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에서 먼저 이름을 얻었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그 진가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성악가들이 있다. 바리톤 김경천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일 오페라 무대에서 20년 넘게 주역으로 살아남으며 40여 편의 오페라, 500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한 그는 화려한 ‘해외 진출’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성악가다. 벨칸토에서 베르디를 거쳐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치열한 극장 시스템 속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증명해왔다. 우리가 김경천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 성악가의 성공담을 소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 성악가들의 깊이와 저력, 그리고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위대한 성취를 이루고 있는지를 다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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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독일 바이에른주 란츠후트. 개축을 기다리는 낡은 바로크 극장 대신, 시 외곽 스포츠공원에 세워진 임시 천막 극장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이 올랐다. 무대 여건은 넉넉하지 않았다.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도 대형극장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의 공연 전문 매체 ‘바흐트랙(Bachtrack)’의 평론가는 부활절 연휴 이틀 사이에 이 천막 극장의 ‘파르지팔’과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의 ‘파르지팔’을 나란히 본 뒤, 자신은 란츠후트의 공연이 더 즐거웠다고 적었다. 흑마법사 클링조르를 노래한 이는 한국인 바리톤 김경천이었다.
란츠후트, 파사우, 슈트라우빙 세 도시를 순회하는 남부 바이에른 주립극장(Landestheater Niederbayern). 1952년에 설립된 이 극장은 독일 오페라 지형도에서 결코 화려한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김경천은 이곳에서 22년째 주역 바리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한국 성악계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해외 진출' 서사 - 국제 콩쿠르 우승, 대형 극장 데뷔, 스타 지휘자와의 협업 - 와는 결이 다른 종류의 이력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드문 종류의 성취이기도 하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로베르토 되붸레(Roberto Devereux) 의 노팅햄 (Nottingham) 공작 역
서울에서 쾰른으로, 그리고 재학 중 데뷔
김경천은 서울대학교에서 베이스 강병운(Philip Kang) 교수를 사사하고 졸업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쾰른음악대학에서 바그너 베이스의 전설 한스 조틴(Hans Sotin) 문하에서 디플롬과정을, 이어 같은 대학에서 20세기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불린 소프라노 에다 모저(Edda Moser)의 지도로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2009년에는 미렐라 프레니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고,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이탈리아 베이스의 거장 보날도 자이오티(Bonaldo Giaiotti)를 개인적으로 사사했다. 조틴과 모저의 독일 성악 전통, 프레니와 자이오티의 이탈리아 벨칸토 전통이 한 사람의 성악가 안에서 겹쳐진 셈이다.
유럽 무대 데뷔는 재학 중이던 2003년,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의 베르크 ‘보체크’ 제2 직공 역이었다. 2004년에는 쾰른 오페라 오페라스튜디오 단원으로 활동했고, 2007년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에서 열린 국제 성악 콩쿠르 스파치오 무지카(Spazio Musica)에서 3위, 200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프리츠 아츨 워크숍상을 받았다.
전환점은 2004년 11월이었다. 남부 바이에른 주립극장에서 베르디 ‘돈 카를로스’의 포사(로드리고) 역으로 데뷔한 뒤, 그는 이 극장의 앙상블 단원, 곧 상근 주역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계약이 22년째 이어지고 있다. 20년 넘게 주역 자리가 이어졌다는 것은, 매 시즌 맡게되는 3, 4개의 새로운 배역을 감당할 테크닉과 체력, 그리고 서로 다른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표현력과 연기력을 극장이 계속 인정해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세월은 한 가지를 남긴다.
광대한 레퍼토리의 폭
김경천의 레퍼토리는 그 사실을 그대로 증명한다. 비발디 ‘오를란도 푸리오소’의 아스톨포 같은 바로크 오페라에서 시작해, 달라피콜라의 ‘죄수’ 타이틀롤 같은 20세기 현대 음악극까지, 그리고 오펜바흐 ‘지옥의 오르페우스’의 유피터와 요한 슈트라우스 ‘집시 남작’의 호모나이 백작 같은 오페레타에서, 바그너 ‘로엔그린’의 텔라문트와 ‘파르지팔’의 클링조르까지... 언어도 이탈리아어, 독일어에 그치지 않는다. ‘호프만의 이야기’의 네 악당과 ‘돈 카를로스’는 프랑스어 원어로,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오네긴’의 타이틀롤은 러시아어로 불렀다.
