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026년 6월 19일(금 오후 7시30분)~20(토 오후 4시), 21일(일 오후 4시)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광대들’ 공연
1980년대 서울 변두리의 건설 현장 공터를 배경으로 한 K-Opera ‘광대들(서울삐에로)’이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Pagliacci를 한국적 현실로 재해석한 무대로, 유랑 광대패의 사랑과 질투, 배신과 파멸을 통해 인간 내면의 진실을 그려낸다. 극중극 구조와 처용 설화를 결합해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이제 광대극은 다 끝났소!”라는 외침을 통해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장수동은 이 작품을 “우리의 얼굴을 한 한국오페라”라고 설명하며, 오페라가 곧 우리 삶의 이야기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유일한 여성주인공은 애란이다. 그 애란을 주인공 소프라노 이소연을 만나 ‘오페라 광대들’ 작품 이야기와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어떤 공연단인지, 소프라노 이소연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에 대해 물었다.
번안 그 이상의 작업, 관객에게 닿는 언어를 찾아서
이소연이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이야기의 구조보다 자신이 직접 불러야 할 가사내용이다. 작품 자체는 한국어로 공연될 경우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성악가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노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본을 보고 한국말로 했을 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전체적인 구도에 앞서 당장 내가 불러야 할 가사를 먼저 생각합니다. 어쨌든 번안은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죠.”
서울오페라앙상블에서 성악가들이 작품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관점 가운데 하나는 가사의 수정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성악은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음악 안에서 언어를 소리로 전달해야 하는 장르다. 때문에 문학적으로는 훌륭한 문장이라도 실제 무대에서는 발성과 호흡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수들은 자신이 부를 아리아를 각자의 발성과 음악적 어법에 맞게 세심하게 다듬는데 이는 장수동 감독이 그런 여백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야 관객들도 내용을 더욱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음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작곡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가사를 쓸 경우에는 성악가의 발성을 고려해 문장을 구성하지만, 문학적 관점에서만 접근한 경우에는 실제 노래했을 때 어려움이 발생하곤 한다.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작업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다. 어떤 오페라단이나 작곡가는 완성된 작품에 대한 수정에 난색을 표하지만,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실제 연습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열린 작업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버지’라는 단어가 음악 안에서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경우, 성악가는 ‘그 아버지’처럼 단어를 추가해 보다 자연스럽게 발성할 수 있도록 수정하기도 한다. 이는 작곡가의 음악적 의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정이다.
“작곡가의 음악적 사상에 더해 성악가의 효과적인 발성이 더해질 때 최고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법이죠. 물론 일방적으로 고치는 건 아닙니다. 작곡가와 연출가에게 수정 의견을 건의하고 서로 합의가 이루어질 때만 바꾸죠. 요즘은 이런 방식을 택하는 오페라단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저는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연출에 대한 그의 시각에서도 이어진다. 이소연은 연출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오페라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좋은 연출은 노래를 방해하지 않아
그는 연출가마다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고 설명한다. 배우의 동선 하나까지 세세하게 지시하는 연출가가 있는가 하면, 성악가의 상상력과 해석을 존중하며 자유를 주는 연출가... 어느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품 성격에 따라 치밀한 디렉션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성악가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특히 오페라는 뮤지컬이나 연극과 달리 노래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장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말 산만해집니다. 오페라가 연기도 중요하긴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아리아 등 성악곡에 집중해서 관객을 감동으로 끌어들여야 하거든요. 성악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출은 최소한 아리아를 부를 때만큼은 동선에 대해 지나친 간섭이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 연출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노래에만 몰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페라는 결국 극이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소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물의 감정과 서사가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비로소 오페라가 완성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성악가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보다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제작진과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성악가들의 입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제작진을 만나면 대부분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돼요. 괜히 의견을 냈다가 트러블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이소연이 맡은 애란은 원작 ‘팔리아치’의 네다(Nedda)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이 역할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코로나19 시기 ‘팔리아치’를 준비했지만 공연이 무산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정말 열심히 네다를 공부했어요. 결국 무대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그 경험이 이번 공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애란과 네다는 기본적으로 같은 인물이다. 강인하고 주체적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여성이다. 그러나 장수동 연출은 여기에 새로운 설정을 덧입혔다. 어린 시절 버려진 아이였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원작에는 없는 이 배경을 통해 애란이라는 인물의 상처와 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극 중 재준과의 대화에서도 이러한 상처와 순수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억세게 살아남은 강한 여성인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린 존재로서의 모습이 함께 표현되는 것이다.
웃음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슬픈 운명
이소연은 애란을 단순히 강한 여성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애란 안에 숨겨진 순수함과 상처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이번 작품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가 바라보는 ‘광대들’의 본질 역시 여기에 닿아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과 질투의 비극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하층민 예술가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하층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사랑과 복수, 질투 같은 감정들이 있지만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는 않아요. 인간 안에 있는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죠.”
