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마침내 홍난파가곡제 무대에 서다
재즈는 자유를 상징하는 음악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자유가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화려한 즉흥과 눈부신 테크닉 속에서 자유를 찾고, 또 어떤 이는 악보 한 줄 한 줄에 숨어 있는 작곡가의 사유를 끝까지 따라가며 자유를 발견한다. 우리나라에서 무려 25년 넘게 재즈를 연주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해 온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론 브랜튼(Ronn Branton)는 후자에 속한 음악가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재즈라는 장르 안에 머무르면서도 언제나 한국 가곡과 동요,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해 온 보기 드문 예술가다.
오는 9월 20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홍난파가곡제에서 론 브랜튼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의 딸인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이 홍난파의 대표 가곡 '성불사의 밤'과 '무지개'를 노래하게 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단순히 한 명의 외국인 연주자가 한국 가곡 무대에 선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는 20여 년 동안 홍난파의 음악을 사랑해 온 한 음악가가 마침내 그 음악의 본향으로 초대받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아버지가 악보 속에서 발견했던 아름다움을 딸이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꽃피우는 ‘세대를 잇는’ 음악의 서사이기도 하다.
귀가 아닌 악보로 만난 홍난파
론 브랜튼에게 있어 홍난파는 최근에 알게 된 작곡가가 아니었다. 한국에 정착한 뒤 한국 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가곡백과와 같은 수많은 가곡집을 구입해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음원을 먼저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연주자들이 귀로 음악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그는 오직 악보만을 바라보며 어떤 작품이 뛰어난지 판단했고, 머릿속으로 그 선율을 상상하며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골라낸 작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홍난파의 곡이었다.
"골랐다 하면 홍난파 선생님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음악을 먼저 듣지 않았습니다. 악보만 보고도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의 고백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작곡가의 구조와 형식을 먼저 읽어내는 음악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는 홍난파를 처음부터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렀고, 실제로 자신의 공연마다 홍난파의 작품을 한두 곡씩 반드시 연주해 왔다. 홍난파의 선율은 단순하면서도 구조가 치밀하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품고 있으며, 재즈적 변주를 견디는 단단한 골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이러한 인연은 자연스럽게 음반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한국 가곡과 동요를 재즈로 새롭게 해석한 음반 ‘낮에 나온 반달’을 발표하며 한국 음악이 가진 서정성과 재즈의 즉흥성을 하나의 언어로 엮어냈고, 그 음반에는 홍난파의 '무지개'를 비롯해 우리 가곡과 동요들이 담겼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선율이지만 브랜튼은 그것을 단순히 재즈풍으로 꾸미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원곡이 지닌 구조를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화성과 리듬을 발견해 냈고, 그 결과 익숙한 노래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관객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음악도 재즈로 풀어내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한마디에는 그가 25년 동안 한국에서 추구해 온 음악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이번 홍난파가곡제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늦은 만남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전부터 홍난파 가옥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번번이 인연이 닿지 않았고, 이번에야 비로소 관계자들과 연결되면서 20년 동안 품어왔던 꿈을 현실로 만들게 되었다. 오랫동안 홍난파의 음악을 자신의 공연 속에 담아왔지만 정작 홍난파를 기리는 공식 무대에는 한 번도 설 기회가 없었다. 그러기에 이번 초청은 단순한 출연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음악적 존경과 애정이 마침내 하나의 결실로 이어진 순간이라 할 수 있다.이번 무대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성악가가 딸 ‘알렉스 도연 브랜튼’이기 때문이다. 홍난파의 선율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그 선율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은 이제 딸이 되었다. 브랜튼은 피아노 앞에서 악보를 통해 홍난파를 읽어 왔고, 도연은 성악가로 성장하며 그 음악을 자신의 목소리로 완성해 간다. 한 사람은 재즈를 통해 한국 가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정통 성악의 언어로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가족 공연이 아니라 음악이 세대를 건너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즈로 다시 쓰는 한국 가곡
론 브랜튼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흔히 '미국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부터 붙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국적이나 장르로 설명하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음악을 만나고, 어떤 사람들과 호흡하며, 무엇을 후대에 남길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지난 25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오직 한국에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완성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재즈는 목적이 아니라 표현의 언어였고, 한국 가곡과 동요는 그 언어를 통해 새롭게 살아나는 가장 아름다운 소재가 되었다.
