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관 전 제주문예진흥원장, 정치와 문화예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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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관(泰官).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게감을 이제는 이름에서부터 느낀다. 클 태(泰), 벼슬 관(官)이라니, 이름대로 해석한다면 큰 벼슬을 할 사람이 아닌가 싶다. 문화예술인으로만 만났을 때는 그저 평범한 이름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달리 보이는 이유가 있다. 그가 도정에 참여해 문화예술의 큰 그림을 그려보자고 하는 마음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제주도 봉개동은 시골이다. 그럼에도 그가 도회지가 아닌 이곳에 사무실을 연 것은, 그동안 도회지에서 활동해온 만큼 이제는 지역 주민, 그중에서도 바이럴 마케팅의 핵심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어르신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다.
아닌게 아니라 그가 등장하면 어르신들은 무척 반가워한다. 어투나 사람에게 다가갈 때의 어프로치가 상당히 전원적이기 때문이다. 기악을 전공한 음악인 출신인데다 문화예술원 원장을 역임했기에 서민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이야기를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하고 순박한 사람이 된다. 노년층은 이런 김태관의 넉넉한 인상을 퍽이나 좋아한다.
그러나 정치란 단지 사람 좋다고 간택받는 영역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가 뛰어놀던 홈그라운드인 ‘문화예술’에 대해서는 확고한 비전과 플랜, 구체적인 계획이 준비돼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정치는 그런 소아적인 영역을 뛰어넘어야 하는 법이다. 정치는 어느 한 부분만 다루는 일이 아니라, 삶의 질과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라면 모든 분야를 아울러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문화예술보다 앞서, 당장의 지역경제 활성화, 곧 제주 도민의 지갑을 채워줄 수 있는 열쇠부터 제시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계층인 어르신들을 먼저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어르신들이야말로 바이럴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가장 중요한 정치의 꼭지점은 지역경제 활성화라고 할 수 있죠. 도민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려면 지갑이 먼저 두둑해져야 합니다. 지역경제 활성화란 쉽게 말해 돈이 돌게 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이 바로 문화예술 정책의 수립입니다.” 

820개의 목소리문화예술을 아는 정치의 필요성
김태관 전 제주문화예술원 원장은 지역경제든 문화정책이든 이를 거시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뜻있는 정치인들이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원끼리 연대를 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정치인들의 연대는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고 본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를 잘 모르는 의원들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연대는 오히려 쉬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옛날 일이지만 문화예술 분야를 담당하는 정치인들이 피감기관을 감사할 때 “콘서트홀에 왜 그랜드피아노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례도 있었다. 문화예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나올 수 없는 질문이다. 이럴 때 의원 가운데 문화예술 전문가가 있다면,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 그런 질문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김태관은 문화예술을 대변해 반드시 충분히 설명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시·도립은 물론 민간까지 포함해 제주도 내 문화예술단체는 약 820개가 활동하고 있다. 인구 60만 명에 비해 820개 단체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정치를 하려면 문화예술인들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말이 결코 흰소리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시킬 생각이다.
“저는 민선 8기 전반기 문화예술 기관장을 하면서 제주도의 다양한 문화예술의 장점과 단점, 예술인들의 애환 등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음악을 전공했지만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발레, 미술, 조각 등 전 장르를 아우르며 살펴봤죠. 게다가 각 장르의 유관단체까지 들여다보았습니다.”
