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다. 그 뒤에는 악보를 읽고 타이밍을 계산하며 음악을 ‘지휘’하는 또 하나의 시선이 존재한다.
토마토클래식 이윤민 대표는 오늘도 중계차 안에서 보이지 않는 지휘봉을 든다.
그를 찾아 바쁜 틈을 비집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윤민 대표의 본질은 중계차 안에
월간지 커버용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연예인 화장까지 했으니 영락없는 연예인이다. 직원들도, 구내식당의 조리원들까지 이윤민 대표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몰라볼 정도로 변신했다. 늘 카메라와 중계차, 공연장을 오가며 연출자로서 ‘부산스럽게’와 ‘차분하게’ 사이를 넘나들던 그가, 작업복 같은 복장만 입다가 오랜만에 나들이하듯 차려입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겉모습은 연예인일지언정, 우리가 인터뷰한 장소는 결국 중계차 안이었다. 현장감을 위한 미장센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공간은 없다. 그중 가운데 책상에 앉은 토마토클래식 이윤민 대표가 말했다.
“여기가 스코어를 읽고 연출을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6개의 화면을 동시에 보죠. 물론 10대의 카메라를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역시 영상화 작업을 위해 카메라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그 카메라까지 함께 활용해 촬영합니다. 예컨대 임윤찬을 촬영할 때에는 예술의전당 7번부터 10번 카메라까지 받아 총 10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많을 때는 12대까지도 가능하고요.”
스코어를 읽는 연출, 보이지 않는 영상의 지휘자
이윤민 대표는 지난 1월 토마토클래식TV의 대표가 되었다. 경력으로 보면 신임 사장이다. 하지만 명색이 대표라면 본사 대표실에서 업무를 볼 법도 한데, 그의 행동반경은 여전히 PD 시절과 다르지 않다. 중계차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현장감을 느낀 김에 토마토클래식의 카메라워크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부터 물었다. 이윤민 대표를 만나러 오는 길에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이런 영상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촬영되는 것일까. 이를 중계하기 위해서는 지휘자 못지않게 스코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책상 위에 놓인 악보를 가리켰다. 야코프 흐루샤가 지휘하고 김봄소리가 협연했던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악보였다.
“스코어를 보면 어느 부분에서 어떤 연주자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6명의 카메라맨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죠.”
이 악보가 사용된 공연은 2025년 6월 1일이었지만, 녹화 의뢰는 그보다 한 달 전 이미 들어왔다. 의뢰를 받으면 곡 분석은 물론, 악기의 무대 배치와 카메라 위치, 협연자의 구성까지 모두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연의 핵심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일이다. PD가 직접 묻지 않으면 지휘자나 기획자가 영상 연출의 핵심 포인트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영상에 필요한 모든 조건과 상황을 파악하는 일은 온전히 연출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6월 1일 공연은 어떤 관점에서 촬영되었을까. 당시 김봄소리는 음반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 음반 수록곡을 연주한다는 점에서 그녀를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연출은 이런 맥락을 읽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 의도가 화면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위해서는 감독, 조연출, 크루들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대표가 베테랑들과 작업하기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함께하는 크루들 역시 스코어를 읽을 줄 알고, 언제 어떤 장면을 담아야 하는지, 악기의 타이밍까지 정확히 파악하는 숙련된 인력들이다.
“한 번의 연주를 위해서는 연주자들만 준비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영상팀 전체가 호흡을 맞춰야 하고, 전문가들 간의 소통도 원활해야 합니다.”
촬영에 있어 이처럼 깐깐한 이윤민 대표를 중심으로 한 영상팀의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토마토클래식은 예술의전당과 함께 네 차례 공연을 촬영했다. 모두 입찰을 통해 선정된 프로젝트였으며, 이 영상들은 현재 예술의전당의 프리미엄 콘텐츠로 서비스되고 있다. 예술의전당 측이 굳이 ‘최고’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프리미엄 콘텐츠로 채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실력은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이러한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윤민 대표는 음악 전공자로서 방송사 대표 1호이기 이전에, 클래식 음악 전문 PD 1호라는 상징적인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초기 PD 시절부터 토마토클래식이 오늘날 최고의 클래식 방송 채널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주역이기도 하다.
사고는 피할 수 없지만, 연출은 무너지지 않아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뜻밖의 실수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연출과 사인이 맞지 않아 다른 악기를 촬영하는 등, 생방송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연출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민첩함입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죠. 다른 악기를 촬영하거나 카메라에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면, 우선 지휘자를 촬영하는 카메라로 스위칭합니다. 지휘자는 연주 내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든 포커스를 맞출 수 있거든요. 물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안 되겠지만요. 한 번은 카메라 감독이 복통을 참지 못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카메라가 잠시 비워진 적도 있었습니다.”
자막 역시 또 다른 변수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으면 버퍼링이 발생하거나 시스템이 다운되기도 한다. 이 역시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사고다. 이윤민 대표는 촬영 전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는 등 기본적인 점검을 철저히 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그러나 사고의 빈도는 촬영 횟수와 비례하는 법이다. 특히 영상 촬영이 급증했던 코로나 시기에는 이런 돌발 상황이 더욱 잦았다.
“처음에는 식겁할 만큼 놀랐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단련됐습니다. 이런저런 사고를 겪고 나니 카메라 하나가 꺼지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담담할 수만은 없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남을 탓하거나 질책하기보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려 한다. ‘포기하려는 사람은 핑계를 찾고, 해내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는다’는 말처럼, 현장은 결국 해결의 의지로 버텨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대가 바뀌는 순간, 연출은 다시 시작되다
이윤민 대표는 단순히 방송을 촬영하고 송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촬영 전, 최적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변수에 직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대의 악기 배치가 당초 계획과 달리 지휘자나 주최 측의 판단에 따라 변경되면, 촬영팀은 곧바로 혼란에 빠진다. 공연 당일 무대 배치가 바뀌는 순간, 그에 맞춰 카메라 위치와 연출 등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사실상 하나의 대공사인 셈이다.
지휘자가 방송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사전에 협의해 준다면 대응이 가능하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수록 촬영팀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연출은 식사할 틈도, 차 한 잔의 여유도 없이 지우개와 연필을 들고 무대 배치도와 악보 위에서 끊임없이 수정 작업을 이어간다. 한 차례의 혼란이 지나간 뒤 책상 위에 쌓인 지우개 가루만이 그 치열했던 시간을 말해준다. 이때야말로 연출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순간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연출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스테이지 팀과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기에, 현장의 모든 인력이 동시에 분주해진다.