한편 그가 이끌고 있는 밴드, ‘브랜튼 재즈밴드’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재즈 공연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제1,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플루트, 피아노, 드럼, 베이스, 그리고 성악과 재즈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이 함께 만드는 사운드는 전통적인 재즈 콤보를 넘어 하나의 크로스오버 오케스트라에 가깝다.
그는 공연의 성격에 따라 재즈 보컬을 세우기도 하고 성악가를 중심에 두기도 하며, 때로는 가곡과 가요를, 때로는 동요를 재즈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 장르를 섞기 위해 장르를 섞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가진 본질을 더 풍성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의 편곡은 언제나 원곡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철학은 지난 25년 동안 이어온 수많은 공연 프로젝트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매년 연말이면 관객들이 기다리는 '재즈 크리스마스'는 어느덧 25년이라는 시간을 이어오며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1,500석에서 2,0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채우는 대표적인 연말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섬머 나잇 재즈', '재즈 7080', '재즈 동요'와 같은 다양한 시리즈는 재즈를 일부 애호가들만의 음악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속의 음악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한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500석을 매진시키기도 했던 그의 공연은 화려한 스타 마케팅보다 오랜 시간 쌓아온 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올해 역시 그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과 경기아트센터, 아트센터인천을 비롯한 여러 공연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고,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양산문화예술회관 공연도 다시 이어진다. 더불어 서울재즈앙상블과 함께 다섯 개 도시를 순회하며 재즈 콰르텟과 클래식 보컬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이 무대에서는 홍난파의 '낮에 뜬 반달', '반달', '무지개'를 비롯해 '오빠생각', '섬집아기', '꽃밭에서',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등 우리 동요와 가곡을 재즈로 편곡한 작품들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이러한 공연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K-팝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시대라면 K-가곡과 K-동요 역시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오랜 신념이다.

악보 너머에 숨은 이야기를 연주하다
그의 음악적 상상력은 음반 작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Water'라는 작품집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한국에서 살아오며 만난 모든 '물'의 모습을 음악으로 옮겼다. 산사의 빗소리와 논에 고인 물, 옹달샘과 강물, 홍수와 바다, 심지어 세월호를 기억하는 눈물까지도 하나의 음악적 모티프로 삼았다. 물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 슬픔과 치유를 동시에 이야기한 이 음반은 그의 음악이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하나의 서사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소프라노 김원정과 함께한 음반에서는 '줄리엣의 아리아'에 옛 골목에서 들리던 ‘찹쌀떡’ 장수의 외침을 모티프로 녹여냈다. 서양 오페라 속 줄리엣이 한국 골목 창밖으로 들려오는 삶의 소리를 들었다면 어떤 음악이 탄생했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브랜튼 특유의 유머와 감성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은 따로 있다. 그는 늘 ‘악보는 출발점일 뿐’이라고 말한다. 음표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이 음악의 전부라면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연주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예술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음악가는 악보에 적힌 음보다 그 음 사이에 숨겨진 감정과 시대, 작곡가의 삶과 사유를 읽어내야 하며, 연주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다시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그는 어떤 곡도 기계적으로 연주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의 삶과 감정,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호흡을 더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재즈이고, 그것이 그가 홍난파의 가곡을 20년 넘게 연주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선율, 딸의 목소리로 이어지다
이번 홍난파가곡제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 무대에는 그의 음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성장해 온 딸,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이 함께 서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피아노 앞에서 홍난파의 악보를 표현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악보를 노래로 피워낸다. 아버지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딸이 목소리로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이번 무대는 하나의 협연을 넘어 세대를 잇는 음악의 대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연의 음악은 사실 한국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세종문화회관에서 EBS가 제작한 뮤지컬 '애니'에 출연하면서 노래와 스텝댄스까지 경험했다. 당시 음악감독은 어린 도연의 가능성을 눈여겨보며 "이 아이는 반드시 음악을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도록 적극 권하지 않았다. 음악가의 길이 얼마나 치열하고 외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 스스로 원하는 길을 선택하기를 기다렸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도연은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 계시던 할머니는 손녀가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기를 간절히 바랐고, 결국 친척이 있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공립학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학교생활과 함께 사설 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았고, 이후 성악을 자신의 평생의 길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 론 브랜튼은 미국 출신이면서도 오히려 한국을 더 사랑해 딸의 유학을 직접 이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고, 딸 역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기를 원했다. 그것은 방임이 아니라 신뢰였다.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겠다는 부모의 조용한 철학이었다.