기관장 시절의 이런 활동은 각 장르마다 예술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더불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각 기관 역시 서로 꿰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관장 개인의 힘만으로는 서로를 연결시키는 일이 불가능했다. 연결해 줄 사람도 없었고, 꿰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정치인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만약 정치적 입지가 다져진다면 가장 먼저 문화예술의 ‘연결’을 시도할 계획이다. 이러한 시도는 노련한 정치인보다는 다소 무모해 보일지라도, 모험적인 정신이 살아 있는 참신한 정치인들에게 더 어울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스승의 계보음악의 계보그리고 김태관
김태관이 문예진흥원 최연소 기관장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도전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어쩌면 신이 그 길로 밀어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예술계의 현장과 정치적 네트워크를 잇는 선구자가 되라는 일종의 계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 앞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연주자로 출발해 제주도 최초의 전문 공연기획자가 되고, 예술경영인으로 인정받은 뒤 전 장르를 조망해온 기관장을 역임한 문화예술인이기에, 출정자의 책임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태관’이라는 이름은 본래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에서 무역업을 하던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다. 이후 1944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부친은 해방을 맞아 할아버지의 고향인 제주도 조천에 정착했다. 돌이켜보면 증조부의 모험정신은 지금의 김태관, 늘 일신우일신하며 어제보다 더 넓은 땅을 찾아 떠나곤 하는 김태관으로 이어져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저의 인생에서 오현고등학교는 방향을 결정한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스승인 이상철 선생님도, 이상철 선생님의 스승인 김승택, 박창표 선생님도 모두 오현고 출신입니다. 그리고 김승택, 박창표 선생님의 스승은 고봉식 선생님입니다. 목포상고 출신의 김대중 대통령과 친구사이이지요. 고봉식 선생님은 오현고 교장과 제주도교육감을 지내시기도하였고 은퇴후에는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장을 맡으시기도하였습니다. 제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하였고요. 오현고로 맺어진 인연은 정말 각별합니다.
제주도 음악의 뿌리는 바로 이 고봉식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 음악협회와 관악협회 등 후배들이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여러 음악 단체를 그가 직접 설립하고 이끌었기 때문이다. 고봉식 선생님의 서양인 친구가 바로 ‘찰스 길버트’다. 그는 한국전쟁 시기 제주도에 악기를 처음 들여오고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미국인이다. 고봉식 선생님이 찰스 길버트와 함께 오현고 밴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로 남아 있다. 바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상철 선생님의 권유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권유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공부가 영 내키지 않아 밴드 쪽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 직접적인(?)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중주에서 발견한 기획의 출발점
“기획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일종의 경험의 산물입니다. 음대에 입학해 연주를 시작했는데,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오케스트라나 솔로가 아니라 ‘중주’라는 걸 깨달았죠. 다른 연주는 연주하는 저도, 관객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반면 현악 4중주, 3중주, 피아노 트리오, 트럼펫·호른·트롬본·튜바 등으로 구성된 금관 오중주처럼 다양한 편성의 중주에 관객이 깊이 몰입하는 현장을 계속 경험했습니다.”
예컨대 ‘5중주’라면 연주자의 몰입과 태도, 관객의 반응 등 여러 면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오케스트라는 100명 중의 한 명이지만, 5중주는 5명 중의 한 명이다. 관객들 역시 100명이 아닌, 다섯 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를 바라보게 되니 보는 재미도 크지만, 그 감동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연주하는 맛도 있었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소규모 중주에 더 깊이 몰입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직한 금관5중주에 이어 아내를 포함한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해 연주 활동을 시작했죠. 제가 좋아하는 것을 관객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저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기획의 시작이었습니다. 청중 지향적, 즉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시작한 셈이죠.”
그는 관객들의 반응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앙상블 연주에서 미친 듯이 박수가 터져 나오는 장면도 종종 목격했다. 특히 스트링 콰르텟과 피아노 트리오에 대한 반응이 두드러졌는데, 김태관은 ‘제주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하고 다양한 연주현장에 공연을 알선하기도 했다. 그것이 그가 시작한 사실상의 최초의 기획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예술을 통해 대중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만큼 예술의 대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군악대에서 완성된 기획의 정의
김태관에게 기획의 타산지석이 된 교훈은 군악대에서 얻은 것이었다. 대학 시절 육군군악대에 입대했는데, 육군군악대는 일반 군 부대의 단원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200명에 가까운 대규모였다. 그런데 육군본부 군악대의 연주 목적은 클래식 음악의 순수성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청중을 재미있게 할 것인가, 바로 그 지점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육군본부 군악대 단원들은 오직 클래식만 공부한 전국의 유명 음대 출신들이 대부분이지만, 기획 자체가 ‘청중을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연주 목적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연주를 모두 소화해냈습니다. 군대에서는 관객을 재미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하나의 미션처럼 생각합니다. 실력이 출중한 친구들이 수준 높은 연주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펼치니 얼마나 신명 나겠습니까?”
