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만나는 홍난파가곡제 - 인공지능의 시대라서 더욱 빛나는 홍난파

정희준 준비위원장, 임청화 예술총감독, 홍익표 이사장이
말하는 홍난파와 한국가곡의 미래

 

프롤로그

 

기술이 노래를 만들 수는 있어도, 시대를 노래할 수는 없어

 

21세기 인류가 맞이한 가장 거대한 변화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인간이 시키는 일을 대신 처리하는 편리한 도구 정도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작곡과 편곡, 연주까지 수행하며 문화예술의 영역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 기업들은 앞다투어 음악 생성 AI를 개발하고 있고, 음악산업은 이미 AI를 활용한 창작과 제작을 일상적인 업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광고와 방송, 영화음악은 물론 유튜브 콘텐츠와 게임음악까지 AI가 작곡한 음악이 사용되는 시대가 되었으며, 심지어 사람의 목소리와 창법을 학습해 특정 가수처럼 노래를 부르게 하는 기술도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정희준 준비위원장은 ‘이제 우리는 AI가 인간의 감성마저 모방하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산업혁명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한다 해도 여전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하나가 남아 있다. AI는 과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가. 조국을 잃은 슬픔을 기억할 수 있는가. 부모를 향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고향 냄새를 노래할 수 있는가. 효율과 계산은 가능할지 몰라도 삶의 체험과 역사적 기억, 인간만이 품을 수 있는 연민과 희망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AI 시대일수록 인간이 만든 예술의 가치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술은 단순히 소리를 배열하는 기술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삶과 정신을 담아내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열리는 2026 홍난파가곡제는 단순한 음악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출발점이었던 홍난파를 기리는 기념행사이면서 동시에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의 예술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를 함께 묻는 문화적 담론의 장이기도 하다.
홍난파가 남긴 ‘봉선화’와 ‘고향의 봄’은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불리고 기억되며 민족의 정서와 시대의 아픔을 품어왔다. 그것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기억이며, 한 세기를 관통한 문화의 유산이다.

 

오는 9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올해 홍난파가곡제의 주제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다. 동요 ‘고향의 봄’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를 맞아 마련된 이번 공연은 홍난파의 대표작은 물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곡들을 한 무대에 담아내며, 원로와 중견, 젊은 세대가 함께 이어가는 한국가곡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줄 예정이다.
예술총감독 임청화를 비롯해 난파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 그리고 미국의 피아니스트 론 브랜튼과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 소리꾼 고영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이 함께하는 이번 무대는 홍난파 음악의 확장성과 오늘날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공연을 앞두고 월간리뷰는 홍난파의집에서 홍익표 이사장, 정희준 준비위원장, 임청화 예술총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담은 단순히 공연을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왜 지금도 홍난파를 이야기해야 하는지, 한국가곡은 어디까지 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AI 시대에도 인간의 음악이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함께 성찰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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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홍난파가곡제가 있기까지
 

"홍난파를 기리는 것은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라 한국가곡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홍난파가곡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음악회가 아니다. 홍난파가 말년을 보낸 홍난파의집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그의 음악과 정신을 오늘의 세대에게 다시 전하기 위해 시작된 작은 공연이 해를 거듭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가곡 축제로 성장한 결과다.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그 과정을 지켜온 사람이 바로 홍난파의집 홍익표 이사장이다. 올해 공연의 주제를 묻는 질문에 홍 이사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국민들의 문화예술 수준이 크게 높아졌고, 한국가곡도 이미 100년의 역사를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더 성숙한 음악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동요 ‘고향의 봄’의 첫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제목을 통해 홍난파 선생님의 음악세계를 다시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홍난파가곡제는 공연의 규모보다 시작의 의미가 더 중요했다. 애초 이 음악제는 홍난파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그가 말년을 보낸 홍난파의집을 시민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2007년 이곳에서 열린 '우리 가곡의 날' 공연에는 안병원, 신귀복, 최영섭 등 한국가곡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이후 여러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종로구와 서울시의 지원, 그리고 홍난파의 고향인 화성 지역 관계자들의 도움 속에 오늘의 홍난파가곡제로 이어져 왔다고 그는 회고했다.