베르디의 바리톤 배역 목록도 두껍다. 나부코와 리골레토의 타이틀롤, ‘일 트로바토레’의 루나 백작,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돈 카를로스’의 로드리고, ‘오텔로’의 이아고, ‘운명의 힘’의 돈 카를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모차르트에서는 돈 조반니와 알마비바 백작, 돈 알폰소, 그리고 ‘마술피리’의 슈프레셔(Sprecher, 사제장)를 노래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살로메’의 요한과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음악선생,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알피오, 푸치니 ‘라 보엠’의 마르첼로와 ‘나비부인’의 샤플리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도 그의 것이었다. 40여 편의 오페라, 500회가 넘는 공연에 이른다. 이 숫자는 한 극장에 오래 머문 가수만이 쌓을 수 있는 레퍼토리다.
벨칸토 스페셜리스트가 되기까지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벨리니와 도니체티다. 벨리니의 ‘청교도’의 리카르도, ‘베아트리체 디 텐다’의 필리포, ‘해적’의 에르네스토, ‘낯선 여인’의 발데부르고, ‘카푸레티가와 몬케끼가’의 로렌초.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의 벨코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엔리코,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알폰소, ‘로베르토 데베뤠’의 노팅엄, ‘안나 볼레나’의 로쉐포르트. 두 작곡가의 바리톤 주역 대부분을 실제 무대에서 소화한 성악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해적’이나 ‘낯선 여인’ 같은 작품은 유럽에서도 좀처럼 상연되지 않기 때문이다.
레가토를 유지한 채 긴 선율선을 그리면서도 극적 무게를 잃지 않아야 하는 벨칸토 바리톤은, 한두 번의 프로덕션으로는 몸에 붙지 않는 종류의 레퍼토리다. 같은 작곡가의 어법을 해마다 다시 만나며 쌓은 시간이 그를 이 영역의 스페셜리스트로 만들었다.
소속 극장 밖에서도 호평
그는 자신의 극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쾰른, 라이프치히, 도르트문트, 칼스루에, 레겐스부르크, 마이닝겐, 마그데부르크, 울름 등 독일 각지의 극장에 객원으로 초청됐고, 킴가우의 굿 임링 오페라 페스티벌 무대에도 올랐다. 가장 널리 알려진 무대는 2012년 4월 파리 샤틀레 극장이다. 존 애덤스의 ‘Nixon in China’에서 주역인 주은래 역을 맡아, 준 앤더슨·조수미·김재형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 배역은 2023년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에서 다시 그를 찾았다.
그는 오페라 가수외에도 콘서트 가수로서도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바흐 칸타타 ‘나는 만족하네’, 브람스 ‘독일 레퀴엠’, 멘델스존 ‘엘리야’와 ‘파울루스’,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등 오라토리오와 콘서트 무대, 그리고 독창회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근 그의 레퍼토리는 바그너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2025년 여름, 남부바이에른주 성 페스티벌(Burgenfestspiele Niederbayern)에서 ‘로엔그린’의 텔라문트를 노래했다. 파사우의 오버하우스 성채를 배경으로 한 야외 무대였다. 현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의 음악 전문지 ‘온라인 메르커’는 그의 바리톤이 한층 단단해졌으며 배역의 인물로서도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하면서 딕션의 명료함을 함께 짚었고, 독일의 클래식 매체 ‘샤벨 쿨투어블로그’ 역시 뛰어난 기량과 명료한 가사 전달을 보여준 텔라문트로 그를 꼽았다.
그리고 2026년 4월의 ‘파르지팔’ 클링조르... 벨칸토에서 출발해 베르디를 거쳐 바그너의 극적 바리톤 영역으로 나아가는 이 궤적은,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라기보다 20여 년에 걸쳐 축적된 것이 자연스럽게 다음 문을 연 쪽에 가깝다.

