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단 20주년을 맞은 서울솔리스트첼로앙상블, 음악감독 송희송
첼로 24대의 웅장한 울림은 단순한 기념 연주로 볼 수 없다. 오는 7월 7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 창단 20주년 기념음악회는 지난 20년간 쌓아온 예술적 성과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무대다. 국내외 정상급 첼리스트들이 함께하는 이번 공연에는 모차르트와 피아졸라를 비롯한 세계 명곡은 물론, 우리 전래동요를 24대의 첼로를 위해 새롭게 편곡한 창작 작품까지 담아 첼로 음악의 폭넓은 가능성을 선보인다.
그러나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의 진정한 가치는 뛰어난 연주력에만 있지 않다. 음악감독 송희송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첼로의 대중화와 사회공헌을 꾸준히 실천하며 장애 음악인과 아마추어 교육, 우리 음악의 창작과 보급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이번 무대 역시 세대와 장애의 경계를 넘어 음악으로 사람을 잇고, 한국적 콘텐츠를 세계적인 첼로 음악으로 확장해 온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지금, 송희송 교수는 이번 공연을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이라고 말한다. 월간리뷰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이 걸어온 20년의 발자취와 음악교육에 대한 신념, 그리고 음악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려는 그의 꿈을 들어보았다.
음악감독 송희송은 서울대와 빈국립음대를 최우수 수석으로 졸업한 한국 첼로계의 대표적인 교육자이자 연주자다. 오스트리아 문화부 장관상 수상과 정부 장학생 선발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미주, 호주 등 세계 각국의 음악제에서 초청 연주자와 마스터클래스 교수로 활동해 왔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오스트리아 빈 Wiener Musicseminar 상임교수, 사단법인 소체 이사장, UN(KLF) 문화예술위원장 및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연주와 교육, 국제 문화교류를 아우르는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1. 올해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이 창단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앙상블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사람을 좋아해서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음악 나누는 걸 좋아했고, 무엇보다 앙상블을 무척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연주 활동을 하면서 늘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독주도 의미가 있지만 여러 연주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은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는 사실이죠. 첼리스트 한 사람도 훌륭하지만, 그런 연주자들이 여덟 명, 열두 명, 스물네 명이 함께 만들어내는 울림은 훨씬 더 크고 풍성하겠죠. 첼로앙상블을 꿈군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공부예요. 유학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연주와 교육에 매달리느라 함께 연구하고 토론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음악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이야기하고, 함께 연습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사라지는 것이죠. 그래서 뜻이 맞는 연주자들과 함께 모여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성장하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귀국할 당시에는 제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젊은 첼리스트들과 앙상블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와 일곱 살, 여덟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젊은 연주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찾아가 설득했죠. 함게 하는 분들은 무엇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성품을 감안했죠. 김우진, 유종환, 김정현 등 당시 젊고 가능성이 큰 연주자들에게 직접 연락을 드렸는데 모두 흔쾌히 “송 선생님이 하신다면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호응해주셨습니다. 그런 인연이 20년이 되었네요.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을 운영하면서 재미있는 경험도 많았습니다. 한때는 남성 단원들만, 또 여성 단원들만 따로 연주해 본 적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음색의 차이가 무척 크더군요. 여성 단원들이 아무리 힘을 써도 남성 첼리스트 특유의 깊고 묵직한 울림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렵다는 걸 개달았죠.(웃음) 반대로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음색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런 차이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도 앙상블를 운영하면서 얻은 또 하나의 소중한 공부였습니다.
2.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은 어떤 의미를 담고 준비하셨나요?
이번 공연은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하는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연 구성 자체에도 그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전반부는 젊은 세대 첼리스트 열두 명만으로 무대를 꾸몄습니다. 앞으로 우리 앙상블을 이끌어 갈 세대에게 중심을 맡겨보자는 의미죠. 후반부는 창단 멤버부터 가장 최근에 합류한 단원까지 모두 함께하는 스물네 명의 대편성 무대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많은 분들이 첼로만으로 두 시간 가까운 공연을 하면 자칫 단조롭지 않을까 생각하시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프로그램도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한거고요.
