말아줘...’ 라는 편지를 남기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 뒤 도청으로 향한다.
바로 그 순간, 5.18민주화운동의 시간은 멈추고, 무대는 웜홀을 타고 40년을 훅 지나 2025년(혹은 2024년?)으로 건너온다. 숙희는 얼마 전에 사망했고, 숙희가 사망한 후 방치해두었던 ‘숙희책방’을 숙희의 딸 우연우가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먼지를 털고 있는 우연우 앞에 1980년의 젊은 철수가 공수부대 군인들에게 쫓기며 총을 들고 불쑥 나타난다. 그리고 숙희를 찾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우연우는 처음에는 자기 어머니를 찾는 낯선 청년을 이해하지 못해 미친 사람 취급하며 내쫓으려 한다. 그러나 사건이 이어지는 동안 그 청년이 바로 자신이 평생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마침내 철수가 다시 총을 들고 도청으로 향하려는 순간, 우연우는 온몸으로 그를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살아달라고 외친다. 하지만 철수는 끝내 그 간절한 만류를 뒤로한 채 다시 죽음의 거리로 나선다.
바로 그 장면에서 이 연극은 그저 시간을 뛰어넘은 우연적인 만남이나 5·18의 비극을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청년 철수는 사랑하는 숙희를 놔두고 꼭 ‘가야만 했을까?’ 이 질문은 5.18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뛰어든 철수 한 사람에게만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개인의 안녕보다 대의와 신념을 향해 걸어갔던 모든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꼭 가야만 하는가?’
사랑하는 숙희와 함께 살아남아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딸이 태어나는 모습을 보고, 늙어가는 아내 곁을 지키며 한 사람의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도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싸웠을 것이고 세월이 흐르면 세상은 결국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자신의 젊음과 목숨을 걸고 도청으로 향해야만 했을까? 라는 질문은 너무도 인간적인 질문이지만, 역사는 그러한 인간적인 계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선택들에 의해 한 걸음씩 앞으로 진보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난 2, 3년 동안 이런 질문과 관련된 콘서트를 꾸준히 기획해왔기에 '숙희책방'은 남다른 의미로 와닿았다.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나혜석, 김향화의 일대기를 다룬 ‘8번방의 만세’, 홍범도 장군의 투쟁기를 그린 ‘봉오동의 영웅’, 윤봉길의 삶을 다룬 ‘불꽃 청년 윤봉길’ 등의 대본과 작사, 제작을 맡으면서 스물대여섯 안팎의 어린 청년들이 자신의 생명을 던져 제국주의의 심장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왜 헝거했는지를 반추하게 되었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조금만 타협하고, 조금만 침묵하며 자신의 가족과 안위를 지키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저항하고 싸우고 외쳐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사람들은 일제에 순응, 오히려 편승과 출세로 한몫 땡기는 선택을 한 친일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도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거나 고개를 숙이며 간접적 친일의 대열에 서야 하지 않았는가. 이들의 선택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지만,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은 사람들, 총칼을 들거나 만세를 외치거나 글을 쓰거나 교육을 하거나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다 쏟아내는 길을 선택해 일제의 부당함에 저항한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유관순은 열일곱 살의 나이에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네가 살아야 훗날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으니 잠시 뜻을 굽히라고 말했다면,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리라. 아니 현실적인 조언일 수 있다. 하지만 유관순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 민족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그러기에 그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는 대신 죽음을 무릅쓰고 외치는 길을 택했다.
윤봉길 역시 젊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중국으로 떠났고, 홍커우공원의 거사를 앞두고 자신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폭탄을 품고 그 자리에 섰으며, 그에게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 자신의 죽음이 조선 청년들의 기개를 세계에 알리고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피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산포수로 살아갈 수 있었고, 뒤늦게 재회한 아내와 인삼을 팔며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내와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홍 장군은 개인의 평안보다 나라 잃은 백성의 운명을 더 크게 보았고, 민족 전체의 자유를 위한 싸움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현실적인 계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선택들... 그들은 자신이 물러설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를 번연히 알고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파부침선을 칠 지언정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사생취의(捨生取義)라 했다. 곧 생명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고 맹자의 말인데 이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발견한 순간, 자기 목숨만을 보존하는 일 따위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적용하는 말이다. 안중근 의사가 곧잘 사용했던 ‘견리사의’(見利思義)도 마찬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의 선택이 당장의 이익과 편안함에만 머물지 않고 무엇이 공동체의 정의와 미래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뜻이겠다.
