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나라에서 제작의 나라로
한국에는 공연장이 많다. 축제도 많다. 매년 수많은 공연이 만들어지고 적지 않은 공공예산이 문화예술에 투입된다. 청년예술가를 위한 지원사업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많은 공연을 하고 이렇게 많은 지원사업을 시행하는데도 예술가들은 매년 다시 지원서를 쓰고, 민간예술단체들은 다시 제작비를 구하러 다니며, 공연장은 또다시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한다.
작품 하나를 어렵게 만들어도 공연이 끝나면 출연진과 제작진은 흩어진다. 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무대와 의상은 창고에 들어가거나 폐기되고, 어렵게 쌓은 제작 시스템도 다음 공연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공연을 만들면서도 매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나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 공연예술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축제는 넘쳐나는데 레퍼토리는 남지 않는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들은 경쟁하듯 축제를 만든다.
음악제, 오페라축제, 예술제, 청년예술축제, 지역문화축제…. 물론 축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문화도시에는 세계적인 축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축제가 먼저인가, 예술이 먼저인가.
유럽의 유명한 음악제와 오페라축제가 어느 날 행정기관의 기획으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지역에 오랫동안 극장이 있었고, 연주자와 예술가가 있었으며, 관객이 있었고,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공연문화와 레퍼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축제가 탄생했다.
정상적인 예술 생태계라면 순서는 이렇다.
상설 공연 → 레퍼토리 축적 → 예술가 성장 → 관객 형성 → 축제
그런데 우리는 이 순서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설적인 제작 기반은 충분하지 않은데 축제부터 만든다. 그래서 축제가 끝나면 현수막은 내려가고, 무대는 철거되고, 예술가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해가 되면 새로운 이름의 사업이 등장하고 또다시 공모가 시작된다. 예산은 매년 투입되는데 작품과 시스템은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청년예술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청년예술가 지원정책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이 만들어지고 일정한 금액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물론 당장 창작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젊은 성악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몇백만 원의 지원금만이 아니라 노래할 무대다.
젊은 지휘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원금뿐 아니라 실제 작품을 지휘할 기회이며, 연출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연출을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제작 현장이다. 무대감독, 조명디자이너, 영상디자이너, 의상, 분장, 음악코치 등 공연예술을 구성하는 수많은 전문인력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지원금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하면서 성장한다. 그렇다면 청년예술정책의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다음 무대를 만들어 줄 것인가.”가 돼야 한다.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유럽의 극장을 가져왔지만 시스템까지 가져오지는 못했다. 한국에는 이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연장이 많다. 그러나 좋은 건물이 좋은 극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오페라극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유럽의 시즌제를 이야기한다. 한 극장에서 1년 동안 수십 편의 오페라와 공연을 올리는 시스템을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유럽의 오페라극장은 수백 년 동안 발전해왔다. 전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있고, 솔리스트가 있으며, 지휘자와 연출가, 무대·조명·의상·기술 인력과 행정·제작 조직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인 재정 시스템이 있다. 시즌제는 단순히 공연 편수를 늘리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제작·고용·재정·레퍼토리가 하나의 조직 안에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유럽의 극장 건축과 무대시설은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그 극장을 움직이는 제작 시스템까지 함께 만들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극장은 지었지만 극장을 만드는 데는 아직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다. 하드웨어는 세계적 수준인데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생산해야 할 소프트웨어는 단년도 예산과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상태에서 유럽식 시즌제의 외형만 가져온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럽 시스템을 그대로 복제하기 어렵다면 한국의 현실에 맞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한국형 제작극장’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두 가지 중요한 자산이 있다. 하나는 공공극장이다. 전국의 공공극장에는 공연장과 연습실, 무대시설, 기술 인력, 행정조직, 홍보망과 공공재원이 있다.
또 하나는 민간예술단체다. 수십 년 동안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연을 만들어 온 전문 민간단체들에게는 작품을 기획하고 캐스팅하며 제작하는 경험과 예술가 네트워크가 있다. 공공에는 안정적인 인프라가 있고 민간에는 제작 경험과 유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둘을 결합하는 것이다. 공공극장과 전문 민간예술단체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제작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이다. 예술은 1년 단위로 성장하지 않는다. 오페라 한 작품을 제대로 만들고, 수정하고, 다시 공연하고, 그것을 하나의 레퍼토리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성을 갖춘 민간예술단체와 공공극장이 3년 또는 5년 단위의 제작협약을 맺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극장은 공연장과 연습공간, 기술 및 행정 인프라와 일정한 제작 기반을 제공한다. 민간단체는 작품과 제작진, 예술가 네트워크, 기획 및 제작 역량을 제공한다. 첫해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다음 해에는 그 작품을 다시 공연하면서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한다. 이후에는 축적된 작품을 다른 지역으로 유통한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공연 몇 회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는 레퍼토리가 남고, 단체에는 제작 역량이 남고, 예술가에게는 경력이 남고, 관객에게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축적이다. 한 번 만들고 버리는 공연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페라 한 편을 만드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무대를 만들고 의상을 제작하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고 수많은 예술가와 스태프가 참여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작품을 두세 번 공연하고 끝내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제작 방식일까. 한 지역에서 제작한 작품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공공극장이 하나의 작품을 공동 제작할 수도 있다. 한 극장에서 초연하고 다른 극장에서 재공연하고, 다시 또 다른 지역으로 순회한다면 제작비의 효율은 크게 높아진다. 무대와 의상도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예술가들의 공연 횟수도 늘어난다.
