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의 중심에서 한국 음악으로 맞서다 – 누빔킴 김소영의 10년과 증명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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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허물고 세계를 엮는 작곡가, 누빔킴의 구조적 음악 세계


네덜란드 객지에서 10년 동안 작곡을 공부했다. 표면적으로는 ‘작곡’이라는 두 단어로 뭉뚱그려지지만, 작곡의 페이지를 열면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닌 세계적인 작품이라는 감이 온다. 그가 추구하는 연결성! 재즈와 클래식을, 클래식과 랩을,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을, 오구굿 바리데기 씻김굿과 바흐의 음악을, 세계 최초의 목판 중 하나인 무구정광다라니경과 서양음악을 엮어내며, 동양의 작곡과 서양 연주자를 언어가 두뇌를 통해 백체를 조율하듯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낸다. 우리 혼을 서양음악의 구조 속에 깊숙이 박아 넣고, 서양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작품을 쏟아내는 작곡가 누빔킴(김소영)을 아는가?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그는 우리 혼과 우리 정신이 담긴 진짜 우리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의뢰를 곳곳에서 받고 있다. 한국에서 30년, 네덜란드에서 10년, 교수 8년, 건축설계사 3년, 그리고 석사만 세 번이다. 음악까지도 백호주의로 가득 찬 네덜란드 음악계에서 ‘우리도 연주하겠다’는 음악 앙상블과 ‘우리가 후원하겠다’는 문화재단 등 후원 단체들이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던 작곡가, 누빔킴이다.
그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곧바로 하나의 작품, 음반으로 직진했다. NUBIM의 ‘Chapel of Light(빛의 성당)’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건축의 냄새… 아니나 다를까? 건축의 분위기를 언급하자 그는 즉시 답을 내놓는다.
“저는 원래 건축을 전공했는데, 건축을 ‘짓는다’에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니라 ‘시각예술’로 인식하고 공부한 전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알고 보니 건축을 전공하고 꽤 오랫동안 건축 설계사로 활동해온 이색적인 음악인이었다. 당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피아노를 꾸준히 연주하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이 서른에 아예 작정하고 작곡가의 길에 올인한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선물한 음악의 곡 이야기를 풀어내며, ‘시끄럽기 짝이 없는’ 커피숍의 공간을 서서히 뚫어내기 시작했다.


Chapel of Light – 감각을 구조로 번역하는 작곡


“이 앨범 보세요. 우선 건축과 가장 연관되는 9번 트랙 ‘Chapel of Light II’ for organ & electronics부터 말씀드릴게요. 이 곡은 ‘빛의 성당’이라 불리는 롱샹성당(Ronchamp Chapel)을 소재로 창작한 작품입니다. 그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성당입니다. 이곳에 가득 찬 빛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인데, 실제 유럽을 대표하는 오르간 연주자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Hayo Boerema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던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테르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축물인 대성당 Laurenskerk에서 연주되어 그 의미를 더했죠.”
기자에게 선물한 음반에 수록된 원곡은 알토 색서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파이프오르간으로 편곡하면 좋겠다는 스승의 조언에 따라 오르간과 전자음악으로 다시 편곡되었다.
이제 트랙 1번으로 돌아가보자. ‘Between Silence and Light(침묵과 빛 사이)’라는 곡은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라는 길고 긴 누각에서 바라본 일출을 그린 작품이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감동, 그 풍경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음악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 곡은 국제전자음악공모전 ICMC2018에서 수상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누빔킴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며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음악적 소재를 단순한 ‘느낌’으로만 풀어낼 경우 타인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건물의 설계도를 구해 수학적인 바탕 위에서 작곡을 시도했다. 그제야 그의 음악은 설득력을 얻고 인정을 받게 됐다.
“조선시대 때 선비들이 이 정각에서 공부했는데 보세요. 앞에는 낙동강, 뒤에는 아름다운 산이 듬직하게 감싸고 있는 배산임수의 기와 정각입니다. 그 기와집에서 해가 서서히 뜰 때의 빛을 전자음악으로 표현한 것이고요.”
그렇다면 ‘침묵’은 무엇일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전통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전통 건물은 겉으로 보면 안이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안의 정신성은 오히려 충만하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수묵화나 동양화의 여백과도 닮아있다.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우리 혼이 담긴 공간으로서의 여백이라는 것이다. 참 인상적인 비유다.
그의 창작곡 ‘Rotary Vertigo’는 원형 계단이나 원형 건물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어지러움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미국 구겐하임 박물관의 압도적인 규모의 공간에서 받은 인상을 악보로 옮겨낸 결과물이다.