군 복무 중 기획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정립했고, 복학 이후에는 친구들에게 연습실에만 머물러 연주하지 말고 길거리로 나가자고 권유했다. 미대 친구들과 함께 시청 등 야외 공간으로 나가 미술과 음악이 결합된 융합 공연도 펼쳤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음악회였다.
이런 활동을 펼치던 시기가 군 제대 직후인 1994~95년이다. 바로 이 무렵 탄생한 음악제가 제주국제관악제였다. 그는 관악제의 집행위원으로 참여하며 제주국제관악제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지난 구랍 시카고관악제를 다녀온 것도 이러한 인연이 이어진 결과다. 제주문화예술원 원장 등 공공기관에 재직했던 10년을 제외하면, 지금도 그는 제주관악제 조직위원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꿈을 꾸는 자는 반드시 그 꿈을 이루는 법일까. 그는 문화예술 공간이 생길 때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면 재미있을까’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것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머릿속에 그려지는 미래의 그림에 가까웠다. 이렇게 저렇게 운영하면 청중이 좋아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문화예술 공간에는 대개 갤러리도 함께 들어서는데, 그 공간 역시 음악과 융합하면 훨씬 품격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접목하는 구상을 했고, 실제로 그런 프로그램을 제안하며 자비를 들여서라도 앙상블 연주를 펼쳤다. 반응은 뜨거웠고, 여기저기서 그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기획은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기관장이라는 역할을 다르게 해석하게 됐습니다. 민간인으로서 기획을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더군요. 문화예술 공간을 더 품격 있게 만들고, 전문가의 터치를 더해 청중도 만족할 수 있는 기획을 실행하려면 결국 기관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됐습니다.”
이로써 김태관은 제주 출신 가운데 공식적으로 전문 공연기획자 1호가 된다. 경험으로만 쌓아온 기획력을 제대로 검증하고 보다 깊이 공부하기 위해 그는 문학계의 거목 유민영 지도교수를 만나, 예술경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 운영을 주제로 천착했고, 마침내 예술경영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제주문예회관은 1988년 서울 예술의전당과 같은 해에 건립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 제주아트센터 등 대규모 공연장이 도내에 속속 들어서면서 전문기획자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제도를 움직인 기획서귀포에서 시험대에 오르다
그의 기획은 곧바로 이상철 위원장과의 숙의를 거쳐 제주국제관악제의 프로그램 다변화에도 적용되었다. 이어 2001년에는 작곡가 강문칠과 함께, 당시 기획사무처장으로 재임하며 제주국제합창제 창립에도 관여해 7년간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후 3년간의 휴지기를 거쳐 오늘의 제주국제합창제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학위를 취득한 뒤, 드디어 기관장을 향한 꿈의 발걸음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곧바로 서귀포예술의전당 등에서 공식적으로 기획을 맡게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서귀포예술의전당은 전국 아트센터 가운데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공연장 중 하나였다. 그가 서귀포예술의전당에 남긴 여러 기획 가운데 지금도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축제가 바로 서귀포오페라축제다.
“400억 원짜리 예술의전당을 건축하고,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보통은 공무원이 대관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탁상공론에 머무르기 쉬운데, 서귀포는 달랐습니다. 전문기획자를 영입해 명실상부하게 문화예술에 맞는 콘텐츠를 가동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죠. 지금은 국회의원이지만, 당시 도의원이었던 위성곤 의원의 제안으로 제가 기획을 맡게 된 겁니다.”
김태관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기획에 몰두했다. 두 달 동안 펼쳐진 오프닝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기획자로서 ‘역시!’ ‘잘 뽑았다’는 평가가 뒤따르며 그의 명성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았다. ‘공연을 왜 하느냐’, ‘오페라는 왜 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품고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럴 때마다 기획자로서 느끼는 자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무소처럼 밀고 나갔다.
