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위해 탄생한 ‘스테이지 프레즌스’ - ‘위대한 청춘’의 소프라노 송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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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시작된 여정 

성악가의 목소리는 단순히 음정과 성량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감정, 그리고 수많은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내는 결정체적 울림이다. 우리는 어떤 성악가의 노래를 들을 때 단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을 함께 듣는 셈이다. 소프라노 송난영의 목소리 역시 그런 시간의 울림을 담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밝고 단단하다. 고음은 힘 있게 치솟고 리릭 콜로라투라의 장식음은 유려하게 흐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단지 음역이나 성량, 기교가 전부는 아니다. 무대 위에 서는 순간 자연스럽게 관객의 집중을 끌어내는 특유의 존재감이다. 공연계에서는 이를 ‘스테이지 프레즌스’(Stage Presence) 다시 말해, ‘아우라(Aura)’라고 부른다. 많은 성악가들이 발성과 기술을 연마하지만, 무대 위에서 공간의 공기를 바꾸는 힘을 가진 가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송난영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주변 음악가들의 주목을 받았던 성악가라 할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 노래를 부를 때 재능이 워낙 뛰어난 것을 발견한 성악 전공의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동네 노래자랑 상금을 넘어 각종 성악대회에서 우승을 하기 시작했다. 숙명여대 시절엔 최초 독도음악회에 출연하여 9시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영어 딕션을 가르치던 김문영 교수는 송난영의 재능을 알아보고 ‘너는 미국을 가야 한다.’며 유학을 적극 추천하고 도왔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뉴욕에 있었던 맨해튼음대(Manhattan School of Music) 박사 출신으로 미국의 무대와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전문가였기에 그는 제자의 목소리뿐 아니라 특유의 반짝이는 에너지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친구인 브렌트 교수도 네가 누구보다 확고한 스테이지 프레젠스가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 바로 그것이 송난영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네 음역과 성량, 무엇보다 무대에서의 아우라는 미국에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강력한 응원은 결국 송난영의 음악 인생을 더 넓은 세계로 이끌었다.

뉴욕에서의 첫 노래 

2015년 6월, 송난영은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은 세계 음악가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도시다.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재즈와 뮤지컬, 현대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맨해튼 음악대학은 줄리어드와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음악 교육 기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곳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공부하는 음악의 멜팅팟(melting pot)이다. 유럽에서 온 성악가도 있고 남미 출신의 가수도 있으며 아시아에서 온 음악가들도 많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음악적 배경이 만나면서 독특한 음악 환경이 만들어진 곳, 그게 바로 맨해튼 음대라 할 수 있다. 같은 아리아를 부르더라도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맨해튼음대 입학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오디션이다. 먼저 1차 영상 오디션 이후 현장 오디션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결정한다. 송난영은 영상 심사를 위해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준비했다. 이 곡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비교적 쉬운 곡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소프라노에게 매우 까다로운 작품이다. 극단적인 고음과 빠른 콜로라투라 장식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송난영에게 이 곡은 이미 익숙한 레퍼토리였기에 영상 심사를 너끈히 통과한 뒤, 뉴욕에서 직접 오디션을 보러갔다. 현장 오디션에서 준비한 곡은 자코모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 1791–1864)의 오페라 디노라 중 ‘그림자의 노래’(Ombre légère)였다. 이 곡 역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기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 그녀는 노래를 시작했다. 고음이 치솟고 화려한 장식음이 이어지고 곡이 끝났을 때 오디션실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오디션실 밖에서 벌어졌어요.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이 저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주더라고요.” 사실 그들은 모두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지원자들이었다. 경쟁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 순간 송난영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모두가 친구가 되어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큰 자신감을 얻었다. 그 경험은 지금도 누구와 노래하고 어떤 음악가와 같은 무대를 장식해도 경쟁자로 보지 않고 상대를 칭찬하고 격려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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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광복회 신년음악회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세계 