“중계라는 걸 단순히 라이브 송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중계를 위해 수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됩니다. 이런 작업이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이어지다 보니 늘 진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웃음)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방송을 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라이브 이후의 편집 과정도 상당한 노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음향 편집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편집을 마친 뒤에는 다시 지휘자 등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최근들어 영상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는 지휘자를 만나는 것은 방송 입장에서 큰 행운이다. 최근에는 영상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지휘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예컨대 김선욱 지휘자는 영상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음향 밸런스까지 세밀하게 점검하는 등, 기록 매체로서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공연 녹화 영상에서 아쉬운 부분이 발견되면 리허설 음원으로 보완하는 등, 편집에 대한 감각 또한 뛰어나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이윤민 대표는 리허설 음원 역시 본 공연 못지않은 수준으로 녹음해둔다.
“공연이 끝나면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서로 금방 파악하게 됩니다. 그 부분은 리허설 음원으로 교체하는데, 그럴 때는 스코어를 함께 보면서 밸런스와 부족한 점을 하나씩 점검해나갑니다.”
이처럼 영상의 완성도는 지휘자의 관심과 이해에 크게 좌우된다. 이제는 전 세계 어디서나 감상이 가능한 유튜브 시대다. 어차피 기록으로 남길 공연이라면, 촬영 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준비해 최고의 퀄리티로 남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한 통의 편지, 겨울을 지나 봄을 부르다
이윤민은 5년 전 아르떼TV가 매각된 이후 토마토클래식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공연을 가볍게 다룬 적이 없었다. 모든 무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해왔다. 그러나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토마토클래식TV는 당시 음악인들에게 아직 생소한 방송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윤민은 알지만 토마토클래식은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처음 토마토클래식을 시작했을 때는 ‘맨땅에 헤딩한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때 정말 고마운 손길이 있었습니다. 2020년 겨울, 다름 아닌 대관령겨울음악제의 예술감독이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이었습니다. 아르떼TV에 있을 때도 대관령 음악제를 중계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고, 회사를 옮긴 뒤에는 이제 영영 인연이 끊겼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손열음 감독이 먼저 연락을 준 겁니다.”
이윤민 PD는 대관령 음악제를 앞두고, 음악계에서 일하며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긴 편지를 써 음악제 측에 전달했다. 대관령겨울음악제 중계를 맡겨준다면 정성을 다해 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손열음 예술감독과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음악제 담당자를 통해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다. 다만 2006년 아르떼TV 입사 이후, 2007년 1월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 신년음악회를 중계하며 협연자였던 손열음을 인터뷰한 인연이 전부였다.
“당시는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대형 방송으로 중계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관객 없이 공연을 촬영해 아카이빙용으로 제공하면 되는 정도였죠. 편지를 보내고 며칠을 기다렸지만 답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온 겁니다. 방송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동적이었거든요.”
이윤민 대표는 손열음을 만나 손을 꼭 잡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손 감독은 “이윤민 PD가 아르떼TV 대표의 딸인 줄 알았다”고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뜻이었다. 손열음을 만나면서부터 토마토클래식에는 서서히 성장의 불씨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긴 겨울을 지나, 비로소 봄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대관령 이후, 성장의 불씨는 확장으로 번지다
손열음 예술감독이 이끈 대관령겨울음악제 이후, 토마토클래식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이른바 ‘손열음 효과’는 어떤 방식으로, 또 얼마나 확산되었을까.
“코로나가 심화되면서 유튜브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졌습니다. 그 시기에 연주회 영상 촬영 요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저희뿐만 아니라 영상 전문 방송사나 유튜브 채널들도 큰 수혜를 입었을 겁니다. 요청이 너무 많아 저희 한 곳에서 모두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대관령 음악제 이후 토마토클래식TV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다. 바로 노부스 콰르텟의 연주를 촬영한 경험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 대표 클래식 매니지먼트인 목프로덕션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소속 아티스트들이 토마토클래식홀에서 ‘영 아티스트 시리즈’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2022년,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이전에 토마토클래식홀에서 연주한 장면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목프로덕션에는 매체가 필요했고, 이윤민에게는 아티스트와 콘텐츠가 필요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특히 임윤찬의 연주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며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험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후 손열음의 독주회 등을 촬영하면서 토마토클래식의 위상은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이윤민 대표에게도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토마토클래식을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각 오케스트라와 단체의 담당자들에게 채널의 강점을 직접 설명하며 협업을 확대해나갔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당시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는 아르떼TV 시절부터 이윤민과 작업해온 인물로, 그의 연출 방식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다. 토마토클래식이 어떤 채널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윤민이 맡는다’는 이유 하나로 경기필의 중계와 녹화를 전적으로 맡겼다. 그 결과, 수년간 경기필의 주요 연주를 전담하다시피 하며 사실상 전속 채널과 같은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중에서도 경기필과 마시모 자네티는 방송의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저희를 선택한 경우입니다. 함께 작업하는 동안 영상과 음향의 완성도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보여주셨습니다.”
이후 김선욱 역시 영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휘자로 합류하면서, 경기필은 토마토클래식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협업 단체는 꾸준히 늘어났다. 현재는 국립합창단을 비롯해 10여 개 이상의 단체가 영상, 방송,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토마토클래식과 전속 촬영 형태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수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전속 형식으로 촬영한다고 해도 모든 공연을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예산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각 단체별로 연 3~4회 정도 촬영을 진행하는데, 10여 개 단체와 함께하다 보면 연간 일정이 금세 가득 차버립니다. 말 그대로 즐거운 비명이지요.”




피아니스트 손열음 공연 중계 피아니스트 임윤찬 공연 중계 소프라노 조수미 공연 중계 피아니스트 조성진 공연중계
방송 중계 비용이 비싸다는 것은 착각
예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공연 녹화 중계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오해다. 본지가 주최하는 공연 역시 방송 채널에 중계를 의뢰할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계차 한 대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 8~10명의 크루가 필요하다. 카메라는 보통 4~6대를 설치해야 하고, 그에 따른 카메라 감독도 최소 4명 이상이 투입된다. 여기에 보조 인력까지 더해지면 전체 인력 규모는 더욱 커진다.
중계차 이동 자체에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더불어 4K, UHD 등 고가 영상 장비들의 유지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이처럼 여러 요소가 겹치다 보니, 중계차 한 대만 이동해도 약 천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발생한다.