연극에서 우연우가 철수에게 ‘가지말라’고 애원했을 때 철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했으리라. ‘가야만 하는가? 저 여인이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데 꼭 가야만 하는가?’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16번 F장조 Op.135 4악장을 떠올리게 된다. 베토벤은 4악장 악보에 자필로 적었다는 그 유명한 문구...
Der schwer gefaßte Entschluß (어렵게 내린 결심)
Muß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그리고 이어지는 Allegro에는
Es muß sein!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은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간 사람도 아니고 정치적 혁명가도 아니었지만, 예술가가 귀족의 하인처럼 취급받던 시대에 음악가 역시 독립된 인격과 존엄을 지닌 존재라고 선언하며 시대의 관습과 맞섰고, 귀족의 식탁 뒤편에서 눈치를 보며 음악을 만들어야 했던 오랜 질서를 거부한 혁명가였다.
자신의 음악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말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작곡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예술가의 삶이 단순한 생계나 오락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일임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베토벤이 악보 위에 남긴 ‘그래야만 하는가’와 ‘그래야만 한다’는 문구가 지금도 음악인들의 마음을 붙드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한 음악적 동기를 설명하는 말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운명과 맞서는 방식,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 높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를 압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방식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절망을 견딜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그래야만 한다’는 결단은 외부의 환경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성을 발견한 사람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응답이다. 그 이유를 발견하는 순간, 고통을 단순히 피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된다.
그렇다면 무슨 거창한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해당되지 않는 것 아닐까? 독립운동가처럼 총을 들 일도 없고, 민주화운동의 거리에서 목숨을 걸 일도 없으며, 베토벤처럼 시대의 계급 질서와 맞서 싸워야 할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해서 우리 삶에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매일의 작고 평범한 선택 속에서 더 자주 우리를 찾아온다.
부당한 일을 보았을 때 침묵할 것인가 말할 것인가,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을 것인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당한 몫을 지킬 것인가, 약한 사람을 외면할 것인가 손을 내밀 것인가, 예술을 만들 때 관객의 감동보다 지원금을 먼저 따질 것인가, 글을 쓸 때 부회뇌동의 주장으로 박수나 받을 것인가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진실을 말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역사책에 기록될 만큼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은 바로 그런 작은 갈림길에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며 어리석은 몰아붙임으로 일관해서는 안될 일이다. 먼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충분히 묻고, 그 질문을 자신의 욕망과 허영과 두려움까지 비추는 거울로 삼아 긴 성찰 끝에 양심과 역사와 미래가 한목소리로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한다면, 그때에는 비록 손해가 따르고 외로움이 찾아오며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 말라고 붙잡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걸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극 ‘숙희책방’에서 철수는 딸의 절규를 듣고도 결국 도청으로 향한다. 우리는 그가 죽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발걸음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사랑하며 공연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 역시 극중 연우와 함께 ‘그를 붙잡고 싶은 마음’과 ‘그를 보내야 하는 마음’ 사이에서 끝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안 돼, 가지 마, 가지 말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고,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대답하는 마음은 책임의 마음이며, 인간의 역사는 이 두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껴안는 자리에서 만들어져 왔고, 우리는 사랑 때문에 누군가를 붙잡으면서도 그가 왜 떠나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결국 ‘그래야만 한다’는 말은 죽음을 향해 무모하게 달려가라는 명령도 아니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라는 구호도 아니다. 충분히 질문하고 성찰한 끝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숙희책방’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넘어 더 큰 삶을 바라본 사람들, 편안한 침묵보다 불편한 진실을 택한 사람들, 가지 말라는 사랑의 절규를 가슴에 품고서도 끝내 가야 할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 나아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연극이 끝난 후 ‘이 긴 글을 써야만 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자, 마음속에서 답한다.
“그래 누군가를 이 공연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예술의 위한 나만의 책임이니 꼭 서야겠지!”
글 발행인 김종섭
“안 돼, 가지 마, 가지 말란 말이야.”
딸이 아버지에게 던진 절박한 외침이다. 제발 가지말란 말이야! 공연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그 외침은 좀처럼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연극 속의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 머릿속에서 되풀이되는 소리.
그 외침은 단지 연극 속에서 딸이 아버지를 살리고 싶어 외친 사적인 탄식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가지 않으면 안되는지 뒤늦게 던지는 만류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왜 그들이 그 길을 가야만 하는지를 묻는 하나의 질문을 촉발시켰다.