첫 곡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1악장입니다. 익숙한 선율로 공연의 문을 열고 이어 첼리스트 홍진호가 협연 무대를 선보입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르는데,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는 ‘재클린의 눈물’ 대신 이번에는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베 마리아’를 연주할 예정입니다. 작곡가 미상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 워낙 아름다워서 충분히 감동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어지는 곡은 카를로스 가르델의 ‘El Dia Que Me Quieras’, 샤를 구노의 ‘Ave Maria’, 피아졸라의 ‘Le Grand Tango’와 ‘Fuga y Misterio’입니다. 특히 오케스트라 작품과 성악곡, 탱고 음악을 첼로 앙상블만의 음색으로 재탄생시키며 첼로라는 악기의 표현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줄 예정이죠.특히 피아졸라의 탱고입는 홍진호가 jtbc의 ‘슈퍼밴드’에 출연했을 당시 연주했던 곡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익숙한 선율과 새로운 해석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3. 이번 공연에는 장애 음악인과 함께하는 특별한 무대도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뜻깊은 무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차지우 학생은 유튜브 레슨을 통해 처음 만난 친구입니다. 코로나 시절 온라인으로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모집해 무료 레슨을 진행했는데 다섯 명 정도가 신청했습니다. 그 가운데 세 번째 학생이 장애를 가진 친구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장애 학생을 지도해 본 경험도 없었으니까요.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수업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임할 때 정말 열심히 준비해오는 것입니다. 30분 수업인데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저희도 장애 음악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계획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저는 음악교육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 연주자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아마추어와 장애 음악인에게도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장애 학생들을 위한 팀을 만들고 오디션까지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직접 가르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제자들과 함께 지도하기 시작했고, 제자들이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레슨을 맡아 주었습니다. 저는 전체적인 방향을 잡아주고 앙상블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다리를 다쳐 1년 정도 자리를 비웠을 때도 제자들은 단 한 번도 수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뻐하신 분들은 부모님들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백 번, 이백 번을 설명해도 해결되지 않던 부분이 수업에서는 금세 해결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학생들도 행복해했고, 제자들 역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희 역시 부모님들의 헌신을 보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반성하게 됩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4. 장애 음악인 교육과 함께 아마추어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 과정에서 특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셨습니까.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아마추어 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공자와 아마추어는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전공자는 다른 사람이 듣기에 좋은 연주를 해야 하지만, 아마추어는 무엇보다 자신이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전공자는 남을 위해 연주하지만 아마추어는 자기 만족을 위해 연주하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욕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연습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내고 싶어집니다. 그 마음은 전공자나 아마추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즐거움을 잃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차지우 학생도 그런 과정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일취월장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발전했습니다. 서울솔리스트 첼로콩쿠르 제13회 대상 수상자인 차지우는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원 과정에서 학업과 연주를 병행하며 각종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해 온 차세대 첼리스트입니다. 현재는 장애 첼리스트의 새로운 롤모델로 자리매김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이 차지우와 홍진호, 그리고 제가 함께 피아졸라의 ‘Le Grand Tango’를 연주하게 됩니다. 뒤에서는 열 명의 첼리스트들이 함께 반주를 맡아 더욱 풍성한 무대를 만들어 줄 예정입니다. 저에게도 매우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5.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은 오래전부터 우리 동요를 첼로 음악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오셨습니다. 2부에는 우리 동요를 연주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것입니까?
