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시절에도 고난의 성악이 꽃피던 지역-대구 ‘노래의 향기’ 여는 김정규 예술감독

대구에서 다시 묻는 한국 성악의 뿌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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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오페라단 김정규 예술감독 인터뷰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옛것을 알아야 현재가 있다는 건데, 지금 우리는 성악계의 계보를 너무 많이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공연을 통해 그 흐름을 다시 짚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서울, 대구, 부산, 광주 이렇게 전국적으로 돌면서 해보자는 생각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출발을 왜 대구에서 하느냐, 그건 아주 분명합니다. 대구는 한국 성악이 다시 시작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6월 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노래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펼치는 하늘오페라단의 김정규 옐감독은 이번 공연의 출발점을 ‘기억의 회복’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한다. 그의 말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대구는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한국 성악의 ‘재건의 현장’으로 보고 있다.
“6·25 이후 서울의 음악 기반이 거의 무너졌습니다. 그때 많은 예술가들이 대구로 내려왔거든요. 피난지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음악이 다시 만들어졌으니가요. 김금환, 홍춘선, 김원경 같은 분들이 단순히 노래를 부른 게 아닙니다. 교육을 하고, 사람을 키우고, 성악을 계승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자체가 그분들의 결과입니다.”
대구 태생인 김 감독은 실제로 당시 대구는 교회, 학교, 음악감상실을 중심으로 교육, 공연, 감상 문화가 동시에 형성된 매우 독특한 음악 생태계를 구축한 도시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의 학창시절에도 녹향, 하이마트, 파노라마와 같은 음악감상실이 활발하게 운영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음악을 배우고 공유하는 지적 공간이었다. 또 성악가들에게는 레퍼터리를 익히고 예술적 감각을 키우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이번 공연은 이러한 흐름을 설명이 아닌 음악 자체로 체험하게 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전통과 세계를 잇는 성악의 서사, 무대 위에 펼쳐지다

바로 이런 대구 성악의 역사를 되새겨보자는 차원애서 오는 6월 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서 하늘오페라단 콘서트시리즈 17번째로 ‘노래의 향기’가 개최한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단순한 갈라 콘서트의 형식을 넘어 한국 성악의 계보와 흐름을 입체적으로 되짚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구를 출발점으로 삼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는 구조 속에서, 성악이라는 장르가 지닌 본질과 의미를 다시 묻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무대는 한국 가곡과 민요,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를 함께 엮어 한국 성악이 어느 한 장르에 경도되는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습니다. 무대는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곡과 서양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를 교차 배치하여, 전통과 세계가 호흡하는 흐름 속에서 성악의 깊이를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공연의 시작은 소프라노 이화영이 연다. 조두남의 ‘새타령’으로 한국 가곡 특유의 서정성을 먼저 풀어낸 뒤,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중 ‘Pace, pace mio Dio’를 통해 극적인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이어 소프라노 강혜명은 ‘그리운 금강산’으로 민족적 향수를 불러일으킨 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에서 ‘Mein Herr Marquis’를 선보이며 경쾌하고 유려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소프라노 이미영은 ‘산촌’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정서를 담담히 그려낸 뒤,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La mamma morta’로 강렬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어 김민지는 ‘동심초’로 섬세한 서정을 전달한 후, 마스네의 ‘마농’ 중 ‘Je marche sur tous les chemins’을 통해 한층 세련된 프랑스 오페라의 색채를 선보인다.
테너 박기천은 경기민요 ‘박연폭포’로 힘차고 소박한 한국적 음색을 들려준 뒤, 레하르의 ‘미소의 나라’ 중 ‘Dein ist mein ganzes Herz’를 통해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펼친다. 이어 테너 김정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깊은 사색의 정서를 전한 후, 다시 한 번 베르디의 ‘운명의 힘’ 중 ‘O tu che in seno agli angeli’를 통해 극적인 울림을 더한다.
바리톤 김승철은 ‘거문도 뱃노래’로 민요 특유의 힘과 리듬감을 살린 뒤, ‘안드레아 셰니에’ 중 ‘Nemico della patria?!’를 통해 강한 극적 긴장감을 표현한다. 이어 박정환은 ‘산아’를 통해 묵직한 울림을 전달하고,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Io morrò’로 비극적 감정을 깊이 있게 풀어낸다.
후반부에서는 테너 김대영이 ‘목련화’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며, 푸치니의 ‘토스카’ 중 ‘Recondita armonia’로 섬세한 감정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바리톤 제갈믿음은 함경도 민요 ‘신고산 타령’으로 한국적 흥을 담아내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Di Provenza il mar, il suol’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처럼 이번 공연은 한국 가곡과 민요,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각 성악가들의 개성과 해석을 통해 성악이 지닌 다양한 정서와 표현의 깊이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무대로 구성되어 있다.