오페라의 세계에서 소프라노는 단순히 하나의 성부가 아니다. 그것은 오페라라는 장르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목소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Coloratura Soprano)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리릭(Lyric)'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음색과 '콜로라투라(Coloratura)'의 화려하고 기교적인 기술이 결합된 형태 리릭 콜로라투라는 음악적으로는 빠른 장식음과 화려한 음형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기교적인 성악 스타일이다. 따라서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단순히 높은 음을 내는 것만이 아니다. 빠른 패시지를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 섬세한 호흡 조절, 그리고 극적인 표현력이 모두 필요하다. 대표적인 배역으로는 모차르트의 ‘밤의 여왕’,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서 프리마 돈나가 장식하는 화려한 기교가 이 스타일이다. 송난영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이 영역에 속한다. 그녀가 유학 시절 준비했던 레퍼토리 역시 대부분 이러한 작품들이었다. 그중 ‘밤의 여왕’ 아리아나 ‘그림자의 노래’는 송난영의 기량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화려한 만큼 이러한 레퍼토리는 성악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고음이 안정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곡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까닭이기에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은 컨디션과 몸 관리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송난영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고음이 잘 나온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동시에 관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해요. 성악가에게 목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기잖아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악기가 되기 때문에 몸의 컨디션이나 호흡, 심지어 감정 상태까지도 소리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성악가는 항상 자신의 몸과 목소리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훈련하고 단단히 다진 성악가, 송난영은 유학 이후 과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까? 

뉴욕에서 배운 음악의 다양성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은 송난영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의 다양성이었다. “뉴욕에서 느낀 것은 음악 해석이 정말 다양하다는 점이었어요. 같은 아리아를 부르더라도 학생들마다 접근 방식이 달랐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극적인 표현을 강조했고, 어떤 사람은 음악적인 정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어떤 학생은 전통적인 발성을 고수했고, 어떤 학생은 보다 현대적인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했거든요.”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나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성악가는 단순히 악보에 적힌 음을 정확하게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곡이라도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음악 환경은 바로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성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발성과 표현의 균형이다. 완벽한 발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감정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가수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노래를 하지만 감정 표현이 부족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가수는 극적인 표현은 뛰어나지만 발성이 불안정할 수도 있다. 좋은 성악가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노래를 배우다 보면 테크닉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소리도 조금씩 달라지게 돼요.” 이 말은 단순한 변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악가에게 발성은 기계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스승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 발성의 방향이나 호흡의 사용법, 음악을 표현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악가의 목소리를 두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송난영은 이런 변화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저는 그 모든 과정이 더 나은 연주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40365bc84d7c3.jpg플라시도 도망고와 함께

최고의 무대최고의 연주를 위한 여정 

성악가라는 직업은 평생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탐구하고 연마하는 직업이다. 어떤 가수는 30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완전히 찾았다가 40대에 잃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가수는 50대가 되어서야 새로운 음색을 발견하기도 한다.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풍부해지고 음악적 해석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송난영 역시 ‘자신도 아직 그 여정 속에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이 말은 겸양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악가라는 직업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뉴욕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단순한 유학 경험 이상의 의미를 남겼습니다.” 뉴욕에서 그녀는 음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경험했고, 자신이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 언어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지는지 깨달았어요. 고유의 문화와 언어에서 오는 차이들을 피부로 느끼며 더욱 공부에 재미가 깊어졌습니다.” 이는 성악가로서의 활동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음악가의 시간을 멈춰 세운 순간 

뉴욕에서 이어지던 음악의 시간은 어느 날 갑자기 멈춰 섰다. 송난영으로서는 2019년 코로나 직전 메릴랜드 리릭오페라 공연이 마지가이었다.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공연예술계는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분야 가운데 하나였다. 오페라 극장은 문을 닫았고 콘서트홀은 텅 비었다. 세계 곳곳에서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어 많은 음악가들이 무대에서 떠나야 했다. 어떤 이는 성악의 직업을 버리고 임시직 택배를 하거나 대리운전, 막노동판으로 뛰어들었다. 비참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노동 현장에 몸을 맡겨야 했다. 뉴욕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고 불리던 도시의 공연장이 조용해졌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역시 장기간 공연을 중단해야 했고 유학 중이던 음악가들에게도 이 상황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둑 터진 물줄기, 아니 쓰나미 같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송난영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원래는 미국에서 활동을 이어가려고 했지요. 뉴욕에서 공부를 마친 뒤 더 많은 무대에 서는 경험이 저는 누구보다 절실했거든요.” 하지만 팬데믹으로 오페라 가수로서 쌓을 수 있는 음악적 네트워크와 공연 경험을 쌓는 중요한 시기를 무력하게 상실한 셈이다. 그렇게 팬데믹은 개인의 계획과 상관없이 세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많은 음악가들이 귀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송난영 또한 한국에 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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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무대그러나 멈추지 않는 음악 