2015년부터 코로나 직전까지 약 5년 동안 젊은 작곡가 다섯 명에게 우리 전래동요 편곡을 꾸준히 위촉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 팀을 만든 셈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음악을 배울 때 대부분 서양음악부터 접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정서가 담긴 전래동요를 먼저 첼로로 만나게 한다면 아이들이 음악을 훨씬 더 가깝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작곡가들에게 각각 하나의 주제를 정해 주고 전래동요를 첼로앙상블로 연주할 수 있도록 새롭게 편곡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어느새 열 곡이 훌쩍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덟 대의 첼로 편성으로 연주했지만 이번 20주년 공연에서는 스물네 대의 첼로가 함께 연주합니다. 규모도 훨씬 커졌고 음악적 울림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그중 이번 무대에서는 김민정의 ‘우리집에 왜 왔니’, 정나래의 ‘오빠생각’, 강경묵의 ‘섬집아기’, 임경은의 ‘쾌지나칭칭나네’, 박종엽의 ‘꼬부랑 인생의 길’이 24대의 첼로를 위해 새롭게 작곡되어 연주됩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거의 제 개인 비용으로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문화예술 창작지원사업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앞으로는 서울문화재단을 비롯한 여러 지원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
6. 앞으로는 장애 음악인을 위한 오케스트라나 예술재단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입니다. 단순히 장애인 오케스트라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고, 함께 공연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재단을 세우고 싶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을 비롯한 여러 예술 분야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 된다면 더욱 좋겠죠.
지금까지는 개인이 개별적으로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재단이라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훨씬 더 많은 후원과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 바쁘다 보니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같은 꿈을 품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단이 세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7. 20년 동안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을 이끌어오시면서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적은 없으셨는지요?
단체를 접고 싶을 만큼은 없었죠(웃음). 다만 지난 20년 동안 음악계의 환경은 많이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세대 간의 사고방식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스승과 제자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음악을 배웠거든요. 스승에 대한 존경이나 예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만의 방식이 있고, 기성세대는 또 그 나름의 시각이 있습니다. 10년 정도의 나이 차이만 나도 대화의 방식이나 사고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젊은 연주자들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눈에는 늘 조금 부족해 보이기 마련이고, 반대로 젊은 세대에게는 기성세대가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20주년 공연에서도 그런 고민을 담았습니다. 사회를 젊은 변호사이자 인플루언서에게 맡긴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공연 진행뿐 아니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적극 홍보해 주겠다고 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원들이 블랙 앤 화이트 드레스코드로 관객을 맞이하자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공연장을 단순히 연주만 듣고 돌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마치 품격 있는 리셉션이나 자선파티처럼 따뜻하게 맞이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은 어떠셨는지,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 어떤 음악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앞으로 클래식 공연문화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 어느덧 음악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셨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승들의 말씀이 새롭게 이해되는 순간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요즘은 거의 매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젊었을 때는 당장 눈앞의 연주와 수업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스승님들은 늘 훨씬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셨습니다. 음악만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음악을 해야 하는지를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결코 잔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배워야 한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따라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그 말씀들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모두 이해가 됩니다. 아마 제가 끝까지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또 하나 느끼는 것은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티칭은 경험이 쌓일수록 훨씬 단순해집니다. 예전에는 열 마디를 설명해야 학생이 이해했다면 지금은 두세 마디만으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젊은 제자들의 자리를 차지할 이유도 없습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가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또래 음악인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합니다. 은퇴 후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아마추어와 장애 음악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전문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젊은 교수들이 충분히 잘 지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우리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음악가의 또 다른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기도할 때도 늘 같은 기도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르치기 어려운 아이들을 저에게 보내주십시오.’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저를 가장 필요로 하고, 제가 가진 경험이 가장 의미 있게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티칭은 곧 인격의 전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신하게 됩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에는 교수님들의 연주만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삶의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음악 앞에서의 자세를 함께 배웠습니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 제자들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음악만 닮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끈기, 책임감 같은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닮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티칭은 결국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악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10. 마지막으로 이번 20주년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단체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이번 공연을 통해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이 따뜻한 단체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습니다. 음악적 기량을 과시하는 무대가 아니라 봉사와 나눔, 세대 간의 소통, 그리고 사회적 화합을 실천하는 열린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저희 앙상블로 옮겨온 단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 냄새가 나고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거장이 아니라 평생 함께하고 싶은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은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도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은 사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음악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봉사하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여러 예술교육을 시키지만, 그 가운데서도 악기 교육이 주는 힘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악기는 단순히 연주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배려, 그리고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공연이 첼로라는 악기가 지닌 따뜻한 울림과 아름다움을 많은 분들이 새롭게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종섭
창단 20주년을 맞은 서울솔리스트첼로앙상블, 음악감독 송희송
첼로 24대의 웅장한 울림은 단순한 기념 연주로 볼 수 없다. 오는 7월 7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 창단 20주년 기념음악회는 지난 20년간 쌓아온 예술적 성과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무대다. 국내외 정상급 첼리스트들이 함께하는 이번 공연에는 모차르트와 피아졸라를 비롯한 세계 명곡은 물론, 우리 전래동요를 24대의 첼로를 위해 새롭게 편곡한 창작 작품까지 담아 첼로 음악의 폭넓은 가능성을 선보인다.