 

예술총감독 임청화 교수는 이러한 역사를 오늘의 K-클래식과 연결해 설명했다.
"요즘 세계 음악계에서 K-클래식의 위상이 정말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한국가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역시 홍난파 선생님입니다. 그만큼 홍난파는 우리 가곡의 출발점이고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올해 공연이 단순히 홍난파의 작품만을 나열하는 음악회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곡과 국악을 함께 구성해 폭넓은 관객층과 만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즈 피아니스트 론 브랜튼과 그의 딸 알렉스 도연 브랜튼, 그리고 소리꾼 고영열을 초청한 것은 젊은 세대에게도 홍난파의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라고 덧붙였다. 정희준 준비위원장은 홍난파가곡제가 갖는 시대적 역할을 강조했다.
"홍난파의집에서는 여러 음악행사가 열리지만 가장 큰 행사는 역시 홍난파가곡제입니다. 대중음악의 비중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가곡이 덜 주목받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전국의 수많은 합창단과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우리 가곡을 꾸준히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홍난파가곡제가 한국가곡의 부흥과 활성화를 이끄는 중심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 위원장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한국가곡은 결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현재의 문화이며, 홍난파가곡제는 그 흐름을 이어가는 가장 상징적인 무대라는 믿음이었다.
이날 좌담은 자연스럽게 더 큰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제 K-클래식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대에 한국가곡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홍난파가 남긴 음악은 어떻게 세계인들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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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준비위원장

K-클래식은 세계로, 이제는 한국가곡이 답할 차례

 