그런 뚝심 덕분에 그는 전국 문화예술축제에서 다문화합창단을 창단해 1년 6개월 동안 운영한 프로그램으로 2015년 대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러한 백안시의 환경 속에서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던 김태관은, 결국 제주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겨 최초의 기획자로 활동하게 된다. 

제도를 설계하다예술경영 인재 양성과 정치의 필요성
김태관은 갈수록 늘어나는 문화예술단체와 극장을 효율적으로 매칭하고, 보다 합목적적인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예술전문경영 전공자들을 본격적으로 배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의 목표는 제주대학교 예술경영학과 개설이었다. 학과 개설을 위해 도시락을 싸 들고 제주대학교 관계자와 교수들, 문화예술재단 이사장, 향토사학자 등을 미친 듯이 찾아다니며 발품을 판 끝에, 2020년 마침내 제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문화예술경영학과가 개설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에는 박사학위 과정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가 예술섬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지역 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는 구조라면 성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다행히 이제라도 전문 예술경영자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죠. 굉장한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목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모든 예술공간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위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서귀포예술의전당, 제주아트센터, 제주문예회관 등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려면, 각각의 관장과 원장들과 협의할 수 있는 지위로의 승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이상적인 구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제주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생각이다. 그가 도의원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적 포디움을 떠나, 이러한 제안은 이미 여러 차례 윗선에 전달해온 바 있다.
“사실 문화예술계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는 일종의 열패의식에 휩싸여 있습니다. 국가든 도정이든 체육 관련 아젠다는 비교적 빠르게 의견 수렴이 이뤄지거나 진전이 있지만, 문화예술계는 늘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죠. 이는 다른 지역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그렇다 쳐도, 예술섬을 지향하는 제주도만큼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설픈 시각으로 예술문화를 지원하는 관행은 결국 커다란 패착으로 이어집니다. 예술섬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 도정에서는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 보여 오히려 든든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문화단체 기관장은 주로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을 보내는, 이른바 ‘보은 인사’의 자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도정은 달랐다. 그는 선거와는 전혀 관계없는 제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순수한 전문기획자였음에도 불구하고, 2년 전 제주문화예술원 원장으로 전격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선이었기에 제주 지역 언론 역시 “제대로 선발한 전문가”, “오리지널 전문가 채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더 놀라운 점은, 당시 인터뷰 자리에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12명이나 왔음에도 불구하고, 서류와 면접에서 모두 제가 1등을 차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절차가 매우 공정하게 진행됐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성과를 말하지 않는 방식그러나 분명했던 변화
김태관이 그동안 제주문화예술원에 재임하는 동안 올린 성과도 분명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스스로 말하기가 공치사 같다고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많은 일을 해냈다. 문화예술 공연은 실내에서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문예회관 앞마당을 문화광장으로 열어 ‘문화광장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 제주도 내 여러 기관과 MOU를 체결하며 예술단체들과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해나갔다. 예컨대 국립발레단 공연에 전문 무용수와 대학생들을 함께 투입하는 접목을 위해 국립발레단과도 MOU를 체결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한계 역시 피할 수는 없었다. 제주문화예술회관이 직접 관장하는 예술단체는 무용단 하나뿐이고, 관악단은 서귀포시, 합창단과 교향악단 등은 제주시 문화예술과 소속이어서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디벨롭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결국 관이 관리하는 문화예술단체는 단원들의 애로사항이나 개선 요구 같은 작은 목소리까지 세심하게 담아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가 재임한 이후 직접 관리했던 무용단의 변화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단순히 작품 수준만 높인 것이 아니라, 공립예술단의 방향 자체를 새롭게 정의한 점이 중요했습니다. 작품의 질과 수준을 깊게만 파고들기보다는, 폭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했죠.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대중성으로 확장하자는 뜻입니다. 그 코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입니다. 네, 재미입니다.”