그러나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의 진정한 가치는 뛰어난 연주력에만 있지 않다. 음악감독 송희송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첼로의 대중화와 사회공헌을 꾸준히 실천하며 장애 음악인과 아마추어 교육, 우리 음악의 창작과 보급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왔다. 이번 무대 역시 세대와 장애의 경계를 넘어 음악으로 사람을 잇고, 한국적 콘텐츠를 세계적인 첼로 음악으로 확장해 온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지금, 송희송 교수는 이번 공연을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이라고 말한다. 월간리뷰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이 걸어온 20년의 발자취와 음악교육에 대한 신념, 그리고 음악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려는 그의 꿈을 들어보았다.
음악감독 송희송은 서울대와 빈국립음대를 최우수 수석으로 졸업한 한국 첼로계의 대표적인 교육자이자 연주자다. 오스트리아 문화부 장관상 수상과 정부 장학생 선발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미주, 호주 등 세계 각국의 음악제에서 초청 연주자와 마스터클래스 교수로 활동해 왔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오스트리아 빈 Wiener Musicseminar 상임교수, 사단법인 소체 이사장, UN(KLF) 문화예술위원장 및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연주와 교육, 국제 문화교류를 아우르는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1. 올해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이 창단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앙상블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사람을 좋아해서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음악 나누는 걸 좋아했고, 무엇보다 앙상블을 무척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연주 활동을 하면서 늘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독주도 의미가 있지만 여러 연주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은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는 사실이죠. 첼리스트 한 사람도 훌륭하지만, 그런 연주자들이 여덟 명, 열두 명, 스물네 명이 함께 만들어내는 울림은 훨씬 더 크고 풍성하겠죠. 첼로앙상블을 꿈군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공부예요. 유학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연주와 교육에 매달리느라 함께 연구하고 토론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음악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이야기하고, 함께 연습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사라지는 것이죠. 그래서 뜻이 맞는 연주자들과 함께 모여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성장하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귀국할 당시에는 제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젊은 첼리스트들과 앙상블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와 일곱 살, 여덟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젊은 연주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찾아가 설득했죠. 함게 하는 분들은 무엇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성품을 감안했죠. 김우진, 유종환, 김정현 등 당시 젊고 가능성이 큰 연주자들에게 직접 연락을 드렸는데 모두 흔쾌히 “송 선생님이 하신다면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호응해주셨습니다. 그런 인연이 20년이 되었네요.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을 운영하면서 재미있는 경험도 많았습니다. 한때는 남성 단원들만, 또 여성 단원들만 따로 연주해 본 적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음색의 차이가 무척 크더군요. 여성 단원들이 아무리 힘을 써도 남성 첼리스트 특유의 깊고 묵직한 울림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렵다는 걸 개달았죠.(웃음) 반대로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음색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런 차이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도 앙상블를 운영하면서 얻은 또 하나의 소중한 공부였습니다.
2.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은 어떤 의미를 담고 준비하셨나요?
이번 공연은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하는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연 구성 자체에도 그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전반부는 젊은 세대 첼리스트 열두 명만으로 무대를 꾸몄습니다. 앞으로 우리 앙상블을 이끌어 갈 세대에게 중심을 맡겨보자는 의미죠. 후반부는 창단 멤버부터 가장 최근에 합류한 단원까지 모두 함께하는 스물네 명의 대편성 무대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많은 분들이 첼로만으로 두 시간 가까운 공연을 하면 자칫 단조롭지 않을까 생각하시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습니다. 프로그램도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한거고요.