“크루들이 새벽부터 장비를 설치하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작업한다고 가정하면, 1인당 30만 원 기준으로 10명이면 300만 원입니다. 보통 한 프로젝트에는 15~20명이 투입되기 때문에 그 비용은 훨씬 커집니다. 게다가 하루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 비용은 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이후에는 음향 및 영상 보정, 편집 작업에 추가적인 시간과 전문 인력이 투입된다. 그 중심에는 이윤민 대표와 같은 PD들이 있다. 한 공연을 위해 최소 3일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며, 경력이 적을수록 그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일주일에 서너 건씩 촬영을 이어가는 베테랑이라면 사실상 쉴 틈이 없는 셈이다.
또한 총괄 책임자인 이윤민 대표는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인력 간의 조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카메라 감독들 간의 성향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전체 작업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리허설 스태프 회의 이후 악기 배치, 카메라 위치 선정, 음향 점검 등을 진행하는 데만 하루에서 이틀이 소요되기도 한다. 촬영 이후의 후속 작업까지 감안하면, 이 일을 결코 누구나 쉽게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토마토클래식은 공익 채널이기 때문에 방송 송출과 유튜브 제작·운영 비용 등 전체 제작비의 절반가량을 회사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비용이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연주 단체가 절반 정도만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토마토클래식의 운영 예산은 토마토그룹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익 채널인 만큼 광고 수익이나 부대 수익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투자로 운영되는 구조다. 국내에서 유일한 공익형 클래식 영상 채널이라는 점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공익 채널이라고 하면 정부 지원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음) 하지만 그런 지원은 전혀 없습니다. 전적으로 토마토그룹이 사명감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영상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음악 역시 이제는 ‘듣는 것’을 넘어 ‘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공연을 직접 찾아다니며 감상할 수는 없는 만큼,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토마토클래식의 비전 또한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다. 이와 함께 조직 내부에도 기대와 희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물론입니다. 직원들에게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팀장 시절부터 지난 5년 동안 대표자 마인드로, 말하자면 주인의식과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습니다. 처음부터 토마토클래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영상 채널이 되기를 목표로 달려왔고, 그 마음은 지금도, 또 직원들도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윤민 대표는 여전히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영상과 음향 모든 면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단순히 고품질 영상 제작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웃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저희 채널로 초청해 인터뷰나 리허설, 공식 연주회 등을 촬영하고 싶습니다. 토마토그룹 차원에서도 이런 방향을 권장하고 있지만, 아티스트마다 매니지먼트와 일정이 달라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임윤찬, 조성진, 손열음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은 국내외 매니지먼트와의 접촉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자본력에서도 아직은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진행된 대형 피아니스트 프로젝트만 보더라도,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규모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윤민 대표는 이러한 현실적 제약 속에서 토마토클래식의 정체성을 다시 고민한다. 이미 성공한 스타 연주자도 중요하지만, 공익 채널로서 음악 영재 교육 기관과 협력해 신예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토마토클래식으로 초청하고 콘텐츠를 공유하는 한편, 채널의 위상을 높여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해외 활동으로 인해 자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손열음과 김선욱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김선욱의 경우 해외 클래식 채널에서는 자주 등장하지만, 국내에서는 토마토클래식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널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오케스트라가 만든 성장의 축, 영상이 연결한 네트워크
토마토클래식TV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단체 중 하나는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전국에 산재한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를 영상으로 확보하는 일은, 채널의 경영 기반과 위상 제고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수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처럼 자체 아카이빙과 단독 송출을 강조하는 일부 단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오케스트라와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선욱 지휘자처럼 여자경 지휘자도 영상과 음향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다만 지휘자가 영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더라도, 실제 촬영을 위해서는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정 담당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음악이나 영상 전문가가 아닌 행정기관 담당자들은 ‘왜 굳이 영상을 촬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또는 클래식 전문 채널이 아닌 일반 공중파 방송으로 간략히 촬영하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휘자의 인식과 실행력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안정적인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들 역시, 지휘자나 예술감독이 행정 담당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자경 지휘자께서는 영상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고 계십니다. 대전시립교향악단을 맡으신 처음부터 지금까지 중계를 진행했을 정도로 영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한편, 지방 오케스트라가 토마토클래식에 협업을 요청하는 배경은 단순히 지휘자의 판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유튜브 시대를 맞아 토마토클래식을 시청하는 구독자 수가 증가하면서, 지역에서도 채널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독자들의 선택과 소비가 새로운 협업을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토마토클래식을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촬영에 들어가면 단원들도 더욱 집중해서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이 정도다’라는 자부심 때문이기도 하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각 단원을 비추기 때문에 개인 연주자들도 더욱 긴장감을 갖고 임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촬영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로 인한 문제나 항의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행히 해가 갈수록 영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토마토클래식에 협업을 요청하는 오케스트라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전시립교향악단, 경산시립교향악단, 과천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수원시립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군산시립교향악단, 충북도립교향악단 등 다양한 지역의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대관령음악제와 같은 음악제 역시 지속적으로 영상 촬영을 의뢰하고 있다.
이제는 기록을 넘어 제작으로, 토마토클래식의 다음 단계
토마토클래식은 이제 자체 공연 프로그램 기획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6년 시즌에는 우선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유영욱이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는 공연을 4월 4일, 8월 28일, 12월 23일 세 차례에 걸쳐 선보인다.
이윤민 대표는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손정범 교수가 제안한 기획으로,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 교향곡을 피아노로 연주한다는 점 자체가 이례적일 뿐 아니라, 이러한 형태의 공연이 영상으로 공개된 사례 역시 드물기 때문이다. 토마토클래식으로서는 구독자 확대는 물론, 국내 클래식계의 아카이빙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춤추는 지휘자’로 알려진 백윤학과 피아니스트 칼 크레머가 함께하는 ‘뉴욕의 영혼을 연주하다’ 역시 토마토클래식의 기획 공연으로 준비되고 있다. 이 무대에서는 조지 거슈윈의 작품과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이 연주될 예정이다.
세 번째 기획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유영욱과 손정범이 송안훈의 지휘 아래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5번을 선보인다.
이어지는 해외 아티스트 초청 공연으로는, 2024년 기획 공연에 참여했던 피아니스트 프레디 켐프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는 10월 14일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이에 앞서 10월 11일에는 리사이틀을 통해 관객과 먼저 만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11월 25일에는 여자경과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함께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낭만’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중심으로 한 이 무대는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할 전망이다.