닮은 열정, 다른 음악... 그리고 같은 철학
도연은 훗날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결정지었다고 말한다.
"저는 죽는 순간까지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단 한 번도 성악이 제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새가 날개를 가졌다면 하늘을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저는 노래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이는 단순한 열정을 넘어 삶 자체를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예술가의 신념을 보여준다. 공부가 힘들고 자신감이 흔들리는 순간은 있었지만, 노래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만큼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젊은 음악가 특유의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음악적 열정은 과연 아버지를 닮은 것일까. 도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선을 긋는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닮았지만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유로운 재즈와 창작, 즉흥성을 즐기고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면, 자신은 악보와 작곡가에 대한 깊은 존중 위에서 정통 클래식을 탐구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주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버지는 딸의 해석을 끝까지 들어주고, 때로는 한발 물러서며 새로운 시각을 인정해 준다. 도연은 웃으며 "결국은 아빠가 져주시는 셈이지요."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의 음악세계를 존중하는 부녀의 관계가 담겨 있다.
반대로 도연 역시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한다. 그는 론 브랜튼이 자신의 삶과 경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어느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적 재능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 유행을 좇기 위해 음악을 바꾸는 일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두 사람이 완전히 일치한다. 브랜튼이 평소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하고 싶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명언이다. 그는 이 문장을 음악가의 삶에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다.

20년의 존경, 한 무대에서 꽃피우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이번 홍난파가곡제에서 함께 들려줄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성불사의 밤'이다. 홍난파 후기 가곡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화려한 기교보다 깊은 내면의 울림과 절제된 정서를 요구하는 곡으로, 우리 가곡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예술성을 지닌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론 브랜튼은 이 곡을 피아노로 받치며 홍난파 선율 속에 숨겨진 서정과 화성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낼 것이고, 도연은 정통 성악가의 목소리로 그 깊이를 노래하게 된다. 여기에 함께 부르는 '무지개'는 브랜튼이 오래전부터 사랑해 온 작품으로, 그의 음반에도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이번 무대는 결국 아버지가 20년 동안 품어온 홍난파에 대한 존경과 딸이 새롭게 피워낼 젊은 감성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20여년 전, 한 미국인 재즈 피아니스트는 낯선 나라의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든 가곡집의 악보를 읽으며 '이 작곡가는 한국의 슈베르트다.'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언젠가 홍난파를 기리는 공식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시간을 건너 결국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고, 진심으로 존경한 음악은 언젠가 반드시 그 주인을 찾아가게 마련 아닐까? 그렇게 20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음악적 동반자인 딸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다.
어쩌면 이번 홍난파가곡제는 단지 한 번의 공연이 아니라 악보 한 권에서 시작된 한 음악가의 존경이 무대에서 완성되는 순간이며, 한 세대의 음악이 다음 세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계승을 보여줄 것 같다.