특히 주인공 태석은 무대 위에서는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광대지만, 현실에서는 아내의 배신으로 무너지는 남자다. 무대에서는 외도를 연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제 외도를 겪고 있고, 결국 공연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비극이 발생한다. 이소연은 바로 이 지점에서 ‘광대들’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무대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무대 위에서는 관객을 웃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 작품에는 예술가들의 애환과 비극적인 삶이 함께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무대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결국 ‘광대들’은 광대들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뒤편에 숨겨진 눈물, 그리고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무대를 떠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숙명이 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애란을 연기하는 이소연은 그 비극과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애란이라는 인물, 그리고 예술가가 품은 자유의 본능
이소연이 맡은 애란은 작품 속에서 단순한 여주인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애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서커스단이라는 공간 자체가 품고 있는 이중성을 먼저 떠올렸다.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곡예와 웃음, 박수갈채 뒤에는 늘 인간적인 욕망과 갈등이 존재해 왔다. 실제로 과거에는 버려진 아이들이나 가난한 집 아이들이 서커스단에 들어와 단원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애란은 어린 시절 버려진 아이로 설정되어 있다. 서커스단이 그녀를 거두어 키웠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녀를 얽매는 또 다른 운명이 되었다. 이소연은 작품 속 여성 인물이 사
실상 애란 한 명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애란, 즉 네다가 유일해요. 그만큼 작품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이죠.”
일반 관객들에게는 태석(원작의 까니오)이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가 강렬하게 남는 경우가 많지만, 음악가들과 성악가들은 오히려 네다의 음악적 비중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만큼 애란은 작품의 감정과 메시지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이소연이 바라보는 애란은 무엇보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다.
애란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어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린 시절 버려진 애란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태석의 보호 아래 성장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 결혼은 결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애란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랑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은 결국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자유를 향한 갈망 역시 폭발하게 된다.
“네다는 자유롭게 사랑하고, 새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인물이에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태석에게 얽매여 살아갑니다. 결국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 거죠.”
그 결과는 비극이다.
자유를 선택한 여인, 애란
애란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이소연은 애란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사랑과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절규하는 인물로 바라본다. 물론 애란을 바라보는 시선은 관객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그녀를 자유를 꿈꾸는 비극적 여성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인물로 비판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이 애란이라는 인물을 흥미롭게 만든다.
“결국 네다는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인물이기도 해요. 그래서 자유를 갈망하는 비극적 여성으로 볼 수도 있고, 반대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수도 있죠. 그런 점에서 선악으로 단순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소연은 애란을 무엇보다도 용기 있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작품 속 태석은 단순히 질투심 많은 남자가 아니다. 그는 서커스단 전체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다. 또한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애란은 굉장한 용기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태석은 매우 무섭고 폭력적인 사람이에요. 서커스단 전체를 이끄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랑과 자유를 선택하려 했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소연은 애란을 단순한 불륜의 당사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해석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애란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죽음 직전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무대 위에서 애란은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진다. 배우로서 쓰던 가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생 살아오며 강요받았던 삶의 가면이기도 하다.
“그동안 애란은 무대 위에서는 배우로서 연기를 했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 자체도 하나의 연기처럼 살아왔던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 더 이상 거짓된 역할에 자신을 가두지 않습니다. 가면을 벗어 던지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거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죽임을 당한다.
객석으로 뛰어든 애란의 마지막 외침
이번 공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장면 역시 바로 이 마지막 순간이다. 애란은 무대 위를 뛰쳐나와 객석 방향으로 내려온다. 극중극이 진행되는 작은 무대 아래, 실제 관객들이 있는 공간까지 내려와 절규하듯 노래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더 이상 거짓된 삶을 견딜 수 없다고. 그리고 그곳까지 쫓아온 태석에게 결국 죽임을 당한다. 이소연은 지금까지 여러 버전의 ‘광대들’과 ‘팔리아치’를 보아 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이 충분히 격렬하게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래 이 장면은 사랑과 질투, 분노가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이다. 두 인물이 서로를 향해 절규하며 충돌하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에너지가 폭발해야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때로 그 광기와 절박함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무대만큼은 다르게 만들고 싶어한다.
“테너 김중일과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죽어보자고요. 태석이 끝까지 쫓아와 애란을 죽일 만큼 무섭고 절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소연은 마지막 장면을 준비하며 진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연기해 보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마지막 장면의 사실성과 폭발적인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장수동 연출이 연습을 지켜본 뒤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소연은 오히려 그 반응이 반가웠다고 말한다.
“사랑과 질투, 분노가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인데 어느 정도 폭력성과 잔혹함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의도한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결국 ‘광대들’의 힘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축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폭발하는 이야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억눌리고 참아왔던 감정이 어느 순간 터져 나올 때 비로소 강렬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이소연 역시 작품의 매력을 바로 그 지점에서 찾는다.