“올해는 기획 공연이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1월과 2월에 백윤학 지휘로 세종문화회관과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공연을 포함해, 거의 매월 기획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월에도 자체 기획 공연을 진행했고, 6월에서 9월 사이에도 추가 기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피아노에서 방송으로, 갈증이 길을 만들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방송과 관련된 직업을 고민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이윤민 대표 역시 그러한 갈림길에 서 있었던 음악인이었다. 2006년 아르떼TV 개국 이후 제작팀장을 15년간 맡아온 그는, 본래 피아노를 전공한 클래식 음악가였다. 당시 클래식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프로듀서는 다른 방송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직군이었다.
“저도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갈증이 있었어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작은 욕망이랄까요. 특히 라디오 방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양대에 있던 고전음악 동아리에서 클래식을 선곡하고 들려주던 활동도 영향을 미쳤고요. 그 동아리에 공대 학생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 외의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까. 라디오 방송에는 어떤 직업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라디오 PD’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직접 방송국 프로듀서를 찾아가기도 했다.
“혹시 음악 PD라는 직업도 있나요?”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서는 전공과 무관하게 일종의 ‘언론고시’와 같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입사 후에도 시사·사회·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AD로 근무하다가 운이 좋아야 음악 PD를 맡을 수 있는 구조였다.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다는 생각에 실망했고, 결국 언론고시의 길은 접었습니다. 그래도 당시 수요예술무대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TV 방송국 프로듀서의 길을 알아보기로 했고, 한양대 작곡과 출신으로 활동 중이던 선배에게 용기를 내 연락을 드렸습니다.”
“선배님, 음악 PD로 일하고 계신데 어떤 일을 하시는지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찾아뵐 수 있을까요?”
“그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중계 촬영이 있는데, 그쪽으로 올 수 있겠니?”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그는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에서 카메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공간은 중계차 안이었다. 흐릿한 모니터 화면만이 빼곡히 들어찬 그 공간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윤민은 적잖이 실망했다. 음악도 클래식이 아니었고, 선배의 설명 역시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 있던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갈대 같은 선택 끝에서, 운명은 중계차 안에
아직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던 대학 4학년, 졸업의 순간은 어느새 눈앞에 닥쳐 있었다. 무엇을 하며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까. 피아노를 계속 전공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다른 길을 향한 작은 자극은 등에처럼 따끔거리며 마음을 흔들었다.
졸업생을 위한 취업 특강이 열리긴 했지만, 소개되는 진로는 공연기획사 정도에 그쳤고 실질적인 정보는 부족했다. 결국 독일이나 미국 유학, 대학원 진학, 혹은 피아노 학원 운영과 같은 기존의 관행이 선택지의 대부분이었다.
이윤민 역시 유학을 고민했고, 독일로의 진학을 결정해 입학 지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차라리 하우스 매니저나 어셔로 현장 경험부터 쌓아야 할지, 고민은 계속됐다.
“2006년 초,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아르떼TV가 막 개국했습니다. 클래식 음악 PD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결과적으로 저 혼자 합격했어요.(웃음)”
그렇게 그의 방송 인생은 뜻밖의 행운처럼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방송 현장은 남성 중심의 조직이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려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남성들과 함께 들어야 했고, 촬영이 급박해지면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다.
처음에는 두 팔을 끼고 서 있다가 “왜 이 무거운 장비를 같이 들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피아노과에서 곱게 연주만 하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남성 중심의 현장에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적응은 쉽지 않았고, 안팎으로 눈물을 쏟은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을 연출하는 일은 점점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런 기분으로 사람들이 방송 일을 하는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그는 서서히 그 세계에 스며들어갔다.
이윤민의 첫 프로듀서 작업은 2006년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공연 녹화였다. PD 업무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선배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PD이자 AD, 스코어 리더, 프로그램 스크립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케이블 방송이라는 환경 역시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 공연을 아르떼TV가 독점 녹화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7년 신년음악회를 앞두고는 정명훈과 손열음 등을 인터뷰하는 기회도 얻었다. 고진감래였다. 그의 방송 인생은 그렇게 한 단계씩 상승 곡선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방송 PD로서, 그는 음악을 전공하고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대입니다. 연주 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 업로드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니까요. 누구나 영상을 다룰 수 있고, 관련 툴도 많습니다. 요즘 신입 PD 지원자들을 보면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직접 채널을 운영하고, 홍보 전략과 구독자 데이터를 갖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때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입니다. 이 분야를 준비한다면 그 정도의 경험과 준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제는 스마트폰만으로도 촬영과 편집이 가능한 시대다. 자신의 연주를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고 직접 편집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열정이다. 따라서 음악 전공자가 방송이나 영상 분야를 꿈꾼다면, 관련된 경험을 쌓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 카메라 뒤의 지휘봉
인터뷰를 이어가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수많은 공연을 중계하기 위해 이윤민 대표 역시 스코어를 누구보다 집요하게 붙들고 공부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지휘를 권유해보고 싶어졌다. 최수열이 “나보다 더 스코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연출 역시 그만큼의 이해와 준비가 있어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코어를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본격적으로 지휘를 공부해보는 것은 어떨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연출 자체가 ‘방송의 지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 지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지휘를 공부하면 스코어를 보는 시야는 훨씬 넓어지겠죠. 다만 스코어를 너무 깊이 파고들면, 오히려 연출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음악을 깊이 감상할 여유가 없습니다. 한 악구 안에서도 템포가 4박, 2박, 3박으로 빠르게 바뀌고, 동시에 6대, 8대의 카메라를 보며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야 하니까요. 특정 악기나 지휘자 한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지휘를 공부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수술 중인 의사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결정적인 순간을 놓칠 수 있다. 그 결과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듯, 연출 또한 한순간의 집중력 저하가 전체 촬영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결국 연출이란, 타이밍과 집중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다, 새로운 관객을 향하여
중계차 안에서의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자, 이윤민 대표는 토마토클래식 구독자들에게 짧은 인사말을 전했다.
“토마토클래식을 지금까지 아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특히 클래식 애청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BTS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도 어디서나 BTS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도대체 어떤 그룹이기에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걸까’라는 궁금증에 결국 음악을 찾아 듣게 된다. 임윤찬이나 조성진 역시 이와 유사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이들의 이름을 계기로 공연장을 찾거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인구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윤민 대표는 그 이유를 단정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클래식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 ‘알쓸클잡’, 즉 ‘알고 보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지식’이라는 코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긴 호흡의 정통 공연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짧은 영상으로 정보와 재미를 전달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토마토클래식 역시 그런 콘텐츠를 통해 구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특히 새롭게 유입되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채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김종섭 사진 조기웅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다. 그 뒤에는 악보를 읽고 타이밍을 계산하며 음악을 ‘지휘’하는 또 하나의 시선이 존재한다.
