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동 감독이 제시하는 번안을 통한 오페라 위기 해법

1473923130d9e.jpg

번안오페라, 이제 오페라도 ‘우리 얼굴’을 가져야 할 때


‘우리 얼굴을 한 오페라’를 향하여

“번안과 번역은 다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오페라는 번안입니다. 언어도 번역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언어로 바꾸되, 내용 자체를 우리의 무대, 우리의 이야기로 입히는, 우리 얼굴을 한 오페라를 말합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장수동 예술감독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 한국의 정서와 서사로 재탄생하는 오페라, 그것이 그가 말하는 ‘번안오페라’라고 말한다.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막을 올리는 번안오페라 ‘광대들’(번안 연출 장수동, 지휘 우나이 우레초)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팔리아치’를 바탕으로 한 번안오페라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지난 1994년 창단 이후 32년간 상업성보다 창작과 실험을 선택하며 신작 오페라를 지속적으로 선보여왔다. 이러한 축적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 중장기 사업’ 선정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오랜 작업에 대한 제도적 인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섬진강 나루’, ‘서울*오르페오’, 그리고 ‘광대들-도시의 삐에로’, ‘서울*라보엠’이 포함된다. ‘섬진강 나루’는 전쟁 속 상실을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한 작품이며, ‘서울*오르페오’는 고전 신화를 현대 서울의 공간으로 전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광대들’은 도시 변두리 곡마단 이야기로 인간의 비극을 현재화하고, ‘서울*라보엠’은 1980년을 배경으로 시대의 상처와 청춘의 삶을 결합한다.
이처럼 번안오페라는 단순한 언어의 변환이 아니라 작품의 심장을 한국 역사와 현실 속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장수동 감독이 말한 ‘우리 얼굴을 한 오페라’는 바로 이러한 재창조를 통해 구체화된다.

6a77acbc6b97e.png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섬진강 나루. 벤자민 브리튼의 ‘컬류 리버'(Curlew River)를 번안한 작품이다. 


우리 얼굴을 들고 나가야, 번안오페라의 경험에서 나온 확신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창단 이전부터 번안오페라 작업을 축적해왔다. ‘황진이’, Orfeo ed Euridice,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춘향전’ 등 다양한 작품을 해외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통찰은 무엇일가? 결국 ‘우리 얼굴을 한 오페라’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가장 정법한 방식임을 깨달았다. 이는 감상 차원이 아니라 반복된 실천과 관객 반응을 통해 축적된 방법론적 결론에 가깝다.|
그가 전환점으로 언급하는 것은 리골레토와 같이 이탈리아에서 원어로 공연을 진행했던 경험이다. 당시 공연은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관객들은 왜 이탈리아 작품을 외부에서 그렇게까지 재현하려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보였고, 이는 공연 완성도와 별개로 ‘자기 것’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무대에 한국적 장치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표현이 원작의 틀에 머물러 있었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잘하는 것’과 ‘자기 것’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게 되었죠. 아무리 높은 수준의 재현이라도 자기 언어로 발화되지 않는 순간 완전한 자기 작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후 작업에서 구체화되었고, 코메디아 델 아르떼 형식을 바탕으로, 처용 설화와 같은 한국적 서사를 결합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배경 치환이 아니라 형식과 서사를 동시에 재구성하는 번안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1990년대 후반 ‘서울*라보엠’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강조하며, 번안오페라가 일회적 실험이 아니라 지속적 축적의 결과임을 분명히 한다. ‘서울*라보엠’은 특정 시대의 정서를 넘어 집단적 상처를 예술적으로 재구성한 사례로, 개인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기억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오페라적 접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장 감독은 창작과 번안 작업을 하면서 제도적 한계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현재 창작오페라는 대부분 소수 회차에 그치며 반복과 수정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기회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창작 인력의 경험 부족은 규모 중심의 장황한 형식으로 흐르는 경향을 낳는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그는 오래전부터 소극장 중심의 창작 방식을 고수해왔다. 대규모 제작 대신 반복 공연과 수정이 가능한 구조를 통해 작품을 점진적으로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이는 단순한 제작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오페라 생산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시도라 할 만하다. 이러한 실험과 모색은 번안오페라를 통해 언어와 서사, 제작 방식과 공연 구조를 함께 재구성함으로써 한국 오페라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안하는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쟁 디아스포라 그리고 ‘용서와 화해’ 등으로 소재 확대

73b96d66d36ec.jpg

서울*라보엠. 라보엠을 번안한 작품이다.