지난 몇 년 사이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단연 K-클래식이다.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와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차이콥스키콩쿠르를 비롯한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한국 연주자들이 잇따라 두각을 나타내고, 유럽과 미국의 오페라극장과 오케스트라에는 한국인 성악가와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이제 K-클래식은 더 이상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세계 음악계가 인정하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과 뒤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뛰어난 연주자들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의 음악, 다시 말해 우리 가곡은 얼마나 세계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날 좌담은 바로 그 지점에서 더욱 깊어졌다. 홍익표 이사장은 이제는 한국가곡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우리 가곡'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한국문화가 세계인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세계 속의 한국가곡'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때가 아닐까요. 한국가곡도 세계인이 함께 부르는 음악이 되어야 합니다."
홍 이사장의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이미 해외에서는 한국가곡을 배우고 연주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해외 콩쿠르에서도 한국가곡이 지정곡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한국가곡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자신감이라는 뜻이었다. 정희준 위원장도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몇 해 전 프랑스의 젊은 성악가들이 '고향의 봄'을 우리말로 부르는 영상을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국 대학에서도 한국가곡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고, 스페인의 합창단 역시 우리 가곡을 즐겨 부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가곡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는 K-팝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K-클래식의 다음 단계는 한국가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시작점에 홍난파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에는 칸초네가 있고, 독일에는 리트가 있으며, 프랑스에는 샹송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한국의 예술가곡이 아닐까? 사실 '가곡'이라는 명칭은 홍난파가 활동하던 시대 이후에 정착한 용어다. 그 이전에는 '창가', 또 한때는 '가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예술가곡은 단순히 노래 한 장르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시와 언어, 정서와 선율이 함께 어우러진 독자적인 예술양식이다. 홍난파는 바로 그 출발점에 서 있었던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임청화 예술총감독은 이번 공연은 그러한 철학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홍난파 선생님의 작품만을 나열하는 공연으로는 관객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곡들을 함께 선곡했고, 국악과 재즈라는 새로운 해석도 담았습니다."
특히 미국의 피아니스트 론 브랜튼과 그의 딸 알렉스 도연 브랜튼을 초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론 브랜튼은 지난 20여 년 동안 홍난파의 작품을 재즈로 편곡하며 세계 여러 무대에서 소개해 온 음악가다. 이번 공연에서는 ‘낮에 나온 반달’과 ‘성불사의 밤’ 등을 새로운 감각으로 선보이며 홍난파 음악이 시대를 넘어 얼마나 다양한 해석을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홍난파의 집, 한 음악가의 기억이 살아 있는 공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연이 시작된 장소인 홍난파의 집으로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홍파동 언덕길에 자리한 이 붉은 벽돌집은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다. 홍난파가 생애 마지막 6년을 보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간 공간이자, 오늘의 홍난파가곡제가 태어난 산실이다. 홍익표 이사장은 말을 이었다.
"요즘은 주말이면 2~300명, 집 밖까지 포함하면 하루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지금은 전국에서 일반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 집이 독일인 선교사가 거주하던 서양식 벽돌주택이었으며, 홍난파가 직접 구입해 말년을 보낸 곳이라고 설명했다.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이 건물은 오늘날 서울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근대 주택 가운데 하나이며, 음악사와 건축사가 함께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정희준 준비위원장은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난파 선생님은 음악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문학과 미술, 교육까지 아우르며 한국 문화의 미래를 고민했던 분입니다."
좌담의 마지막 화제는 홍난파의 집 안에 걸려 있는 두 글자, 삼광(三光)이었다. 홍익표 이사장은 이것이 단순한 휘호가 아니라 홍난파가 평생 품었던 문화철학이라고 설명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세 가지 빛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문학, 미술, 그리고 음악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발전해야 비로소 진정한 문화국가가 된다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홍난파는 작곡가이면서도 소설을 쓰고 음악평론을 남겼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전문 잡지를 창간한 문화운동가였다. 그는 음악을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 철학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로 이해했던 선구자였다. 임청화 총감독도 고개를 끄덕인다.
"'고향의 봄'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멜로디만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그 안에 한국인의 정서와 문학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인지, 또 우리 가곡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아직 다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홍난파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가곡은 생각보다 훨씬 위대한 문화유산입니다."
정희준 위원장도 임 감도의 말에 동의했다. AI가 음악을 만드는 시대일수록, 인간이 살아낸 삶과 역사, 그리고 민족의 기억을 품은 노래는 더욱 소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렇다면 그 철학은 오는 9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어떤 음악으로 구현될까.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2026 홍난파가곡제의 공연 구성과 프로그램, 출연진, 그리고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의 삶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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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이사장

한 편의 공연이 아니라 한 세기의 음악을 만나는 시간

 

어떤 음악회는 단순히 좋은 연주를 듣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어떤 공연은 그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되묻게 한다. 오는 9월 20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2026 홍난파가곡제 나의 살던 고향은’은 후자에 가까운 공연이다. 이번 음악회는 단순히 홍난파의 대표작을 나열하는 기념음악회가 아니라, 우리 예술가곡 100여 년의 역사를 한 무대에서 되짚어 보는 문화적 여정이며, AI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인간이 만든 음악의 본질적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올해는 특히 홍난파가 이원수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여서 공연의 의미는 더욱 깊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와 장르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는 점이다. 성악가와 합창단,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재즈 피아니스트, 국악인, 어린이합창단까지 함께 참여하면서 홍난파의 음악이 특정 세대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음악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은 홍난파가곡제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계승과 확장'이라는 정신을 무대 위에서 실현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공연의 문은 예술총감독 임청화가 고(故) 최영섭을 추모하는 ‘추억’과 ‘천년의 그리움’으로 연다. 한국가곡의 또 다른 거목을 기리는 이 무대는 선배 음악인들에 대한 존경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이어 바이올린 영재 홍지민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고향의 봄’은 동요를 기악으로 새롭게 해석하며, 한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친숙한 선율을 또 다른 감동으로 들려줄 예정이다.
소프라노 이혜지는 홍난파의 ‘그리움’과 김순애의 ‘그대 있음에’를 통해 한국 가곡 특유의 서정성과 품격을 노래하며, 메조소프라노 김미경은 금수현의 ‘그네’와 신귀복의 ‘상주에서’로 깊이 있는 음색을 선보인다. 테너 김정훈은 ‘비목’과 ‘동심초’를 통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곡의 정수를 들려주고, 이혜지와 김미경의 듀엣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는 섬세한 화성과 시적 정서를 객석에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 홍난파합창단은 ‘옛 동산에 올라’와 ‘별 헤는 밤’을 통해 개인의 노래를 공동체의 울림으로 확장시키고, 테너 김효종과 바리톤 송기창은 ‘향수’를 통해 고향과 삶의 기억을 노래한다. 공연 전반부는 한국 예술가곡이 지닌 서정성과 인간적 따뜻함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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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화 예술총감독

