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을 살아남은 조직, 오케스트라 음악의 경영학

분열과 조율 사이, 조작을 바라보는 시선
지금 이 나라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하나의 조직일 텐데, 과연 어떤 시각으로 지금의 국가 운영을 평가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다. 이리저리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불현듯 조선 500년은 끝내 어떻게 무너졌을까를 떠올리게 되었고, 1392년 조선 건국 이래 이어져 온 분열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되었다.분열로 점철된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당파 싸움으로 나라가 피폐해졌다는 해석이고, 또 한편으로는 당파와 분열이 오히려 긴장과 활력을 만들어내며 500년을 지속하게 한 동력이었다는 시선이다. 둘 다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지만, 조선의 당파 구조를 들여다보면 어느 쪽이 조직의 존속에 더 유리한지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끊임없이 두 축의 대립 속에 놓여 있었다. 훈구와 사림, 동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이어지는 분열의 흐름 속에서 권력은 늘 균형과 긴장을 오갔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난 이후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당 체제로 기울면서, 국가는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어느 조직이든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오히려 갈등은 조직을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조직의 경영 일선에 몸담아온 정현구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번에 음악계에서는 다소 낯선 주제를 담은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을 들고 찾아왔다.
반가움은 잠시 뒤로 하고 책의 목차를 펼쳐보니, 1막 ‘서곡: 존재 이유의 탄생 –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 2막 ‘튜닝: 전략의 정렬 – 연주 전, 모두가 같은 A음을 듣는다’, 3막 ‘리허설: 갈등을 화음으로 – 이 시간이 무대를 만든다’, 4막 ‘퍼포먼스: 무대 위의 진실 –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할 때’, 5막 ‘커튼콜: 기억되는 브랜드 – 박수는 관객이 치지만, 감동은 우리가 만든다’로 구성되어 있어, 오케스트라 운영과 연주의 처음과 끝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였다.
500년을 버틴 조직의 비밀, 서로의 ‘조율’

“이런 책을 왜 만들었나.”(30년 지기 후배라서 반말로 물어봤다.)
“이 책의 출발은 계획된 기획이라기보다, 오히려 주변의 요구에 의해 촉발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조직, 그리고 경영에 대한 단상들을 몇 차례 글로 정리해 올렸을 뿐인데 예상보다 훨씬 강한 반응이 돌아왔고, 그것이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이어지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
링크드인을 통해 교류하던 사람들이 ‘이건 그냥 글로 남길 게 아니라 책으로 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고, 출판사까지 연결해주겠다는 제안이 이어지면서 출간은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사실 왜 본지가 운영하는 ‘리음북스’에서 책을 내지 않았느냐고 따질 것에 대비해 미리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미 원고는 일정 부분 축적되어 있었고, 그동안 생각해왔던 내용을 틈틈이 정리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구조로 엮어내는 작업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정 작가의 설명이자, 동시에 그의 변명이었다.
“몇 개 올렸더니 사람들이 가만히 안 두더라고요. 이건 책으로 가야 된다고 해서 그냥 진행한 거죠.”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랜 시간 축적된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온 결과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왜 오케스트라는 500년(메디치 가문이 등장한 이후부터)이라는 시간을 버텨왔는가 하는 질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많은 조직은 흥했다가 망하고 또 일어나고를 반복하잖아요. 그런데 오케스트라는 계속 있어요. 그게 이상한 거죠.” 그의 말처럼,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조직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제 제기에 가까운 화두였다.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음악 집단이 아니라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교한 시스템이며, 그 핵심은 개인의 능력보다 ‘조율’에 있다. 각자의 소리를 내되 그것을 앞세우지 않고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맞춰가는 과정, 바로 그 과정이 오케스트라를 500년 동안 존속하게 만든 힘이라는 것이다.
“단원들이 모두 개인적으로는 이미 프로들인데, 이런 프로들이 모여 있으면서도 자기 소리만 내면 오케스트라는 끝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고집을 버리고 옆 사람 소리를 듣고 맞춘다는 게 핵심입니다.”라는 그의 설명은 단순한 음악적 특징을 넘어 조직 운영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왜 오케스트라는 500년(메디치 가문이 등장한 이후부터)이라는 시간을 버텨왔는가 하는 질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조직을 가르는 리더십의 구조
이 지점에서 그는 기업 조직과의 차이를 짚어낸다. 조직이 커질수록 협업은 오히려 어려워지고, 각 부서는 자기 논리만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인사 부서는 인사만, 개발 부서는 개발만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언어가 단절되는 순간 조직은 하나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현장에 가보면 각자 자기 얘기만 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건 조직이 아니라 그냥 모여 있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자기 얘기 이전에 타인의 얘기에 귀기울일 줄 아는 배려가 매우 중요합니다.”