“드라마는 결국 갈등을 쌓아가다가 어느 순간 크게 충돌할 때 가장 큰 긴장감이 생기잖아요. 감정을 누르고 참아오다가 한 번 크게 폭발하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우리말로 만나는 ‘광대들’, 더 가까워진 비극
‘광대들’은 비교적 짧은 오페라다. 원작은 80분도 채 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서커스 장면과 일부 대사가 추가되면서 약 90분 정도의 공연으로 확장된다. 실제 서커스 장면이 삽입되고 극의 이해를 돕는 장치들도 더해질 예정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갈등과 비극이 압축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부담 없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작품이 번안오페라이기 때문에 모든 아리아와 대사가 우리말로 진행된다. 이 역시 성악가들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다.
“사실 많은 성악가들이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을 쉽지 않게 생각해요. 발성 면에서는 이탈리아어가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거든요.”
한국어는 닫힌 발음이 많고, 같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은 음절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이번 작품은 현대어가 아닌 “~하오”와 같은 고어체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전달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출연진 모두가 발음과 전달력, 대사 처리까지 끊임없이 연구하며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광대들의 이야기. 그러나 그 가면을 벗는 순간 드러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가장 진실한 얼굴이다. 그리고 이소연은 애란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자유와 진실의 순간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오페라는 누구의 것인가
이소연은 오랫동안 장수동 연출과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작품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 오페라계가 안고 있는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인 ‘번안 오페라’의 필요성을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번안 오페라에 참여한 경험이 적지 않다. ‘돈조반니’에서는 노래는 원어로 부르고 대사는 우리말로 진행하는 방식을 경험했고, ‘개구쟁이’의 경우에는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안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소연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안 오페라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에서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어로 공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에 서는 사람보다 공연을 보는 관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페라가 성악가들만 즐기는 예술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만약 무대 위의 예술가들만 만족하고 관객은 소외된다면 그것은 건강한 공연문화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페라가 오페라인들만 재미있고 만족하는 예술이 된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끼리만 즐기는 예술에서 벗어나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번안 오페라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번 작품 역시 원제인 ‘팔리아치’보다 ‘광대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될 때 관객들의 반응이 훨씬 빠르고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오페라를 외국어로 진행되는 어렵고 낯선 예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막이라는 장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자막을 읽는 순간 관객의 시선은 무대에서 멀어진다. 배우의 표정과 몸짓, 노래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번안 오페라는 출연자들에게는 훨씬 어려운 작업이에요. 하지만 관객이 내용을 이해하고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독일 오페라계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원어 공연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독일에서도 이탈리아 작품을 독일어로 공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도 번안 작업이 계속 이어져야 해요.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소연은 번안이 단순한 번역 작업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어의 발음 구조와 억양, 음악의 흐름을 함께 고려해야 비로소 좋은 번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바리톤 장철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문제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장철 선생님은 오페라를 한국어로 번안할 때도 원곡의 음악성과 자연스러운 발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단순히 단어의 의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리듬과 어감을 고려해서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결국 번안은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에 가까운 작업이다. 관객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음악적 완성도 역시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작업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오페라계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그는 말한다. 언어학자와 작곡가, 음악학자, 성악가들이 함께 참여해 작품마다 가장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과 발성을 연구하는 전문 학회나 연구모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안은 언어와 음악, 연기와 발성이 모두 결합된 종합예술 작업인 만큼,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소연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장수동 사단이 움직이는 방식
그가 번안 오페라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공연 한 편의 성공 때문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한국 오페라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오페라앙상블은 그가 가장 신뢰하는 단체 가운데 하나다. 이소연은 자신이 장수동 감독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는 이유를 묻자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장수동 선생님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가 말하는 ‘장수동 사단’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동적으로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역을 맡으면 먼저 인물의 감정과 배경을 연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준비한다. 연습실에 들어왔을 때 이미 각자의 인물이 어느 정도 살아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수동 감독은 세세한 동작 하나하나를 지시하기보다 큰 방향과 흐름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연출 연습이 시작됐을 때 멀뚱히 서서 지시만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다들 스스로 생각하고 준비해 오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가장 큰 강점으로 ‘사람’을 꼽았다. 성악가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하지만 성실함만으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제가 함께해 온 서울오페라앙상블 선생님들은 모두 인품이 좋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은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목표 아래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모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역시 오페라 기획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협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팀 분위기가 무너지면 연습 과정 자체가 고통이 된다. 과도한 경쟁심과 질투가 공연 전체를 흔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서울오페라앙상블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적인 이야기 역시 숨기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현실적으로는 개런티가 중요하죠.(웃음)”
공연이 끝나기 전후 확실하게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 그리고 함께 식사하며 소통하는 문화를 유지하는 것 역시 단체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공연 후뿐 아니라 공연 전에도 단원들이 함께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만든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무대 위 호흡도 더욱 깊어진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성악가를 존중하는 문화였다.
“장수동 감독님은 노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잘 알고 계세요. 성악가들의 노력과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시죠.”
모든 연출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노래를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성악가를 단순히 노래를 수행하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장수동 감독은 성악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과 컨디션, 예술적 가치를 존중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을 이야기할 때마다 장수동 감독의 헌신을 빼놓지 않는다.
“밖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가까이에서 장 감독님이 오페라를 위해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직접 보고 있습니다.”