첫 곡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1악장입니다. 익숙한 선율로 공연의 문을 열고 이어 첼리스트 홍진호가 협연 무대를 선보입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르는데,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는 ‘재클린의 눈물’ 대신 이번에는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베 마리아’를 연주할 예정입니다. 작곡가 미상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 워낙 아름다워서 충분히 감동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어지는 곡은 카를로스 가르델의 ‘El Dia Que Me Quieras’, 샤를 구노의 ‘Ave Maria’, 피아졸라의 ‘Le Grand Tango’와 ‘Fuga y Misterio’입니다. 특히 오케스트라 작품과 성악곡, 탱고 음악을 첼로 앙상블만의 음색으로 재탄생시키며 첼로라는 악기의 표현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줄 예정이죠.특히 피아졸라의 탱고입는 홍진호가 jtbc의 ‘슈퍼밴드’에 출연했을 당시 연주했던 곡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익숙한 선율과 새로운 해석이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3. 이번 공연에는 장애 음악인과 함께하는 특별한 무대도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뜻깊은 무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차지우 학생은 유튜브 레슨을 통해 처음 만난 친구입니다. 코로나 시절 온라인으로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모집해 무료 레슨을 진행했는데 다섯 명 정도가 신청했습니다. 그 가운데 세 번째 학생이 장애를 가진 친구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장애 학생을 지도해 본 경험도 없었으니까요.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수업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임할 때 정말 열심히 준비해오는 것입니다. 30분 수업인데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저희도 장애 음악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계획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저는 음악교육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 연주자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아마추어와 장애 음악인에게도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장애 학생들을 위한 팀을 만들고 오디션까지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직접 가르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제자들과 함께 지도하기 시작했고, 제자들이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레슨을 맡아 주었습니다. 저는 전체적인 방향을 잡아주고 앙상블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다리를 다쳐 1년 정도 자리를 비웠을 때도 제자들은 단 한 번도 수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기뻐하신 분들은 부모님들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백 번, 이백 번을 설명해도 해결되지 않던 부분이 수업에서는 금세 해결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학생들도 행복해했고, 제자들 역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희 역시 부모님들의 헌신을 보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반성하게 됩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4. 장애 음악인 교육과 함께 아마추어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 과정에서 특별히 느끼신 점이 있으셨습니까.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아마추어 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전공자와 아마추어는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전공자는 다른 사람이 듣기에 좋은 연주를 해야 하지만, 아마추어는 무엇보다 자신이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전공자는 남을 위해 연주하지만 아마추어는 자기 만족을 위해 연주하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욕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연습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내고 싶어집니다. 그 마음은 전공자나 아마추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즐거움을 잃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차지우 학생도 그런 과정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일취월장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발전했습니다. 서울솔리스트 첼로콩쿠르 제13회 대상 수상자인 차지우는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원 과정에서 학업과 연주를 병행하며 각종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해 온 차세대 첼리스트입니다. 현재는 장애 첼리스트의 새로운 롤모델로 자리매김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이 차지우와 홍진호, 그리고 제가 함께 피아졸라의 ‘Le Grand Tango’를 연주하게 됩니다. 뒤에서는 열 명의 첼리스트들이 함께 반주를 맡아 더욱 풍성한 무대를 만들어 줄 예정입니다. 저에게도 매우 뜻깊은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5.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은 오래전부터 우리 동요를 첼로 음악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오셨습니다. 2부에는 우리 동요를 연주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것입니까?
2015년부터 코로나 직전까지 약 5년 동안 젊은 작곡가 다섯 명에게 우리 전래동요 편곡을 꾸준히 위촉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 팀을 만든 셈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음악을 배울 때 대부분 서양음악부터 접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정서가 담긴 전래동요를 먼저 첼로로 만나게 한다면 아이들이 음악을 훨씬 더 가깝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작곡가들에게 각각 하나의 주제를 정해 주고 전래동요를 첼로앙상블로 연주할 수 있도록 새롭게 편곡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어느새 열 곡이 훌쩍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덟 대의 첼로 편성으로 연주했지만 이번 20주년 공연에서는 스물네 대의 첼로가 함께 연주합니다. 규모도 훨씬 커졌고 음악적 울림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그중 이번 무대에서는 김민정의 ‘우리집에 왜 왔니’, 정나래의 ‘오빠생각’, 강경묵의 ‘섬집아기’, 임경은의 ‘쾌지나칭칭나네’, 박종엽의 ‘꼬부랑 인생의 길’이 24대의 첼로를 위해 새롭게 작곡되어 연주됩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거의 제 개인 비용으로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문화예술 창작지원사업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앞으로는 서울문화재단을 비롯한 여러 지원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계획입니다.