“저희 오페라단은 특정 시대 중심의 서사와 역사적 공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꾸준히 시도해왔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죠. 나실인의 ‘나비의 꿈’, 이근형의 ‘운영’, 고태암의 ‘붉은 자화상’, 신동일의 가족오페라, 그리고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시도했거든요.”
사실 이런 모색은 단순한 소재 확장을 넘어 창작 환경과 관객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구조적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시도가 완성도와 별개로 반드시 필요했던 과정이었으며, 중동과 가자지구, 시리아의 분쟁 등 세계사적 사건을 한국 오페라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이는 번안오페라가 서양 고전을 한국적으로 바꾸는 데서 나아가, 세계적 서사를 한국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전쟁과 분쟁의 경험을 특정 국가가 아닌 보편적 서사로 묶어내려는 시도로 발전한다. 그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언급하며, 전쟁의 고통이 결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용서와 화해’를 제시한다. 이 개념은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창작의 중심 축이자 번안오페라의 방향을 규정하는 핵심 가치로 기능한다.
장수동 감독의 이런 철학은 최근 번안오페라 프로젝트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는 약 3년에 걸쳐 ‘서울*라보엠’을 시작으로 ‘광대들’, ‘섬진강 나루’, ‘서울*오르페오’로 이어지는 작업을 진행해왔으며, 특히 ‘서울*오르페오’에서는 광화문 지하철역과 이어도라는 이질적 공간을 결합하여 신화와 현대를 교차시키는 실험을 시도함으로써, 번안이 단순한 배경 이동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재구성을 포함하는 서사적 전략임을 보여준다.
그는 이 흐름의 연장선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인간의 갈등과 권력, 그리고 결국 용서와 화해로 귀결되는 서사가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내려놓는 결말은, 번안오페라의 철학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산, 우리 얼굴로 넘다

2b1ad16fa0d4a.png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오리지널 공연 팔리아치.

 

장 감독은 번안오페라의 궁극적 지향을 설명하며 셰익스피어를 ‘광대’라는 개념으로 재정의하고, 이를 통해 예술가의 본질을 새롭게 해석해낸다.
저에게 셰익스피어란 고전 문학의 상징이 아니라 배우와 극작, 연출을 아우르며 유랑 극단을 이끌었던 실천적 예술가였고, 삶의 현장에서 인간의 본질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창작자였다는 점에서 번안오페라가 지향하는 모델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번안오페라를 단순한 재해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출발한 서사를 다시 구성하는 작업으로 확장시키며, 그 연장선에서 그는 ‘템페스트’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작품 구상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남도의 가상 ‘섬’을 배경으로 하되 원작의 텍스트를 가져오고 음악은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며, 번안과 창작이 결합된 형태를 지향한다. 이는 기존 서사를 해체하고 새로운 음악 구조와 결합하는 재창작의 과정으로, 토스카, 나비 부인, 투란도트와 같은 작품들이 연극 텍스트를 기반으로 음악을 덧입히며 탄생했다는 점에서 오페라의 본래적 창작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 작업이 즉흥적 기획이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사유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이미 1990년대 초반 해당 텍스트를 연극으로 무대화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후 오랜 시간 이를 오페라로 전환할 가능성을 모색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시도는 연속된 창작 과정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음악적으로는 서양 악기와 한국 전통 악기를 결합하여 서로 다른 음악 체계를 하나의 서사 안에서 공존시키려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상은 공간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이어도’라는 상징을 확장해 남도의 가상 섬이라는 무대로 전환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축소한 상징적 공간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며, 이 공간은 세대와 지역, 권력과 개인의 갈등이 교차하는 장으로 기능하면서 궁극적으로 ‘화해’와 ‘용서’, ‘상생’이라는 주제로 수렴된다. 이는 장수동 감독이 추구해온 창작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거대한 산’으로 비유하며 이를 한국적 언어와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의 어려움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장르에서 고전을 재해석하는 시도는 존재하지만, 이를 ‘우리 얼굴을 한 오페라’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과제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번안오페라의 의미가 발생한다. 이는 고전 텍스트를 한국적 정서와 언어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이다.
”저는 이러한 번안 작업이 서울오페라앙상블과 같은 특정 단체의 실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박수길 선생님이 이끌었던 예울무대의 모차르트 오페라의 한국화 작업이나 여타 오페라단들의 ‘사랑의 묘약’, ‘헨젤과 그레텔’ 등의 재해석 사례를 통해 번안오페라가 하나의 흐름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다양한 창작 주체들의 참여를 통해 더 큰 예술적 목소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롭게 밀어온 길, 그리고 소극장 오페라의 가능성