배낭 하나를 메고 공연장을 찾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작품을 알리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모습. 때로는 포스터를 손에 들고 직접 홍보에 나서는 모습까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단원들은 단순히 감독 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에 대한 한 사람의 신념과 열정을 보게 된다. 이소연은 바로 그런 진정성이 서울오페라앙상블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뢰가 있기에 그는 오늘도 장수동 감독과 함께 또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사람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오면서 자신이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그것은 음악도, 연기도 아닌 ‘시간’이었다.
“장수동 감독님과 일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점 가운데 하나가 시간에 대한 태도예요.”
그는 장수동 감독이 무엇보다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오페라앙상블에서는 지각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성악가들이 모이는 현장에서는 일정이 조금씩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서울오페라앙상블만큼은 달랐다. 처음 함께했던 작품은 ‘라 보엠’이었다. 당시 막내였던 그는 연습 시간보다 30분 이상 먼저 도착해 있는 선배들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정시에 도착한 자신이 오히려 늦은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원래부터 시간에 철저한 성격은 아니었다. 공연과 행사 일정이 워낙 많다 보니 늘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장수동 감독은 연습 시간에 1~2분만 늦어도 주차 시간까지 계산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엄격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결국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장수동 감독과 개인적으로 큰 갈등을 겪은 적은 없었다. 다만 스케줄 문제만큼은 예외였다. 여러 공연과 행사 일정이 겹치면서 연습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장 감독은 연습을 작품 창작의 핵심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매우 엄격했다.
“그래서 지금은 일정이 겹치면 서울오페라앙상블 일정을 먼저 고려해요. 그만큼 작품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무대 위 해프닝과 웃지 못할 실수들
무대 위에는 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소연에게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테너 조철희와 함께 ‘돈 조반니’를 공연하던 때였다. 3중창 장면에서 세 사람이 함께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고, 뒤에서는 샤막이 내려오며 무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동선이 어긋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소연만 샤막 밖으로 나왔고, 다른 두 명은 샤막 안쪽에 남아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대 앞에는 이소연 혼자 서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차막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묘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관객들은 원래 그런 연출인 줄 알았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들은 한참 동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그가 더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장수동 감독의 반응이었다. 감독은 실수를 지적하기보다 먼저 “다친 사람은 없느냐”고 물었다. 막에 걸리거나 부딪혀 다친 사람이 없는지를 먼저 확인한 것이다.
“그 일을 겪으면서 장수동 감독님이 공연의 완성도만큼이나 사람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또 다른 기억은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서 있었다. 비올레타가 병상에서 알프레도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었다. 원래는 무대 위에 놓인 편지를 읽으면 되는 장면이라 굳이 내용을 외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편지가 사라져 있었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죽어가는 환자여야 할 비올레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베개와 이불을 뒤적이며 편지를 찾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자연스러운 연기의 일부로 받아들였겠지만, 무대 위에 있던 본인에게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참 뒤 침대 사이에서 편지를 찾아 장면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성악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그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
그럼에도 귀국 직후 참여했던 ‘예브게니 오네긴’은 특별했다. 2013년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연한 작품이었다. 러시아어 대사와 대규모 음악, 높은 난이도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고,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그 무대를 기억하는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작품을 통해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최근 작품 가운데서는 라벨의 ‘개구쟁이와 마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라벨 특유의 난해하고 섬세한 음악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공연 자체는 무척 즐거웠다. 특히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구조 덕분에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모든 작품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자산이라고 말한다. 하나를 특별히 꼽기보다 모든 작품이 성장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생의 목표로 이어졌다.
“제 인생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는 특정한 성공이나 지위를 목표로 삼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모두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 깊이만큼이나 폭넓은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 외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배워 왔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플래시를 공부했고 지금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시간을 거의 만들지 않아요.”
그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실제 삶의 방식에 가까워 보였다. 공연과 연습으로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삶의 연장선 위에서 하나의 꿈을 품고 있다. 언젠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 몇 년 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본 1인극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명의 배우가 대본과 연기, 노래와 움직임으로 무대를 이끌어 가는 공연이었다. 그 작품을 보며 자신도 언젠가 자신만의 시그니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꼭 대규모 오페라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1인극이어도 좋고 작은 공연이어도 좋아요. 음악과 연기, 영상과 무대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성악가 이소연에게 목표는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목표에 가깝다. 현재 그는 다큐오페라 ‘유관순’, 재공연을 앞둔 ‘버섯피자’, 그리고 ‘라 보엠’ 등 다양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들 너머에는 또 다른 꿈이 있다. 누군가가 만든 작품 속 인물을 노래하는 것을 넘어, 언젠가는 자신의 생각과 삶이 담긴 새로운 무대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 오페라 ‘광대들’에서 애란은 마지막 순간 가면을 벗고 진짜 자신의 얼굴로 세상과 마주한다. 어쩌면 이소연 역시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와 배움을 지나오며 조금씩 자신만의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글 김종섭
오는 2026년 6월 19일(금 오후 7시30분)~20(토 오후 4시), 21일(일 오후 4시)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광대들’ 공연
1980년대 서울 변두리의 건설 현장 공터를 배경으로 한 K-Opera ‘광대들(서울삐에로)’이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Pagliacci를 한국적 현실로 재해석한 무대로, 유랑 광대패의 사랑과 질투, 배신과 파멸을 통해 인간 내면의 진실을 그려낸다. 극중극 구조와 처용 설화를 결합해 연기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이제 광대극은 다 끝났소!”라는 외침을 통해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 장수동은 이 작품을 “우리의 얼굴을 한 한국오페라”라고 설명하며, 오페라가 곧 우리 삶의 이야기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유일한 여성주인공은 애란이다. 그 애란을 주인공 소프라노 이소연을 만나 ‘오페라 광대들’ 작품 이야기와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어떤 공연단인지, 소프라노 이소연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에 대해 물었다.