매우 직설적이지만 현실을 정확히 짚은 말이다. 반면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파트가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며,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은 분명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 묘미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예술적 협업을 넘어 조직 운영의 이상적인 모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리더십이다. 정 작가는 리더십을 단순히 타고나는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리더십이라는 게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이 조직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공부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결국 리더십은 신화가 아니라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는 리더가 자신의 위치에 따라 역할을 달리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입장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달라지며,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리더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현대 조직의 특징으로 이어진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개인주의와 협업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는 이를 단순한 문제로 규정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 이기적이다, 말 안 듣는다 이런 얘기 많잖아요. 그런데 그 얘기, 2천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단원들의 성향이나 현대적 특성을 무조건 ‘젊은 세대’로 단정해서는 개선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라는 말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인식의 패턴이라고 지적하는 정현구 작가. 오히려 그는 다른 흐름에 주목한다. 소규모 모임과 자발적 협업, 그리고 분산된 리더십 구조다. 10명에서 30명 규모의 모임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특정 개인이 조직을 끌고 가기보다 서로가 리더의 입장에서 의견을 교환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조직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서로 리더처럼 의견을 주고받으며 만들어가는 방식이 요즘 젊은 세대의 조직 관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이는 기존의 카리스마 중심 리더십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조직 운영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의 등장과도 맞닿아 있으며, 조직 운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통찰은 오케스트라의 구조를 경영의 단계로 정리하는데로 이어지며, 그는 이를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오케스트라 경영의 다섯 단계
첫 번째는 설계 단계로, 지휘자가 악보를 해석해 공연을 설계하듯 경영자는 시장을 읽고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휘자가 악보를 보고 전체를 설계하듯이 경영자는 시장을 보고 사업을 설계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결정하고 연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오케스트라든 경영이든 시작은 항상 전체를 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는 튜닝 단계로, 조직 구성원들이 동일한 기준과 목표를 공유하도록 정렬하는 과정이다. 튜닝이 먼저인 이유는 기준이 있어야 함께 맞출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조직 운영의 출발점이 방향의 일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리허설 단계로, 이 과정에서는 오류를 드러내고 조율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리허설 이전에 각 연주자들은 개별적으로 자신의 파트를 충실히 연습하지만, 처음 합을 맞출 때 어긋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소리를 내지 않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추는 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라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틀린 것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실패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조정의 출발점이며,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소통이다. 문제의 원인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조직을 완성도로 이끈다.
네 번째는 실행 단계로, 이미 준비된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무대에 올라가면 지휘자는 사실 할 일이 없습니다. 이미 다 맞춰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죠.”라는 그의 말은 준비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라얀이든 번스타인이든 실제 연주 순간에는 전체를 통제하기보다 흐름을 유지하는 역할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앙코르, 즉 지속 가능성이다. 앙코르가 없다는 것은 감동이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받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끝에는 리더의 퇴장이 있다. 조직은 특정 개인에 의해 영원히 유지될 수 없으며, 적절한 시점에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오히려 조직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인기와 경영 사이의 간극
이러한 이론을 현실에 대입해 보면, 국내 오케스트라는 아직 이 모델을 완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공연장이 관객으로 가득 차는 현상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경영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글바글하긴 하죠. 그런데 그게 경영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의 말은 인기와 구조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현재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공적 자금과 후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에서는 자생적인 경영 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지원금에 의존해 운영되는 방식은 경영이라기보다 단순한 유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다소 냉정하지만, 현실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 정 작가는 일본의 도쿄심포니오케스트라를 제시한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이 오케스트라는 음악인이 아닌 경영 전문가의 개입으로 구조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기존 시스템을 과감히 개편하고, 시즌 회원 중심의 관객 구조를 형성하는 한편, 공연 시간을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맞게 70~90분으로 단축하고 인터미션을 제거하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2시간 이상, 혹은 그 이상의 공연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도쿄심포니는 그래서 공연 시간을 70분 내외로 과감히 줄였습니다. 경영적인 측면에서 소비자를 고려한다면 우리 음악계도 이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변화의 핵심은 관객의 현실을 반영하는 데 있었다. 동시에 클래식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프로그램은 일정 부분 지키되, 관객이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대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행복해지니까 다시 옵니다. 그러다가 점점 무거운 클래식도 보게 되는 거죠. 도쿄심포니는 예술성과 대중성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율의 철학, 조직의 완성
이 논의는 다시 철학으로 확장된다. 특히 도덕경의 개념은 조직과 경영을 이해하는 또 다른 틀로 제시된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말은, 원래부터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정되는 순간 그것이 길이 된다는 뜻입니다. 경영 역시 고정된 정답이 존재하는 영역이 아니라 규칙과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가요?”