그는 번안오페라와 소극장 오페라를 병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업이 개인적 선택을 넘어 구조적 실험에 가까운 과정이었음을 밝히며, 번안이라는 방식이야말로 소극장 오페라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핵심 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한국소극장오페라페스티벌을 이끌며 외국 작품을 단순히 축소하는 방식보다, 한국어와 한국적 서사를 기반으로 재구성된 작품이 관객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보다 직접적인 호흡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소극장 오페라가 독자적 영역으로 성립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러한 인식은 소극장을 대극장의 축소판으로 이해하는 기존 관행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대규모 작품을 물리적으로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소극장이라는 공간의 밀도와 구조에 맞는 서사와 형식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통해 소극장 오페라를 별도의 장르로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오프 브로드웨이와 유사하게 반복과 수정, 축적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구조를 지향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현실적 제약과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 오페라는 여전히 오케스트라 피트를 전제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소극장을 대극장의 하위 개념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는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보며, 챔버 오페라적 접근을 통해 피트가 없는 공간에서도 구현 가능한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이며, 이는 창작과 공연의 지속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페라의 공간 개념 자체를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오페라 작업을 통해 마이크 사용과 음향 구조 등 새로운 조건을 실험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페라가 특정 극장에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환경에서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것이죠. 이러한 변화는 반복 가능한 소규모 공연과 수정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것이에요.“
이 같은 문제의식은 ‘광대들’의 무대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원작의 배경을 1970~80년대 서울 청계천으로 옮겨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청계천은 전쟁 이후 피난민과 산업화 과정의 삶이 축적된 공간으로, 이동과 해체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상징적 장소이며, 이 위에 떠돌이 광대패의 서사를 배치함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교차하는 지점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그는 청계천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를 통해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어떤 관계와 감정을 형성했는지를 중심에 두며, 떠돌이 광대패와 같은 주변부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결합한다. 이러한 접근은 남사당이나 산대극과 같은 전통 연희 요소까지 포괄하려는 확장 의지를 지니지만, 원작의 음악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한국적 요소를 배치하는 전략으로 구현하려고 한다.
”코메디아 델 아르떼 양식의 광대 의상을 도입하면서도 무대의 오브제와 탈, 시각적 장치들은 한국적 정서를 반영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이는 서양 형식 위에 한국적 감각을 중첩시키는 번안의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인물 구성에서도 ‘우리의 얼굴’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여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서사에 포함시키고, 천막 교회라는 장치를 통해 산업화 시기 도시 성장과 함께 형성된 종교 공동체의 맥락을 끌어들인다. 이는 도시 개발과 종교 확장이 동일한 시간대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며, 한강과 청계천이라는 공간 축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인식은 청계천이라는 공간 선택으로 이어지며, 이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기억이 집약된 상징적 장소로 기능한다. 그는 이전 작품에서도 특정 장소를 설정해 시대성을 담아내는 방식을 유지해왔으며, 이번 작품에서도 청계천 위를 가로지르던 구조물의 흔적까지 무대 요소로 끌어들여 사라진 시대를 현재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197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영상으로 중첩시켜 하나의 공간 안에 복수의 시대가 공존하도록 만들며,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무대 위에는 지역 주민과 이주민, 실향민 등 다양한 인물들이 공존하고, 교회 예배 이후 등장한 곡마단을 계기로 서사가 전개되면서 원작의 이탈리아적 구조는 해체되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 속에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번안은 언어의 변환을 넘어 공간과 인물, 관계와 음악적 맥락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재구성으로 작동하며,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역사적 경험과 감정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왜 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반드시 해야 하는가