고투의 시간에서 피어난 의지, 그리고 ‘꽃’으로 완성되는 음악


누빔킴의 성정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A Strong Will’(강한 의지)이다. 이 곡은 노인과 바다를 주제로 한 피아노 솔로 작품이다. 알다시피 소설에서는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 마린과 격렬한 사투를 벌인다. 잡으려는 노인과 잡히지 않으려는 청새치의 싸움을 테마로 한 이 작품은, 네덜란드에서 10년 동안 유학을 하며 피할 수 없었던 여러 불이익과의 싸움을 극복해낸 작곡가의 고투를 떠올리게 한다. 이 곡을 접한 네덜란드의 작곡가이자 Codarts 명예 교수인 Klaas de Vries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짧은 피아노곡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곡은 누빔의 정체성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곡이라 생각합니다. 누빔킴은 서양의 화성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곡가이며, 이는 서양의 작곡가들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경지이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비로소 ‘꽃’이 된다.’
이 시를 아는가.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누빔킴은 이 시에서 받은 울림을 바탕으로 ‘Flower’라는 곡을 만들었다. 슬픔과 우울, 기쁨을 오가는 시의 흐름처럼 감정의 변화를 음악으로 풀어내면서도, 결국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에 이르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City Life’는 런던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런던을 테마로 한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이 곡은 복잡한 도시의 흐름을 시간의 구조로 풀어낸다. 현대 유럽 도시 대부분이 그렇듯이 런던의 아침과 밤은 오히려 조용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람이 텅 빈 도심의 새벽을 고요한 흐름으로 시작해, 일출과 함께 차량들이 하나둘 밀려들며 활기차고 점점 복잡해지는 사운드를 만들어가다가, 다시 하루의 끝에서 도시가 잠잠해지는 밤으로 이어진다.
“색소폰으로 자동차의 클랙션 소리를 내는 등 악기를 창의적으로 활용했는데 색서폰과 피아노 버전으로 작곡했습니다.”
누빔킴은 당초 재즈 작업을 위해 유학을 떠났지만, 결과적으로 클래식 작곡을 더 깊이 탐구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배경이 반영되어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징이 드러난다. 이 곡에서도 색소폰은 재즈적 요소를 표현하는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반면, 마림바 등 클래식 악기들은 재즈 화성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클래식적인 색채를 유지한다.
“돌이켜보면 재즈보다는 클래식 작곡을 오래 했습니다. 재즈는 클래식 분야의 약한 화성을 보충하는 데 아주 좋은 장르입니다.”


자연의 감각에서 문학의 구조까지, 공간과 서사를 설계하다


‘From Winter to Summer’는 제목만 보면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전환을 그린 음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라도 담양의 소쇄원을 그린 작품이다. 소쇄원에는 광풍각이라는 작은 정각이 있는데, 이 정각은 선비들이 자연의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건물이라고 한다. 기둥만 남기고 벽과 창호를 들어 올리면 사방에서 밀려오는 바람의 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누각이 되는데, 그는 이 광풍각의 감각을 청각을 통해 폐부 깊이 전달하는 음악으로 풀어냈다.
‘Erotos Ⅲ’는 클라리넷과 첼로, 전자악기를 위한 작품으로, 이방인을 모티프로 삼았다. ‘이방에서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작곡되었으며, 소설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1부는 느린 템포로 진행되고 타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전자음향이 공간을 채운다. 반면 2부는 살인과 재판 장면처럼 빠른 템포로 전개되며, 전자음악은 죽음에 대한 지속적인 두려움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 소설의 구조에 천착했습니다. 작곡가로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조거든요. 구조가 딱 절반으로 나뉘는 것인데 처음에는 속도가 되게 느리게 전개되다가, 이후는 상당히 빠르게 전개가 되는 구조입니다.”
누빔킴은 건축공학을 전공했기에 음악 역시 구조적 사고에 기반한 작품이 많다. 본인 말대로 건축을 시각예술로 이해하면서도, 음악으로 옮길 때는 구조를 먼저 세운다. 그 결과 그의 작풍은 모호한 음향에 머무르지 않고, 전자음악을 사용하더라도 선율이 분명한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특히 문학을 기반으로 한 작품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방인, 노인과 바다, 그리고 꽃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작품은 기단부와 중간부, 상층부가 분명하게 나뉘는 서사를 지니며, 그는 그 구조를 음악으로 옮겨와 재구성한다.


