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노작곡가를 식당으로 모시던 그날의 저녁

“처음 뵌 것은 특별한 자리가 아니었어요. 10여 년 전 음악회 현장에서 뵈었을 때 신귀복 선생님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음식점을 찾지 못해 망설이는 모습이 안타까워 도와드렸거든요.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연로하신 작곡가 분인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거든요. 얼떨결에 식당으로 모셔다드린 게 인연이 되었죠. 저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신귀복 선생은 시에 곡을 붙이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서로의 장르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지난 4월 20일(월) 세종체임버홀에서 올해 구순을 맞이한 ‘얼굴’의 작곡가 신귀복 선생의 구순기념음악회를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임승환 시인은 신귀복 작곡가와의 인연을 회상한다.
사실 ‘얼굴’의 작곡가라고만 알고 있지만 신귀복 작곡가의 작품은 800여 곡에 달한다. 최영섭 작곡가의 곡도 무려 1천 곡에 달하지만 ‘그리운 금강산’이 워낙 강한 이미지를 형성하기에 그 곡만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한민국 가곡 작곡의 국보적인 인물인 신귀복 작곡가의 음악회가 얼마나 화려할까 싶지만 사실은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음악회라는 걸 이번 음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신귀복 작곡가에게는 누구보다도 임승환 시인이 있었기에 이런 음악회가 성사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내가 공연을 이끌었네’ 하고 자기 목소리도 내지 않다. 그게 임승환 시인의 성품인가 싶다.
흩어진 손글씨 악보를 모아 100곡 작곡집으로 엮어내

임승환 작곡가는 기왕 신귀복 작곡가와 인연을 맺었기에 이 위대한 작곡가의 악보를 가만 둘 수 없었다. 짐작하겠지만 신귀복 작곡가의 작품 대부분은 수기로 그렸기 때문에 누군가 그 악보를 정리해줘야 한다. 올해로 구순이니 아무래도 컴퓨터에 능할 수 없지 않은가. 작곡가 생활 60년을 감안하면 초창기 작품이 어디에 보관했으며 누가 관리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일을 임승환 시인은 팔을 걷어부치고 앞장섰다. 이 음악회에 앞서 신귀복 작곡가의 작품 100곡을 우선 수집해 작곡집을 자비 출판했다. 세상에 이런 시인이 어디 있겠나?
임승환 시인은 가곡 음악회 현장에서 자주 눈에 띄곤 했던 주인공이다. 그때마다 각인된 인상은 늘 발걸음이 잰데다 씩씩하며 입꼬리는 늘 하늘에서 누가 끌어올리는 듯 반가운 표정이었다. 그만큼 매사에 적극적이라는 얘기다. 이번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아마 임승환 시인 특유의 성격이 작동했으리라.
그는 이번 연주회에 앞서 무엇보다도 ‘관객 구성 전략’을 세우고 시작했다. 단순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홍보하고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연의 성격에 맞는 관객을 먼저 선별하고 초청하는 방식이었다는 설명이다.
“무작정 단체 메시지로 표를 사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음악을 이해하고 신귀복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할 수 있는 분들을 먼저 초청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전체 객석의 약 50%를 공연의 성격에 공감할 수 있는 관객으로 채우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나머지 좌석은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역시 유료 판매를 진행했다. 즉, 초청과 매표를 명확히 분리하되, 초청을 통해 공연의 분위기와 집중도를 먼저 확보하고, 이후 판매를 통해 확장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비교적 저렴한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약 80%에 달하는 높은 유료 판매율을 기록했다.
결국 이번 공연의 성공은 단순한 홍보의 결과가 아니라, ‘누가 이 공연을 볼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설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를 통해 국내 가곡 공연에서도 충분히 관객을 조직하고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47층 빌딩을 올리던 손, 무대 위 가곡을 살리기에 적용하고파

임승환 시인의 이런 전략은 그냥 즉흥적으로 주어진게 아니었다. 그는 사실 음악과 무관한 사업가였었다. 임승환 시인이 가곡에 깊이 관여하게 된 과정은 음악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성취 이후에 찾아온 전환에 가까웠다. 그는 인생 대부분을 도시계획 분야에 종사하며 대규모 시공사의 대표 이사를 역임한 기업가였다.