음악은 이러한 개념을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매우 ‘직유적’인 장르라 할 수 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악기와 이를 감싸는 저음이 결합할 때 비로소 조화가 이루어지듯, 조직 역시 서로 다른 성향과 역할이 조율될 때 완성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오보에는 혼자 연주하면 사실 매우 거친 악기입니다. 그런데 그 음을 첼로가 받쳐주면 완전히 다른 소리가 됩니다. 이처럼 리더란 앞에서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뒤에서 받쳐주고 조율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리더는 첼로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그의 결론은 이 인터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에 가깝다. 이 책은 이처럼 오케스트라의 각 영역이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을 비유로 삼아 경영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음악 조직을 넘어 지속 가능한 조직 운영의 원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설계와 조율, 실패를 통한 수정, 그리고 적절한 개입과 퇴장까지 이어지는 이 구조는 기업과 조직, 나아가 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원리로 확장된다.
모든 연주가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리허설에서 이미 방향이 결정되듯, 조직의 성과 역시 실행 이전의 설계와 조율 단계에서 사실상 좌우된다. “모든 음악은 리허설에서 완성된다”는 그의 통찰은 오케스트라를 넘어 조직과 경영의 본질을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내는 문장으로 남는다.(솔과학 刊, 정가 2만 원, 교보문고 등에서 판매 중)
글 김종섭 사진 조기웅
500년을 살아남은 조직, 오케스트라 음악의 경영학
분열과 조율 사이, 조작을 바라보는 시선
지금 이 나라는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하나의 조직일 텐데, 과연 어떤 시각으로 지금의 국가 운영을 평가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다. 이리저리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불현듯 조선 500년은 끝내 어떻게 무너졌을까를 떠올리게 되었고, 1392년 조선 건국 이래 이어져 온 분열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되었다.분열로 점철된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당파 싸움으로 나라가 피폐해졌다는 해석이고, 또 한편으로는 당파와 분열이 오히려 긴장과 활력을 만들어내며 500년을 지속하게 한 동력이었다는 시선이다. 둘 다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지만, 조선의 당파 구조를 들여다보면 어느 쪽이 조직의 존속에 더 유리한지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끊임없이 두 축의 대립 속에 놓여 있었다. 훈구와 사림, 동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이어지는 분열의 흐름 속에서 권력은 늘 균형과 긴장을 오갔다. 그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난 이후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당 체제로 기울면서, 국가는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어느 조직이든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오히려 갈등은 조직을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조직의 경영 일선에 몸담아온 정현구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번에 음악계에서는 다소 낯선 주제를 담은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을 들고 찾아왔다.
반가움은 잠시 뒤로 하고 책의 목차를 펼쳐보니, 1막 ‘서곡: 존재 이유의 탄생 –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 2막 ‘튜닝: 전략의 정렬 – 연주 전, 모두가 같은 A음을 듣는다’, 3막 ‘리허설: 갈등을 화음으로 – 이 시간이 무대를 만든다’, 4막 ‘퍼포먼스: 무대 위의 진실 –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할 때’, 5막 ‘커튼콜: 기억되는 브랜드 – 박수는 관객이 치지만, 감동은 우리가 만든다’로 구성되어 있어, 오케스트라 운영과 연주의 처음과 끝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였다.
500년을 버틴 조직의 비밀, 서로의 ‘조율’
“이런 책을 왜 만들었나.”(30년 지기 후배라서 반말로 물어봤다.)