경계 위에서 탄생한 음악, ‘Crossroads’라는 교차의 미학


누빔킴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작업한 음반 ‘Crossroads(교차로)’ 작품집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콘체르토헤보우 연주자들이 직접 탐을 내어 연주곡으로 선정할 만큼 주목을 받았으며, 콘체르토헤보우 오케스트라 지원 선정작이기도 하다. 또한 네덜란드 문화재단 Sena, Amarte, 암스테르담 공연장 Roode Bioscoop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글로벌 컨템포러리 음반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이 음반은 대중에게 매혹적인 음반을 만들고 싶은 생각에 추진한 음반입니다. 물론 조금은 난해할 수 있는데 직접 감상하면 매력적인 느낌이 올 겁니다.”
이 작품집에서 주목할 만한 곡으로 1번 트랙 ‘The Four Seasons on the Canal’은 네덜란드의 대표 유산이자 전국을 연결하는 ‘운하’를 주제로 한 회화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표현한 작품이다. 현악기에는 전통적인 클래식 주법을 벗어난 다양한 연주 기법을 사용해 음악에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색채를 더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은 5번 트랙 ‘Carving Letters on Wood’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쇄용 목판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제작되는 과정을 상상으로 풀어낸 곡으로, 한국 음악의 소리적 특성과 기법을 현대음악에 적용한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 초연 당시 큰 호평을 받았으며, 네덜란드 작곡가 Klaas de Vries는 “서양 작곡가가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걸작. 한국 전통 음악의 독특한 색깔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 면에서도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6번 트랙 ‘Crossroads’는 Broadway Boogie Woogie를 소재로, 회화의 시각적 요소를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교차로의 긴장감’, 즉 이민자와 미국인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역동적인 결합으로 해석해 표현한 작품이다. 이어지는 7번 트랙 ‘Fierce Footsteps’은 플라멩코 댄스의 현란한 발놀림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곡으로, 명쾌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특징이다.
“이 곡은 플라멩코 리듬이나 박자를 이용해 작곡한 게 아닙니다. 창작의 재료로서 플라멩코의 기본 리듬과 스케일을 차용했을 뿐, 플라멩코의 재창조라고 볼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이색적인 작품이죠.”


‘Connectivity’ 연결성에 대해


지금까지 누빔킴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연결’ 또는 ‘접목’의 대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이 ‘연결성’이라는 주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Connectivity’, 즉 연결성이다.
“이번 작품들은 로테르담시에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페스티벌, 문화재단 등 다양한 기관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돼 지난해 6월 네덜란드에서 공연을 펼쳤습니다. 또 accx뮤직페스티벌에 초청받아 네덜란드 앙상블이 내한해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이 음반은 Part 1과 Part 2로 구성되어 있다. Part 1의 1번 트랙 ‘Nieuwe Sinawi’는 시나위의 규칙을 바탕으로, 서양 연주자들이 자신들의 연주 방식으로 풀어낼 때 만들어지는 새로운(Nieuwe) 시나위 음악이다.
6번 트랙 ‘Baridegi’s Air’는 G선상의 아리아를 한국 무속 의례의 맥락에서 재구성한 곡으로, 여기서 색소폰 연주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의식을 주재하는 샤먼의 역할을 한다. 7번 트랙 ‘Modern Jindo Arirang’은 원곡 진도아리랑보다 한층 진취적인 분위기로, 현대적 질감 위에 새로운 희망을 펼쳐낸다. 재즈 즉흥연주가 전통 선율과 어우러지며 장르 간 교차의 특징을 보여준다.
Part 2의 3번 트랙 ‘Shadow Swan’은 메탈과 랩을 접목해 어두운 동화적 분위기로 재해석된 ‘백조의 호수’로, 첼로 연주자가 직접 노래하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4번 트랙 ‘To Be, or Not to Be’는 힙합을 차용한 클래식 작품이다.
“클래식 음악을 차용한 힙합은 흔하지만, 클래식 작품을 중심에 두고 그 위에 힙합적 요소를 더한 경우는 드물죠. 힙합 리듬을 바탕으로 저의 Symphony No. 25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단순한 결합을 넘어선 ‘연결성’, 충돌과 공존으로 완성되는 음악