토마토클래식 이윤민 대표는 오늘도 중계차 안에서 보이지 않는 지휘봉을 든다.
그를 찾아 바쁜 틈을 비집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윤민 대표의 본질은 중계차 안에
월간지 커버용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연예인 화장까지 했으니 영락없는 연예인이다. 직원들도, 구내식당의 조리원들까지 이윤민 대표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몰라볼 정도로 변신했다. 늘 카메라와 중계차, 공연장을 오가며 연출자로서 ‘부산스럽게’와 ‘차분하게’ 사이를 넘나들던 그가, 작업복 같은 복장만 입다가 오랜만에 나들이하듯 차려입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겉모습은 연예인일지언정, 우리가 인터뷰한 장소는 결국 중계차 안이었다. 현장감을 위한 미장센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공간은 없다. 그중 가운데 책상에 앉은 토마토클래식 이윤민 대표가 말했다.
“여기가 스코어를 읽고 연출을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6개의 화면을 동시에 보죠. 물론 10대의 카메라를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역시 영상화 작업을 위해 카메라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그 카메라까지 함께 활용해 촬영합니다. 예컨대 임윤찬을 촬영할 때에는 예술의전당 7번부터 10번 카메라까지 받아 총 10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많을 때는 12대까지도 가능하고요.”
스코어를 읽는 연출, 보이지 않는 영상의 지휘자
이윤민 대표는 지난 1월 토마토클래식TV의 대표가 되었다. 경력으로 보면 신임 사장이다. 하지만 명색이 대표라면 본사 대표실에서 업무를 볼 법도 한데, 그의 행동반경은 여전히 PD 시절과 다르지 않다. 중계차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현장감을 느낀 김에 토마토클래식의 카메라워크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부터 물었다. 이윤민 대표를 만나러 오는 길에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이런 영상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촬영되는 것일까. 이를 중계하기 위해서는 지휘자 못지않게 스코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책상 위에 놓인 악보를 가리켰다. 야코프 흐루샤가 지휘하고 김봄소리가 협연했던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악보였다.
“스코어를 보면 어느 부분에서 어떤 연주자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6명의 카메라맨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죠.”
이 악보가 사용된 공연은 2025년 6월 1일이었지만, 녹화 의뢰는 그보다 한 달 전 이미 들어왔다. 의뢰를 받으면 곡 분석은 물론, 악기의 무대 배치와 카메라 위치, 협연자의 구성까지 모두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연의 핵심이 무엇인지, 다시 말해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짚어내는 일이다. PD가 직접 묻지 않으면 지휘자나 기획자가 영상 연출의 핵심 포인트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영상에 필요한 모든 조건과 상황을 파악하는 일은 온전히 연출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6월 1일 공연은 어떤 관점에서 촬영되었을까. 당시 김봄소리는 음반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 음반 수록곡을 연주한다는 점에서 그녀를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연출은 이런 맥락을 읽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 의도가 화면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위해서는 감독, 조연출, 크루들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대표가 베테랑들과 작업하기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함께하는 크루들 역시 스코어를 읽을 줄 알고, 언제 어떤 장면을 담아야 하는지, 악기의 타이밍까지 정확히 파악하는 숙련된 인력들이다.
“한 번의 연주를 위해서는 연주자들만 준비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영상팀 전체가 호흡을 맞춰야 하고, 전문가들 간의 소통도 원활해야 합니다.”
촬영에 있어 이처럼 깐깐한 이윤민 대표를 중심으로 한 영상팀의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토마토클래식은 예술의전당과 함께 네 차례 공연을 촬영했다. 모두 입찰을 통해 선정된 프로젝트였으며, 이 영상들은 현재 예술의전당의 프리미엄 콘텐츠로 서비스되고 있다. 예술의전당 측이 굳이 ‘최고’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프리미엄 콘텐츠로 채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실력은 충분히 입증된 셈이다.
이러한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윤민 대표는 음악 전공자로서 방송사 대표 1호이기 이전에, 클래식 음악 전문 PD 1호라는 상징적인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초기 PD 시절부터 토마토클래식이 오늘날 최고의 클래식 방송 채널로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주역이기도 하다.
사고는 피할 수 없지만, 연출은 무너지지 않아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뜻밖의 실수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연출과 사인이 맞지 않아 다른 악기를 촬영하는 등, 생방송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연출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민첩함입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죠. 다른 악기를 촬영하거나 카메라에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면, 우선 지휘자를 촬영하는 카메라로 스위칭합니다. 지휘자는 연주 내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든 포커스를 맞출 수 있거든요. 물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안 되겠지만요. 한 번은 카메라 감독이 복통을 참지 못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카메라가 잠시 비워진 적도 있었습니다.”
자막 역시 또 다른 변수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으면 버퍼링이 발생하거나 시스템이 다운되기도 한다. 이 역시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사고다. 이윤민 대표는 촬영 전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는 등 기본적인 점검을 철저히 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그러나 사고의 빈도는 촬영 횟수와 비례하는 법이다. 특히 영상 촬영이 급증했던 코로나 시기에는 이런 돌발 상황이 더욱 잦았다.
“처음에는 식겁할 만큼 놀랐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단련됐습니다. 이런저런 사고를 겪고 나니 카메라 하나가 꺼지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담담할 수만은 없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남을 탓하거나 질책하기보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하려 한다. ‘포기하려는 사람은 핑계를 찾고, 해내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는다’는 말처럼, 현장은 결국 해결의 의지로 버텨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대가 바뀌는 순간, 연출은 다시 시작되다
이윤민 대표는 단순히 방송을 촬영하고 송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촬영 전, 최적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변수에 직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대의 악기 배치가 당초 계획과 달리 지휘자나 주최 측의 판단에 따라 변경되면, 촬영팀은 곧바로 혼란에 빠진다. 공연 당일 무대 배치가 바뀌는 순간, 그에 맞춰 카메라 위치와 연출 등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사실상 하나의 대공사인 셈이다.
지휘자가 방송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사전에 협의해 준다면 대응이 가능하지만, 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수록 촬영팀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연출은 식사할 틈도, 차 한 잔의 여유도 없이 지우개와 연필을 들고 무대 배치도와 악보 위에서 끊임없이 수정 작업을 이어간다. 한 차례의 혼란이 지나간 뒤 책상 위에 쌓인 지우개 가루만이 그 치열했던 시간을 말해준다. 이때야말로 연출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순간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연출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스테이지 팀과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기에, 현장의 모든 인력이 동시에 분주해진다.
