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세월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앙상블… 피아니스트 진용재 진성민 듀오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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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그리고 피아노
스승과 제자, 부자(父子)가 함께 써 내려가는 두 대의 피아노의 인생


피아노는 흔히 가장 고독한 악기라고 말한다. 무대 위에서 단 한 사람이 건반 앞에 앉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두 대의 피아노가 마주하는 순간 음악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가 된다. 서로의 숨결을 읽고, 호흡을 맞추고, 한 사람이 내민 음악을 다른 사람이 이어받으며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나간다.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이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라면 어떨까. 더욱이 어린 시절부터 스승과 제자로 함께 성장해 온 두 사람이라면 그들의 음악은 단순한 앙상블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한 사람에게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되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오는 7월 7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리는 ‘진용재 & 진성민 듀오 리사이틀 ‘아버지와 나… 그리고 Piano’는 바로 그런 무대다. 피아니스트 진용재와 그의 아들 진성민이 두 대의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한 세대의 음악과 다음 세대의 음악을 하나의 울림으로 들려준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부자가 함께 연주한다는 화제성에 머물지 않는다. 평생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살아온 아버지와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독립된 연주자로 성장한 아들이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에게서 배운 시간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다. 두 사람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프로그램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수없이 의견을 나누고, 템포와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을 토론하며 무대를 완성해 왔다. 그 과정 자체가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진용재는 빈 시립음악원 전문연주자과정을 졸업한 뒤 예술의전당 귀국독주회를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수원시립교향악단, 창원시립교향악단,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며 폭넓은 레퍼토리를 축적하였고 대구예술고등학교 음악대학 학장과 미국 베데스다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는 등 후학 양성에도 힘써 왔다. 특히 모차르트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레슨 영상을 제작하는 등 교육자로서도 꾸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아들 진성민은 덕원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로마 국제콩쿠르와 Feurich국제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Europa Konzert와 러시아 Clavis Piano Festival 등에 초청받으며 국제무대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귀국 후에는 독주회와 실내악, 반주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두 사람의 음악적 취향과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부에서는 드뷔시의 Petite Suite와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448이 연주된다. 드뷔시의 섬세한 색채감과 모차르트 특유의 균형감은 두 연주자의 호흡과 음색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비제의 ‘카르멘 판타지’가 무대를 장식한다. 누구나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인 만큼 클래식 애호가는 물론 처음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도 부담 없이 음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진정한 주인공은 프로그램보다도 ‘관계’다.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두 대의 피아노 앞에서는 오직 음악으로만 대화한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는 세월이 만든 신뢰와 존경, 사랑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월간리뷰는 공연을 앞둔 진용재, 진성민 부자를 만나 음악가 이전에 아버지와 아들로 살아온 시간, 서로에게 배운 것들, 그리고 이번 무대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삶을 이어주는 언어


1. 음악인들과 대화하다보면 가끔은 ‘내 자식만큼은 음악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오히려 성민의 음악을 즐기고 있는 느김입니다. 어떤 확신이 있는지요?


진용재:
음악을 한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고 우리 때도 힘들었지만, 저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민이가 음악을 워낙 좋아했습니다. 힘든 길인 건 알았지만 좋아하는 걸 억지로 말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이 아이에게는 음악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부터 제가 직접 가르쳤습니다. 저 역시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하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거든요. 4형제였는데 형들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저는 지나가는 고적대 소리만 듣고도 풍금을 바로 칠 정도로 음감이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저 녀석이 음악을 하겠구나’ 했던 것 같아요.
성민이도 비슷합니다. 제가 레슨을 하든 연주를 하든 아주 어릴 때부터 늘 피아노 옆에서 놀았어요. 아이를 별도로 돌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오직 피아노만 있으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른 학생을 레슨하는 동안에도 그랜드피아노 밑에 들어가 놀고, 나가라고 하면 오히려 울곤 했습니다.(웃음) 그렇게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고 제가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결국 예고까지도 제가 직접 가르쳤습니다.
대학교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제대로 공부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정말 음악을 제대로 하려면 한국 대학보다는 서양음악의 원천지인 유럽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부딪혀 보라고 했지요. 저는 성민이는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승부욕이 정말 대단했거든요. 브람스를 치다가 마음대로 안 되면 울면서 끝까지 해보는 모습에서 ‘이 아이는 음악을 끝까지 하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음악 하는 길이 어렵고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시대지만 같이 연습하고 음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참 대견합니다. 예술가로서 하나하나 만들어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고맙고요.