재즈와 국악으로 다시 태어나는 홍난파

 

이번 공연에서 가장 주목할 무대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론 브랜튼(Ronn Branton)과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Alex Doyaun Branton)의 특별출연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가곡을 연구하며 홍난파의 작품을 재즈로 편곡해 온 론 브랜튼은 ‘낮에 나온 반달’과 ‘성불사의 밤’을 새로운 음악언어로 재해석한다. 이는 단순한 장르의 변화가 아니라 홍난파의 선율이 시대를 넘어 얼마나 풍부한 확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다. 미국 음악가가 한국의 예술가곡을 연구하고 세계 무대에서 소개해 온 사실 자체가 오늘날 한국가곡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여주소년소녀합창단은 ‘아침의 노래’와 ‘고향의 봄’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이어질 동요의 생명력을 노래하고, 소리꾼 고영열은 ‘봉선화’와 ‘홀로아리랑’을 통해 전통의 소리와 예술가곡의 경계를 허문다. 성악과 국악, 클래식과 재즈가 하나의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은 이번 홍난파가곡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창적인 풍경이다.
공연의 마지막은 임청화, 김효종, 송기창, 김동진, 난파합창단, 난파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가고파’와 ‘보리밭’으로 장식된다. 한 사람의 독창으로 끝나는 음악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로 마무리된다는 점은 홍난파가 평생 꿈꾸었던 '함께하는 음악'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홍난파, 한국 근대음악의 길을 처음 연 사람

 

홍난파(본명 홍영후, 1898~1941)는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새문안교회에서 서양음악을 접한 뒤 조선정악전습소와 일본 도쿄음악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개최하고, 최초의 음악전문잡지 『음악계』를 창간하는 등 한국 음악문화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미국 유학을 거쳐 작곡가와 교육자, 지휘자, 평론가, 문필가로 활동하며 근대 한국 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그가 남긴 업적은 단순히 「봉선화」와 「고향의 봄」을 작곡한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국민의 삶 속으로 가져온 문화운동가였으며, 문학과 미술, 음악이 함께 발전해야 나라의 문화가 성장한다는 '삼광(三光)'의 철학을 실천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한국 예술가곡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 역시 홍난파가 닦아 놓은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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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AI는 음악을 만들 수 있지만, 고향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인공지능은 앞으로도 더 정교한 음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노래를 만들고, 위대한 작곡가의 스타일을 모방하며, 몇 초 만에 수백 곡의 선율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AI는 어린 시절 골목길의 흙냄새를 기억하지 못하고, 나라를 잃은 민족의 슬픔을 경험하지 못하며, 고향을 떠난 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 만든 음악을 듣는다. 한 사람의 삶이 스며 있고, 한 시대의 기억이 녹아 있으며, 한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홍난파가 남긴 ‘봉선화’와 ‘고향의 봄’이 한 세기를 건너 오늘도 우리 곁에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명곡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오는 9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2026 홍난파가곡제 ‘나의 살던 고향은’은 바로 그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객석을 나서며 마음속으로 한 번쯤 '나의 살던 고향은…'을 흥얼거린다면, 그날의 음악회는 이미 가장 아름다운 성공을 거둔 셈일 것이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