“중계라는 걸 단순히 라이브 송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중계를 위해 수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됩니다. 이런 작업이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이어지다 보니 늘 진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웃음)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방송을 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라이브 이후의 편집 과정도 상당한 노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음향 편집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편집을 마친 뒤에는 다시 지휘자 등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최근들어 영상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는 지휘자를 만나는 것은 방송 입장에서 큰 행운이다. 최근에는 영상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지휘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예컨대 김선욱 지휘자는 영상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음향 밸런스까지 세밀하게 점검하는 등, 기록 매체로서의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공연 녹화 영상에서 아쉬운 부분이 발견되면 리허설 음원으로 보완하는 등, 편집에 대한 감각 또한 뛰어나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이윤민 대표는 리허설 음원 역시 본 공연 못지않은 수준으로 녹음해둔다.
“공연이 끝나면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서로 금방 파악하게 됩니다. 그 부분은 리허설 음원으로 교체하는데, 그럴 때는 스코어를 함께 보면서 밸런스와 부족한 점을 하나씩 점검해나갑니다.”
이처럼 영상의 완성도는 지휘자의 관심과 이해에 크게 좌우된다. 이제는 전 세계 어디서나 감상이 가능한 유튜브 시대다. 어차피 기록으로 남길 공연이라면, 촬영 단계에서부터 세심하게 준비해 최고의 퀄리티로 남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한 통의 편지, 겨울을 지나 봄을 부르다
이윤민은 5년 전 아르떼TV가 매각된 이후 토마토클래식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공연을 가볍게 다룬 적이 없었다. 모든 무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해왔다. 그러나 그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토마토클래식TV는 당시 음악인들에게 아직 생소한 방송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윤민은 알지만 토마토클래식은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처음 토마토클래식을 시작했을 때는 ‘맨땅에 헤딩한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때 정말 고마운 손길이 있었습니다. 2020년 겨울, 다름 아닌 대관령겨울음악제의 예술감독이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이었습니다. 아르떼TV에 있을 때도 대관령 음악제를 중계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고, 회사를 옮긴 뒤에는 이제 영영 인연이 끊겼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손열음 감독이 먼저 연락을 준 겁니다.”
이윤민 PD는 대관령 음악제를 앞두고, 음악계에서 일하며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긴 편지를 써 음악제 측에 전달했다. 대관령겨울음악제 중계를 맡겨준다면 정성을 다해 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손열음 예술감독과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음악제 담당자를 통해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다. 다만 2006년 아르떼TV 입사 이후, 2007년 1월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 신년음악회를 중계하며 협연자였던 손열음을 인터뷰한 인연이 전부였다.
“당시는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대형 방송으로 중계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관객 없이 공연을 촬영해 아카이빙용으로 제공하면 되는 정도였죠. 편지를 보내고 며칠을 기다렸지만 답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온 겁니다. 방송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동적이었거든요.”
이윤민 대표는 손열음을 만나 손을 꼭 잡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손 감독은 “이윤민 PD가 아르떼TV 대표의 딸인 줄 알았다”고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뜻이었다. 손열음을 만나면서부터 토마토클래식에는 서서히 성장의 불씨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긴 겨울을 지나, 비로소 봄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대관령 이후, 성장의 불씨는 확장으로 번지다
손열음 예술감독이 이끈 대관령겨울음악제 이후, 토마토클래식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이른바 ‘손열음 효과’는 어떤 방식으로, 또 얼마나 확산되었을까.
“코로나가 심화되면서 유튜브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졌습니다. 그 시기에 연주회 영상 촬영 요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저희뿐만 아니라 영상 전문 방송사나 유튜브 채널들도 큰 수혜를 입었을 겁니다. 요청이 너무 많아 저희 한 곳에서 모두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대관령 음악제 이후 토마토클래식TV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다. 바로 노부스 콰르텟의 연주를 촬영한 경험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 대표 클래식 매니지먼트인 목프로덕션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소속 아티스트들이 토마토클래식홀에서 ‘영 아티스트 시리즈’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2022년,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이전에 토마토클래식홀에서 연주한 장면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목프로덕션에는 매체가 필요했고, 이윤민에게는 아티스트와 콘텐츠가 필요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특히 임윤찬의 연주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며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험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후 손열음의 독주회 등을 촬영하면서 토마토클래식의 위상은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이윤민 대표에게도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토마토클래식을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각 오케스트라와 단체의 담당자들에게 채널의 강점을 직접 설명하며 협업을 확대해나갔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당시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는 아르떼TV 시절부터 이윤민과 작업해온 인물로, 그의 연출 방식에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다. 토마토클래식이 어떤 채널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윤민이 맡는다’는 이유 하나로 경기필의 중계와 녹화를 전적으로 맡겼다. 그 결과, 수년간 경기필의 주요 연주를 전담하다시피 하며 사실상 전속 채널과 같은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중에서도 경기필과 마시모 자네티는 방송의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저희를 선택한 경우입니다. 함께 작업하는 동안 영상과 음향의 완성도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보여주셨습니다.”
이후 김선욱 역시 영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휘자로 합류하면서, 경기필은 토마토클래식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협업 단체는 꾸준히 늘어났다. 현재는 국립합창단을 비롯해 10여 개 이상의 단체가 영상, 방송,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토마토클래식과 전속 촬영 형태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수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전속 형식으로 촬영한다고 해도 모든 공연을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예산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각 단체별로 연 3~4회 정도 촬영을 진행하는데, 10여 개 단체와 함께하다 보면 연간 일정이 금세 가득 차버립니다. 말 그대로 즐거운 비명이지요.”
방송 중계 비용이 비싸다는 것은 착각
예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공연 녹화 중계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오해다. 본지가 주최하는 공연 역시 방송 채널에 중계를 의뢰할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계차 한 대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 8~10명의 크루가 필요하다. 카메라는 보통 4~6대를 설치해야 하고, 그에 따른 카메라 감독도 최소 4명 이상이 투입된다. 여기에 보조 인력까지 더해지면 전체 인력 규모는 더욱 커진다.
중계차 이동 자체에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더불어 4K, UHD 등 고가 영상 장비들의 유지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이처럼 여러 요소가 겹치다 보니, 중계차 한 대만 이동해도 약 천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발생한다.