2. 성민씨는 아버지께만 피아노를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다른 선생님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까?


진성민: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어떻게 아버지한테만 배웠느냐”, “가족한테 배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괜찮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레슨실에서만큼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가족이고 아버지지만, 피아노 앞에서는 그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슨 자체가 불편했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조금 힘들었던 건 연습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연습을 하고 있으면 밖에서 아버지가 다 듣고 계시잖아요. 그게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습니다. 반면 레슨에 있어서는 정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피아노를 치던 시기였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정말 좋은 선생님에게 좋은 음악의 길을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에서야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더 크게 느끼고 있답니다. 아빠 고맙습니다.(웃음)


3. 그래도 다른 선생님은 어떻게 지도할까 하고 다른 분에게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도 할 텐데요.


진성민:
정말 없었습니다. 고3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추천해 주신 선생님께 테스트 레슨을 한 번 받아본 적은 있습니다. 정확한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 경험해 보자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분명 훌륭하신 선생님이셨지만 레슨을 받고 돌아왔을 때 이상하게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선생님이 잘못 가르치셨다는 뜻이 아니라, 지적해 주시는 내용들이 제게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오랜 시간 한 선생님, 아버지께만 배워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음악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이미 아버지에게 배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다른 선생님의 접근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4. 부모가 자녀를 오랫동안 직접 가르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진용재:
예전에 백정엽이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형님은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가르치십니까? 저는 아버지한테 엄청 혼난 기억이 많은데요.” 아버지에게 배울 때는 두려움이 커서 방문을 잠그고 울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성민이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정말 없었어요.
저는 제자를 가르칠 때보다 오히려 아들을 가르칠 때가 더 신이 났습니다.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제자라기보다 음악적인 동반자가 되어가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단순히 음악적 테크닉과 음악성만 전수 받았을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분명 체득했을 터. 어쩌면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큰 음악적 유산이 아닐가 싶다. 칼 하나로 소 전체를 발랐던 포정해우(庖丁解牛)의 주인공 장자의 ‘포정’처럼 칼 하나로 세상을 재단했던 것처럼 음악으로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배웠으리라 생각된다.


5. 아버지께 음악을 배우면서 기술보다 더 큰 유산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음악을 바라보는 철학이나 삶의 태도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진성민:
저는 아버지가 지금도 피아노와 음악을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이 가장 크게 다가옵니다. 요즘은 저희 세대가 살아가는 음악 환경이 정말 치열합니다. 아버지 세대도 힘드셨겠지만, 지금은 훨씬 더 많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 있고 경쟁도 치열하거든요. 귀국하고 나서 저 역시 그런 시류에 합류해서 한동안 순수한 마음을 조금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경쟁적이었고, 음악보다 다른 것들이 먼저 보이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그 마음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연주를 계속하셨습니다. 교육자이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무대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로 살아오셨습니다.
그 모습이 저는 지금도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귀국 독주회를 준비할 때는 군대도 다녀와서 손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아 연습하는 내내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귀국 독주회 이후 크고 작은 연주들을 계속하면서 다시 제 페이스를 찾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음악을 대하는 마음도 다시 회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조성진 선생님처럼 백 명의 청중이 있으면 백 명 모두를 만족시키는 위대한 연주자도 정말 존경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열 사람이라도 제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제가 들려드리는 음악이 그분들의 삶에 아주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유학 막바지에는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많이 돌아봤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귀국 독주회 때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이번 아버지와의 듀오 리사이틀을 마치고 나면 독주를 더 많이 하고 싶답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 다른 누구도 아닌 저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드리고자 하거든요. 그 마음으로 지금도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진성민의 생각이 참으로 옳구나 싶다. 이어령 선생은 달리기에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가면 반드시 1등과 100등이 나누어지는데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뛴다면 모두가 1등이 된다고 말했다. 등에서 100등까지의 석차에 익숙해진 시각으로는 콩쿠르에 입상하고 회당 수천만 또는 몇억을 받는 1등 피아니스트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각자 다른 방향 다른 관객, 다른 피아니즘을 찾아 떠난다면 모두가 1등이 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음악으로 감동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한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피아니스트 진용재는 지금도 계속 피아노 앞에서 연구하고 씨름하고 연습한다. 끊임없는 자아와의 싸움이다. 이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동한다. 인생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라면 끝없이 걸어야 하는 법. 음악이 나의 증거라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런 아버지와 오랫동안 함께 해온 진성민이기에 전제가 아닌 소수라도 감동시킨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말을 할 수가 있다.