이 음반의 특징은 앞서 밝혔듯이 말 그대로 ‘연결성’에 있다. 한국 전통 예술과 세계 예술을 음악으로 연결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의미라면, 원곡 연주자들 간의 연결, 즉흥과 기보 악보의 혼용, 불교 문화와 명상, 그리고 서양음악의 만남,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와 우리 전통 굿인 바리데기·오구굿의 결합, 외형과 내용의 유기적 연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연결이 이뤄진다. 여기에 재즈와 클래식의 융합을 넘어 클래식 안에 힙합을 접목하는 시도까지 더해지며, 실험적인 사운드와 고전적인 사운드, 현대 악기와 전통 악기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백조의 호수는 메탈과 랩을 접목한 곡인데 이 곡은 첼로 연주자가 직접 노래도 합니다. 대단한 연주자라는 게 느껴지고, 우선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노래도 굉장히 잘하시는 분이라서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누빔킴은 이러한 작곡의 테마를 얻기 위해 특별히 고립된 상태에서 고심하기보다는, 일상과 여행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티브를 포착한다. 네덜란드에서 예술영화관을 자주 찾던 그는 어느 날 Amadeus 재상영을 보던 중 힙합과 클래식의 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Fierce Footsteps’는 무용수들의 발놀림에서, ‘Carving Letters on Wood’는 무구정광다라니경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소쇄원의 광풍각과 병산서원의 만대루 등 공간적 경험 역시 그의 음악적 모티브로 작용한다. 특히 씻김굿과 같은 소재는 서양인들에게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그는 오히려 그 낯섦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 우리 문화와 예술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예상을 비껴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시도는 네덜란드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살아 있을 때의 한과 원한을 없애고 용서하는 ‘바리데기’와 해원상생의 씻김굿 등은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주제이지만 이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곡했답니다. 원수도 용서하는 우리의 사랑이 담긴 내용이잖아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끝내 전쟁을 불사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전쟁으로 고통받는 유럽인들에게 큰 위로와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일 것입니다.

우리 음악을 서양인들에게 선보이게 된 이유

누빔킴은 네덜란드에서 정확히 10년을 살았다. 그가 우리 소재에 천착하게 된 데에는 네덜란드 음악인들과의 교류가 큰 계기가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했으니 교류가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술과 문화가 유럽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고 있어요. 제가 유학 3년 차쯤 재즈와 클래식을 공부하고 있을 때 어느 교수님이 ‘한국에도 음악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죠. 유럽이나 서양음악만 만들면 이들에게 한국 음악은 존재조차 불분명한 음악이겠구나 싶어서 그때부터 마음먹었습니다. 반드시 우리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겠다고요.(웃음)”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유럽, 특히 네덜란드에 한국 음악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연구에 몰두했다. 씻김굿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보여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던 이들도 논문을 읽고, 누빔킴이 작곡한 아쟁 등 전통 악기 음악과 시나위 작품을 접한 뒤 기존 한국 음악까지 스스로 찾아 듣고 연구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직접 한국 음악을 강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분명한 변화였다.
“우리 음악을 단순히 국악기로만 작곡한 게 아니라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 베이스, 색소폰, 마림바 등 다양한 악기를 조합해 연주할 수 있도록 했거든요. 반응이 나날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도 이 정도 열풍은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나중에는 판소리까지 융합해 작곡하고 발표하면서 네덜란드 음악계에 한국 음악 열풍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웃음)”


편견을 뚫고 밀어붙인 10년, 생존을 넘어 증명으로 이어진 시간


그러나 이러한 인정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빔킴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겉으로는 동양 문화를 호혜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보이지만, 네덜란드 핵심 음악계에서 한국 음악이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동양인이나 유색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근저에는 여전히 ‘백호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팍팍한 네덜란드 음악계를 뚫고 나가야 했던 그에게는 끝까지 버텨내는 힘, 이른바 ‘깡’이 있었다. 어쩌면 그 강한 의지를 가장 잘 대변하는 작품이 ‘노인과 바다’를 주제로 한 ‘A Strong Will’일 것이다.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유학을 온 터에, 아시아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 네덜란드 언어도 약하고 여자라는 생래적인 조건까지 합치면 네덜란드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그러나 그는 끈기 있게 한국 음악을 토대로 작곡해 나갔다. 그렇게 10년을 살아가는 동안 사실 평안한 가운데 공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수많은 작품이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등 음악 단체와 문화재단, 네덜란드 음악인들에게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인정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며 새로운 모티프를 찾고, 공부하고 연구해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내야 했다.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지만 우리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인정받으면서 네덜란드 음악인들의 작곡 의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작품들을 마감하다 보면 일 년이 금세 지나가요. 게다가 재즈와 클래식 등 더 깊은 지식을 쌓기 위해 세 개의 학교를 다니며 세 개의 석사를 취득하기도 했고요.”
유학 직전까지 서울예대 작곡과 겸임교수였던 그는 이제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우리 음악을 더 깊이 탐구한 뒤, 네덜란드를 넘어 전 세계에 우리 정신이 담긴 음악을 알리고자 한다.