“크루들이 새벽부터 장비를 설치하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작업한다고 가정하면, 1인당 30만 원 기준으로 10명이면 300만 원입니다. 보통 한 프로젝트에는 15~20명이 투입되기 때문에 그 비용은 훨씬 커집니다. 게다가 하루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 비용은 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이후에는 음향 및 영상 보정, 편집 작업에 추가적인 시간과 전문 인력이 투입된다. 그 중심에는 이윤민 대표와 같은 PD들이 있다. 한 공연을 위해 최소 3일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며, 경력이 적을수록 그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일주일에 서너 건씩 촬영을 이어가는 베테랑이라면 사실상 쉴 틈이 없는 셈이다.
또한 총괄 책임자인 이윤민 대표는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인력 간의 조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카메라 감독들 간의 성향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전체 작업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리허설 스태프 회의 이후 악기 배치, 카메라 위치 선정, 음향 점검 등을 진행하는 데만 하루에서 이틀이 소요되기도 한다. 촬영 이후의 후속 작업까지 감안하면, 이 일을 결코 누구나 쉽게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토마토클래식은 공익 채널이기 때문에 방송 송출과 유튜브 제작·운영 비용 등 전체 제작비의 절반가량을 회사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비용이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연주 단체가 절반 정도만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토마토클래식의 운영 예산은 토마토그룹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익 채널인 만큼 광고 수익이나 부대 수익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투자로 운영되는 구조다. 국내에서 유일한 공익형 클래식 영상 채널이라는 점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공익 채널이라고 하면 정부 지원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음) 하지만 그런 지원은 전혀 없습니다. 전적으로 토마토그룹이 사명감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상의 시대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영상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음악 역시 이제는 ‘듣는 것’을 넘어 ‘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공연을 직접 찾아다니며 감상할 수는 없는 만큼,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토마토클래식의 비전 또한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다. 이와 함께 조직 내부에도 기대와 희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물론입니다. 직원들에게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팀장 시절부터 지난 5년 동안 대표자 마인드로, 말하자면 주인의식과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습니다. 처음부터 토마토클래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영상 채널이 되기를 목표로 달려왔고, 그 마음은 지금도, 또 직원들도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윤민 대표는 여전히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영상과 음향 모든 면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단순히 고품질 영상 제작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웃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저희 채널로 초청해 인터뷰나 리허설, 공식 연주회 등을 촬영하고 싶습니다. 토마토그룹 차원에서도 이런 방향을 권장하고 있지만, 아티스트마다 매니지먼트와 일정이 달라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임윤찬, 조성진, 손열음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은 국내외 매니지먼트와의 접촉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자본력에서도 아직은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진행된 대형 피아니스트 프로젝트만 보더라도,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규모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윤민 대표는 이러한 현실적 제약 속에서 토마토클래식의 정체성을 다시 고민한다. 이미 성공한 스타 연주자도 중요하지만, 공익 채널로서 음악 영재 교육 기관과 협력해 신예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토마토클래식으로 초청하고 콘텐츠를 공유하는 한편, 채널의 위상을 높여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문을 두드리는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해외 활동으로 인해 자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손열음과 김선욱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김선욱의 경우 해외 클래식 채널에서는 자주 등장하지만, 국내에서는 토마토클래식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널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오케스트라가 만든 성장의 축, 영상이 연결한 네트워크
토마토클래식TV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단체 중 하나는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전국에 산재한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를 영상으로 확보하는 일은, 채널의 경영 기반과 위상 제고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수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처럼 자체 아카이빙과 단독 송출을 강조하는 일부 단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오케스트라와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선욱 지휘자처럼 여자경 지휘자도 영상과 음향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다만 지휘자가 영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더라도, 실제 촬영을 위해서는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정 담당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음악이나 영상 전문가가 아닌 행정기관 담당자들은 ‘왜 굳이 영상을 촬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또는 클래식 전문 채널이 아닌 일반 공중파 방송으로 간략히 촬영하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휘자의 인식과 실행력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안정적인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들 역시, 지휘자나 예술감독이 행정 담당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자경 지휘자께서는 영상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고 계십니다. 대전시립교향악단을 맡으신 처음부터 지금까지 중계를 진행했을 정도로 영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한편, 지방 오케스트라가 토마토클래식에 협업을 요청하는 배경은 단순히 지휘자의 판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유튜브 시대를 맞아 토마토클래식을 시청하는 구독자 수가 증가하면서, 지역에서도 채널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독자들의 선택과 소비가 새로운 협업을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토마토클래식을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촬영에 들어가면 단원들도 더욱 집중해서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이 정도다’라는 자부심 때문이기도 하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각 단원을 비추기 때문에 개인 연주자들도 더욱 긴장감을 갖고 임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촬영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로 인한 문제나 항의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행히 해가 갈수록 영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토마토클래식에 협업을 요청하는 오케스트라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전시립교향악단, 경산시립교향악단, 과천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수원시립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군산시립교향악단, 충북도립교향악단 등 다양한 지역의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대관령음악제와 같은 음악제 역시 지속적으로 영상 촬영을 의뢰하고 있다.
이제는 기록을 넘어 제작으로, 토마토클래식의 다음 단계
토마토클래식은 이제 자체 공연 프로그램 기획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6년 시즌에는 우선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손정범과 유영욱이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는 공연을 4월 4일, 8월 28일, 12월 23일 세 차례에 걸쳐 선보인다.
이윤민 대표는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손정범 교수가 제안한 기획으로,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 교향곡을 피아노로 연주한다는 점 자체가 이례적일 뿐 아니라, 이러한 형태의 공연이 영상으로 공개된 사례 역시 드물기 때문이다. 토마토클래식으로서는 구독자 확대는 물론, 국내 클래식계의 아카이빙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춤추는 지휘자’로 알려진 백윤학과 피아니스트 칼 크레머가 함께하는 ‘뉴욕의 영혼을 연주하다’ 역시 토마토클래식의 기획 공연으로 준비되고 있다. 이 무대에서는 조지 거슈윈의 작품과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이 연주될 예정이다.
세 번째 기획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유영욱과 손정범이 송안훈의 지휘 아래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5번을 선보인다.
이어지는 해외 아티스트 초청 공연으로는, 2024년 기획 공연에 참여했던 피아니스트 프레디 켐프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는 10월 14일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이에 앞서 10월 11일에는 리사이틀을 통해 관객과 먼저 만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11월 25일에는 여자경과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함께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낭만’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중심으로 한 이 무대는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할 전망이다.
