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 고통을 통과한 소리, 정직한 음악의 메신저

음반 발매 및 투어 준비 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만큼 핫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수진 단독 인터뷰를 찜해 두었지만, 온갖 언론들이 그의 소매를 붙잡고 인터뷰를 청하는 바람에 만날 시간을 얻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어렵게 만든 자리인 만큼 혼자만의 만남이 아까워, 일전에 롯데콘서트홀에서 막스 리히터의 ‘사계’를 연주할 때 깊이 있는 리뷰를 썼던 성용원 작곡가와 동행해 한층 더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마침 운전 중에 한수진이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을 감상하며 왔기에 쇼스타코비치 이야기부터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 곡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가하는 가혹한 채찍질 같다고 말을 건네자, 동석한 허지은 소속사 대표는 "연주자에 대한 채찍질이라기보다는, 숨 막히는 소련 체제에 대한 예술적 채찍질과 저항이 아닐까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한수진의 스승은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인인 펠릭스 안드리예프스키(Felix Andrievsky)다. 실제 소비에트 체제를 겪었고 쇼스타코비치를 직접 만나기도 했던 음악가였기에, 한수진이 열다섯 살에 이 곡을 공부할 당시 그 시대적 배경과 음악가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어린 한수진은 그 아픔을 마른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선생님께서 직접 그런 삶을 사셨고, 소비에트 치하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가슴으로 들려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죠. 그때 전해 들은 상황과 비극에 제 나름대로 깊이 공감하면서 연주하려고 온 힘을 다했습니다.“ 8fa5b2532f8dc.png


결핍이 선물한 깊이, 책 속에서 길어 올린 공감

 

어릴 때부터 늘 책을 가까이했던 독서 습관은 기성세대의 역사와 타인의 슬픔까지 단숨에 이해하는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만으로 그의 소리를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연주 기저에는 삶에서 길어 올린 남다른 '고통'이 녹아 흐른다. 사실 그는 선천적으로 한쪽 귀의 청력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태어났다. 남들과 다른 청각적 조건은 오히려 소리를 더 입체적이고 다각도로 파고 들게 만들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깊이 몰입하는 이유 역시,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 유서를 쓰면서도 신이 주신 음악으로 상처를 딛고 일어섰던 베토벤의 고독과 극적인 대비를 누구보다 온몸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마스터클래스에서 보여주는 젊은 연주자답지 않은 노련함, 60갑자를 훌쩍 넘긴 대가처럼 단숨에 제자들을 일깨우는 깊이는 바로 이러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며 벼려낸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연주할 때 한수진의 표정은 천변만화한다. 소리를 굳이 듣지 않고 얼굴만 보아도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단박에 짐작이 갈 정도다.

이 역시 어린 시절의 독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런던에서 자라던 유년 시절, 그는 동화책이 너덜너덜 헤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카세트테이프로 오디오북을 들을 때는 삽화 속 인물들의 손짓과 얼굴 표정, 신체 동작을 거울 보듯 따라 하곤 했다.

"바이올린을 연습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억지로 매달리지 않고 연습을 딱 멈춰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책의 특정 장면을 펼칩니다. 가슴 뭉클해지는 대목을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응어리가 풀리거든요. 아마 그 시간에 연습에만 매진하라고 강요받았다면 어머니와 벌써 인연을 끊었을지도 몰라요.(웃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처럼 복잡한 인물 관계와 사건이 얽힌 고전을 대할 때도 그는 소설 속에 직접 들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맥락을 꿰뚫는다. 새로운 곡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배우가 전체 대본을 정독하듯 오케스트라 총보(Full Score)를 먼저 꼼꼼하게 펼쳐 든다. 극의 흐름과 다른 파트의 대사를 완벽하게 파악한 뒤 자신의 독주 선율을 얹으며, 아티큘레이션 하나하나 작곡가의 의도를 정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소리가 나오는 법

 

음악 못지않게 몰입형 독서로 다져진 것은 바로 그의 인성이다.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치밀한 완벽주의와, 좋은 인간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그는 스승 펠릭스의 가르침을 먼저 떠올린다. 스승은 늘 타협 없는 최고의 연주를 지향하면서도 언제나 따뜻한 인간미를 잊지 말라고 가르쳤다. 유명세를 좇느라 인간적 됨됨이를 잃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님께서도 늘 '악기를 다루는 일 역시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소리가 나오는 법'이라고 가르치셨어요. 상대에 맞춰 조심할 부분은 배울지언정, 누구에게나 진실하게 다가가는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음악적 재능은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상에 돌려주어야 할 일종의 부채이자 축복이다. 언젠가 기고한 글(The Korea Times, Classical music is nourishment for society)에서 밝혔듯, 그는 클래식 음악이 단순한 무대 위 기교를 넘어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고 사회를 연결하는 따뜻한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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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6년이 벼려낸 내면 시련을 감사로 바꾸다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졌지만, 한수진에게는 두 번의 턱관절 수술과 6년이라는 혹독한 공백기가 있었다. 젊은 연주자로서 한창 비상해야 할 시기에 닥친 6년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발터 기제킹의 상상연습법이나 루빈스타인의 무릎 연습법 따위는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다.