성악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철학이 담긴 예술

김정규 예술감독은 단순히 프로그램만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성악을 계승한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성악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그가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 것은 성악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일반적으로 성악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저 하나의 장르, 지나가는 음악처럼 보는 ㅣ각입니다. 성악은 절대 그런 장르가 아닙니다. 인간의 호흡과 감정, 언어가 결합된 예술이짆아요. 소리만 낸다고 노래가 되는 게 아니고. 혼이 담겨야 하고, 철학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생각 없이 부르는 노래는 절대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장르거든요.”
그는 성악을 ‘삶을 통과한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희로애락을 겪지 않은 음악은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기교는 있을 수 있지만 감동은 없다. 요즘 보면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는 이유로 박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삶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성악의 대가는 결국 철학가가 된다는 말도 있듯이 그만큼 자기 자신과 싸우는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김정규 감독은 성악의 기원을 설명하며, 이 장르가 지닌 ‘출발점’을 다시 짚는다.
“콘서바토리라는 것도 원래 성당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던 기관이었잖아요. 그 아이들이 성가대를 하면서 성악이 시작된 겁니다. 성악은 원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온 음악입니다. 옛날 성악가들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기에 힘든 일을 하다가 성악을 시작한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는 카스트라토의 사례까지 언급하며 성악의 역사적 비극성을 짚는다. 가스트라토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피눈물 나는 이야기들이 성악의 역사 속에 있기에 성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음악이 아닐까? 김정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성악에 대한 동정이 아니다.
“이번 공연에 나오는 분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진심으로 노래에 다가가는 자세입니다. 음악은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절대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저는 그 생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오페라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번 성악가들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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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성악가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할 때

김정규 감독은 성악계 내부에 대한 비판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공연의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탈리아의 대가들을 보면 굉장히 소탈합니다. 이웃집 아저씨, 할머니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대중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별의식 같은 것이 생긴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겸손해져야 합니다. 관객과 함께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그는 뮤지컬 배우들과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뮤지컬 배우들을 보면 깜작 놀라곤 한다. 그들이 무대를 대하는 자세는 유학 경험이 없다고 부족한 게 아니다.
“연습에 임하는 태도가 성악계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연출이 세 번 구르라고 하면 네 번 구릅니다.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돈과 관계없이 혼신을 다하죠. 그걸 보면서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일부 성악가들은 그런 절실함이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분명히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그는 성악을 스스로 낮추는 발언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어느 방송에서 ‘성악은 춥고 배고프다’ 이런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경우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걸 듣는 일반 사람들이 성악을 어떻게 볼까? 누가 자녀에게 성악을 권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음악을 선택했다는 건 돈을 선택한 게 아니다. 음악 자체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추구한다면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성악의 감동과 사회적 역할, 두 가지를 모두 보여주고 싶어

성악은 듣는이들에게 배움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교육적인 기능, 감동을 주는 기능, 그리고 사회를 움직이는 기능이 있다. 그러기에 성악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작곡가와 성악가들의 체험이 녹아있기에 누구든 감동 받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오페라 중에는 이미 사회 개혁과 사회 변혁의 기능을 강조한 오페라들이 많기에 이 역시 제대로 알기에 하면 오페라가 얼마나 진보적인지 알 수 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귀족에 대한 도전이 담겼고, 푸치니의 ‘토스카’는 정치 권력에 맞선 개인의 선택을 다루고 있다. ‘나부코’는 민족의 독립정신이 녹아있고,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쉐니에’ 역시 혁명과 폭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노동과 민중의 현실을 그린 작품도 있다. 쿠르트 바일의 ‘마호가니 시의 번영과 몰락’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인간해방을 노래한 것은 베토벤의 ‘피델리오’다. ‘돈조반니’는 귀족 권력의 무책임한 남용을 비판한 것이고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역시 귀족들의 모순과 능력을 지혜자 피가로와 대비시켜 비판한 내용이랄 수 있다.
이렇듯 오페라의 기능은 감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김정규 감독은 앞으로 다양한 주제로 공연 ‘노래의 향기’를 펼쳐나가면서 이런 사회개혁과 변혁에 대한 주제도 다루고자 한다. 즉 성악을 ‘현재의 예술’로 바라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성악은 박물관에 있는 음악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있는 음악입니다. 시대와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감동도 중요하지만, 메시지도 중요합니다. 이번 공연은 그 두 가지를 함께 보여주려는 시도입니다.”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김정규 감독은 결국 한 문장으로 돌아온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악은 분명히 힘든 길입니다. 배고프고, 어려운 길입니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게 있기 때문에 1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선택한 겁니다. 저는 그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번 ‘노래의 향기’는 이런 철학이 담긴 공연이기에 오는 6월 4일 오후 7시 30분, 대구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 가능한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해 진한 감동을 나누자고 권한다. 공연문의_02.543.7352

글 김종섭  사진 조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