그가 체득한 ‘재미’는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쌓아온 결과였다. 군악대 시절에도 그랬고, 다문화합창제나 서귀포 축제, 청소년 뮤지컬 등에서도 늘 ‘재미’가 핵심 코드였으며, 그때마다 각종 경합에서 1등을 차지하거나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기관장이 모든 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금물이다. 김태관 역시 늘 ‘팔거리 정책’을 기본 경영 철학으로 삼아 방향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실천 과정에는 지나치게 간여하지 않았다.
“예컨대 전통무용의 경우에는 컨템포러리 무용을 가미하는 정도의 방향만 제시했고, 전통음악 역시 기존 형식에만 머무르지 말고 제주도의 특징을 담아 글로벌화하는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을 뿐입니다. 구체적인 실행은 감독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해나갔습니다.”
원장으로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일은, 예술단들이 해외에서도 이러한 활동을 마음 놓고 펼칠 수 있도록 충분한 재원을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큰 방향을 제시한 뒤에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예산 확보에 동분서주했다. 도의원들에게 예술단의 애로를 설명하고, 선후배들에게까지 지원을 요청하는 등 그가 가장 많은 발품을 팔았던 일 역시 결국 재원 마련이었다. 

관광·경제·문화예술을 잇는 출사표
자, 이제 그는 출사표를 던졌다. 더 큰 위치에서 제주 문화예술의 로드맵을 구상하고 정치를 시작할지, 그 행보가 무척 궁금해진다. 김태관이 더 큰 시각에서 문화예술과 경제를 바라보듯, 문화예술이라는 축은 사실 관광이라는 더 큰 축에 포함돼 있다. 제주도는 수산까지 아우르는 농수산 등 1차 산업이 매우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지만, 그보다 더 큰 경제적 가치는 관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연구 활동의 영역을 단순히 문화예술에만 국한하지 않고, ‘문화예술관광연구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경제적 수익 창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컨대 ‘어싱’을 관광자원으로 활성화하는 방법이 있다. 삼양해수욕장은 ‘맨발 걷기’를 뜻하는 어싱(earthing)과 검은모래 찜질을 의미하는 ‘검은 모살’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소중한 관광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이를 관광상품으로 체계화하자는 제안이 선뜻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관리도 안 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좋은 제주도의 여행 코스이자 상품이 될 수 있는데도 방치되고 있거든요. 이걸 조금만 손질한다면 고퀄리티 관광자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관리를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한데, 그 재원은 유료 입장권을 판매하면 됩니다. 2천 원 정도의 주차비만 받아도 운영이 가능하죠. 이렇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제주도 전 지역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 돈으로 삼양동 주민 2만 6천500명의 주머니도 조금은 채울 수 있고요.”
그의 아이디어는 봇물이 터진 듯 쏟아져 나왔다. 삼양1동에는 불탑사, 문강사, 원당사 등 세 곳의 유명 사찰이 있다. 모두 고려시대에 창건돼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사찰들이다. 특히 5층 석탑은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제주도에도 천년 사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다면, 이 역시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간 1,400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를 찾는 가운데, 그중 10%인 140만 명만 삼양을 찾는다고 가정해도 지방재정에는 큰 도움이 된다. 입장료를 단 1천 원만 받아 그중 절반을 지방비로 환원한다면, 지방재정은 물론 사찰을 디벨롭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기에 음악예술을 접목하자는 구상이다. 천년 사찰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고려시대 음악을 연상시키는 대금 연주나 국악 가요 연주회를 상시 운영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삼양3동 역시 아름다운 해안도로만으로도 환상적인 여행 코스가 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방치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봉개동에는 전국 5대 휴양림 중 하나로 꼽히며 연간 80만 명이 찾는 ‘절물자연휴양림’이 있지만, 이 역시 활용 가능성에 비해 관리와 기획이 부족한 실정이다. 만약 이 자연휴양림에 평상을 설치하고 사용료 2천 원 중 절반을 도 지방비로 환원한다면, 이 또한 지역 재정의 주머니를 채우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곳곳에 문화예술 기획이 더해진다면 문화예술인들 역시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관광과 지역경제, 문화예술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겠죠. 문제는 실행입니다. 관광에 문화예술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화예술인들 역시 관광과 경제의 연계성을 직접 깨닫게 하기 위해 공연장에서만 연주하지 말고, 야외와 광장으로 나가 연주하라고 말해왔습니다. 제가 문예회관에서 추진했던 광장 콘서트가 바로 그런 취지였습니다. 광장뿐 아니라 노인복지관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해드리자고도 역설했죠. 실제로 공연을 해보니, 연주자들 스스로가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그 이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더군요.”