"수술 전까지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술받고 1년 반 정도 푹 쉬며 재충전하면 되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첫 수술 후 갑작스러운 합병증으로 천식이 찾아왔습니다. 전신마취가 불가능해 재수술 일정이 기약 없이 밀려버렸죠. 완치를 기대하고 이미 계약해 두었던 유럽 무대의 연주들을 줄줄이 취소해야 했을 때,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악기를 만질 수조차 없었던 그 적막한 3년을 포함해 장장 6년의 세월 동안, 신은 한쪽 문을 닫는 대신 다른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는 환자로 머무는 대신 부모님의 일터로 뛰어들었다. 과학자인 아버지가 개발하던 화장품 제형과 패키지 디자인 등을 돕고, 환경 생태와 관련한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 활성화 프로젝트로 영국 WWT업체 컨설팅 통역을 도왔다. 또 교회에서 외국인을 위한 통역 봉사도 자청했다.

"생소한 일들을 하며 직원분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무척 신선하고 즐거웠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음악 안에서 숨 쉬며 살았던 것이 얼마나 거대한 축복이었는가'를 뼛속 깊이 절감하게 되었죠. 지나고 보면 제 삶에서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서는 야속하고 힘들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모두 감사한 선물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 믿음이 있었기에 캄캄한 터널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7년과 한수진의 6년, 침묵을 깬 '라라 아비스’

 

2018년 9월, 한수진은 마침내 베토벤 협주곡을 품에 안고 기적처럼 무대로 돌아왔다. 그날의 2악장 실황 유튜브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이순열 평론가가 12월 클럽 발코니 편집장에게 한수진을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이를 계기로 편집장과 크레디아 정재옥 대표와 함께 이순열 평론가를 만났다. 이순영 평론가는 이날 한수진에게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시구인 '라라 아비스(Rara Avis, 희귀한 새, 세상에 드문 재능을 지닌 사람) 같은 존재'라며 칭찬했다. 정재옥 대표는 당시 인스타그램에 그날 기념 사진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사라진 7년, 한수진의 사라진 6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자취를 감추었던 공백기처럼, 한수진의 6년 역시 예술적 혼이 더 웅숭깊게 숙성된 귀한 시간이었음을 따뜻하게 비교한 최고의 찬사였다.

한수진은 콩쿠르 직후인 2001년, 거장들과의 인연도 운명처럼 이어졌다.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가 우연히 콩쿠르 1, 2차 예선 및 본선 전곡이 수록된 실황음반 중 '비에니아프스키 주제와 변주곡(Wieniawski Original theme and Variations)'을 듣고 "율리안 라흘린의 10대 시절 연주를 들었을 때 이후로 이런 쇼크와 전율은 처음이다. 평생 이런 연주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말했다고 한다. 이듬해 정경화가 영국에 방문했을 때 한수진을 레슨한 후 활까지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7월에는 로열 알버트홀 프롬에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정명훈 지휘로 협연했는데 공연 리허설 직후 정 지휘자와의 오디션으로 이어졌다. 오디션 장소에 도착한 정명훈 지휘자는 피로감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오디션이 끝나자 'God given talent'라고 극찬했다. 이후 도쿄필하모닉과 협연등 6차례 협연이 이어졌다.

한수진은 무대라는 전장에 언제든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무장형 연주자이기도 하다. 작년 2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 펼쳐진 긴급 대타 사건은 그의 강단과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며칠 뒤 있을 독주회 리허설을 마치고 밤 11시가 넘은 시각, 급박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국심측에 따르면 당일 리허설 중 원래 협연자였던 바이바 스크라이데(Baiba Skride)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무대에 설 수 없을 것 같다며, 다음 날 저녁 무대에 올려야 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긴급히 대신 맡아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딱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고민 끝에 받아들였습니다. 연주 당일 맞춘 단 한 번의 무대 리허설이 전부였지만, 다비트 라일란트 지휘자님의 꼼꼼하고 사려 깊은 배려 덕분에 그 어떤 무대보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관객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순간이 연주자에게 얼마나 생생한 희열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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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에 바이올린 시작해 비에냐프스키까지

 

이토록 거침없는 음악적 재능 뒤에는 어머니의 지혜로운 기다림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결혼 후 부산시향 단원이 되어 실내악 무대에 서는 등 음악을 놓지 않았던 연주자였다. 할머니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이 있었기에 네 살배기였던 어머니에게 바이올린을 쥐여주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딸을 통해 이루기 위해 바이올린 교육을 강하게 드라이브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할머니의 강제적인 교육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서울예고 2학년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며 더이상 강요하지 않았고 3주 정도 악기에서 벗어났다.