“건축분얀에서 제 이름으로 하나의 점은 찍었다고 생각할 만큼 사업에 최선을 다했거든요. 지금은 사업에 관한한 여한이 없답니다.”
그는, 서울시 양천구 목동 12·13블록, 현재의 양천구청 일대 도시계획을 총괄하고, 지하 7층·지상 47층 규모의 목동 삼성 쉐르빌 프로젝트를 책임졌던 사업가였다. 이어 개포동 개발까지 참여하며, 도시계획가이자 기업인으로서 충분히 자신의 영역에서 성취를 이뤘다고 자평한다. 이런 기업가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늘 음악과 함게 했음을 고백한다.
“음악은 처음부터 생업이나 주된 정체성이 아니라, 이미 한 분야에서 기반을 다진 이후에 선택된 또 다른 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음악은 애초 ‘조언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무수한 신작 가곡이 창작됨에도 무대에서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그의 말처럼, 창작은 이루어지지만 무대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직접 판을 만드는 기획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객 없는 무대를 직접 채우기로 결심

그의 개인적인 창작 경험 역시 이러한 행보를 가속화시켰다. 자신이 작시한 가곡 ‘어머니’(조성기 곡)이 교과서에 실리고, 소프라노 김민지의 음성으로 녹음되면서 작품이 실제로 연주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더 나아가 파리에서 졸업 연주곡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고, ‘시인 윤동주’라는 작품은 음반 레이블 Naxos에서 녹음 제안을 받을 정도로 반향을 얻는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은 그에게 ‘가곡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장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동시에 시스템의 부재를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작곡가들과의 교류가 깊어지면서 그는 가곡계의 현실적인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전략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음악회가 많고, 관객 없는 공연이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기획자로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단순한 공연 개최를 넘어 관객을 끌어들이는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신귀복 작곡가의 음악회는 물론, 중앙대학교 박이제 교수의 공연 등을 국립극장과 같은 대형 공연장에서 개최하며 매진 사례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가곡 공연도 충분히 대중성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동시에 그는 창작자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확장해 나갔다. 지금까지 작시한 가곡만 86여 곡을 넘어섰고, 장르 또한 가곡에 머무르지 않았다. 짧은 형식의 오페라 ‘오페라 기녀 월이’의 대본을 집필해 경상북도 고성에서 무대에 올렸으며, 이는 작곡가 정덕기의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또한 한 편의 뮤지컬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다수의 곡을 창작했고, 중앙대학교 100주년 기념곡의 작사를 맡아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결국 그의 가곡 사랑은 개인적인 취향이나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실천으로 이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미 다른 분야에서 충분한 성취를 이룬 이후, 우리 가곡이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스스로 무대와 구조를 만들어 나갔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애호가’라기보다 ‘개척자’에 가깝다.
배우지 않은 노래, 부르기 어려운 언어, 그래서 무대에 오르지 못한 가곡

임승환 시인이 그동안 지켜본 우리 가곡이 대중화 문제는 단순히 한 가지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가장 먼저 음악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학교에서 한국 가곡을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악가들에게도 한국 가곡은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 되어버립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은 곧 부담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회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 성악가들이나 기획사 소속 연주자들은 한국 가곡 무대에 초청받아도 선뜻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미 알고 있는 곡, 별도의 시간 투자 없이 부를 수 있는 곡은 선택하지만, 새롭게 익혀야 하는 창작 가곡은 부담을 이유로 거절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두고 ‘이제는 새로운 가곡을 부를 위치가 아니다라고 스스로 선을 긋는 분위기’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는 오히려 새로운 창작 가곡에 도전하는 성악가들을 높이 평가한다.
“교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곡을 배우고 무대에 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야말로 우리 가곡을 지켜가는 분들이고 존경해야 할 분들입니다.”