번안 그 이상의 작업, 관객에게 닿는 언어를 찾아서
이소연이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이야기의 구조보다 자신이 직접 불러야 할 가사내용이다. 작품 자체는 한국어로 공연될 경우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성악가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노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본을 보고 한국말로 했을 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전체적인 구도에 앞서 당장 내가 불러야 할 가사를 먼저 생각합니다. 어쨌든 번안은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죠.”
서울오페라앙상블에서 성악가들이 작품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관점 가운데 하나는 가사의 수정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성악은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음악 안에서 언어를 소리로 전달해야 하는 장르다. 때문에 문학적으로는 훌륭한 문장이라도 실제 무대에서는 발성과 호흡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수들은 자신이 부를 아리아를 각자의 발성과 음악적 어법에 맞게 세심하게 다듬는데 이는 장수동 감독이 그런 여백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야 관객들도 내용을 더욱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음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작곡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가사를 쓸 경우에는 성악가의 발성을 고려해 문장을 구성하지만, 문학적 관점에서만 접근한 경우에는 실제 노래했을 때 어려움이 발생하곤 한다.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작업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다. 어떤 오페라단이나 작곡가는 완성된 작품에 대한 수정에 난색을 표하지만,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실제 연습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열린 작업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버지’라는 단어가 음악 안에서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경우, 성악가는 ‘그 아버지’처럼 단어를 추가해 보다 자연스럽게 발성할 수 있도록 수정하기도 한다. 이는 작곡가의 음악적 의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정이다.
“작곡가의 음악적 사상에 더해 성악가의 효과적인 발성이 더해질 때 최고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법이죠. 물론 일방적으로 고치는 건 아닙니다. 작곡가와 연출가에게 수정 의견을 건의하고 서로 합의가 이루어질 때만 바꾸죠. 요즘은 이런 방식을 택하는 오페라단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저는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연출에 대한 그의 시각에서도 이어진다. 이소연은 연출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오페라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좋은 연출은 노래를 방해하지 않아
그는 연출가마다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고 설명한다. 배우의 동선 하나까지 세세하게 지시하는 연출가가 있는가 하면, 성악가의 상상력과 해석을 존중하며 자유를 주는 연출가... 어느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품 성격에 따라 치밀한 디렉션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성악가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특히 오페라는 뮤지컬이나 연극과 달리 노래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장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말 산만해집니다. 오페라가 연기도 중요하긴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아리아 등 성악곡에 집중해서 관객을 감동으로 끌어들여야 하거든요. 성악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출은 최소한 아리아를 부를 때만큼은 동선에 대해 지나친 간섭이나 제재를 가하지 않는 연출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노래에만 몰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페라는 결국 극이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소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물의 감정과 서사가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비로소 오페라가 완성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성악가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보다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제작진과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성악가들의 입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제작진을 만나면 대부분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돼요. 괜히 의견을 냈다가 트러블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이소연이 맡은 애란은 원작 ‘팔리아치’의 네다(Nedda)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이 역할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코로나19 시기 ‘팔리아치’를 준비했지만 공연이 무산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정말 열심히 네다를 공부했어요. 결국 무대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그 경험이 이번 공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애란과 네다는 기본적으로 같은 인물이다. 강인하고 주체적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여성이다. 그러나 장수동 연출은 여기에 새로운 설정을 덧입혔다. 어린 시절 버려진 아이였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원작에는 없는 이 배경을 통해 애란이라는 인물의 상처와 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극 중 재준과의 대화에서도 이러한 상처와 순수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억세게 살아남은 강한 여성인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린 존재로서의 모습이 함께 표현되는 것이다.
웃음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슬픈 운명
이소연은 애란을 단순히 강한 여성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애란 안에 숨겨진 순수함과 상처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이번 작품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가 바라보는 ‘광대들’의 본질 역시 여기에 닿아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과 질투의 비극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하층민 예술가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하층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사랑과 복수, 질투 같은 감정들이 있지만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는 않아요. 인간 안에 있는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죠.”