“이 책의 출발은 계획된 기획이라기보다, 오히려 주변의 요구에 의해 촉발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조직, 그리고 경영에 대한 단상들을 몇 차례 글로 정리해 올렸을 뿐인데 예상보다 훨씬 강한 반응이 돌아왔고, 그것이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이어지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
링크드인을 통해 교류하던 사람들이 ‘이건 그냥 글로 남길 게 아니라 책으로 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고, 출판사까지 연결해주겠다는 제안이 이어지면서 출간은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사실 왜 본지가 운영하는 ‘리음북스’에서 책을 내지 않았느냐고 따질 것에 대비해 미리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미 원고는 일정 부분 축적되어 있었고, 그동안 생각해왔던 내용을 틈틈이 정리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구조로 엮어내는 작업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정 작가의 설명이자, 동시에 그의 변명이었다.
“몇 개 올렸더니 사람들이 가만히 안 두더라고요. 이건 책으로 가야 된다고 해서 그냥 진행한 거죠.”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랜 시간 축적된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온 결과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왜 오케스트라는 500년(메디치 가문이 등장한 이후부터)이라는 시간을 버텨왔는가 하는 질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많은 조직은 흥했다가 망하고 또 일어나고를 반복하잖아요. 그런데 오케스트라는 계속 있어요. 그게 이상한 거죠.” 그의 말처럼,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조직의 본질을 파고드는 문제 제기에 가까운 화두였다.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음악 집단이 아니라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교한 시스템이며, 그 핵심은 개인의 능력보다 ‘조율’에 있다. 각자의 소리를 내되 그것을 앞세우지 않고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맞춰가는 과정, 바로 그 과정이 오케스트라를 500년 동안 존속하게 만든 힘이라는 것이다.
“단원들이 모두 개인적으로는 이미 프로들인데, 이런 프로들이 모여 있으면서도 자기 소리만 내면 오케스트라는 끝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고집을 버리고 옆 사람 소리를 듣고 맞춘다는 게 핵심입니다.”라는 그의 설명은 단순한 음악적 특징을 넘어 조직 운영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왜 오케스트라는 500년(메디치 가문이 등장한 이후부터)이라는 시간을 버텨왔는가 하는 질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오케스트라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인간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조직을 가르는 리더십의 구조
이 지점에서 그는 기업 조직과의 차이를 짚어낸다. 조직이 커질수록 협업은 오히려 어려워지고, 각 부서는 자기 논리만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인사 부서는 인사만, 개발 부서는 개발만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언어가 단절되는 순간 조직은 하나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현장에 가보면 각자 자기 얘기만 하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건 조직이 아니라 그냥 모여 있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자기 얘기 이전에 타인의 얘기에 귀기울일 줄 아는 배려가 매우 중요합니다.”
매우 직설적이지만 현실을 정확히 짚은 말이다. 반면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파트가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며,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은 분명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 묘미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예술적 협업을 넘어 조직 운영의 이상적인 모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리더십이다. 정 작가는 리더십을 단순히 타고나는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리더십이라는 게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이 조직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공부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결국 리더십은 신화가 아니라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는 리더가 자신의 위치에 따라 역할을 달리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입장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달라지며,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리더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현대 조직의 특징으로 이어진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개인주의와 협업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는 이를 단순한 문제로 규정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 이기적이다, 말 안 듣는다 이런 얘기 많잖아요. 그런데 그 얘기, 2천 년 전에도 있었다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단원들의 성향이나 현대적 특성을 무조건 ‘젊은 세대’로 단정해서는 개선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라는 말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인식의 패턴이라고 지적하는 정현구 작가. 오히려 그는 다른 흐름에 주목한다. 소규모 모임과 자발적 협업, 그리고 분산된 리더십 구조다. 10명에서 30명 규모의 모임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특정 개인이 조직을 끌고 가기보다 서로가 리더의 입장에서 의견을 교환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조직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서로 리더처럼 의견을 주고받으며 만들어가는 방식이 요즘 젊은 세대의 조직 관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이는 기존의 카리스마 중심 리더십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조직 운영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의 등장과도 맞닿아 있으며, 조직 운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통찰은 오케스트라의 구조를 경영의 단계로 정리하는데로 이어지며, 그는 이를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오케스트라 경영의 다섯 단계
첫 번째는 설계 단계로, 지휘자가 악보를 해석해 공연을 설계하듯 경영자는 시장을 읽고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휘자가 악보를 보고 전체를 설계하듯이 경영자는 시장을 보고 사업을 설계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결정하고 연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오케스트라든 경영이든 시작은 항상 전체를 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는 튜닝 단계로, 조직 구성원들이 동일한 기준과 목표를 공유하도록 정렬하는 과정이다. 튜닝이 먼저인 이유는 기준이 있어야 함께 맞출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조직 운영의 출발점이 방향의 일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리허설 단계로, 이 과정에서는 오류를 드러내고 조율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리허설 이전에 각 연주자들은 개별적으로 자신의 파트를 충실히 연습하지만, 처음 합을 맞출 때 어긋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소리를 내지 않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추는 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라 하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틀린 것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실패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조정의 출발점이며,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소통이다. 문제의 원인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조직을 완성도로 이끈다.