단순한 연주를 넘어, 우리 음악의 지속성을 떠받치는 태도에 대한 존중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그는 성악가들의 이러한 선택을 무조건 비판하지는 않는다. 창작 가곡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어려움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전 시들은 그 자체로 리듬과 선율이 살아 있어서 곡을 붙이면 비교적 쉽게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창작곡들은 전문 시인의 시가 아닌 경우도 많고, 가사의 리듬보다는 감정 표현이 앞서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로 인해 가사는 외우기 어렵고, 곡의 흐름 역시 자연스럽지 않거든요.”
더불어 곡의 길이도 문제로 지적했다. 전통적인 가곡이 2~3분 내외로 구성되어 흐름이 명확했던 반면, 최근 작품들은 4분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암보과 이미지 형성 모두에 부담을 준다는 설명이다. 언어적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는 한국어의 특성이 서양 음악 체계와 충돌하는 지점을 짚었다.
“한국어는 발음 기호와 띄어쓰기가 분명한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를 서양 악보의 틀에 맞추다 보니, 성악가들이 발음과 호흡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는 단순한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적 표현 전체를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결국 익숙한 노래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현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로 그는 ‘준비 시간의 절대적 부족’을 들었다. 오페라 아리아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입시를 위해 오랜 기간 연습해 온 레퍼토리다. 반면 한국 가곡, 특히 창작곡은 대부분 초연 작품으로, 공연 결정 이후 길어야 3개월 이내에 준비해야 한다. 이 짧은 시간 안에 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잘못 불렀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한다는 말이다.결국 안정성이 확보된 레퍼토리로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닐까?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한국 가곡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성악가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는 ‘독일어나 이탈리아어 발성에 익숙한 성악가들이 그 발성법을 한국어에 맞게 변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가 많지 않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제도적 기반의 부재도 짚었다.
“성악이나 기악 분야에는 전국 단위 콩쿠르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가곡 작곡 분야는 그렇지 못합니다.”
창작을 장려하고 경쟁을 통해 수준을 끌어올릴 구조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음악계 내부의 태도 문제까지 솔직하게 언급했다. 공연 현장에서 느끼는 직업 윤리의 차이다. 가요 가수들은 공연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는데, 성악가들은 늦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라고 그는 단언한다. 실제로 오랜 기간 함께한 성악가 성궁용 교수의 사례를 들며,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제자의 성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임승환 시인의 진단은 단순히 ‘가곡이 어렵다’는 차원을 넘어, 교육·언어·창작·제도·태도에 이르는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한국 가곡의 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가곡을 부르는 사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가곡을 쓰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 이 장르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곡과 안에 가곡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곡가 길러내는 가곡 생태계 세우고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비교적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핵심은 ‘지속 가능한 가곡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우선 그는 기업 후원을 통해 전용 공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홀을 하나 온전히 마련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을 기반으로 정식 가곡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즉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교육과 창작이 함께 이루어지는 거점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을 중심으로 그는 가곡 인재 양성 시스템을 체계화하려 한다. 특히 성악과 기악 분야에는 다양한 콩쿠르가 존재하는 반면, 작곡 분야에는 지속적인 등용문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기반으로 한 법인을 설립하고, 그 안에서 작곡가들을 발굴·지원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모델은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일회성 콩쿠르가 아니라, 장학제도처럼 꾸준히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수상자를 뽑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후원과 성장 지원이 이어지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기업의 사회공헌 모델과 결합해, 지속적으로 작곡가를 육성하는 일종의 ‘가곡 생태계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계획은 공연, 교육, 창작, 후원이 하나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다음 세대 작곡가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덧붙였다.
“이번 음악회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면 합니다. 단발성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곡을 계속 소개하고, 연결하고, 이어가는 흐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가곡은 오래된 음악이 아니라,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음악입니다.”
그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 듯싶다.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이고, 이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가곡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다림의 음악’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다시 부르는 일, 그것이 이번 신귀복 구순 음악회가 남긴 진짜 의미가 아닐까?