글 김종섭
20년 만에 마침내 홍난파가곡제 무대에 서다
재즈는 자유를 상징하는 음악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자유가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화려한 즉흥과 눈부신 테크닉 속에서 자유를 찾고, 또 어떤 이는 악보 한 줄 한 줄에 숨어 있는 작곡가의 사유를 끝까지 따라가며 자유를 발견한다. 우리나라에서 무려 25년 넘게 재즈를 연주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해 온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론 브랜튼(Ronn Branton)는 후자에 속한 음악가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재즈라는 장르 안에 머무르면서도 언제나 한국 가곡과 동요,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해 온 보기 드문 예술가다.
오는 9월 20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홍난파가곡제에서 론 브랜튼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의 딸인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이 홍난파의 대표 가곡 '성불사의 밤'과 '무지개'를 노래하게 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단순히 한 명의 외국인 연주자가 한국 가곡 무대에 선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는 20여 년 동안 홍난파의 음악을 사랑해 온 한 음악가가 마침내 그 음악의 본향으로 초대받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아버지가 악보 속에서 발견했던 아름다움을 딸이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꽃피우는 ‘세대를 잇는’ 음악의 서사이기도 하다.
귀가 아닌 악보로 만난 홍난파
론 브랜튼에게 있어 홍난파는 최근에 알게 된 작곡가가 아니었다. 한국에 정착한 뒤 한국 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가곡백과와 같은 수많은 가곡집을 구입해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음원을 먼저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연주자들이 귀로 음악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그는 오직 악보만을 바라보며 어떤 작품이 뛰어난지 판단했고, 머릿속으로 그 선율을 상상하며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골라낸 작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홍난파의 곡이었다.
"골랐다 하면 홍난파 선생님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음악을 먼저 듣지 않았습니다. 악보만 보고도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의 고백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작곡가의 구조와 형식을 먼저 읽어내는 음악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는 홍난파를 처음부터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렀고, 실제로 자신의 공연마다 홍난파의 작품을 한두 곡씩 반드시 연주해 왔다. 홍난파의 선율은 단순하면서도 구조가 치밀하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품고 있으며, 재즈적 변주를 견디는 단단한 골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이러한 인연은 자연스럽게 음반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한국 가곡과 동요를 재즈로 새롭게 해석한 음반 ‘낮에 나온 반달’을 발표하며 한국 음악이 가진 서정성과 재즈의 즉흥성을 하나의 언어로 엮어냈고, 그 음반에는 홍난파의 '무지개'를 비롯해 우리 가곡과 동요들이 담겼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선율이지만 브랜튼은 그것을 단순히 재즈풍으로 꾸미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원곡이 지닌 구조를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화성과 리듬을 발견해 냈고, 그 결과 익숙한 노래는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관객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음악도 재즈로 풀어내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한마디에는 그가 25년 동안 한국에서 추구해 온 음악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이번 홍난파가곡제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늦은 만남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전부터 홍난파 가옥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번번이 인연이 닿지 않았고, 이번에야 비로소 관계자들과 연결되면서 20년 동안 품어왔던 꿈을 현실로 만들게 되었다. 오랫동안 홍난파의 음악을 자신의 공연 속에 담아왔지만 정작 홍난파를 기리는 공식 무대에는 한 번도 설 기회가 없었다. 그러기에 이번 초청은 단순한 출연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음악적 존경과 애정이 마침내 하나의 결실로 이어진 순간이라 할 수 있다.이번 무대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성악가가 딸 ‘알렉스 도연 브랜튼’이기 때문이다. 홍난파의 선율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버지였지만, 그 선율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은 이제 딸이 되었다. 브랜튼은 피아노 앞에서 악보를 통해 홍난파를 읽어 왔고, 도연은 성악가로 성장하며 그 음악을 자신의 목소리로 완성해 간다. 한 사람은 재즈를 통해 한국 가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정통 성악의 언어로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그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가족 공연이 아니라 음악이 세대를 건너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즈로 다시 쓰는 한국 가곡
론 브랜튼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흔히 '미국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부터 붙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국적이나 장르로 설명하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음악을 만나고, 어떤 사람들과 호흡하며, 무엇을 후대에 남길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지난 25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오직 한국에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완성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재즈는 목적이 아니라 표현의 언어였고, 한국 가곡과 동요는 그 언어를 통해 새롭게 살아나는 가장 아름다운 소재가 되었다.