6. 이번 듀오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두 분이 함께 고민하며 구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취지와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선택하셨습니까?


진성민: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체적인 흐름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도 하나의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첫 곡으로 드뷔시의 Petite Suite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죠. 시대순으로 시작하기보다 공연의 문을 가장 자연스럽게 열어줄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는데, 드뷔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대로 된 무대에서 드뷔시 연주는 처음이기 때문에 부담되기도 하지만요.
관객들도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음악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조금씩 귀가 열리고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잖아요. 저는 그 첫 문을 여는 역할을 드뷔시가 가장 잘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Petite Suite는 네 개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저희 두 사람이 최대한 다양한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연습하면서도 음색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서로의 소리를 어떻게 섞을 것인지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공연장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작품은 모차르트인데 연주하기가 제법 까다로운 작품입니다. 너무 정통적이고, 그래서 더 어렵고요. 아버지와 저 모두 비엔나에서 공부했잖아요. 저는 비엔나에서 공부한 연주자들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섬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표님은 “쫀쫀하다”고 표현하실지 모르지만(웃음), 정말 아주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음악이 비엔나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비엔나 음악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섬세함은 지금도 제 음악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통해서는 화려하기보다는 정통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세밀한 표현들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1부 전체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정통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7. 그렇다면 2부 프로그램은 조금 다른 성격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진성민:
2부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와 비제의 ‘카르멘 판타지’입니다. 생상스는 오케스트라 작품이지만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연주하는거죠. 2부는 조금 더 관객들을 위해 선택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이고, 클래식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편안하게 들으실 수 있는 작품들이죠. 사실 공연장에는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아마 절반 이상은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일 수도 있고요. 그런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기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의 사육제’의 다양한 동물들처럼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고, 음악도 계속 다른 표정으로 바뀝니다. 또 ‘카르멘 판타지’는 오페라의 친숙한 선율들이 들어 있어서 조금 더 극적이고 화려합니다. 그래서 드뷔시, 모차르트, 생상스, 비제로 이어지는 흐름 자체가 공연의 기승전결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인터미션 이후에는 연주자도 몸이 더 풀려 있고, 관객들도 공연에 충분히 몰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조금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객관적으로 들어도 ‘정말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했거든요.

8. 저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드뷔시에서는 자연의 풍경을, 모차르트에서는 고전적인 질서를, 그리고 생상스와 비제에서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서사가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스토리가 깊이 들어간 느낌입니다.


진용재:
맞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다른 곡들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같은 빈에서 공부했으니까 다른 작품을 넣어볼까,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면서 2~3년 전부터 계속 프로그램을 바꾸고 또 바꾸고 했습니다.
저는 “이 곡이 좋겠다”고 하면 성민이는 또 다른 곡을 이야기하고, 그러면 제가 “그건 하지 말자”고 하고, 또 다시 연습해 보고…. 그렇게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지금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선택한 결과라고 보시면 됩니다.