임승환 프로필

세종대 및 세종대학원 졸업/ SCU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이태리 Gaspare Spontini공립학교 성악 수료/ 전 관악구립합창단원/ 클래식 음악회 전문진행자(평화음악회 등 200회 이상의 음악회 진행)/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마술피리’, ‘라보엠’ 등에 출연/ 임승환 가곡 음반 ‘사랑 하면’, ‘시인 윤동주’, ‘함께 해요’ 발매/ 현 고등학교 교과서 수록곡 ‘어머니(조성기 곡)’외 가곡 80여 편 작사/ 창작 오페라 기생월이 대본, 뮤지컬 지구별의 사랑 대본 및 작사/ 현) 공연기획 엘컬처 대표/ 현) 사)한국예술가곡총연합회 사무총장 및 (사)서울문예마당 이사/ 현 템페스테오페라단 단원/ ㈜아이비씨오엠 대표이사, 중원 이사를 겸직하며 양전구 목동 12,13블록 도시계획을 진행하고 목동삼섬쉐르빌 건축주, 시행사, 건설사 대표로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의 맞춤형 아파트를 건설하여 2003년 준공 입주시킴. 현재|까지 도시계획 업무를 하고 있음/ 2003년 한국 국제펜클럽 이사장 문효치 시인을 만나 시에 대해 사사, 2006년 명지대 문창과에 입학하여 시 수업을 하던 중 2008년 동국대학교 홍신선 교수가 발행하는 계간 문학선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첨성대, 노마드 사랑법/ 2012년 독일 본 대학 초청 낭독회를 비롯해 계간 미네르바, 계간 발견 등의 편집 간사와 편집 위원을 역임/ 아프리카 시인을 돕는 한국 시인으로 황학주 시인과 더불어 아프리카 시인들의 시집 출간 도움(경향신문 2010년 4월 27일 등)
글 김종섭
길 잃은 노작곡가를 식당으로 모시던 그날의 저녁
“처음 뵌 것은 특별한 자리가 아니었어요. 10여 년 전 음악회 현장에서 뵈었을 때 신귀복 선생님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음식점을 찾지 못해 망설이는 모습이 안타까워 도와드렸거든요.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연로하신 작곡가 분인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거든요. 얼떨결에 식당으로 모셔다드린 게 인연이 되었죠. 저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신귀복 선생은 시에 곡을 붙이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서로의 장르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지난 4월 20일(월) 세종체임버홀에서 올해 구순을 맞이한 ‘얼굴’의 작곡가 신귀복 선생의 구순기념음악회를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임승환 시인은 신귀복 작곡가와의 인연을 회상한다.
사실 ‘얼굴’의 작곡가라고만 알고 있지만 신귀복 작곡가의 작품은 800여 곡에 달한다. 최영섭 작곡가의 곡도 무려 1천 곡에 달하지만 ‘그리운 금강산’이 워낙 강한 이미지를 형성하기에 그 곡만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한민국 가곡 작곡의 국보적인 인물인 신귀복 작곡가의 음악회가 얼마나 화려할까 싶지만 사실은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음악회라는 걸 이번 음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신귀복 작곡가에게는 누구보다도 임승환 시인이 있었기에 이런 음악회가 성사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내가 공연을 이끌었네’ 하고 자기 목소리도 내지 않다. 그게 임승환 시인의 성품인가 싶다.
흩어진 손글씨 악보를 모아 100곡 작곡집으로 엮어내
임승환 작곡가는 기왕 신귀복 작곡가와 인연을 맺었기에 이 위대한 작곡가의 악보를 가만 둘 수 없었다. 짐작하겠지만 신귀복 작곡가의 작품 대부분은 수기로 그렸기 때문에 누군가 그 악보를 정리해줘야 한다. 올해로 구순이니 아무래도 컴퓨터에 능할 수 없지 않은가. 작곡가 생활 60년을 감안하면 초창기 작품이 어디에 보관했으며 누가 관리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일을 임승환 시인은 팔을 걷어부치고 앞장섰다. 이 음악회에 앞서 신귀복 작곡가의 작품 100곡을 우선 수집해 작곡집을 자비 출판했다. 세상에 이런 시인이 어디 있겠나?