그렇다. 팬데믹은 공연을 멈추게 했지만 음악가의 시간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많은 음악가들에게 그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공연 일정에 쫓기던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송난영 역시 그 시간을 단순한 공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시간이 제게는 또 다른 공부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소프라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 경험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연구하는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공연이 멈추는 동안 그녀는 발성과 레퍼토리를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나는 어떤 성악가가 되고 싶은가.’라는 맨해튼 음대 입학 당시에 가졌던 질문이지만 귀국해서도 이 질문은 끊기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그것이 더 중요했다. 송난영은 성악을 전공한 이래 머릿속에서 한번도 떠나지 않았던 성악가가 있다. 20세기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인물 가운데 한 사람, 마리아 칼라스다. 칼라스는 단순히 뛰어난 성악가라는 차원을 넘어 오페라의 표현 방식을 바꾸어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녀의 노래는 완벽한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극적인 감정 표현과 강렬한 연기력이 결합된 새로운 오페라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칼라스의 노래는 종종 완벽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예컨대 음정이 흔들리거나 목소리가 거칠게 들리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녀의 노래에는 인간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송난영 역시 칼라스의 음악을 좋아한다. “칼라스의 노래를 들으면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성악가라는 느낌이 아니라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말은 성악가로서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오페라는 음악과 연극이 결합된 예술이다. 그래서 좋은 오페라 가수는 단지 노래를 정확하게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해야 한다. 사랑과 질투, 분노와 슬픔, 희망과 절망 같은 인간의 감정이 음악 속에서 극적으로 펼쳐진다. 성악가는 그 감정을 목소리를 통해 전달한다. 송난영 역시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노래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성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감정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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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되는 무대 

코로나 이후 공연계는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도 서서히 관객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송난영 역시 다시 무대를 향해 나아갈 때 그녀에게 무대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자신의 목소리를 시험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관객과 감정을 나누는 장소다. “무대에 서면 항상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같은 곡을 불러도 공연마다 다른 감정이 생기기 때문이죠. 그 순간의 공기와 관객의 반응, 그리고 컨디션 모두 제 음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되는 셈이에요.” 국내 귀국 후 다양한 무대에 오른 송난영. 무대는 성악가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공간이니만큼 코로나 이후 국내 활동을 시작한 송난영은, 캐스팅을 거절하지 않고 겸손하게 무대에 올랐다. 그 가운데에서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무대는 바로 ‘위대한 청춘’과 ‘연애의 정석’이다. 특히 영상스토리콘서트 ‘위대한 청춘’은 지난 2023년부터 지금까지 예술의 전당과 국립극장 국립중앙박물관 등지에서 약 10여 회에 걸쳐 꾸준히 출연해오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리음아트&컴퍼니의 기획 공연인 ‘8번방의 만세’ ‘불꽃청년 윤봉길’ 등에도 출연했지만 ‘위대한 청춘’은 단골 프리마 돈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성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무대는 역시 오페라 무대가 아닐까? 그는 귀국 후 여러 오페라에 출연하며 오페라 가수로서의 경험을 쌓아왔다. 훔퍼딩크(Humperdinck)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오이돈 작곡가의 ‘소리마녀의 비밀상자’가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오페라와는 또 다른 색깔을 지닌 작품으로, 음악과 연극적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무대다. 다양한 음악적 표현과 극적인 연기력도 크게 요구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성악가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녀가 단순히 아리아를 부르는 성악가를 넘어 무대 위에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외에도 한국소극장오페라페스티벌의 한 작품인 최우정 작곡가의 ‘달이 물로 걸어오듯’도 음악적 서정성과 극적인 서사가 소극장오페라로 성악가의 표현력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송난영은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송난영은 이외에도 위대한 청춘을 기획한 리음아트&컴퍼니가 제작한 이건용 작곡가의 오페라 ‘봄봄’에 점순이로 출연해 꾸준히 팬들을 확보했으며, CTS 오페라 ‘미라클’, ‘위대한 결단’ 등 기독교 작품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외에 오는 5월 29일과 30일 인천문학씨어터에서 펼쳐지는 판소리오페라 ‘소월’에서는 숙모(계희영) 역을 맡아 열연할 계획이다. 지난 5년 동안 송난영의 목소리를 찾는 기획사와 기업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작곡가 김효근과 함께하는 아침을 여는 클래식, 테너 김재형의 라운지콘서트, 한경필 협연, 뉴욕 아모르 솔로이스츠 크리스마스 콘서트, 전주국제영화제 나래콘서트, 삼성전자 가을무지개 콘서트, 엘콰르텟 콘서트, 주디스콰르텟 콘서트 등 손가락을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목소리 