한편 그가 이끌고 있는 밴드, ‘브랜튼 재즈밴드’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재즈 공연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제1,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플루트, 피아노, 드럼, 베이스, 그리고 성악과 재즈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보컬이 함께 만드는 사운드는 전통적인 재즈 콤보를 넘어 하나의 크로스오버 오케스트라에 가깝다.
그는 공연의 성격에 따라 재즈 보컬을 세우기도 하고 성악가를 중심에 두기도 하며, 때로는 가곡과 가요를, 때로는 동요를 재즈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 장르를 섞기 위해 장르를 섞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가진 본질을 더 풍성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의 편곡은 언제나 원곡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철학은 지난 25년 동안 이어온 수많은 공연 프로젝트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매년 연말이면 관객들이 기다리는 '재즈 크리스마스'는 어느덧 25년이라는 시간을 이어오며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1,500석에서 2,0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채우는 대표적인 연말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섬머 나잇 재즈', '재즈 7080', '재즈 동요'와 같은 다양한 시리즈는 재즈를 일부 애호가들만의 음악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속의 음악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한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500석을 매진시키기도 했던 그의 공연은 화려한 스타 마케팅보다 오랜 시간 쌓아온 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올해 역시 그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과 경기아트센터, 아트센터인천을 비롯한 여러 공연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고,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양산문화예술회관 공연도 다시 이어진다. 더불어 서울재즈앙상블과 함께 다섯 개 도시를 순회하며 재즈 콰르텟과 클래식 보컬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이 무대에서는 홍난파의 '낮에 뜬 반달', '반달', '무지개'를 비롯해 '오빠생각', '섬집아기', '꽃밭에서',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등 우리 동요와 가곡을 재즈로 편곡한 작품들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이러한 공연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K-팝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시대라면 K-가곡과 K-동요 역시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오랜 신념이다.
악보 너머에 숨은 이야기를 연주하다
그의 음악적 상상력은 음반 작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Water'라는 작품집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한국에서 살아오며 만난 모든 '물'의 모습을 음악으로 옮겼다. 산사의 빗소리와 논에 고인 물, 옹달샘과 강물, 홍수와 바다, 심지어 세월호를 기억하는 눈물까지도 하나의 음악적 모티프로 삼았다. 물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 슬픔과 치유를 동시에 이야기한 이 음반은 그의 음악이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하나의 서사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소프라노 김원정과 함께한 음반에서는 '줄리엣의 아리아'에 옛 골목에서 들리던 ‘찹쌀떡’ 장수의 외침을 모티프로 녹여냈다. 서양 오페라 속 줄리엣이 한국 골목 창밖으로 들려오는 삶의 소리를 들었다면 어떤 음악이 탄생했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브랜튼 특유의 유머와 감성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은 따로 있다. 그는 늘 ‘악보는 출발점일 뿐’이라고 말한다. 음표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이 음악의 전부라면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연주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예술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음악가는 악보에 적힌 음보다 그 음 사이에 숨겨진 감정과 시대, 작곡가의 삶과 사유를 읽어내야 하며, 연주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다시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그는 어떤 곡도 기계적으로 연주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의 삶과 감정,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호흡을 더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재즈이고, 그것이 그가 홍난파의 가곡을 20년 넘게 연주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선율, 딸의 목소리로 이어지다
이번 홍난파가곡제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 무대에는 그의 음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성장해 온 딸,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이 함께 서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피아노 앞에서 홍난파의 악보를 표현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악보를 노래로 피워낸다. 아버지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딸이 목소리로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이번 무대는 하나의 협연을 넘어 세대를 잇는 음악의 대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연의 음악은 사실 한국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세종문화회관에서 EBS가 제작한 뮤지컬 '애니'에 출연하면서 노래와 스텝댄스까지 경험했다. 당시 음악감독은 어린 도연의 가능성을 눈여겨보며 "이 아이는 반드시 음악을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도록 적극 권하지 않았다. 음악가의 길이 얼마나 치열하고 외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 스스로 원하는 길을 선택하기를 기다렸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도연은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 계시던 할머니는 손녀가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기를 간절히 바랐고, 결국 친척이 있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공립학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학교생활과 함께 사설 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았고, 이후 성악을 자신의 평생의 길로 선택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 론 브랜튼은 미국 출신이면서도 오히려 한국을 더 사랑해 딸의 유학을 직접 이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고, 딸 역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기를 원했다. 그것은 방임이 아니라 신뢰였다.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겠다는 부모의 조용한 철학이었다.