임승환 시인은 가곡 음악회 현장에서 자주 눈에 띄곤 했던 주인공이다. 그때마다 각인된 인상은 늘 발걸음이 잰데다 씩씩하며 입꼬리는 늘 하늘에서 누가 끌어올리는 듯 반가운 표정이었다. 그만큼 매사에 적극적이라는 얘기다. 이번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아마 임승환 시인 특유의 성격이 작동했으리라.
그는 이번 연주회에 앞서 무엇보다도 ‘관객 구성 전략’을 세우고 시작했다. 단순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홍보하고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연의 성격에 맞는 관객을 먼저 선별하고 초청하는 방식이었다는 설명이다.
“무작정 단체 메시지로 표를 사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음악을 이해하고 신귀복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할 수 있는 분들을 먼저 초청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전체 객석의 약 50%를 공연의 성격에 공감할 수 있는 관객으로 채우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나머지 좌석은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역시 유료 판매를 진행했다. 즉, 초청과 매표를 명확히 분리하되, 초청을 통해 공연의 분위기와 집중도를 먼저 확보하고, 이후 판매를 통해 확장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비교적 저렴한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약 80%에 달하는 높은 유료 판매율을 기록했다.
결국 이번 공연의 성공은 단순한 홍보의 결과가 아니라, ‘누가 이 공연을 볼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설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를 통해 국내 가곡 공연에서도 충분히 관객을 조직하고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47층 빌딩을 올리던 손, 무대 위 가곡을 살리기에 적용하고파
임승환 시인의 이런 전략은 그냥 즉흥적으로 주어진게 아니었다. 그는 사실 음악과 무관한 사업가였었다. 임승환 시인이 가곡에 깊이 관여하게 된 과정은 음악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성취 이후에 찾아온 전환에 가까웠다. 그는 인생 대부분을 도시계획 분야에 종사하며 대규모 시공사의 대표 이사를 역임한 기업가였다.
“건축분얀에서 제 이름으로 하나의 점은 찍었다고 생각할 만큼 사업에 최선을 다했거든요. 지금은 사업에 관한한 여한이 없답니다.”
그는, 서울시 양천구 목동 12·13블록, 현재의 양천구청 일대 도시계획을 총괄하고, 지하 7층·지상 47층 규모의 목동 삼성 쉐르빌 프로젝트를 책임졌던 사업가였다. 이어 개포동 개발까지 참여하며, 도시계획가이자 기업인으로서 충분히 자신의 영역에서 성취를 이뤘다고 자평한다. 이런 기업가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늘 음악과 함게 했음을 고백한다.
“음악은 처음부터 생업이나 주된 정체성이 아니라, 이미 한 분야에서 기반을 다진 이후에 선택된 또 다른 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음악은 애초 ‘조언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무수한 신작 가곡이 창작됨에도 무대에서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그의 말처럼, 창작은 이루어지지만 무대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직접 판을 만드는 기획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객 없는 무대를 직접 채우기로 결심
그의 개인적인 창작 경험 역시 이러한 행보를 가속화시켰다. 자신이 작시한 가곡 ‘어머니’(조성기 곡)이 교과서에 실리고, 소프라노 김민지의 음성으로 녹음되면서 작품이 실제로 연주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더 나아가 파리에서 졸업 연주곡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고, ‘시인 윤동주’라는 작품은 음반 레이블 Naxos에서 녹음 제안을 받을 정도로 반향을 얻는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은 그에게 ‘가곡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장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고, 동시에 시스템의 부재를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작곡가들과의 교류가 깊어지면서 그는 가곡계의 현실적인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전략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음악회가 많고, 관객 없는 공연이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기획자로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단순한 공연 개최를 넘어 관객을 끌어들이는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신귀복 작곡가의 음악회는 물론, 중앙대학교 박이제 교수의 공연 등을 국립극장과 같은 대형 공연장에서 개최하며 매진 사례를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가곡 공연도 충분히 대중성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동시에 그는 창작자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확장해 나갔다. 지금까지 작시한 가곡만 86여 곡을 넘어섰고, 장르 또한 가곡에 머무르지 않았다. 짧은 형식의 오페라 ‘오페라 기녀 월이’의 대본을 집필해 경상북도 고성에서 무대에 올렸으며, 이는 작곡가 정덕기의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또한 한 편의 뮤지컬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다수의 곡을 창작했고, 중앙대학교 100주년 기념곡의 작사를 맡아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결국 그의 가곡 사랑은 개인적인 취향이나 취미를 넘어,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실천으로 이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미 다른 분야에서 충분한 성취를 이룬 이후, 우리 가곡이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스스로 무대와 구조를 만들어 나갔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애호가’라기보다 ‘개척자’에 가깝다.
