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사람을 찾아가는 감동의 공연 - 위대한 청춘 진천편

문화가 삶에 닿는 순간

 

충남 당진. 지금이야 지역에서도 다양한 문화와 교육을 접할 수 있지만, 음악을 공부하던 어린 시절에는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기 위해 지역을 벗어나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플루트를 배우기 위해 당진에서 서울까지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당시에는 그것이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결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당연한 기회가 아니었다. 특히 음악은 재능과 노력만으로 공부하기 어려운 예술이다. 악기가 있어야 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하며, 지속적인 레슨과 연습 공간이 필요하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수도 있고, 좋은 연주와 공연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도 필요하다. 결국 한 사람의 음악적 재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가족의 지원, 경제적 여건, 교육환경과 지역의 문화적 기반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행히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당진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음악을 배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부모님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중요한 ‘문화자본’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이야기한 ‘문화자본’은 단순히 예술에 대한 지식이나 교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교육과 문화, 취향과 태도,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까지 한 사람의 삶에 축적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다.

당진에서 자랐지만 부모님 덕분에 지역의 경계를 넘어 음악을 배울 수 있었고, 그렇게 축적된 경험은 음악을 전공하고 교육을 공부하며 오늘날 음악감독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위대한 청춘 진천편’의 객석은 나에게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지난 8월 15일(토) 오후 4시 진천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위대한 청춘. 공연장은 만석이었다. 평균 연령 65세를 훌쩍 넘는 어르신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허리가 굽은 채 천천히 공연장을 찾아오신 할머니도 계셨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으시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이분들에게 오늘의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문화생활을 흔히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 역시 기회가 있어야 누릴 수 있다. 대도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공연과 전시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지역에서는 그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특히 이동이 쉽지 않은 고령의 어르신들에게는 좋은 공연 한 편을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어쩌면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문화가 그분들의 삶 가까이까지 충분히 찾아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만석’이라는 숫자가 다르게 보였다.

그날 객석을 가득 채운 것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었다. 음악을 듣고 싶고, 공연을 보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웃고 즐기고 싶었던 사람들의 문화적 갈증이 그곳에 함께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자 객석의 표정이 달라졌다. 익숙한 음악에 반가워하시고, 박수를 치고, 함께 웃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삼 음악의 힘을 느꼈다.

 

그런데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순간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어르신께서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셨다.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오늘 참~~~~~~ 좋았습니다.”

아주 짧은 한마디였다. 그런데 그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았다. 공연을 준비하며 음악을 고르고, 연주자들과 고민하고,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보냈던 수많은 시간이 그 따뜻한 손과 한마디 안에서 모두 보상받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는구나.’

음악감독으로서 좋은 음악을 고르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드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든 음악이 결국 사람의 마음에 닿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공연 한 편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외출해 좋은 옷을 입고 공연장을 찾은 특별한 하루일 수도 있고, 한동안 채우지 못했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공연을 마친 뒤 누군가의 손을 꼭 잡으며 “오늘 참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 하나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음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 어르신의 따뜻한 손을 잡고 있으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기에 문화와 교육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고, 그렇게 얻은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제 음악감독으로 음악을 가지고 다시 지역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과거에는 문화와 예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야 했지만, 이제는 좋은 문화가 사람들의 삶 가까이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반드시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는 사회, 내가 살아가는 지역에서도 좋은 공연을 만나고 감동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지역에 문화자본이 쌓이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의 공연이 한 사람의 좋은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다시 공연장을 찾게 만들며,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개인의 문화자본이 되고 결국 지역의 문화적 힘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감독의 역할도 무대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악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사람, 좋은 문화가 필요한 곳에 닿도록 연결하는 사람. 이번 ‘위대한 청춘 진천편’을 통해 그런 음악감독이 돼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한다.

 

진천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주신 정제윤 팀장과 진천예술의전당 대표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공연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무대 하나를 마련하는 일이 아니다. 그 무대를 통해 누군가는 처음 음악을 만나고, 누군가는 오랜만에 공연장을 찾으며, 또 누군가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자본은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삶 가까이에서 축적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문화를 찾아 떠나는 것에서, 이제는 문화가 사람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번 공연의 만석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첨언한다면 이러한 뜻깊은 무대가 가능하도록 지역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넓혀주신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유통사업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글 한숙현(음악감독, 경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