좋은 작품은 그렇게 살아남는다. 공공지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더더욱 한 번의 행사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축적하는 문화자산이 되어야 한다.
이제 숫자를 세는 방법부터 바꾸자. 공연예술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몇 번 공연했는지, 관객이 몇 명이었는지, 몇 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는지를 세어왔다.
물론 필요한 지표다. 그러나 이제 다른 숫자도 세어야 한다. 공공지원으로 제작한 작품 가운데 3년 뒤에도 공연되는 작품은 몇 편인가. 한 작품의 평균 재공연 횟수는 몇 회인가. 한 번 참여한 청년예술가 가운데 다시 같은 제작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한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이 다른 지역으로 몇 번 유통되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
“5년 뒤에도 남아 있을 작품은 몇 개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아무리 많은 공연을 만들고 많은 예산을 사용해도 그것을 건강한 예술 생태계라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축제를 없애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축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축제는 일상적인 예술 활동이 축적된 결과여야 한다. 평소에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데 며칠 동안 화려한 축제를 개최한다고 해서 그 도시의 예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연예술의 기본은 결국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다시 공연하고, 그것을 레퍼토리로 만들고,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예술가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한국 공연예술 정책도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다.
지원에서 제작으로.
행사에서 레퍼토리로.
단년도 사업에서 장기 파트너십으로.
대관극장에서 제작극장으로.
공공극장은 단순히 공연장을 빌려주는 시설을 넘어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유통하는 ‘프로듀서 극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민간예술단체는 매년 지원사업을 찾아다니는 사업 수행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레퍼토리를 생산하는 전문 제작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공공은 이 둘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생긴다. 지원사업 하나가 끝난 뒤의 또 다른 공모가 아니다. 다음 작품이 생기고, 다음 무대가 생긴다. 어쩌면 한국 공연예술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변화는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년 새로운 것을 만드는 나라에서, 좋은 것을 남기는 나라로 가는 것. 그것이 ‘한국형 제작극장’이 필요한 이유다.
글 이강호(라벨라오페라단 단장)
축제의 나라에서 제작의 나라로
한국에는 공연장이 많다. 축제도 많다. 매년 수많은 공연이 만들어지고 적지 않은 공공예산이 문화예술에 투입된다. 청년예술가를 위한 지원사업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많은 공연을 하고 이렇게 많은 지원사업을 시행하는데도 예술가들은 매년 다시 지원서를 쓰고, 민간예술단체들은 다시 제작비를 구하러 다니며, 공연장은 또다시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한다.
작품 하나를 어렵게 만들어도 공연이 끝나면 출연진과 제작진은 흩어진다. 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무대와 의상은 창고에 들어가거나 폐기되고, 어렵게 쌓은 제작 시스템도 다음 공연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공연을 만들면서도 매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나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 공연예술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축제는 넘쳐나는데 레퍼토리는 남지 않는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들은 경쟁하듯 축제를 만든다.
음악제, 오페라축제, 예술제, 청년예술축제, 지역문화축제…. 물론 축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문화도시에는 세계적인 축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축제가 먼저인가, 예술이 먼저인가.
유럽의 유명한 음악제와 오페라축제가 어느 날 행정기관의 기획으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지역에 오랫동안 극장이 있었고, 연주자와 예술가가 있었으며, 관객이 있었고, 수십 년 동안 축적된 공연문화와 레퍼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축제가 탄생했다.
정상적인 예술 생태계라면 순서는 이렇다.
상설 공연 → 레퍼토리 축적 → 예술가 성장 → 관객 형성 → 축제
그런데 우리는 이 순서를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설적인 제작 기반은 충분하지 않은데 축제부터 만든다. 그래서 축제가 끝나면 현수막은 내려가고, 무대는 철거되고, 예술가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해가 되면 새로운 이름의 사업이 등장하고 또다시 공모가 시작된다. 예산은 매년 투입되는데 작품과 시스템은 충분히 축적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청년예술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청년예술가 지원정책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이 만들어지고 일정한 금액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물론 당장 창작 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젊은 성악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몇백만 원의 지원금만이 아니라 노래할 무대다.