배우지 않은 노래, 부르기 어려운 언어, 그래서 무대에 오르지 못한 가곡
임승환 시인이 그동안 지켜본 우리 가곡이 대중화 문제는 단순히 한 가지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가장 먼저 음악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학교에서 한국 가곡을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악가들에게도 한국 가곡은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 되어버립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은 곧 부담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회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 성악가들이나 기획사 소속 연주자들은 한국 가곡 무대에 초청받아도 선뜻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미 알고 있는 곡, 별도의 시간 투자 없이 부를 수 있는 곡은 선택하지만, 새롭게 익혀야 하는 창작 가곡은 부담을 이유로 거절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두고 ‘이제는 새로운 가곡을 부를 위치가 아니다라고 스스로 선을 긋는 분위기’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는 오히려 새로운 창작 가곡에 도전하는 성악가들을 높이 평가한다.
“교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곡을 배우고 무대에 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야말로 우리 가곡을 지켜가는 분들이고 존경해야 할 분들입니다.”
단순한 연주를 넘어, 우리 음악의 지속성을 떠받치는 태도에 대한 존중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그는 성악가들의 이러한 선택을 무조건 비판하지는 않는다. 창작 가곡 자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어려움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전 시들은 그 자체로 리듬과 선율이 살아 있어서 곡을 붙이면 비교적 쉽게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창작곡들은 전문 시인의 시가 아닌 경우도 많고, 가사의 리듬보다는 감정 표현이 앞서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로 인해 가사는 외우기 어렵고, 곡의 흐름 역시 자연스럽지 않거든요.”
더불어 곡의 길이도 문제로 지적했다. 전통적인 가곡이 2~3분 내외로 구성되어 흐름이 명확했던 반면, 최근 작품들은 4분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암보과 이미지 형성 모두에 부담을 준다는 설명이다. 언어적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는 한국어의 특성이 서양 음악 체계와 충돌하는 지점을 짚었다.
“한국어는 발음 기호와 띄어쓰기가 분명한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를 서양 악보의 틀에 맞추다 보니, 성악가들이 발음과 호흡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는 단순한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적 표현 전체를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결국 익숙한 노래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현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로 그는 ‘준비 시간의 절대적 부족’을 들었다. 오페라 아리아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입시를 위해 오랜 기간 연습해 온 레퍼토리다. 반면 한국 가곡, 특히 창작곡은 대부분 초연 작품으로, 공연 결정 이후 길어야 3개월 이내에 준비해야 한다. 이 짧은 시간 안에 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잘못 불렀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한다는 말이다.결국 안정성이 확보된 레퍼토리로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닐까?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한국 가곡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성악가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는 ‘독일어나 이탈리아어 발성에 익숙한 성악가들이 그 발성법을 한국어에 맞게 변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가 많지 않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제도적 기반의 부재도 짚었다.
“성악이나 기악 분야에는 전국 단위 콩쿠르가 활성화되어 있지만, 가곡 작곡 분야는 그렇지 못합니다.”