네 번째는 실행 단계로, 이미 준비된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이다. “무대에 올라가면 지휘자는 사실 할 일이 없습니다. 이미 다 맞춰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죠.”라는 그의 말은 준비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라얀이든 번스타인이든 실제 연주 순간에는 전체를 통제하기보다 흐름을 유지하는 역할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앙코르, 즉 지속 가능성이다. 앙코르가 없다는 것은 감동이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받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끝에는 리더의 퇴장이 있다. 조직은 특정 개인에 의해 영원히 유지될 수 없으며, 적절한 시점에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오히려 조직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인기와 경영 사이의 간극
이러한 이론을 현실에 대입해 보면, 국내 오케스트라는 아직 이 모델을 완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공연장이 관객으로 가득 차는 현상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경영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글바글하긴 하죠. 그런데 그게 경영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의 말은 인기와 구조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현재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는 공적 자금과 후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에서는 자생적인 경영 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지원금에 의존해 운영되는 방식은 경영이라기보다 단순한 유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다소 냉정하지만, 현실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 정 작가는 일본의 도쿄심포니오케스트라를 제시한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이 오케스트라는 음악인이 아닌 경영 전문가의 개입으로 구조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기존 시스템을 과감히 개편하고, 시즌 회원 중심의 관객 구조를 형성하는 한편, 공연 시간을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맞게 70~90분으로 단축하고 인터미션을 제거하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요즘 사람들은 2시간 이상, 혹은 그 이상의 공연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도쿄심포니는 그래서 공연 시간을 70분 내외로 과감히 줄였습니다. 경영적인 측면에서 소비자를 고려한다면 우리 음악계도 이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변화의 핵심은 관객의 현실을 반영하는 데 있었다. 동시에 클래식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프로그램은 일정 부분 지키되, 관객이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확대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행복해지니까 다시 옵니다. 그러다가 점점 무거운 클래식도 보게 되는 거죠. 도쿄심포니는 예술성과 대중성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율의 철학, 조직의 완성
이 논의는 다시 철학으로 확장된다. 특히 도덕경의 개념은 조직과 경영을 이해하는 또 다른 틀로 제시된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말은, 원래부터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정되는 순간 그것이 길이 된다는 뜻입니다. 경영 역시 고정된 정답이 존재하는 영역이 아니라 규칙과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가요?”
음악은 이러한 개념을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매우 ‘직유적’인 장르라 할 수 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악기와 이를 감싸는 저음이 결합할 때 비로소 조화가 이루어지듯, 조직 역시 서로 다른 성향과 역할이 조율될 때 완성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오보에는 혼자 연주하면 사실 매우 거친 악기입니다. 그런데 그 음을 첼로가 받쳐주면 완전히 다른 소리가 됩니다. 이처럼 리더란 앞에서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뒤에서 받쳐주고 조율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리더는 첼로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그의 결론은 이 인터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에 가깝다. 이 책은 이처럼 오케스트라의 각 영역이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을 비유로 삼아 경영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음악 조직을 넘어 지속 가능한 조직 운영의 원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설계와 조율, 실패를 통한 수정, 그리고 적절한 개입과 퇴장까지 이어지는 이 구조는 기업과 조직, 나아가 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원리로 확장된다.
모든 연주가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리허설에서 이미 방향이 결정되듯, 조직의 성과 역시 실행 이전의 설계와 조율 단계에서 사실상 좌우된다. “모든 음악은 리허설에서 완성된다”는 그의 통찰은 오케스트라를 넘어 조직과 경영의 본질을 가장 깊이 있게 드러내는 문장으로 남는다.(솔과학 刊, 정가 2만 원, 교보문고 등에서 판매 중)
글 김종섭 사진 조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