그의 음악, 끊임없이 세계로 확장되는 꿈

다행히 그가 귀국하자 그의 음악을 이미 탐미하던 여러 단체들이 곡을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동서악회와 같은 학술 모임에서도 그를 초빙하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을 비롯해 컨템퍼러리 음악을 추구하는 오케스트라, 앙상블 시나위 등 다양한 국악 단체에서도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현대음악 기법의 외형을 넘어, 우리 정신과 혼이 담긴 선율과 화성을 현대음악 안에 풀어낼 수 있는 작곡가로서 누빔킴이 적합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흐름이다.
“저는 저만의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네덜란드에서 10년을 살았다는 점에서 동서양을 이해하고, 건축을 전공해 8년 동안 건축분야를 경험한 덕분에 음악과 다른 예술을 함께 바라보는 거시적인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재즈와 클래식 모두에 대한 깊은 이해도 있고요. 이런 배경을 잘 활용하고 접목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누빔킴은 자신의 작품을 청중에게 맡겨두지 않는다. 곡을 완성해 던져놓고 각자의 해석에 맡기는 태도와는 달리, 그는 직접 해설을 덧붙이며 청중을 더 깊은 감상의 세계로 이끈다. 서울 accx에서 간단히 진행한 해설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일단 제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면 반응이 훨씬 좋아요.”
하루 15시간씩 악보 앞에 매달려 곡을 써 내려가다 보면 번아웃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응급실에 실려 갈 만큼 몸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대중적 인정보다 작곡가로서의 사상과 표상을 음악으로 구현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었다. 그렇기에 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해 줄 이들을 더 절실히 원했고, 더 나은 곡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를 이어갔다. 재즈 석사, 클래식 학사와 석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학업의 과정은, 자신의 음악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청중이 단순히 음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품의 내부까지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그가 직접 해설자로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가 학교를 계속 다닌 이유는 제 스스로의 공부에도 좋지만, 학교에서 만난 교수나 음악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제 곡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의 코멘트와 크리틱을 통해 작품이 더 좋은 방향으로 완성되는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미친 듯이 곡을 쓰면서도 학교에 가는 게 즐거워서 6년 동안 계속 다녔습니다.(웃음)”
누빔킴이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날 당시에도 그는 이미 프로 작곡가였다. 그럼에도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반복해온 그의 작업은, 우리 음악과 현대음악을 잇는 하나의 화수분과도 같다. 타인의 비평과 조언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서 그의 음악은 더욱 단단해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다음번 그의 작품 발표회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결이 펼쳐질 것인지.


누빔(Nubim, 김소영)


음악에 전념하기 전, 건축을 전공하며 대한민국건축대전에서 입상, 3년간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후 재즈 피아노와 재즈 작곡을 전공하며 다수의 국제 작곡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음악대학에서 작곡과 화성을 가르쳤으며, 독립 레이블을 설립해 음반을 제작하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했다.
2015년부터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서양음악 전통에 대한 연구를 심화해왔다.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각각 재즈와 클래식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 네덜란드 Codarts에서의 연구 주제는 ‘건축의 음악화’였다. 직관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 건축과 서양 현대 건축의 수학적 분석을 음악으로 번역하는 이 작업은, 예술 장르와 문화 전통의 융합을 탐구하는 연작의 첫 번째 음반 ‘Chapel of Light(2020)’으로 이어졌다.
이 연작의 두 번째 발표작은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현악 듀오 음반 ‘Crossroads’(2023)이다. 네덜란드 대표 문화재단들의 지원을 받은 이 음반은 음반사, 문화재단, 오케스트라의 주목을 받았으며, 202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글로벌 컨템포러리 음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누빔은 네덜란드 최정상 연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 Nubim Kim Group(색소폰 2대, 마림바, 피아노, 첼로)의 리더로 활동하며, 신작 프로젝트 Connectivity를 2025년 6월 로테르담에서 초연하고, 같은 해 8월 한국의 주요 국립페스티벌에 참가, 호평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로테르담시(市), North Sea Round Town, Sena 문화재단 등 다수 기관의 지원을 받았다.
그녀의 창작의 핵심에는 서로 다른 예술 형식과 실천 사이의 내적 연결을 탐구하려는 열망이 있다. 누빔(Nubim)이라 는 예명 역시 ‘새로운 빛(new beam)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속을 누비고 싶다’는 그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