창작을 장려하고 경쟁을 통해 수준을 끌어올릴 구조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음악계 내부의 태도 문제까지 솔직하게 언급했다. 공연 현장에서 느끼는 직업 윤리의 차이다. 가요 가수들은 공연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는데, 성악가들은 늦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라고 그는 단언한다. 실제로 오랜 기간 함께한 성악가 성궁용 교수의 사례를 들며,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제자의 성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임승환 시인의 진단은 단순히 ‘가곡이 어렵다’는 차원을 넘어, 교육·언어·창작·제도·태도에 이르는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한국 가곡의 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가곡을 부르는 사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가곡을 쓰는 사람이 없으면, 결국 이 장르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곡과 안에 가곡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곡가 길러내는 가곡 생태계 세우고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비교적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핵심은 ‘지속 가능한 가곡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우선 그는 기업 후원을 통해 전용 공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홀을 하나 온전히 마련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을 기반으로 정식 가곡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즉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교육과 창작이 함께 이루어지는 거점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을 중심으로 그는 가곡 인재 양성 시스템을 체계화하려 한다. 특히 성악과 기악 분야에는 다양한 콩쿠르가 존재하는 반면, 작곡 분야에는 지속적인 등용문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기반으로 한 법인을 설립하고, 그 안에서 작곡가들을 발굴·지원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모델은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일회성 콩쿠르가 아니라, 장학제도처럼 꾸준히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수상자를 뽑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후원과 성장 지원이 이어지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기업의 사회공헌 모델과 결합해, 지속적으로 작곡가를 육성하는 일종의 ‘가곡 생태계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계획은 공연, 교육, 창작, 후원이 하나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다음 세대 작곡가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덧붙였다.
“이번 음악회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면 합니다. 단발성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곡을 계속 소개하고, 연결하고, 이어가는 흐름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가곡은 오래된 음악이 아니라,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음악입니다.”
그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닌 듯싶다.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이고, 이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가곡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다림의 음악’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다시 부르는 일, 그것이 이번 신귀복 구순 음악회가 남긴 진짜 의미가 아닐까?
임승환 프로필
세종대 및 세종대학원 졸업/ SCU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이태리 Gaspare Spontini공립학교 성악 수료/ 전 관악구립합창단원/ 클래식 음악회 전문진행자(평화음악회 등 200회 이상의 음악회 진행)/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마술피리’, ‘라보엠’ 등에 출연/ 임승환 가곡 음반 ‘사랑 하면’, ‘시인 윤동주’, ‘함께 해요’ 발매/ 현 고등학교 교과서 수록곡 ‘어머니(조성기 곡)’외 가곡 80여 편 작사/ 창작 오페라 기생월이 대본, 뮤지컬 지구별의 사랑 대본 및 작사/ 현) 공연기획 엘컬처 대표/ 현) 사)한국예술가곡총연합회 사무총장 및 (사)서울문예마당 이사/ 현 템페스테오페라단 단원/ ㈜아이비씨오엠 대표이사, 중원 이사를 겸직하며 양전구 목동 12,13블록 도시계획을 진행하고 목동삼섬쉐르빌 건축주, 시행사, 건설사 대표로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의 맞춤형 아파트를 건설하여 2003년 준공 입주시킴. 현재|까지 도시계획 업무를 하고 있음/ 2003년 한국 국제펜클럽 이사장 문효치 시인을 만나 시에 대해 사사, 2006년 명지대 문창과에 입학하여 시 수업을 하던 중 2008년 동국대학교 홍신선 교수가 발행하는 계간 문학선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첨성대, 노마드 사랑법/ 2012년 독일 본 대학 초청 낭독회를 비롯해 계간 미네르바, 계간 발견 등의 편집 간사와 편집 위원을 역임/ 아프리카 시인을 돕는 한국 시인으로 황학주 시인과 더불어 아프리카 시인들의 시집 출간 도움(경향신문 2010년 4월 27일 등)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