6. 앞으로는 장애 음악인을 위한 오케스트라나 예술재단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입니다. 단순히 장애인 오케스트라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고, 함께 공연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재단을 세우고 싶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을 비롯한 여러 예술 분야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 된다면 더욱 좋겠죠.
지금까지는 개인이 개별적으로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재단이라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훨씬 더 많은 후원과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 바쁘다 보니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같은 꿈을 품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단이 세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7. 20년 동안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을 이끌어오시면서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적은 없으셨는지요?
단체를 접고 싶을 만큼은 없었죠(웃음). 다만 지난 20년 동안 음악계의 환경은 많이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세대 간의 사고방식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스승과 제자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음악을 배웠거든요. 스승에 대한 존경이나 예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만의 방식이 있고, 기성세대는 또 그 나름의 시각이 있습니다. 10년 정도의 나이 차이만 나도 대화의 방식이나 사고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젊은 연주자들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눈에는 늘 조금 부족해 보이기 마련이고, 반대로 젊은 세대에게는 기성세대가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20주년 공연에서도 그런 고민을 담았습니다. 사회를 젊은 변호사이자 인플루언서에게 맡긴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공연 진행뿐 아니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적극 홍보해 주겠다고 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원들이 블랙 앤 화이트 드레스코드로 관객을 맞이하자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공연장을 단순히 연주만 듣고 돌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마치 품격 있는 리셉션이나 자선파티처럼 따뜻하게 맞이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은 어떠셨는지,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 어떤 음악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앞으로 클래식 공연문화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 어느덧 음악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셨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승들의 말씀이 새롭게 이해되는 순간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요즘은 거의 매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젊었을 때는 당장 눈앞의 연주와 수업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스승님들은 늘 훨씬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셨습니다. 음악만이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음악을 해야 하는지를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도 결코 잔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배워야 한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따라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그 말씀들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모두 이해가 됩니다. 아마 제가 끝까지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또 하나 느끼는 것은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티칭은 경험이 쌓일수록 훨씬 단순해집니다. 예전에는 열 마디를 설명해야 학생이 이해했다면 지금은 두세 마디만으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젊은 제자들의 자리를 차지할 이유도 없습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가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또래 음악인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합니다. 은퇴 후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아마추어와 장애 음악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전문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젊은 교수들이 충분히 잘 지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우리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음악가의 또 다른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기도할 때도 늘 같은 기도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르치기 어려운 아이들을 저에게 보내주십시오.’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저를 가장 필요로 하고, 제가 가진 경험이 가장 의미 있게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티칭은 곧 인격의 전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신하게 됩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에는 교수님들의 연주만 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삶의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음악 앞에서의 자세를 함께 배웠습니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 제자들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음악만 닮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끈기, 책임감 같은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닮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티칭은 결국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악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10. 마지막으로 이번 20주년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단체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이번 공연을 통해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이 따뜻한 단체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습니다. 음악적 기량을 과시하는 무대가 아니라 봉사와 나눔, 세대 간의 소통, 그리고 사회적 화합을 실천하는 열린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저희 앙상블로 옮겨온 단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 냄새가 나고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쁩니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거장이 아니라 평생 함께하고 싶은 가족 같은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은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서울솔리스트 첼로앙상블도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은 사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음악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봉사하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여러 예술교육을 시키지만, 그 가운데서도 악기 교육이 주는 힘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악기는 단순히 연주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배려, 그리고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공연이 첼로라는 악기가 지닌 따뜻한 울림과 아름다움을 많은 분들이 새롭게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