작년 9월, 대구에서 뒤늦은 한국 데뷔
정식 오페라 프로덕션으로서의 한국 데뷔는 작년 9월이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국립오페라단의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프랑크/프리츠 역이었다. 지휘는 로타르 쾨니히스였다. 낯선 배역이 아니었다. 파사우에서는 프랑크와 프리츠를 함께 노래했고, 2016년 마그데부르크 오페라극장에서 프리츠를 다시 노래했다. 코른골트가 놓인 20세기 초 후기낭만의 어법 역시 그가 유럽에서 오래 다뤄온 영역이다. 한국 관객이 처음 만난 그의 무대는, 말하자면 이미 여러 차례 살아본 배역이었다.
유럽 오페라계에서 가수가 걷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극장을 옮겨 가며 새로운 무대를 넓혀 가는 길이 있고, 한 극장 안에서 레퍼토리를 깊게 파 내려가는 길이 있다. 김경천이 걸어온 쪽은 후자다. 그리고 이 길에는 이 길만의 조건이 붙는다. 매 시즌 새 배역을 익히는 학습 속도, 바로크에서 현대까지를 감당하는 양식적 유연성, 4개 국어의 딕션, 그리고 20년을 견디는 성대와 체력. 한 극장이 22년 동안 같은 가수에게 주역을 맡겨 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평가다.
그의 이력서에는 40여 편의 오페라와 500회가 넘는 공연, 좀처럼 무대에 오르지 않는 벨칸토 작품들의 목록, 그리고 파리 샤틀레의 ‘중국의 닉슨’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한 극장의 전속 가수로 쌓은 두께와 국제 프로덕션에서 검증된 기량을 한 사람이 함께 갖는 경우는 흔치 않다. 최근의 텔라문트와 클링조르는 그 축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다.
글 허철(성악가, 오페라뱅크 예술감독., 철의음악 유튜버)
세계 무대에서 먼저 이름을 얻었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그 진가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성악가들이 있다. 바리톤 김경천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일 오페라 무대에서 20년 넘게 주역으로 살아남으며 40여 편의 오페라, 500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한 그는 화려한 ‘해외 진출’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성악가다. 벨칸토에서 베르디를 거쳐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치열한 극장 시스템 속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증명해왔다. 우리가 김경천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 성악가의 성공담을 소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 성악가들의 깊이와 저력, 그리고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위대한 성취를 이루고 있는지를 다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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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독일 바이에른주 란츠후트. 개축을 기다리는 낡은 바로크 극장 대신, 시 외곽 스포츠공원에 세워진 임시 천막 극장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이 올랐다. 무대 여건은 넉넉하지 않았다.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도 대형극장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의 공연 전문 매체 ‘바흐트랙(Bachtrack)’의 평론가는 부활절 연휴 이틀 사이에 이 천막 극장의 ‘파르지팔’과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의 ‘파르지팔’을 나란히 본 뒤, 자신은 란츠후트의 공연이 더 즐거웠다고 적었다. 흑마법사 클링조르를 노래한 이는 한국인 바리톤 김경천이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로베르토 되붸레(Roberto Devereux) 의 노팅햄 (Nottingham) 공작 역
란츠후트, 파사우, 슈트라우빙 세 도시를 순회하는 남부 바이에른 주립극장(Landestheater Niederbayern). 1952년에 설립된 이 극장은 독일 오페라 지형도에서 결코 화려한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김경천은 이곳에서 22년째 주역 바리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는 한국 성악계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해외 진출' 서사 - 국제 콩쿠르 우승, 대형 극장 데뷔, 스타 지휘자와의 협업 - 와는 결이 다른 종류의 이력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드문 종류의 성취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쾰른으로, 그리고 재학 중 데뷔

김경천은 서울대학교에서 베이스 강병운(Philip Kang) 교수를 사사하고 졸업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쾰른음악대학에서 바그너 베이스의 전설 한스 조틴(Hans Sotin) 문하에서 디플롬과정을, 이어 같은 대학에서 20세기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불린 소프라노 에다 모저(Edda Moser)의 지도로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2009년에는 미렐라 프레니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고,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이탈리아 베이스의 거장 보날도 자이오티(Bonaldo Giaiotti)를 개인적으로 사사했다. 조틴과 모저의 독일 성악 전통, 프레니와 자이오티의 이탈리아 벨칸토 전통이 한 사람의 성악가 안에서 겹쳐진 셈이다.