9. 이번 공연은 단순한 듀오 리사이틀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만드는 무대입니다. 이번 연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진용재:
글쎄요. 부자가 이렇게 함께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사실 연습을 하다 보면 요즘은 제가 두세 시간만 연습해도 먼저 지쳐버립니다. 솔직히 몸이 예전 같지 않지요. 이제 은퇴를 생각할 나이고, 성민이는 이제 한창 더 많은 무대를 만들어 가야 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도 함께 연습하면서 템포를 어떻게 가져갈지, 아티큘레이션을 어떻게 표현할지,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계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시간이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연주 때도 그렇겠지만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즐겁습니다.
이번 연주를 통해 관객들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 마음입니다. 연주를 하다 보면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완벽하지 않은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10. 제가 바라는 건 이제 며느리도 피아니스트로 하시고요 , 손자도 피아노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역사를 이뤄보세요.(웃음) 성민 씨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떤 마음이 가장 컸습니까?


진성민:
대표님께서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부자가 함께 연주한다’는 의미를 너무 앞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하면 저희만 감동하는 공연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연주자는 냉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유학 시절 교수님께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비엔나에서도 늘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연의 의미보다 먼저 음악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와 저는 서른 살 정도 차이가 납니다. 당연히 저는 젊음이 있고, 아버지는 오랜 연륜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가 평생 쌓아오신 경험과 음악의 깊이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아버지도 제 세대가 가진 에너지와 감각은 가질 수 없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중간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음과 노련함이 함께 섞였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음악 말입니다. 관객들께서도 그런 부분을 들으시면서 두 사람의 차이를 비교하기보다, 두 세대가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 느껴주시면 훨씬 더 재미있게 공연을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저는 두 분의 공연이 단순한 듀오 연주가 아니라 오늘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무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용재:
맞습니다. 요즘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하는 시간이 참 적습니다. 같이 살아도 마음은 멀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음악 덕분에 지금도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연습하고,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큰 행복입니다.


진성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저에게도 굉장히 큰 의미입니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으로만 생각했던 아버지를 이제는 한 명의 연주자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연이 그런 마음을 음악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은 왜 만들었을까? 인간은 공동체이고 서로의 관계에 의해서 인간임을 느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투 피아노는 서로 간에 소원해진 관계를 더 이어주기도 하고 또 서먹서먹한 관계를 또 따뜻하게 해주기도 하고 슈만과 클라라처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도 있다.
피아니스트 진용재와 진성민의 부자 연주회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요즘 시리즈드라마 ‘참교육’에도 나오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버렸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먼 게 아니라 마음의 거리는 100년이 넘는다. 그럴 즈음에 이번 무대는 얼마나 아름다운 무대인가. 대한민국의 부모란 존재눈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끼치는 영향이랄게 점점 작아지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의미있는 연주회가 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 내내 진용재는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들이 음악 이야기를 이어갈 때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진성민 역시 자신의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은 아버지에게 배운 시간과 무대에서 발견한 가치를 이야기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화려한 수상 경력이나 테크닉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됐다.
이번 ‘아버지와 나… 그리고 Piano’는 단순히 부자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한 공연이 아니다. 한 사람은 평생 피아노 앞에서 자신의 삶을 증명해 온 연주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젊은 피아니스트다. 서른 해의 시간 차이가 만들어낸 서로 다른 감성과 경험은 두 대의 피아노 위에서 경쟁이 아닌 대화가 되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어느새 서로를 존중하는 음악적 동반자의 관계로 확장된다.
오늘날 부모와 자식이 함께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언어로 삶을 나누는 일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그런 시대에 이번 리사이틀은 음악이 단지 소리를 만드는 예술이 아니라 세대를 잇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건네는 눈빛과 호흡은 어떤 화려한 기교보다 깊은 울림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아마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음악으로 이어진 한 아버지와 한 아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