한편 번안오페라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축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오페라 현장에서 그것이 활발히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 과정이 요구하는 과도한 시간과 노동의 밀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장 감독은 한 편의 번안오페라를 완성하기 위해 수개월에 이르는 연습이 필요하며, 이 과정이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언어와 음악, 발성과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창작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외국어 가사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언어 구조와 음악적 프레이징의 충돌은 지속적인 수정과 협업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제작 과정 자체가 길고 무겁게 형성되기 때문에 많은 단체들이 이를 기획 단계에서부터 회피하곤 합니다.“
이러한 부담은 기존 오페라 제작 방식과의 차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완성된 레퍼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공연과 달리 번안오페라는 텍스트와 음악, 무대 구성까지 전 과정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므로 동일한 시간과 비용 구조 안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닌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조건을 이유로 포기하기보다, 이를 감수하며 작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순회 공연으로 확장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이 문제는 관객 구조와도 연결된다. 한국 관객은 여전히 외국어 공연에 익숙하지 않으며, 자막에 의존한 감상이 몰입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러한 상황일수록 번안오페라의 필요성이 커진다고 보며, 언어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서사가 관객의 이해와 정서적 반응을 강화하고 오페라를 보다 가까운 예술로 만든다고 강조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규모와 구조의 조정을 제안한다.
”대극장 중심의 대규모 제작 방식 대신 오케스트라와 출연진을 축소한 중극장 중심의 제작을 통해 이동성과 반복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공연 기회를 늘리며 작품의 완성도를 점진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하나의 사명 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는 번안오페라를 선택 가능한 장르가 아니라 한국 오페라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고 축적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려 한다. 이는 번안오페라를 개인의 실험이 아닌 집단적 유산으로 남기기 위한 기반이 된다.
해외 사례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런던의 English National Opera는 다양한 작품을 영어로 공연해 관객 접근성을 높이고 있으며, 베를린의 코믹시 오퍼는 독일어 공연을 통해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언어 선택이 오페라의 수용 방식과 관객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b05be1eea79ac.jpg