유럽 무대 데뷔는 재학 중이던 2003년,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의 베르크 ‘보체크’ 제2 직공 역이었다. 2004년에는 쾰른 오페라 오페라스튜디오 단원으로 활동했고, 2007년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에서 열린 국제 성악 콩쿠르 스파치오 무지카(Spazio Musica)에서 3위, 200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프리츠 아츨 워크숍상을 받았다.
전환점은 2004년 11월이었다. 남부 바이에른 주립극장에서 베르디 ‘돈 카를로스’의 포사(로드리고) 역으로 데뷔한 뒤, 그는 이 극장의 앙상블 단원, 곧 상근 주역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계약이 22년째 이어지고 있다. 20년 넘게 주역 자리가 이어졌다는 것은, 매 시즌 맡게되는 3, 4개의 새로운 배역을 감당할 테크닉과 체력, 그리고 서로 다른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표현력과 연기력을 극장이 계속 인정해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세월은 한 가지를 남긴다.
광대한 레퍼토리의 폭
김경천의 레퍼토리는 그 사실을 그대로 증명한다. 비발디 ‘오를란도 푸리오소’의 아스톨포 같은 바로크 오페라에서 시작해, 달라피콜라의 ‘죄수’ 타이틀롤 같은 20세기 현대 음악극까지, 그리고 오펜바흐 ‘지옥의 오르페우스’의 유피터와 요한 슈트라우스 ‘집시 남작’의 호모나이 백작 같은 오페레타에서, 바그너 ‘로엔그린’의 텔라문트와 ‘파르지팔’의 클링조르까지... 언어도 이탈리아어, 독일어에 그치지 않는다. ‘호프만의 이야기’의 네 악당과 ‘돈 카를로스’는 프랑스어 원어로,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오네긴’의 타이틀롤은 러시아어로 불렀다.
베르디의 바리톤 배역 목록도 두껍다. 나부코와 리골레토의 타이틀롤, ‘일 트로바토레’의 루나 백작,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돈 카를로스’의 로드리고, ‘오텔로’의 이아고, ‘운명의 힘’의 돈 카를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모차르트에서는 돈 조반니와 알마비바 백작, 돈 알폰소, 그리고 ‘마술피리’의 슈프레셔(Sprecher, 사제장)를 노래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살로메’의 요한과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음악선생,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알피오, 푸치니 ‘라 보엠’의 마르첼로와 ‘나비부인’의 샤플리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도 그의 것이었다. 40여 편의 오페라, 500회가 넘는 공연에 이른다. 이 숫자는 한 극장에 오래 머문 가수만이 쌓을 수 있는 레퍼토리다.
벨칸토 스페셜리스트가 되기까지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벨리니와 도니체티다. 벨리니의 ‘청교도’의 리카르도, ‘베아트리체 디 텐다’의 필리포, ‘해적’의 에르네스토, ‘낯선 여인’의 발데부르고, ‘카푸레티가와 몬케끼가’의 로렌초.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의 벨코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엔리코,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알폰소, ‘로베르토 데베뤠’의 노팅엄, ‘안나 볼레나’의 로쉐포르트. 두 작곡가의 바리톤 주역 대부분을 실제 무대에서 소화한 성악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해적’이나 ‘낯선 여인’ 같은 작품은 유럽에서도 좀처럼 상연되지 않기 때문이다.
레가토를 유지한 채 긴 선율선을 그리면서도 극적 무게를 잃지 않아야 하는 벨칸토 바리톤은, 한두 번의 프로덕션으로는 몸에 붙지 않는 종류의 레퍼토리다. 같은 작곡가의 어법을 해마다 다시 만나며 쌓은 시간이 그를 이 영역의 스페셜리스트로 만들었다.