특히 주인공 태석은 무대 위에서는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광대지만, 현실에서는 아내의 배신으로 무너지는 남자다. 무대에서는 외도를 연기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제 외도를 겪고 있고, 결국 공연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비극이 발생한다. 이소연은 바로 이 지점에서 ‘광대들’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무대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무대 위에서는 관객을 웃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 작품에는 예술가들의 애환과 비극적인 삶이 함께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무대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결국 ‘광대들’은 광대들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뒤편에 숨겨진 눈물, 그리고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무대를 떠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숙명이 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애란을 연기하는 이소연은 그 비극과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애란이라는 인물, 그리고 예술가가 품은 자유의 본능
이소연이 맡은 애란은 작품 속에서 단순한 여주인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애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서커스단이라는 공간 자체가 품고 있는 이중성을 먼저 떠올렸다.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곡예와 웃음, 박수갈채 뒤에는 늘 인간적인 욕망과 갈등이 존재해 왔다. 실제로 과거에는 버려진 아이들이나 가난한 집 아이들이 서커스단에 들어와 단원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애란은 어린 시절 버려진 아이로 설정되어 있다. 서커스단이 그녀를 거두어 키웠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녀를 얽매는 또 다른 운명이 되었다. 이소연은 작품 속 여성 인물이 사
실상 애란 한 명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애란, 즉 네다가 유일해요. 그만큼 작품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이죠.”
일반 관객들에게는 태석(원작의 까니오)이 부르는 유명한 아리아가 강렬하게 남는 경우가 많지만, 음악가들과 성악가들은 오히려 네다의 음악적 비중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만큼 애란은 작품의 감정과 메시지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이소연이 바라보는 애란은 무엇보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다.
애란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어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린 시절 버려진 애란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태석의 보호 아래 성장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 결혼은 결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애란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랑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은 결국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자유를 향한 갈망 역시 폭발하게 된다.
“네다는 자유롭게 사랑하고, 새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인물이에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태석에게 얽매여 살아갑니다. 결국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밖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 거죠.”
그 결과는 비극이다.
자유를 선택한 여인, 애란
애란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이소연은 애란을 단순한 피해자로만 보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사랑과 삶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절규하는 인물로 바라본다. 물론 애란을 바라보는 시선은 관객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그녀를 자유를 꿈꾸는 비극적 여성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인물로 비판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이 애란이라는 인물을 흥미롭게 만든다.
“결국 네다는 남편을 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인물이기도 해요. 그래서 자유를 갈망하는 비극적 여성으로 볼 수도 있고, 반대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수도 있죠. 그런 점에서 선악으로 단순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소연은 애란을 무엇보다도 용기 있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작품 속 태석은 단순히 질투심 많은 남자가 아니다. 그는 서커스단 전체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다. 또한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애란은 굉장한 용기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태석은 매우 무섭고 폭력적인 사람이에요. 서커스단 전체를 이끄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랑과 자유를 선택하려 했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소연은 애란을 단순한 불륜의 당사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해석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애란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죽음 직전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무대 위에서 애란은 자신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진다. 배우로서 쓰던 가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생 살아오며 강요받았던 삶의 가면이기도 하다.
“그동안 애란은 무대 위에서는 배우로서 연기를 했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 자체도 하나의 연기처럼 살아왔던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 더 이상 거짓된 역할에 자신을 가두지 않습니다. 가면을 벗어 던지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거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죽임을 당한다.
객석으로 뛰어든 애란의 마지막 외침
이번 공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장면 역시 바로 이 마지막 순간이다. 애란은 무대 위를 뛰쳐나와 객석 방향으로 내려온다. 극중극이 진행되는 작은 무대 아래, 실제 관객들이 있는 공간까지 내려와 절규하듯 노래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더 이상 거짓된 삶을 견딜 수 없다고. 그리고 그곳까지 쫓아온 태석에게 결국 죽임을 당한다. 이소연은 지금까지 여러 버전의 ‘광대들’과 ‘팔리아치’를 보아 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이 충분히 격렬하게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래 이 장면은 사랑과 질투, 분노가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이다. 두 인물이 서로를 향해 절규하며 충돌하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에너지가 폭발해야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때로 그 광기와 절박함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무대만큼은 다르게 만들고 싶어한다.
“테너 김중일과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죽어보자고요. 태석이 끝까지 쫓아와 애란을 죽일 만큼 무섭고 절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소연은 마지막 장면을 준비하며 진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연기해 보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마지막 장면의 사실성과 폭발적인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장수동 연출이 연습을 지켜본 뒤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소연은 오히려 그 반응이 반가웠다고 말한다.
“사랑과 질투, 분노가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인데 어느 정도 폭력성과 잔혹함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의도한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결국 ‘광대들’의 힘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축적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폭발하는 이야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억눌리고 참아왔던 감정이 어느 순간 터져 나올 때 비로소 강렬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이소연 역시 작품의 매력을 바로 그 지점에서 찾는다.