‘위대한 청춘’ 공연장 답사 차 진천예술의전당을 찾았을 때 마침 공연되고 있는 연극 ‘숙희책방’(문의영 작, 김서현 연출)을 보게 되었다. 극단 ‘청년극장’이 만든 이 작품은 대한민국연극제 은상과 한국연극 베스트작품상을 수상할 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1980년 5월이라는 과거의 광주와 현재의 광주를 한 무대 위에 겹쳐 놓으며 ‘과거’가 ‘현재의 삶’ 속으로 불쑥 들어와 말을 걸고, 현재 또한 과거와 단절된 별개의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연결된 시간임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란 5·18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군인들에게 쫓기던 청년 ‘철수’가 작은 책방으로 숨어들고, 그곳에서 책방 주인의 딸 ‘숙희’를 만나며 벌어지는 서툰 사랑이 펼쳐지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곧 뒤쫓아온 공수부대들이 철수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책방 주인인 숙희 아빠를 끌고 가 사살하면서 광주학살의 단면을 상기시킨다. 숙희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철수와 서로를 의지하지만, 철수는 민주화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한 채, 책꽂이에 ‘사랑한다. 날 잊지말아줘...’ 라는 편지를 남기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 뒤 도청으로 향한다.
바로 그 순간, 5.18민주화운동의 시간은 멈추고, 무대는 웜홀을 타고 40년을 훅 지나 2025년(혹은 2024년?)으로 건너온다. 숙희는 얼마 전에 사망했고, 숙희가 사망한 후 방치해두었던 ‘숙희책방’을 숙희의 딸 우연우가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먼지를 털고 있는 우연우 앞에 1980년의 젊은 철수가 공수부대 군인들에게 쫓기며 총을 들고 불쑥 나타난다. 그리고 숙희를 찾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우연우는 처음에는 자기 어머니를 찾는 낯선 청년을 이해하지 못해 미친 사람 취급하며 내쫓으려 한다. 그러나 사건이 이어지는 동안 그 청년이 바로 자신이 평생 그리워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마침내 철수가 다시 총을 들고 도청으로 향하려는 순간, 우연우는 온몸으로 그를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살아달라고 외친다. 하지만 철수는 끝내 그 간절한 만류를 뒤로한 채 다시 죽음의 거리로 나선다.
바로 그 장면에서 이 연극은 그저 시간을 뛰어넘은 우연적인 만남이나 5·18의 비극을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청년 철수는 사랑하는 숙희를 놔두고 꼭 ‘가야만 했을까?’ 이 질문은 5.18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뛰어든 철수 한 사람에게만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개인의 안녕보다 대의와 신념을 향해 걸어갔던 모든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꼭 가야만 하는가?’
사랑하는 숙희와 함께 살아남아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딸이 태어나는 모습을 보고, 늙어가는 아내 곁을 지키며 한 사람의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도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싸웠을 것이고 세월이 흐르면 세상은 결국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자신의 젊음과 목숨을 걸고 도청으로 향해야만 했을까? 라는 질문은 너무도 인간적인 질문이지만, 역사는 그러한 인간적인 계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선택들에 의해 한 걸음씩 앞으로 진보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난 2, 3년 동안 이런 질문과 관련된 콘서트를 꾸준히 기획해왔기에 '숙희책방'은 남다른 의미로 와닿았다.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나혜석, 김향화의 일대기를 다룬 ‘8번방의 만세’, 홍범도 장군의 투쟁기를 그린 ‘봉오동의 영웅’, 윤봉길의 삶을 다룬 ‘불꽃 청년 윤봉길’ 등의 대본과 작사, 제작을 맡으면서 스물대여섯 안팎의 어린 청년들이 자신의 생명을 던져 제국주의의 심장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왜 헝거했는지를 반추하게 되었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조금만 타협하고, 조금만 침묵하며 자신의 가족과 안위를 지키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저항하고 싸우고 외쳐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사람들은 일제에 순응, 오히려 편승과 출세로 한몫 땡기는 선택을 한 친일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도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거나 고개를 숙이며 간접적 친일의 대열에 서야 하지 않았는가. 이들의 선택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지만,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은 사람들, 총칼을 들거나 만세를 외치거나 글을 쓰거나 교육을 하거나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다 쏟아내는 길을 선택해 일제의 부당함에 저항한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유관순은 열일곱 살의 나이에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네가 살아야 훗날 더 큰 일을 할 수도 있으니 잠시 뜻을 굽히라고 말했다면,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리라. 아니 현실적인 조언일 수 있다. 하지만 유관순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 민족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그러기에 그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는 대신 죽음을 무릅쓰고 외치는 길을 택했다.