원어의 아름다움과 우리말의 가능성 사이에서, 번안의 딜레마와 전략

번안오페라가 직면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원어로 구축된 음악적 완결성과 한국어로 재구성되는 서사적 전달력 사이의 긴장에 있으며, 장수동 감독은 이를 번안의 핵심 딜레마로 인식한다. 오페라 아리아는 음악 자체가 하나의 언어로 기능하기 때문에, 레가토의 흐름과 음절 길이, 모음과 자음의 결합으로 형성된 음악적 질감은 원어를 전제로 만들어져 있고, 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동일한 감각을 유지하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Una furtiva lagrima와 같은 아리아는 언어와 음악이 긴밀하게 결합된 사례로, 한국어로 전환할 경우 발음 체계와 리듬의 차이로 인해 원곡의 유려함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문제는 번안 과정에서 직역과 재구성 사이의 선택을 요구한다. 원어에 충실한 번역은 음악적 구조 안에 온전히 담기 어렵고, 반대로 새롭게 구성된 가사는 원곡의 의미와 거리를 두게 된다. 장수동 감독은 이 간극을 창작의 영역으로 인식하며, 특정 지역과 인물, 상황을 반영한 한국어 서사를 새롭게 구축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기존 의미를 보존하기보다 동일한 음악 위에 새로운 삶의 맥락을 입히는 작업으로, 번안을 재창작으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그렇다고 원어 아리아를 완전히 배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극적 흐름 속에서 번안과 앙코르에서의 원어 등을 병치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조 좋죠. 특히 인물의 내면과 외적 행동이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이러한 병치가 극적 긴장을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번안이 단일한 방식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취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관객 인식에 있다. 한국 오페라 시장에서는 여전히 외국어 공연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한국어 오페라는 상대적으로 덜 정통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는 언어에 대한 문화적 위계 의식과 연결되며, 번안오페라의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페라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루는 장르임에도 한국어로 표현될 때 낯설게 느껴지는 현상은, 언어에 대한 자존감과 예술 수용 태도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수동 감독은 번안오페라를 전략적 선택으로 재정의한다. 그는 기존 레퍼토리를 한국적 언어와 정서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새로운 창작과 동일한 가치로 보며, 검증된 고전 텍스트를 한국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는 이중 전략을 통해 오페라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한다. 또한 장편 오페라의 경우 보편적 서사와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공유된 고전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고 판단한다.

efdd3552b917a.jpg


누가 할 것인가, 번안오페라와 공공극장의 역할

장 감독은 번안오페라가 개별 단체의 실험에 머무르는 한 한국 오페라의 구조를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보며, 공공극장이 제작 주체로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오페라단, 지역 공공극장들이 단순한 공연 유치 기관을 넘어 창작과 번안을 병행하는 구조를 갖출 때 비로소 지역 서사와 정서를 반영한 작품이 축적되고 관객층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단체의 동일한 레퍼토리의 반복은 새로운 관객 형성이 어려워지고, 이는 장르 전체의 기반 약화로 이어진다.
그는 관객 수가 곧 지원 구조와 직결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관객 부족이 재정 축소로, 다시 제작 환경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이로 인해 새로운 작품보다는 안정적인 레퍼토리에 의존하게 되고, 공연의 반복을 통한 완성도 축적 역시 제한된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올리지 못했던 경험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정책적 개입을 제안한다. 공공 재원이 투입되는 국립단체의 경우 일정 비율을 창작오페라와 번안오페라에 의무적으로 배정하고, 단발성 공연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제작, 유통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순회 공연이 축소된 작품에 집중되는 현실과 국립 단체 중심의 운영 구조는 지역 오페라단과 교육 기관의 성장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공연장 건립 중심의 문화 정책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극장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방식이며, 제작 기능이 없는 대관 중심 구조는 극장을 단순 임대 공간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공공극장은 자체 제작을 통해 작품을 축적하는 ‘제작 극장’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러한 구조 없이는 대형 공연장도 지역 문화 생태계에 실질적 기여를 하기 어렵다. 이는 부산 등 지역 극장 건립 계획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창작 생태계 구축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돈이 아니라 구조를 만들어야, 정책 부재와 제작 생태계의 공백

번안오페라와 창작오페라의 지속 가능성이 개별 예술가의 의지나 단발적 재정 지원만으로 확보될 수 있을까? 아니올씨다이다. 장 감독은 핵심 문제는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제작 구조의 부재에 있다고 본다. 그는 문화 행정이 재원 배분에는 일정한 성과를 보였지만, 그것이 어떻게 생산 체계로 연결되고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설계는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자율성을 보장했지만, 제작 인프라가 취약한 상황에서는 결과 중심 평가와 대관 중심 운영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작품의 반복과 완성도 축적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공공 재정의 일정 비율을 번안·창작을 포함한 제작에 의무적으로 배정하는 제도적 장치를 제안하며, 이를 통해 반복 공연과 수정이 가능한 생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구조가 마련될 때 해외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국내 창작 현장으로 유입되고, 활동 기반을 잃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며, 공연예술 전반의 동력 역시 회복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정책 차원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행정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지만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체계는 제한적이며, 그 결과 국립단체를 제외한 민간오페라단은 프로젝트 단위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장기적 제작 기반을 구축하기 어렵다. 한국과 일본처럼 민간오페라단 중심 구조는 특수성을 지니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할 경우 오히려 취약성으로 작용하며, 현재의 지원 체계 역시 반복 제작과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지원 정책의 방향을 결과물 중심에서 생산 과정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며, 공연예술을 하나의 생산 구조로 이해한다. 제작 기반 없이 결과만 요구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창작이 지속될 수 없고, 이는 장기적으로 공연예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시기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과 예술 현장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0bad498f396d.jpg