“드라마는 결국 갈등을 쌓아가다가 어느 순간 크게 충돌할 때 가장 큰 긴장감이 생기잖아요. 감정을 누르고 참아오다가 한 번 크게 폭발하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우리말로 만나는 ‘광대들’, 더 가까워진 비극
‘광대들’은 비교적 짧은 오페라다. 원작은 80분도 채 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서커스 장면과 일부 대사가 추가되면서 약 90분 정도의 공연으로 확장된다. 실제 서커스 장면이 삽입되고 극의 이해를 돕는 장치들도 더해질 예정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갈등과 비극이 압축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부담 없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작품이 번안오페라이기 때문에 모든 아리아와 대사가 우리말로 진행된다. 이 역시 성악가들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다.
“사실 많은 성악가들이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을 쉽지 않게 생각해요. 발성 면에서는 이탈리아어가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거든요.”
한국어는 닫힌 발음이 많고, 같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은 음절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이번 작품은 현대어가 아닌 “~하오”와 같은 고어체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전달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출연진 모두가 발음과 전달력, 대사 처리까지 끊임없이 연구하며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광대들의 이야기. 그러나 그 가면을 벗는 순간 드러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가장 진실한 얼굴이다. 그리고 이소연은 애란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자유와 진실의 순간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오페라는 누구의 것인가
이소연은 오랫동안 장수동 연출과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작품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 오페라계가 안고 있는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인 ‘번안 오페라’의 필요성을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번안 오페라에 참여한 경험이 적지 않다. ‘돈조반니’에서는 노래는 원어로 부르고 대사는 우리말로 진행하는 방식을 경험했고, ‘개구쟁이’의 경우에는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안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소연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안 오페라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에서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어로 공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에 서는 사람보다 공연을 보는 관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페라가 성악가들만 즐기는 예술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만약 무대 위의 예술가들만 만족하고 관객은 소외된다면 그것은 건강한 공연문화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페라가 오페라인들만 재미있고 만족하는 예술이 된다면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끼리만 즐기는 예술에서 벗어나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번안 오페라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번 작품 역시 원제인 ‘팔리아치’보다 ‘광대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될 때 관객들의 반응이 훨씬 빠르고 친숙하게 다가온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오페라를 외국어로 진행되는 어렵고 낯선 예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막이라는 장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자막을 읽는 순간 관객의 시선은 무대에서 멀어진다. 배우의 표정과 몸짓, 노래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번안 오페라는 출연자들에게는 훨씬 어려운 작업이에요. 하지만 관객이 내용을 이해하고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독일 오페라계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원어 공연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독일에서도 이탈리아 작품을 독일어로 공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도 번안 작업이 계속 이어져야 해요. 오히려 지금까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소연은 번안이 단순한 번역 작업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국어의 발음 구조와 억양, 음악의 흐름을 함께 고려해야 비로소 좋은 번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바리톤 장철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문제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장철 선생님은 오페라를 한국어로 번안할 때도 원곡의 음악성과 자연스러운 발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단순히 단어의 의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리듬과 어감을 고려해서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결국 번안은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에 가까운 작업이다. 관객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음악적 완성도 역시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작업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오페라계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그는 말한다. 언어학자와 작곡가, 음악학자, 성악가들이 함께 참여해 작품마다 가장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과 발성을 연구하는 전문 학회나 연구모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안은 언어와 음악, 연기와 발성이 모두 결합된 종합예술 작업인 만큼,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소연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장수동 사단이 움직이는 방식
그가 번안 오페라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공연 한 편의 성공 때문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한국 오페라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오페라앙상블은 그가 가장 신뢰하는 단체 가운데 하나다. 이소연은 자신이 장수동 감독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는 이유를 묻자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장수동 선생님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가 말하는 ‘장수동 사단’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동적으로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역을 맡으면 먼저 인물의 감정과 배경을 연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준비한다. 연습실에 들어왔을 때 이미 각자의 인물이 어느 정도 살아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수동 감독은 세세한 동작 하나하나를 지시하기보다 큰 방향과 흐름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연출 연습이 시작됐을 때 멀뚱히 서서 지시만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다들 스스로 생각하고 준비해 오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가장 큰 강점으로 ‘사람’을 꼽았다. 성악가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하지만 성실함만으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제가 함께해 온 서울오페라앙상블 선생님들은 모두 인품이 좋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은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목표 아래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모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역시 오페라 기획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협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팀 분위기가 무너지면 연습 과정 자체가 고통이 된다. 과도한 경쟁심과 질투가 공연 전체를 흔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서울오페라앙상블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적인 이야기 역시 숨기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현실적으로는 개런티가 중요하죠.(웃음)”
공연이 끝나기 전후 확실하게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 그리고 함께 식사하며 소통하는 문화를 유지하는 것 역시 단체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공연 후뿐 아니라 공연 전에도 단원들이 함께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만든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무대 위 호흡도 더욱 깊어진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성악가를 존중하는 문화였다.
“장수동 감독님은 노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잘 알고 계세요. 성악가들의 노력과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시죠.”
모든 연출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노래를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는 성악가를 단순히 노래를 수행하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장수동 감독은 성악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과 컨디션, 예술적 가치를 존중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을 이야기할 때마다 장수동 감독의 헌신을 빼놓지 않는다.
“밖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가까이에서 장 감독님이 오페라를 위해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직접 보고 있습니다.”