소속 극장 밖에서도 호평
그는 자신의 극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쾰른, 라이프치히, 도르트문트, 칼스루에, 레겐스부르크, 마이닝겐, 마그데부르크, 울름 등 독일 각지의 극장에 객원으로 초청됐고, 킴가우의 굿 임링 오페라 페스티벌 무대에도 올랐다. 가장 널리 알려진 무대는 2012년 4월 파리 샤틀레 극장이다. 존 애덤스의 ‘Nixon in China’에서 주역인 주은래 역을 맡아, 준 앤더슨·조수미·김재형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 배역은 2023년 도르트문트 오페라극장에서 다시 그를 찾았다.
그는 오페라 가수외에도 콘서트 가수로서도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바흐 칸타타 ‘나는 만족하네’, 브람스 ‘독일 레퀴엠’, 멘델스존 ‘엘리야’와 ‘파울루스’,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등 오라토리오와 콘서트 무대, 그리고 독창회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최근 그의 레퍼토리는 바그너 쪽으로 넓어지고 있다. 2025년 여름, 남부바이에른주 성 페스티벌(Burgenfestspiele Niederbayern)에서 ‘로엔그린’의 텔라문트를 노래했다. 파사우의 오버하우스 성채를 배경으로 한 야외 무대였다. 현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의 음악 전문지 ‘온라인 메르커’는 그의 바리톤이 한층 단단해졌으며 배역의 인물로서도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하면서 딕션의 명료함을 함께 짚었고, 독일의 클래식 매체 ‘샤벨 쿨투어블로그’ 역시 뛰어난 기량과 명료한 가사 전달을 보여준 텔라문트로 그를 꼽았다.
그리고 2026년 4월의 ‘파르지팔’ 클링조르... 벨칸토에서 출발해 베르디를 거쳐 바그너의 극적 바리톤 영역으로 나아가는 이 궤적은,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라기보다 20여 년에 걸쳐 축적된 것이 자연스럽게 다음 문을 연 쪽에 가깝다.
작년 9월, 대구에서 뒤늦은 한국 데뷔
정식 오페라 프로덕션으로서의 한국 데뷔는 작년 9월이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국립오페라단의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프랑크/프리츠 역이었다. 지휘는 로타르 쾨니히스였다. 낯선 배역이 아니었다. 파사우에서는 프랑크와 프리츠를 함께 노래했고, 2016년 마그데부르크 오페라극장에서 프리츠를 다시 노래했다. 코른골트가 놓인 20세기 초 후기낭만의 어법 역시 그가 유럽에서 오래 다뤄온 영역이다. 한국 관객이 처음 만난 그의 무대는, 말하자면 이미 여러 차례 살아본 배역이었다.
유럽 오페라계에서 가수가 걷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극장을 옮겨 가며 새로운 무대를 넓혀 가는 길이 있고, 한 극장 안에서 레퍼토리를 깊게 파 내려가는 길이 있다. 김경천이 걸어온 쪽은 후자다. 그리고 이 길에는 이 길만의 조건이 붙는다. 매 시즌 새 배역을 익히는 학습 속도, 바로크에서 현대까지를 감당하는 양식적 유연성, 4개 국어의 딕션, 그리고 20년을 견디는 성대와 체력. 한 극장이 22년 동안 같은 가수에게 주역을 맡겨 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평가다.
그의 이력서에는 40여 편의 오페라와 500회가 넘는 공연, 좀처럼 무대에 오르지 않는 벨칸토 작품들의 목록, 그리고 파리 샤틀레의 ‘중국의 닉슨’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한 극장의 전속 가수로 쌓은 두께와 국제 프로덕션에서 검증된 기량을 한 사람이 함께 갖는 경우는 흔치 않다. 최근의 텔라문트와 클링조르는 그 축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다.
글 허철(성악가, 오페라뱅크 예술감독., 철의음악 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