창작은 시작일 뿐, 극장을 모르면 완성되지 않는다

한편 번안과 창작을 병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장 감독은 창작오페라가 일정 단계에서 정체되는 원인을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구조적 한계에서 찾는다. 최근 창작 아카이브를 통해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결과물이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는 지원 체계가 ‘창작의 시작’에만 머물고 이후 발전 단계로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완전한 자유에 맡겨진 창작 환경에서 경험이 부족한 작곡가들이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장시간 구조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며, 이로 인해 무대의 물리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과잉된 구성으로 흐른다고 분석한다. 무대는 제한된 공간이며, 이를 전제로 하지 않은 서사는 공연의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창작은 아이디어의 확장이 아니라 무대 조건을 기반으로 한 설계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페라는 본질적으로 연극과 동일한 무대예술이라는 점에서 극장 공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한다. 과거 작곡가들이 특정 극장의 조건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했던 것과 달리, 현재 창작 환경에서는 이러한 ‘극장 중심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결국 창작오페라는 악보와 서사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구현될 공간과 조건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작품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협업 기반 제작 시스템을 제안한다. 작곡가 개인 중심에서 벗어나 대본 작가, 오케스트레이션 전문가, 언어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통해 작품을 단계적으로 완성해야 하며, 특히 한국어 오페라에서는 발음과 리듬, 의미 전달을 정교하게 다루는 언어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러한 제작 시스템이 부족해 작품의 지속적 발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 결과 많은 창작오페라가 초연 이후 재공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사라지며, 수정과 보완을 통한 완성도 향상이 구조적으로 차단된다. 그는 반복 공연이야말로 작품을 성장시키는 핵심 조건이라고 강조하며, 공연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되는 순환 구조가 없을 경우 창작은 일회성 실험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는 창작오페라의 시도 자체에는 분명한 가치를 부여하며, 작곡가들에게 발표 기회를 제공한 점을 중요한 성과로 평가한다. 다만 이러한 성과가 다음 단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창작을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제작 기반이 필요하며, 이는 결국 극장과 제작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된다.