닮은 열정, 다른 음악... 그리고 같은 철학
도연은 훗날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결정지었다고 말한다.
"저는 죽는 순간까지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단 한 번도 성악이 제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새가 날개를 가졌다면 하늘을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저는 노래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이는 단순한 열정을 넘어 삶 자체를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예술가의 신념을 보여준다. 공부가 힘들고 자신감이 흔들리는 순간은 있었지만, 노래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만큼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젊은 음악가 특유의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음악적 열정은 과연 아버지를 닮은 것일까. 도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선을 긋는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닮았지만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유로운 재즈와 창작, 즉흥성을 즐기고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면, 자신은 악보와 작곡가에 대한 깊은 존중 위에서 정통 클래식을 탐구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주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버지는 딸의 해석을 끝까지 들어주고, 때로는 한발 물러서며 새로운 시각을 인정해 준다. 도연은 웃으며 "결국은 아빠가 져주시는 셈이지요."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의 음악세계를 존중하는 부녀의 관계가 담겨 있다.
반대로 도연 역시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한다. 그는 론 브랜튼이 자신의 삶과 경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어느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적 재능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공통으로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 유행을 좇기 위해 음악을 바꾸는 일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두 사람이 완전히 일치한다. 브랜튼이 평소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이 하고 싶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명언이다. 그는 이 문장을 음악가의 삶에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다.
20년의 존경, 한 무대에서 꽃피우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이번 홍난파가곡제에서 함께 들려줄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성불사의 밤'이다. 홍난파 후기 가곡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화려한 기교보다 깊은 내면의 울림과 절제된 정서를 요구하는 곡으로, 우리 가곡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예술성을 지닌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론 브랜튼은 이 곡을 피아노로 받치며 홍난파 선율 속에 숨겨진 서정과 화성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낼 것이고, 도연은 정통 성악가의 목소리로 그 깊이를 노래하게 된다. 여기에 함께 부르는 '무지개'는 브랜튼이 오래전부터 사랑해 온 작품으로, 그의 음반에도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이번 무대는 결국 아버지가 20년 동안 품어온 홍난파에 대한 존경과 딸이 새롭게 피워낼 젊은 감성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20여년 전, 한 미국인 재즈 피아니스트는 낯선 나라의 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든 가곡집의 악보를 읽으며 '이 작곡가는 한국의 슈베르트다.'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언젠가 홍난파를 기리는 공식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시간을 건너 결국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고, 진심으로 존경한 음악은 언젠가 반드시 그 주인을 찾아가게 마련 아닐까? 그렇게 20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음악적 동반자인 딸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다.
어쩌면 이번 홍난파가곡제는 단지 한 번의 공연이 아니라 악보 한 권에서 시작된 한 음악가의 존경이 무대에서 완성되는 순간이며, 한 세대의 음악이 다음 세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계승을 보여줄 것 같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