“올해는 기획 공연이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1월과 2월에 백윤학 지휘로 세종문화회관과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공연을 포함해, 거의 매월 기획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월에도 자체 기획 공연을 진행했고, 6월에서 9월 사이에도 추가 기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피아노에서 방송으로, 갈증이 길을 만들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방송과 관련된 직업을 고민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이윤민 대표 역시 그러한 갈림길에 서 있었던 음악인이었다. 2006년 아르떼TV 개국 이후 제작팀장을 15년간 맡아온 그는, 본래 피아노를 전공한 클래식 음악가였다. 당시 클래식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프로듀서는 다른 방송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직군이었다.
“저도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갈증이 있었어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작은 욕망이랄까요. 특히 라디오 방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양대에 있던 고전음악 동아리에서 클래식을 선곡하고 들려주던 활동도 영향을 미쳤고요. 그 동아리에 공대 학생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 외의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까. 라디오 방송에는 어떤 직업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라디오 PD’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직접 방송국 프로듀서를 찾아가기도 했다.
“혹시 음악 PD라는 직업도 있나요?”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서는 전공과 무관하게 일종의 ‘언론고시’와 같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입사 후에도 시사·사회·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AD로 근무하다가 운이 좋아야 음악 PD를 맡을 수 있는 구조였다.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다는 생각에 실망했고, 결국 언론고시의 길은 접었습니다. 그래도 당시 수요예술무대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TV 방송국 프로듀서의 길을 알아보기로 했고, 한양대 작곡과 출신으로 활동 중이던 선배에게 용기를 내 연락을 드렸습니다.”
“선배님, 음악 PD로 일하고 계신데 어떤 일을 하시는지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찾아뵐 수 있을까요?”
“그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중계 촬영이 있는데, 그쪽으로 올 수 있겠니?”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그는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에서 카메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공간은 중계차 안이었다. 흐릿한 모니터 화면만이 빼곡히 들어찬 그 공간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윤민은 적잖이 실망했다. 음악도 클래식이 아니었고, 선배의 설명 역시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 있던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갈대 같은 선택 끝에서, 운명은 중계차 안에
아직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던 대학 4학년, 졸업의 순간은 어느새 눈앞에 닥쳐 있었다. 무엇을 하며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까. 피아노를 계속 전공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다른 길을 향한 작은 자극은 등에처럼 따끔거리며 마음을 흔들었다.
졸업생을 위한 취업 특강이 열리긴 했지만, 소개되는 진로는 공연기획사 정도에 그쳤고 실질적인 정보는 부족했다. 결국 독일이나 미국 유학, 대학원 진학, 혹은 피아노 학원 운영과 같은 기존의 관행이 선택지의 대부분이었다.
이윤민 역시 유학을 고민했고, 독일로의 진학을 결정해 입학 지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차라리 하우스 매니저나 어셔로 현장 경험부터 쌓아야 할지, 고민은 계속됐다.
“2006년 초,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아르떼TV가 막 개국했습니다. 클래식 음악 PD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결과적으로 저 혼자 합격했어요.(웃음)”
그렇게 그의 방송 인생은 뜻밖의 행운처럼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방송 현장은 남성 중심의 조직이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려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남성들과 함께 들어야 했고, 촬영이 급박해지면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다.
처음에는 두 팔을 끼고 서 있다가 “왜 이 무거운 장비를 같이 들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피아노과에서 곱게 연주만 하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남성 중심의 현장에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적응은 쉽지 않았고, 안팎으로 눈물을 쏟은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을 연출하는 일은 점점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런 기분으로 사람들이 방송 일을 하는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그는 서서히 그 세계에 스며들어갔다.
이윤민의 첫 프로듀서 작업은 2006년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공연 녹화였다. PD 업무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선배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PD이자 AD, 스코어 리더, 프로그램 스크립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케이블 방송이라는 환경 역시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 공연을 아르떼TV가 독점 녹화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7년 신년음악회를 앞두고는 정명훈과 손열음 등을 인터뷰하는 기회도 얻었다. 고진감래였다. 그의 방송 인생은 그렇게 한 단계씩 상승 곡선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방송 PD로서, 그는 음악을 전공하고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대입니다. 연주 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 업로드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니까요. 누구나 영상을 다룰 수 있고, 관련 툴도 많습니다. 요즘 신입 PD 지원자들을 보면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직접 채널을 운영하고, 홍보 전략과 구독자 데이터를 갖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때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입니다. 이 분야를 준비한다면 그 정도의 경험과 준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제는 스마트폰만으로도 촬영과 편집이 가능한 시대다. 자신의 연주를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고 직접 편집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열정이다. 따라서 음악 전공자가 방송이나 영상 분야를 꿈꾼다면, 관련된 경험을 쌓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 카메라 뒤의 지휘봉
인터뷰를 이어가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수많은 공연을 중계하기 위해 이윤민 대표 역시 스코어를 누구보다 집요하게 붙들고 공부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지휘를 권유해보고 싶어졌다. 최수열이 “나보다 더 스코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연출 역시 그만큼의 이해와 준비가 있어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코어를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본격적으로 지휘를 공부해보는 것은 어떨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연출 자체가 ‘방송의 지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장 지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지휘를 공부하면 스코어를 보는 시야는 훨씬 넓어지겠죠. 다만 스코어를 너무 깊이 파고들면, 오히려 연출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음악을 깊이 감상할 여유가 없습니다. 한 악구 안에서도 템포가 4박, 2박, 3박으로 빠르게 바뀌고, 동시에 6대, 8대의 카메라를 보며 끊임없이 사인을 보내야 하니까요. 특정 악기나 지휘자 한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지휘를 공부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수술 중인 의사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결정적인 순간을 놓칠 수 있다. 그 결과가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듯, 연출 또한 한순간의 집중력 저하가 전체 촬영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결국 연출이란, 타이밍과 집중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다, 새로운 관객을 향하여
중계차 안에서의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자, 이윤민 대표는 토마토클래식 구독자들에게 짧은 인사말을 전했다.
“토마토클래식을 지금까지 아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특히 클래식 애청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BTS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도 어디서나 BTS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도대체 어떤 그룹이기에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걸까’라는 궁금증에 결국 음악을 찾아 듣게 된다. 임윤찬이나 조성진 역시 이와 유사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이들의 이름을 계기로 공연장을 찾거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인구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윤민 대표는 그 이유를 단정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클래식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 ‘알쓸클잡’, 즉 ‘알고 보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지식’이라는 코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긴 호흡의 정통 공연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짧은 영상으로 정보와 재미를 전달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토마토클래식 역시 그런 콘텐츠를 통해 구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특히 새롭게 유입되는 분들께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채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김종섭 사진 조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