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성모성지, 그 ‘멈춤’의 힘 – 이상각 신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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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예술

파리에서 무너진 환상, 성당에서 만난 진동의 계시
20여 년 전,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오빠 덕에 대학원 재학 중이던 남동생을 데리고 삼남매가 처음으로 함께 20일간 7개국을 도는 유럽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내 생애 처음 밟은 외국 땅이 프랑스였다. 가난한 유학생 신세라 그런지 꿈의 도시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거주하면서 정작 본인 집은 작고 어두침침한 동굴 같은 곳에 살고 있는걸 보고 충격 받았다.
파리에서 3일을 머물며 말로만 듣던 몽마르트르 언덕, 에펠 타워 등 명소는 다 찾아다녔지만 막상 직접 보니 다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상상 속의 몽마르트르가 훨씬 더 낭만적이고, 내 머릿속에서 그리던 에펠 타워가 실제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세례명이 프란치스코로 한때 사제를 꿈꿨던 오빠가 가끔 미사 드리러 간다는 집 근처의 한 성당에 우리를 데리고 가주었다. 개신교 건물에 익숙한 나에게 거대한 성당이 주는 위압감은 실로 대단했다. 외부는 물론 뭔지 모를 건축 양식이라는 걸 느껴볼 수 있는 내부 구조, 거대한 돌기둥과 벽, 화려한 장식들, 그리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파이프오르간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기억이 난다.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며 미사를 마치고 일어선 순간, 미사 내내 조용히 성가를 연주하던 파이프오르간이 갑자기 정체 모를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즉흥연주였다. 도입부터 마치 풀스탑으로 연주하는 듯한 볼륨으로 시작하더니 마지막 코다에 다다르는 지점에서 엄청난 크레센도로 밀어붙이며 화려한 고난도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충격에 넋을 잃고 듣고 있자니 마치 건물 전체가 대지진처럼 진동하고 거대한 성당 벽이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아 공포심마저 들었었다. 거대한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뒤흔드는 파이프오르간의 음향! 내 기억 속 공간과 소리에 대한 첫 충격의 경험이었다.

공간이 울리고, 영혼이 멈춘 순간
두 번째 공간과 소리에 대한 충격적 경험은 10년 전 어느 자그마한 음악카페 공간에서 있었던 연주회에서였다. 감각이 남다른 재즈 피아니스트 주인이 직접 개조해 만든 작지만 특별했던 공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찾아가기 힘든 장소였고 50명이면 만석이 되는 장소였다.
봄비 내리던 그날, 한 바이올린 거장과 연주하는 행운을 잡았던 날, 가슴 속 깊이 파고드는 거장의 바이올린 소리와 철저한 겸손함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피아노 소리, 거기에 유리천장에 똑똑 떨어지는 잔잔한 빗소리, 공간과 음악과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엄청난 우연들이 겹치면 그 순간 시간은 멈추고 우리의 영혼은 미지의 시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홀로 남겨지는 초월적 체험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강렬한 체험들은 우리에게 다시금 본질적 질문을 하게 한다. 과연 음악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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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의 땅 위에 세워진 빛의 성당
며칠 전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를 방문했다. 우연히 이 성당의 건축에 관련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매혹적이었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로 전국에서 순교한 8천여 명의 정신이 깃든 이곳에, 35년 전 부임한 한 신부님의 각고의 노력과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 그리고 수많은 신도들의 헌신이 함께해 만들어낸 기적과 같은 곳이다. 1991년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모성지로 선포되었으며, 대성당은 설계부터 완공까지 약 10년이 걸려 2023년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주차장이 있는 정문에서 대성당 건물까지 거리가 약 350미터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린다. 그 주변에는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길이라 불리는 산책로가 있어서 조용히 묵상하며 걸을 수 있다. 전체 면적이 약 2만 7,500평으로 대략 둘러보는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문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진에서 보던 독특한 형태의 이중 원형탑 건축물이 점점 시야에 크게 들어온다. 스위스의 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한 대성당이다. 붉은 벽돌은 그의 시그니처 같은 핵심 재료로 대략 70만 장이 사용되어졌다 한다. 2층에 위치한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20세기 미켈란젤로라 불렸던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Giuliano Vangi)가 제작한 십자고상과 양 옆쪽에 걸린 두 점의 유리 성화(최후의 만찬과 수태고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2024년에 줄리아노 반지가 93세로 별세를 하여 사실상 이 작품들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이 세 점의 작품들은 벽에 붙이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공중에 부양하듯 작품들이 떠 있게 제작되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으로 고개를 떨군 예수의 모습이 아닌 날카로울 정도의 단단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예수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고통을 이겨낸 승리자, 부활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현대적 시선으로 표현된 양 옆의 유리 성화 두 점은 중앙의 십자고상과 시각적으로, 의미적으로, 공간적으로 연결성을 가지고 제작되었다.|
영상과 사진에서 처음 봤을 때는 작품들이 갖는 강한 개성과 압도적인 분위기에 그 아래에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너무 하찮아 보였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약 1500석 규모의 대성전 안에 들어서 마리오 보타의 빛의 구조로 설계된 내부 구조 안에서 줄리아노 반지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한결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신과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융화되는 느낌이고 십자고상 바로 뒷면의 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자연 풍광이 이러한 경계를 더 좁혀준다. 건축과 음악, 종교와 자연, 그리고 사람,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와 감성을 자아낸다.