"어머니는 약 3주 동안 자유를 만끽했다고 해요. 그런데 교내 향상음악회 객석에 앉아 친구들이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곡과 비에냐프스키 협주곡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고 '내가 바이올린 없이 평생을 살 수 있을까?'하며 덜컥 무서워졌다고 해요. 그 길로 할머니에게 다시 공부하겠다고 말씀드렸고요. 어머니는 그 경험을 토대로 제가 바이올린을 좋아하기 시작하던 8살 때까지 기다리신 거예요.“

이런 경험을 했기에 어머니는 딸에게 연습을 강요하지 않고 미술, 발레, 연극을 마음껏 경험하게 하며 스스로 목마름을 느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러다 스스로 선택해 다시 악기를 쥔 순간부터 한수진의 성장 속도는 폭발적이었고, 그로부터 불과 7년 만에 비에냐프스키 콩쿠르 최연소 2위라는 기적 같은 결실을 맺었다.

 

첫 오케스트라 음반과 4개 도시 투어

 

2026년 하반기, 한수진의 바이올린 여정은 분수령을 맞이한다. 먼저 9월 10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로 J.S.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선보인다. 그는 세 작품을 단순한 나열이 아닌, 거대한 하나의 영적 순례로 엮어냈다. 소나타 1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예고된 운명을, 소나타 2번에서 겟세마네의 고통과 십자가의 수난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아내의 부고를 마주한 바흐의 절절한 상실감이 녹아 있는 파르티타 2번 '샤콘느'를 통해 깊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부활의 빛을 노래한다.

이어 9월 25일에는 그가 직접 디이렉터를 맡아 앙상블을 이끌며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ECO)와 함께 비발디와 피아졸라의 ’사계‘를 녹음한 음반 'The Seasons(사계)'가 전 세계에 발매된다. 한수진으로서는 첫 오케스트라 협연 음반이랄 수 있다. 이어 10월에는 이를 기념해 4개 도시(통영국제음악당, 대구 콘서트하우스, 아트센터인천, 서울 롯데콘서트홀) 투어 콘서트를 이어간다.

한편 팬들에게 한수진의 이름은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사계(Vivaldi Recomposed)‘와도 떼어놓을 수 없이 각인되어 있다. 아드리엘 김 지휘자가 처음 이 곡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그는 단칼에 거절했었다.

"당시 연주 일정이 겹쳐 완전히 새로운 현대곡 악보를 볼 물리적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게다가 악보를 처음 훑어보았을 때는 미니멀리즘 특유의 무한 반복(루핑)이 너무 단조롭고 기계적으로 느껴져 마뜩찮은 점도 있었고요. 하지만 지휘자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오케스트라와 첫 리허설을 맞추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돋았습니다. 이 음악은 넓은 공간을 만났을 때 '울림'을 통해 비로소 입체감을 얻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롯데콘서트홀 공연 당시 관객들이 숨조차 쉬지 못했던 겨울 2악장이 대표적이다. 비발디 원곡의 통통 튀는 피치카토 대신, 허공에 유리 조각이 부유하듯 신비롭게 깔리는 하모닉스 음향 속에서 관객들은 중력이 사라진 우주에 홀로 떠 있는 듯한 황홀경을 맛보았다.

동행한 성용원 작곡가는 "영국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체화된 한수진 특유의 공간 감각과 정체성이, 막스 리히터 음악의 가장 완벽한 독보적 레퍼런스를 한국 무대에 탄생시켰다"고 평했다.

"살아있는 동시대 작곡가들과 호흡을 맞추는 현대음악은 제게 더없는 기쁨입니다. 고전 작품은 편지나 문헌을 통해 작곡가의 마음을 상상해야 하지만, 현대곡은 직접 대화를 나누며 작곡가가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음향을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숨 쉬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요. 연주자는 작곡가의 진심을 세상에 오롯이 전하는 정직한 메신저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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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온기로 채워가는 매일 매일이 전성기

 

인터뷰 말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에게 진짜 전성기란 언제인가'라는 우문을 던졌다. 8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예후디 메뉴힌 스쿨과 퍼셀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 런던 왕립음악원,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등 인생의 대부분을 바이올린 음악의 숲속에서 자란 그에게 전성기는 언제인지 물은 것이다. 손가락이 가장 기민하게 돌아가는 청춘의 시절일까, 아니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품어 안은 원숙의 시절일까?

"전성기라는 것은 결코 물리적인 나이에 갇혀 있지 않다고 믿어요. 제가 깊은 감명을 받았던 70대 아이작 스턴의 연주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의 깊은 상처와 온기가 현 끝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았던 고통스러운 시간들조차 지나고 보니 모두 감사한 축복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음악은 한 편의 긴 소설과 같아서, 긴 호흡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복잡한 마음이 정돈되고 삶을 새롭게 바라볼 힘을 얻게 된다. 고통의 강을 건너오며 소리의 결마다 깊은 영혼의 호흡을 아로새긴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그는 오늘도 무대 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음악에 깊이 감사하며, 매일 더 따뜻하고 찬란한 자신의 진짜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한수진의 연주가 다가오고 있다. 

우선 9월 10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로 찾아가 매일 매일이 전성기인 그를 만나보자.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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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발매할 음반 'The Seasons'(사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