다행스러운 점은 이제 관광 분야에서도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관광협회 임원들과의 대화에서도 문화예술이 수익 창출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분명히 공유되고 있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술인들 스스로의 관용과 포용이 필요하다는 조건도 제시된다. 관광지에서의 연주와 퍼포먼스를 ‘격이 떨어진다’고 바라보는 시각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로 돈이 돌게 하다
이제는 문화예술인들의 경제를 돌아볼 시간이다. 제주도에는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연 하드웨어 전문가들이 다양한 무대에서 쉴 새 없이 활동하고 있다. 제주도는 ‘축제의 섬’인 만큼 관광과 연계된 축제가 허다하다. 그 축제마다 공연이나 퍼포먼스가 반드시 뒤따르며, 적게는 전체 예산의 20%, 많게는 5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축제에 참여하는 문화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조명·무대·음향 등 하드웨어 전문가들까지도 상당수가 서울 등 육지에서 온 인력이라는 점이다. 그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현실이다.
“10억 원 예산이면 2억 원 이상이 공연비로 소요됩니다. 그 비용을 육지 음악인이나 기술진에게 지급하면 제주 예술가들과 기술진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쿼터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공연 수준이나 기술 수준이 상당 부분 평준화돼 있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기용하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여타 지원사업처럼 타지 전문인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매우 폐쇄적인 행정일 겁니다. 그래서 스포츠나 영화계처럼 제주 문화예술계에도 보호 차원에서 쿼터제를 도입한다면, 제주 예술계가 더욱 활발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쿼터제를 의회에 제안하고 통과시키려면 결국 도의원이 돼야 합니다.”
그러나 쿼터제만으로 문화예술인들을 보호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김태관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현재 제주도에서 열리는 문화예술·관광 축제만 해도 약 300여 개에 이르는데, 이를 두 배로 늘려 약 600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문화예술인들의 수익 역시 자연스럽게 두툼해진다는 논리다.
축제 하나에 소요되는 예산은 적게는 2억 원, 많게는 30억 원에 달한다. 만약 축제 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면, 150만 원 수준이던 예술가의 개런티가 300만 원으로 증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제주도는 축제의 섬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주도 곳곳을 잘 다듬어 축제로 만들어낸다면 지금보다 두 배로 활발해질 것이고, 그만큼 경제적 이익도 분명히 늘어날 것입니다.”
김태관의 아이디어는 경제를 이야기하든, 관광을 이야기하든 결국 문화예술로 귀결된다. 어떤 정치인은 민생만을 외치고, 또 다른 정치인은 경제만을 이야기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관광만을 강조한다면, 과연 문화예술은 누가 이야기할 것인가. 아니, 문화예술이 경제와 관광과 늘 함께 간다는 거시적 관점의 주장은 누가 펼칠 것인가. 누군가는 문화예술을 중심에 두고 사회의 이해관계와 연결 구조를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축제의 섬’ 제주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문화예술인들을 대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문화예술을 넘어 경제가 중요한 도민들에게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제주문화예술원장에 선임됐을 때 “도대체 캠프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기관장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왔듯, 이번에는 도정에 직접 뛰어들어 문화예술을 통해 제주 경제를 살리고, 도민의 돈주머니를 채우겠다고 나섰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게 되고, 또 응원하게 된다. 그의 도전이 필자에게도 의미 있고 감사한 일로 다가오는 이유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