배낭 하나를 메고 공연장을 찾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작품을 알리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모습. 때로는 포스터를 손에 들고 직접 홍보에 나서는 모습까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단원들은 단순히 감독 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에 대한 한 사람의 신념과 열정을 보게 된다. 이소연은 바로 그런 진정성이 서울오페라앙상블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뢰가 있기에 그는 오늘도 장수동 감독과 함께 또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사람
이소연은 서울오페라앙상블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오면서 자신이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그것은 음악도, 연기도 아닌 ‘시간’이었다.
“장수동 감독님과 일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점 가운데 하나가 시간에 대한 태도예요.”
그는 장수동 감독이 무엇보다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오페라앙상블에서는 지각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성악가들이 모이는 현장에서는 일정이 조금씩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서울오페라앙상블만큼은 달랐다. 처음 함께했던 작품은 ‘라 보엠’이었다. 당시 막내였던 그는 연습 시간보다 30분 이상 먼저 도착해 있는 선배들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정시에 도착한 자신이 오히려 늦은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원래부터 시간에 철저한 성격은 아니었다. 공연과 행사 일정이 워낙 많다 보니 늘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장수동 감독은 연습 시간에 1~2분만 늦어도 주차 시간까지 계산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엄격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결국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장수동 감독과 개인적으로 큰 갈등을 겪은 적은 없었다. 다만 스케줄 문제만큼은 예외였다. 여러 공연과 행사 일정이 겹치면서 연습 참석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장 감독은 연습을 작품 창작의 핵심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매우 엄격했다.
“그래서 지금은 일정이 겹치면 서울오페라앙상블 일정을 먼저 고려해요. 그만큼 작품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무대 위 해프닝과 웃지 못할 실수들
무대 위에는 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소연에게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테너 조철희와 함께 ‘돈 조반니’를 공연하던 때였다. 3중창 장면에서 세 사람이 함께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고, 뒤에서는 샤막이 내려오며 무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데 동선이 어긋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소연만 샤막 밖으로 나왔고, 다른 두 명은 샤막 안쪽에 남아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대 앞에는 이소연 혼자 서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차막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묘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관객들은 원래 그런 연출인 줄 알았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들은 한참 동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그가 더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장수동 감독의 반응이었다. 감독은 실수를 지적하기보다 먼저 “다친 사람은 없느냐”고 물었다. 막에 걸리거나 부딪혀 다친 사람이 없는지를 먼저 확인한 것이다.
“그 일을 겪으면서 장수동 감독님이 공연의 완성도만큼이나 사람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또 다른 기억은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서 있었다. 비올레타가 병상에서 알프레도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었다. 원래는 무대 위에 놓인 편지를 읽으면 되는 장면이라 굳이 내용을 외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편지가 사라져 있었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죽어가는 환자여야 할 비올레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베개와 이불을 뒤적이며 편지를 찾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자연스러운 연기의 일부로 받아들였겠지만, 무대 위에 있던 본인에게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참 뒤 침대 사이에서 편지를 찾아 장면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성악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그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이 가장 어려워요.”
그럼에도 귀국 직후 참여했던 ‘예브게니 오네긴’은 특별했다. 2013년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연한 작품이었다. 러시아어 대사와 대규모 음악, 높은 난이도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고,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그 무대를 기억하는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작품을 통해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최근 작품 가운데서는 라벨의 ‘개구쟁이와 마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라벨 특유의 난해하고 섬세한 음악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공연 자체는 무척 즐거웠다. 특히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구조 덕분에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모든 작품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자산이라고 말한다. 하나를 특별히 꼽기보다 모든 작품이 성장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생의 목표로 이어졌다.
“제 인생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는 특정한 성공이나 지위를 목표로 삼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모두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 깊이만큼이나 폭넓은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 외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배워 왔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플래시를 공부했고 지금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시간을 거의 만들지 않아요.”
그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실제 삶의 방식에 가까워 보였다. 공연과 연습으로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삶의 연장선 위에서 하나의 꿈을 품고 있다. 언젠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 몇 년 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본 1인극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명의 배우가 대본과 연기, 노래와 움직임으로 무대를 이끌어 가는 공연이었다. 그 작품을 보며 자신도 언젠가 자신만의 시그니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꼭 대규모 오페라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1인극이어도 좋고 작은 공연이어도 좋아요. 음악과 연기, 영상과 무대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성악가 이소연에게 목표는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목표에 가깝다. 현재 그는 다큐오페라 ‘유관순’, 재공연을 앞둔 ‘버섯피자’, 그리고 ‘라 보엠’ 등 다양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들 너머에는 또 다른 꿈이 있다. 누군가가 만든 작품 속 인물을 노래하는 것을 넘어, 언젠가는 자신의 생각과 삶이 담긴 새로운 무대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 오페라 ‘광대들’에서 애란은 마지막 순간 가면을 벗고 진짜 자신의 얼굴로 세상과 마주한다. 어쩌면 이소연 역시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와 배움을 지나오며 조금씩 자신만의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