젊은 지휘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원금뿐 아니라 실제 작품을 지휘할 기회이며, 연출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연출을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제작 현장이다. 무대감독, 조명디자이너, 영상디자이너, 의상, 분장, 음악코치 등 공연예술을 구성하는 수많은 전문인력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지원금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하면서 성장한다. 그렇다면 청년예술정책의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다음 무대를 만들어 줄 것인가.”가 돼야 한다.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유럽의 극장을 가져왔지만 시스템까지 가져오지는 못했다. 한국에는 이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연장이 많다. 그러나 좋은 건물이 좋은 극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오페라극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유럽의 시즌제를 이야기한다. 한 극장에서 1년 동안 수십 편의 오페라와 공연을 올리는 시스템을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유럽의 오페라극장은 수백 년 동안 발전해왔다. 전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있고, 솔리스트가 있으며, 지휘자와 연출가, 무대·조명·의상·기술 인력과 행정·제작 조직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인 재정 시스템이 있다. 시즌제는 단순히 공연 편수를 늘리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제작·고용·재정·레퍼토리가 하나의 조직 안에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유럽의 극장 건축과 무대시설은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그 극장을 움직이는 제작 시스템까지 함께 만들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극장은 지었지만 극장을 만드는 데는 아직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다. 하드웨어는 세계적 수준인데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생산해야 할 소프트웨어는 단년도 예산과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상태에서 유럽식 시즌제의 외형만 가져온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럽 시스템을 그대로 복제하기 어렵다면 한국의 현실에 맞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가 ‘한국형 제작극장’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두 가지 중요한 자산이 있다. 하나는 공공극장이다. 전국의 공공극장에는 공연장과 연습실, 무대시설, 기술 인력, 행정조직, 홍보망과 공공재원이 있다.
또 하나는 민간예술단체다. 수십 년 동안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연을 만들어 온 전문 민간단체들에게는 작품을 기획하고 캐스팅하며 제작하는 경험과 예술가 네트워크가 있다. 공공에는 안정적인 인프라가 있고 민간에는 제작 경험과 유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둘을 결합하는 것이다. 공공극장과 전문 민간예술단체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제작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이다. 예술은 1년 단위로 성장하지 않는다. 오페라 한 작품을 제대로 만들고, 수정하고, 다시 공연하고, 그것을 하나의 레퍼토리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성을 갖춘 민간예술단체와 공공극장이 3년 또는 5년 단위의 제작협약을 맺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극장은 공연장과 연습공간, 기술 및 행정 인프라와 일정한 제작 기반을 제공한다. 민간단체는 작품과 제작진, 예술가 네트워크, 기획 및 제작 역량을 제공한다. 첫해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다음 해에는 그 작품을 다시 공연하면서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한다. 이후에는 축적된 작품을 다른 지역으로 유통한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공연 몇 회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는 레퍼토리가 남고, 단체에는 제작 역량이 남고, 예술가에게는 경력이 남고, 관객에게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축적이다. 한 번 만들고 버리는 공연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페라 한 편을 만드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무대를 만들고 의상을 제작하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고 수많은 예술가와 스태프가 참여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작품을 두세 번 공연하고 끝내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제작 방식일까. 한 지역에서 제작한 작품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공공극장이 하나의 작품을 공동 제작할 수도 있다. 한 극장에서 초연하고 다른 극장에서 재공연하고, 다시 또 다른 지역으로 순회한다면 제작비의 효율은 크게 높아진다. 무대와 의상도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예술가들의 공연 횟수도 늘어난다.
좋은 작품은 그렇게 살아남는다. 공공지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더더욱 한 번의 행사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축적하는 문화자산이 되어야 한다.
이제 숫자를 세는 방법부터 바꾸자. 공연예술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몇 번 공연했는지, 관객이 몇 명이었는지, 몇 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는지를 세어왔다.
물론 필요한 지표다. 그러나 이제 다른 숫자도 세어야 한다. 공공지원으로 제작한 작품 가운데 3년 뒤에도 공연되는 작품은 몇 편인가. 한 작품의 평균 재공연 횟수는 몇 회인가. 한 번 참여한 청년예술가 가운데 다시 같은 제작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한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이 다른 지역으로 몇 번 유통되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
“5년 뒤에도 남아 있을 작품은 몇 개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아무리 많은 공연을 만들고 많은 예산을 사용해도 그것을 건강한 예술 생태계라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축제를 없애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축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축제는 일상적인 예술 활동이 축적된 결과여야 한다. 평소에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데 며칠 동안 화려한 축제를 개최한다고 해서 그 도시의 예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연예술의 기본은 결국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다시 공연하고, 그것을 레퍼토리로 만들고,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예술가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한국 공연예술 정책도 방향을 바꿀 때가 되었다.
지원에서 제작으로.
행사에서 레퍼토리로.
단년도 사업에서 장기 파트너십으로.
대관극장에서 제작극장으로.
공공극장은 단순히 공연장을 빌려주는 시설을 넘어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유통하는 ‘프로듀서 극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민간예술단체는 매년 지원사업을 찾아다니는 사업 수행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레퍼토리를 생산하는 전문 제작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공공은 이 둘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생긴다. 지원사업 하나가 끝난 뒤의 또 다른 공모가 아니다. 다음 작품이 생기고, 다음 무대가 생긴다. 어쩌면 한국 공연예술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변화는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년 새로운 것을 만드는 나라에서, 좋은 것을 남기는 나라로 가는 것. 그것이 ‘한국형 제작극장’이 필요한 이유다.
글 이강호(라벨라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