작품은 고쳐지며 살아남는다, 수정과 축적, 그리고 번안의 현실

장 감독은 창작오페라의 완성도가 일회적 창작 행위가 아니라 반복적인 수정과 선택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며, 실제 작업 경험을 통해 악보로서의 완결성과 무대 구현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한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방대한 악보가 연습과 공연을 거치며 상당 부분 축소된 사례를 통해, 음악적 반복과 과잉 요소가 공연의 흐름을 저해할 수 있고 이를 과감히 덜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에 이르렀으며, 이 과정에서 작곡가 역시 자신의 창작물을 수정하고 삭제하는 결단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초기에는 작곡가에 대한 존중을 이유로 원형을 유지하려 했으나, 공연 이후 재구성을 거치며 오히려 완성도가 높아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창작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변화 가능한 과정이라는 인식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창작오페라가 지속적으로 분석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아카이브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단순한 창작 지원을 넘어 작품의 생애 주기를 관리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작품을 일회성 결과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 해석과 수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 상주 작가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한 지속적 재구성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관점은 오페라의 역사적 형성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작품들 역시 다수의 수정과 재구성을 거친 결과이며, 동일한 소재를 다양한 작곡가가 다루었음에도 특정 작품만이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현상은 선택과 축적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La Bohème이나 Orfeo ed Euridice와 같은 사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형태로 정착된 작품들로, 수정과 축적이 작품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는 해외 사례를 통해 번안오페라가 처한 현실적 조건도 짚는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주요 공연장 역시 최근들어 제작 중심에서 대관 중심으로 전환되며 내부 예술 인력의 역할이 축소된 사례는, 제작 기반이 약화될 경우 작품의 축적과 발전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공연예술 구조가 제작 중심에서 유통 중심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그는 번안이라는 방식 자체는 보편적 흐름 속에 있다고 보며, 기존 음악을 유지한 채 시대와 배경을 재해석하는 시도는 오페라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극 장르에서 지속되어 왔다고 판단한다. 특히 음악이 오페라 정체성의 핵심인 만큼 이를 근본적으로 변경하기보다는, 음악을 유지하면서 서사와 맥락을 재구성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해 그는 English National Opera와 Komische Oper Berlin을 중요한 사례로 제시한다. 이들은 자국어를 기반으로 작품을 재구성하면서도 음악적 본질을 유지하고 관객 접근성을 확보한 모델로, 번안을 단순 번역이 아닌 창작적 재해석의 영역으로 확장한 경우라 할 수 있다.

fb3a9ee0a0743.jpg1bbe19cf4a726.jpg

오페라는 가까워져야, 보급을 넘어, 살아 있는 예술로

한국 오페라의 현재를 ‘보급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진단하는게 일반적이다. 관객 동원을 목표로 한 무난한 프로그램과 저가 티켓 전략이 단기적 성과에는 유효하지만 그것이 오페라의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방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페라의 전부로 인식되는 순간 창작과 축적의 기능이 약화되고 장르 전체의 발전 동력이 상실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오페라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다듬어지는 예술이라는 인식이 결여될 경우 공연은 일회적 이벤트로 소멸되고 작품은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관객 경험의 질적 전환을 강조한다. 오페라는 난해한 예술이 아니라 관객이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형태로 다가가야 하며, 이를 위해 언어와 서사, 공연 방식 전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을 때 오페라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다 넓은 대중과 만나는 예술로 기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관객 형성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으며, 다양한 홍보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관객 기반이 제한적인 상황은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오페라의 가능성 소멸로 보지 않고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으로 해석한다. 번안오페라 중심의 작업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개인적 실험이 아니라 장기적 계획 아래 진행되는 집단적 프로젝트이다. 기존 작품을 확산시키고 이후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는 단계적 전략은 단발성 공연을 넘어 축적 가능한 제작 구조를 형성하려는 시도로, 외부 지원 여부와 무관하게 지속되어야 할 과제로 제시된다.
그의 작업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시대성에 대한 접근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갈등을 단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집단적 기억을 음악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오페라만의 표현 영역으로 이해된다. 영화가 사건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 강점이 있다면, 오페라는 음악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면을 드러내며, 이러한 차별성이 동시대적 의미를 만든다.
결국 그가 말하는 번안오페라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세계의 서사를 한국적 언어와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창작 행위로 확장된다. 이는 외부 텍스트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자기화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는 새로운 문화적 실체로 기능한다. 이러한 접근은 오페라를 고정된 전통이 아닌 지속적으로 재해석되는 예술로 전환시킬 수 있다.
”제 말은 오페라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급 중심의 단기 성과를 넘어 제작과 축적 중심의 구조로 전환해야 하며, 관객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언어와 서사를 통해 예술 경험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지입니다. 이 축적의 과정 속에서 오페라는 현재의 삶과 연결된 예술로 자리 잡게 되고, 번안오페라는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방법론이 될 수 있죠.“
창단 이래 30년 동안 번안오페라의 새로운 실험과 모색을 해온 장수동 감독의 작품 ‘광대들’, 오는 6월 19일(금 오후 7시30분)부터 20, 21일(오후 4시)까지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그 화려한 막을 올린다. 과연 번안의 새로운 지평이 가능한지 많은 오페라단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길 바란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