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레퀴엠 ‘희망의 불꽃’ 시나리오를 집필한 이승원 작가 인터뷰

9910b604b739b.png


한국의 전쟁을 한국인의 언어로 노래하다


한국의 6월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기가 되면 공연장에는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나 ‘핀란디아’ 같은 외국 작품이 반복해서 울려 퍼진다. ‘왜 우리의 전쟁을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음악으로 노래한 작품은 없는가.’ 이 단순하지만 묵직한 질문에서 전쟁 레퀴엠 ‘희망의 불꽃’은 시작됐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이승원 작가는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두 형제와 한 여동생의 운명 속에 담아내며, 전쟁의 참혹함과 자유의 가치를 한국인의 정서로 풀어냈다. 월간리뷰는 창작의 출발점부터 작품에 담긴 철학, 그리고 오늘날 이 작품이 던지는 시대적 의미까지 이승원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쟁 레퀴엠 ‘희망의 불꽃’을 구상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전쟁을 기리는 음악회에서조차 외국 작품이 중심이 되는 현실을 보며 어떤 문제의식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의 6월은 특별한 달입니다. 바로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이기 때문입니다. 호국보훈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한민국 호국보훈의 달이 되면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핀란디아>,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등과 같은 외국 작곡가의, 외국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언어나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러한 현실이 답답하고 아쉬워 한국 전쟁과 관련된 대본을 쓰기 시작했고 작곡가 성용원과 의기투합해 전쟁 레퀴엠 <희망의 불꽃>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합창칸타타와 달리 극적인 서사가 매우 선명합니다. 관객들은 어떤 이야기와 함께 전쟁을 만나게 되는지 소개해 주십시오.


전쟁 레퀴엠 ‘희망의 불꽃’은 삼남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서곡’이 끝나면 삼남매가 부르는 대구 달성군의 목가적인 삼중창 ‘내 고향 대구 달성군’을 시작으로 작품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이어 사이렌 소리가 터져 나오고 6.25 전쟁이 터졌다는, ‘전쟁의 발발’이 울려 퍼집니다.
두 오빠는 막내 여동생을 남겨둔 채, 학도병으로 끌려갑니다. ‘몇 밤만 자고 돌아와야 해’ 하지만 오빠들에 대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형제는 서로를 위해 ‘형제의 이중창’을 부릅니다.
그 후 ‘전쟁터’로 이동하여 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천지사방에 울려퍼지는 포화 소리, 공포에 사로잡힌 동생이 형에게 말합니다. ‘무서워, 난 두려워’ 그러나 형은 동생에게 ‘꿈을 기억해’란 말로 용기와 위로를 전합니다.
형제는 동료들과 함께 다시 한번 전투를 벌입니다. ‘전우여, 전진하자’ 얼마 후 유엔군의 참전으로 한국군이 승기를 잡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중공군 몰려온다’ 북한군에게 사로잡힌 형제는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들어갔습니다. ‘고문과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 전향을 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동생이 다시 형을 설득하고 그들은 수용소에 잡힌 유엔군과 함께 ‘고요한 아침’을 부르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두 오빠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여동생은 오늘도 하염없이 대문을 바라보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빠 생각’ 얼마 후 군인이 오빠들의 유해가 담긴 상자를 그녀에게 건네주면 여동생의 마지막 나레이션과 함께 ‘피날레’ 합창이 이어지며 전쟁 레퀴엠 ‘희망의 불꽃’이 막을 내립니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극적 전환점, 다시 말해 관객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일 장면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동생 연석이 북한군에 의해 고문을 받는 장면과 동생을 살리기 위해 전향을 결정하는 형 연석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유엔군을 보며 죽음을 결심하는 부분입니다.
연석: 형! 저들을 봐! 푸른 눈의 저 이방인들을 보라고!
저들은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저렇게 자신들의 생명을 내놓았어. 찬송가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자신들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저들을 보란 말이야!!


428c487edb22c.png


이번 초연을 마친 지금, 작품이 의도했던 효과를 충분히 구현했다고 보시는지요. 앞으로 보완하거나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이겠죠. 하지만 작은 제작비로 최고의 효과를 얻었다고 자평합니다. 연극적인 요소가 있기에 배우가 참여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음악적 편성은 개인적 욕심으로 2관 편성의 대합창이었으면 하네요. 희망사항입니다.


이 작품은 창작이지만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어떤 자료와 실제 사례들을 모티프로 삼으셨습니까?


순수 창작물이나 6.25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사례가 많았고 그와 같은 것을 참고하여 만들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음악으로 완성한 성용원 작곡가의 작품을 들으셨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작가의 입장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성용원 작곡가는 실로 엄청난 작곡가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여 평온, 긴장, 고문, 애절, 희망 등의 감정을 포함해 작가가 쓴 노래의 가사까지 100% 음악으로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곡이 좋아서 어느 점이 가장 뛰어났다고 꼭 집어 말하기가 힘드네요.


영산아트홀과 영광도서관 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직접 만나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과 공연장의 분위기를 들려주십시오.


공연장 한쪽엔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6.25 전쟁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이것이 우리의 역사이자 실화라는 것에 놀라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음악회의 내용도 뭉클했지만 공연 후에 보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과 아이들의 관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쟁 레퀴엠 ‘희망의 불꽃’은 단순히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창작음악이 아니다. 우리 역사와 우리의 언어,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음악으로 기록하려는 하나의 문화적 시도이자 예술적 선언이다. 이승원 작가의 시나리오와 성용원 작곡가의 음악은 전쟁의 비극을 넘어 자유와 희생, 화해와 희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오늘의 젊은 세대가 6·25전쟁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시 만나는 소중한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앞으로 ‘희망의 불꽃’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창작 보훈 레퍼토리로 성장해 더 많은 무대에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 김종섭

fad20044ac176.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