윤봉길 역시 젊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중국으로 떠났고, 홍커우공원의 거사를 앞두고 자신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폭탄을 품고 그 자리에 섰으며, 그에게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 자신의 죽음이 조선 청년들의 기개를 세계에 알리고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피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산포수로 살아갈 수 있었고, 뒤늦게 재회한 아내와 인삼을 팔며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내와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홍 장군은 개인의 평안보다 나라 잃은 백성의 운명을 더 크게 보았고, 민족 전체의 자유를 위한 싸움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현실적인 계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선택들... 그들은 자신이 물러설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를 번연히 알고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파부침선을 칠 지언정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사생취의(捨生取義)라 했다. 곧 생명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고 맹자의 말인데 이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라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발견한 순간, 자기 목숨만을 보존하는 일 따위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적용하는 말이다. 안중근 의사가 곧잘 사용했던 ‘견리사의’(見利思義)도 마찬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의 선택이 당장의 이익과 편안함에만 머물지 않고 무엇이 공동체의 정의와 미래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뜻이겠다.
연극에서 우연우가 철수에게 ‘가지말라’고 애원했을 때 철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했으리라. ‘가야만 하는가? 저 여인이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데 꼭 가야만 하는가?’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16번 F장조 Op.135 4악장을 떠올리게 된다. 베토벤은 4악장 악보에 자필로 적었다는 그 유명한 문구...
Der schwer gefaßte Entschluß (어렵게 내린 결심)
Muß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그리고 이어지는 Allegro에는
Es muß sein!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은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간 사람도 아니고 정치적 혁명가도 아니었지만, 예술가가 귀족의 하인처럼 취급받던 시대에 음악가 역시 독립된 인격과 존엄을 지닌 존재라고 선언하며 시대의 관습과 맞섰고, 귀족의 식탁 뒤편에서 눈치를 보며 음악을 만들어야 했던 오랜 질서를 거부한 혁명가였다.
자신의 음악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말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작곡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예술가의 삶이 단순한 생계나 오락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일임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베토벤이 악보 위에 남긴 ‘그래야만 하는가’와 ‘그래야만 한다’는 문구가 지금도 음악인들의 마음을 붙드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한 음악적 동기를 설명하는 말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운명과 맞서는 방식,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 높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를 압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방식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절망을 견딜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그래야만 한다’는 결단은 외부의 환경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성을 발견한 사람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응답이다. 그 이유를 발견하는 순간, 고통을 단순히 피해야 할 불행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된다.
그렇다면 무슨 거창한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해당되지 않는 것 아닐까? 독립운동가처럼 총을 들 일도 없고, 민주화운동의 거리에서 목숨을 걸 일도 없으며, 베토벤처럼 시대의 계급 질서와 맞서 싸워야 할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해서 우리 삶에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매일의 작고 평범한 선택 속에서 더 자주 우리를 찾아온다.
부당한 일을 보았을 때 침묵할 것인가 말할 것인가,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을 것인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당한 몫을 지킬 것인가, 약한 사람을 외면할 것인가 손을 내밀 것인가, 예술을 만들 때 관객의 감동보다 지원금을 먼저 따질 것인가, 글을 쓸 때 부회뇌동의 주장으로 박수나 받을 것인가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진실을 말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역사책에 기록될 만큼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격과 품격은 바로 그런 작은 갈림길에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며 어리석은 몰아붙임으로 일관해서는 안될 일이다. 먼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충분히 묻고, 그 질문을 자신의 욕망과 허영과 두려움까지 비추는 거울로 삼아 긴 성찰 끝에 양심과 역사와 미래가 한목소리로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한다면, 그때에는 비록 손해가 따르고 외로움이 찾아오며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 말라고 붙잡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걸어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극 ‘숙희책방’에서 철수는 딸의 절규를 듣고도 결국 도청으로 향한다. 우리는 그가 죽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발걸음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사랑하며 공연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 역시 극중 연우와 함께 ‘그를 붙잡고 싶은 마음’과 ‘그를 보내야 하는 마음’ 사이에서 끝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안 돼, 가지 마, 가지 말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고,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대답하는 마음은 책임의 마음이며, 인간의 역사는 이 두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껴안는 자리에서 만들어져 왔고, 우리는 사랑 때문에 누군가를 붙잡으면서도 그가 왜 떠나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결국 ‘그래야만 한다’는 말은 죽음을 향해 무모하게 달려가라는 명령도 아니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라는 구호도 아니다. 충분히 질문하고 성찰한 끝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숙희책방’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넘어 더 큰 삶을 바라본 사람들, 편안한 침묵보다 불편한 진실을 택한 사람들, 가지 말라는 사랑의 절규를 가슴에 품고서도 끝내 가야 할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 나아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연극이 끝난 후 ‘이 긴 글을 써야만 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자, 마음속에서 답한다.
“그래 누군가를 이 공연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예술의 위한 나만의 책임이니 꼭 서야겠지!”
글 발행인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