성악가에게 무대는 단순한 공연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시간이 응축되는 공간이다. 수년 동안 이어진 연습과 고민, 그리고 수많은 경험들이 한 순간의 노래로 응축되어 터져 나오는 곳이 바로 무대다. 그래서 성악가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가들은 ‘무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던가. 연습실에서는 아무리 완벽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어도, 무대 위에서는 그 순간의 감정과 집중력, 그리고 음악에 대한 이해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악가에게 무대는 자신을 시험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소프라노 송난영에게 무대란 자신의 온 경험이 묻어나는 삶의 흔적이다. 송난영의 무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살아온 시간의 괘적을 일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성악가의 목소리는 단순한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감정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울림이기 때문이다. 송난영은 지금도 무대에 서면 인자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비교적 엄격하면서도 성실한 삶을 살아온 ‘나의 아버지’, 공직자로서의 책임감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시절 송난영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음악의 길은 결코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안정적인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기에 예술의 길을 허락 받기도 쉽지 않았다. “저도 인생을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상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제 인생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연이어 찾아왔거든요.” 아직 한창 인생을 향유해야 할 나이대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영면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었다. 가족을 지탱하던 중심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슬픔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 속에서도 그녀는 성악가로서의 책임을 놓을 수 없었다. 사방팔방으로 엮이어 있는 스케줄과 캐스팅의 사슬을 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소천 직전, 송난영은 전주에서 공연을 치르고 레드카펫을 밝고 있었고, 별세 소식을 들었던 그 이튿날은 본인의 캐스팅 외에 대타를 구할 수 없는 공연을 해야만 했다. “서울에서의 공연은 제가 아니면 그 공연 자체가 무산되는 작품이었어요. 목이 계속 메여 와서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상태였지만, 참고 또 참아내야 했어요.” ‘나의 아버지’는 입관을 통해 영원한 저 세상으로 떠나고 있건만, 마지막 인사도 못하는 그리움과 죄송함은 리허설 내내 분장을 몇 번씩이나 지우고 또 지울 만큼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온 장례시장에서 비로소 목놓아 울 수 있었다. 책임을 다하고 나타난 딸을 아버지는 이해하셨으리라, 잘했다고 칭찬하셨으리라. 참아왔던 눈물을 토해내듯 울었던 탓에 한동안 목소리를 잃어서 다시 회복하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노래는 결국 대본 속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성악가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송난영이 인터뷰에서 여러 번 강조했던 이 말은 단순한 음악적 표현이 아니라 삶의 상실과 슬픔을 겪은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 않나 싶다. 성악가에게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며 감정의 통로이자 기억의 울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대신 전하는 언어, 그것이다. 그녀가 노래를 통해 표현하려는 감정의 깊이는 그녀가 이겨낸 시간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성악가의 길은 쉽게 완성되지 않는다 

많은 음악가들이 어린 나이에 화려한 무대에 오르지만, 성악가는 조금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목소리라는 악기가 완전히 성숙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젊은 소설가가 부재하는 이유와 같다. 소설 역시 작가의 삶이 묵은지처럼 눅눅해져야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오페라 세계에서는 특히 이런 말을 한다. ‘성악가는 나이가 들수록 깊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고음과 기교가 돋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목소리는 더욱 풍부해지고 음악적 해석도 깊어진다. 송난영 역시 아직 자신이 완성체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계속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무대였다고 생각하고 온전히 만족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늘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지금도 무대가 끝나면 점검하고, 새롭게 준비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어요.” 진정 즐기는 사람은 이길 자가 없다했던가? 그녀의 음악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색깔과 에너지가 더해지고 있다. “맞아요. 저도 그걸 느껴요. 성악가의 삶은 한 번의 성공이나 한 번의 공연으로 완성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무대와 시간 속에서 조금씩 발견하고 발전하는 재미있는 예술이에요.” 송난영은 여전히 귀한 보석을 다듬고 다듬는 장인의 마음으로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 매 순간 그녀의 목소리는 그 순간 단 한번만 느낄 수 있는 금과 같은 무엇! 오는 4월 17일 개최되는 ‘위대한 청춘’에서도, 5월 29일과 30일 열리는 오페라 ‘소월’에서도 오직 그날의 목소리 메뉴만 맛볼 수 있다. 두 번은 없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