빛 위를 떠도는 선율, 성당에서 완성된 리스트의 순례
이 날은 리스트의 ‘순례의 해’ 셀렉션 공연이 있었다. 사색이고 아름다운 음의 뉘앙스를 뿜어내는 제네바의 종의 선율이 피아노 위로 둥실 떠올라 반지의 작품 위를 부유하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 역시 그 멜로디를 따라 함께 부유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왼쪽의 수태고지 성화에 눈길이 머문다.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 소식을 전하는 백합을 든 맨발의 가브리엘 천사에게로.|
그 순간만큼은 피아노 선율이 리스트의 곡이 아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자애로운 천사의 음성처럼 들렸다. 찰나에 잠깐씩 머무는 자연광들 – 십자고상 뒷면의 긴 유리창에, 천장의 원형창에, 성화의 유리 판넬에 – 공간 전체에 반사되는 빛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가! 이 공간에서는 어떤 세속적인 음악을 연주해도 모두 저 십자고상의 발아래에 머무는 듯하다. 영적인 소리로 바뀌면서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남양성모성지를 일궈낸 이상각 신부가 마리오 보타와 줄리아노 반지를 섭외하며 세운 철학이다. 대성당 건립을 위해 부유한 후원자를 찾기보다 ‘벽돌 한 장 봉헌 운동’을 제안해 3만 명의 신자를 모으겠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기적처럼 이끌어내셨다.
“침묵 속에 머무십시오, 그 곳에 답이 있습니다.”
이곳을 설계하며 ‘침묵의 공간’을 유독 강조하셨다. 바쁜 현대인들이 이곳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유달리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편리함을 배제한다. 대성당까지 오기 위해서 무조건 걸어야만 하는 시간, 일층에서 이층으로 연결된 곳은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가파르고 긴 계단으로 되어 있다.(물론 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가 다른 한편에 마련되어 있다.)
그 곳을 숨가쁘게 오르고 대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데이터가 차단된다. 인위적인 차단은 아니지만 구조적으로 데이터 연결이 원활하지 않다. 나도 잠시도 폰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현대인 중의 하나라 예외는 아니다. 데이터가 안 터지니 답답하다. 인스타에 찍은 사진들을 올리고 싶은데 연결이 안 된다. 카톡도 안되니 지인에게 사진도 메시지도 보낼 수가 없다. 억지로 차단된 공간에 있자니 결국 가만히 앉아있게 된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십자고상과 성화, 피아노, 창밖의 풍광들, 성당 내부 양옆을 따라 늘어선 8개의 소경당들, 못이나 나사의 인위적 연결 없이 전통 짜임기법으로 오직 나무끼리의 접합으로만 제작되어 자연스런 질감이 돋보이는 긴 의자. 이런 아름다운 것들에 시선이 가니 잠시 무상무념이 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가만히 침묵하며 나를 마주하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사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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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순간 선함으로 나아가는 길, 예술과 신앙이 만나는 자리
“예술은 우리를 멈춰서게 하고 바라보게 만들고 귀 기울이게 만들고 듣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 순간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자리잡죠. 멈추는 순간이 중요한데 우리는 멈추지 않아요. 너무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너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우리는 멈추게 돼요. 바로 ‘그 순간’이 중요해요. 그 순간 뭔가 마음속에 울림이 있고 생각이 있잖아요. 종교 역시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예술과 종교는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어요. 서로 돕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 그래서 종교에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있는 이유예요.”
이상각 신부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쌓은 헌신의 시간, 그리고 앞으로 계획하며 가고자 하는 이 모든 일들은 결국 무엇을 위함인지 한 마디로 말씀해 달라는 요청에 신부님은 이렇게 답한다.
“바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영광이 뭐냐. 바로 사람이에요.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선한 사람이 되는 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겠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이러한 장소에 와서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무언가를 보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깨달아 선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착하게 산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먼 거리를 날아 힘겹게 들어선 공간, 이곳에서 보낸 오늘 반나절의 체험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착한 인간이 되었을까? 자문하며 대성당 문을 열고 나섰다. 3월의 따뜻한 햇살이 남아있는 저녁 시간, 함께 동행한 이들과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나누고 있자니 왠지 조금 더 착해진 느낌이다. 공간과 예술은 이렇게 조금씩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우리를 변화시키고 조금 더 선한 인간으로 살수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잠시 ‘멈춰’ 보자.

글 김현아(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