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리뷰 신년좌담회 '2024년 국립오페라단의 변화를 기대한다'

진행: 김종섭
좌담회 위원: 박수길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 회장, 박정원 한양대 교수

오페라는 여전히 살아있는 인류의 예술이다. 그런데도 오페라를 죽은 예술이나 유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인식이 들어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그 장르의 존재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시작된 한국오페라는 여전히 ‘라트라비아타’의 수준에 머물고 있지 않을까? 그나마 당시에는 김자경 등 우리 음악가들이, 이인선과 같은 우리 제작진들이 만든 우리들의 작품이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오페라들은 어떤가.
지난 가을 시즌, 전국 각지에서 오페라공연은 폭주했다. 서양오페라 작품만을 공연하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비롯해 서울시오페라단과 창원(경남오페라단), 전주(호남오페라단) 등이 ‘투란도트’를 같은 시기에 별도 공연했다. 수도권 경우, 성남에서는 ‘나비부인’을, 고양에서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공연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직접 제작까지 맡은 노들섬 오페라도 지난해 ‘마술피리’에 이어 10월에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올리지 않았는가.
단순히 서양오페라만을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이들 작품을 제작하는 제작진이나 연출진, 지휘자들이 대부분 듣도 보도 못한 서양오페라 전문가라는 점이다. 훌륭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들을 데려오는 진짜 이유는 문화사대주의에 물든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기 쉽다는 데 있다.
올 한해 서양 지휘자, 연출자, 무대미술가들에 의해 베르디 작품 5편만을 편중해서 공연하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늘날 오페라 공연 생태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자체의 지원금이든 기업의 돈이든 본인들의 능력에 의해 오페라를 공연한다고 주장하는데 왜 트집이냐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공공극장이나 공공오페라단이 앞장서서 서양오페라를 서양 제작진으로 구성해 올리는 편중 현상은 흥행의 안전성과 관객 동원의 용이성에 있다는 점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하기야 국립오페라단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국내 지휘자는 2류 그룹으로 분류된 지 오래되었다. 김덕기 지휘자가 국립오페라단의 지휘봉을 잡은 지 10년이 넘었고 국립심포니,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등 외국인이 상임지휘자로 서는 게 아예 고착화되어 있다. 이런 현상이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랄 수 없다.
다른 장르는 차치하고 이번 좌담회는 박수길 전 국립오페라단장,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 회장, 소프라노 박정원 교수 세 분을 모시고 우리 오페라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오페라계의 맏형격인 국립오페라단이 나서 개선해줄 것을 요청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예술을 아는 행정전문가가 양성하는 방안

박정원: 예술정책을 수립하는 분들이 정부 기관에서 활동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양대 교수로서 1년에 한 명씩이라도 특별 수시전형으로 음대에서 예술경영 계통의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 학생을 음대에서 잘 양성한 뒤 최종적으로 문체부에 취업하면 예술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친구들이 음악대학 안에서 음악 공부도 하면서 예술가들의 생리와 예술 교육의 큰 틀, 나아가 음악계 교수들도 알게 될 텐데 이런 학생들이 나중에 문체부에 들어간다면 우리나라 예술정책에 예술가의 입장이 대폭 반영될 것이라고 봅니다.

탁계석: 지난 30년간 행정 분야에서는 행정대학원 출신들이 진출해 지식적으로나 마인드면에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관련 있는 기관은 문체부이고, 그쪽에서 예술행정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과 예산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얼마 전 모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이런 쪽에서 가장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있는 곳은 과학계라고 하더군요. 과학계는 해당 분야에 필요한 재원이나 인재들을 법적으로 풀어가면서 시스템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잘 풀어나가는 분야는 스포츠 계통입니다. 현재 시군구에서 운동을 가르친다고 하면 국가에서 강사료 등을 전액 지원하는 것이죠. 가령 특정 구에서 탁구를 배운다고 제안하면, 1시간에 8만원에 해당하는 강사료 등을 협회를 통해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술계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지원입니다.
공군 파일럿 한 명 육성하는데도 매우 큰 돈이 들어간다는 것은 아시죠? 실질적으로 전투를 나가기까지 몇십억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금에도 오늘날에는 젊은 청년들이 민간단체 지원 쪽으로 다 빠진다고 합니다. 국공립보다 그쪽 분야에서 돈을 더 많이 주가 때문입니다. 기존 금액보다 10배를 준다고 하면 누가 안가겠습니까. 연주 테크닉이 우수한 사람들은 차고 넘칩니다. 해외 유수의 콩쿠르들도 이미 우리 한국 음악인들이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연주 구조상 연주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박정원: 그러니까 이제 그 사람들을 유치해줄 무언가가 없다는 게 제일 안타까운 점이죠.

탁계석: 사실 장관은 2~3년 주기로 바뀌니까, 장관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정권과 관계없이 일희일비하면서 변하는 게 아니라 항구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확실한 시스템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체부 사람들은 장관 자체를 사랑방 손님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박정원: 현재 국립오페라단 이사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회의를 하게 되면 일방적으로 통보만 듣는 식이 많아요. 이사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결정권도, 주장권도 없습니다. '당신들은 그냥 들으시라'는 식입니다. 우리는 그저 '네'라는 대답만 하면 되고요. 발언권을 행사하고 그 발언이 효력을 발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국립이 창작오페라를 키워야 하지만

창작오페라 '천생연분'창작오페라 '1945'창작오페라 '빨간바지'창작오페라 '레드슈즈'

탁계석: 문체부 산하 국립오페라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지난 20년간의 국립오페라단 단장의 연혁을 보자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임한 사람만 무려 다섯 명에 이릅니다. 그러다가 사실상 제대로 선임된 케이스가 최상호 단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최 단장이 뭔가 하려고 할 때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힘을 합쳐서 도와줘야 합니다. 이번에야말로 단순히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식의 시선만 두어서는 안됩니다. 아직 최 단장의 구체적인 정책이 실현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이전 단장이 정해놓은 공연을 집행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2024년부터는 기대합니다. 의욕이 대단하고 보다 의욕만큼 한국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제도적으로도 빠르게 구축해 나갈 것 같습니다. 이전 단장들과는 다르게 나름대로의 본인의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하는 것 같습니다.
창작오페라의 경우 정은숙 단장부터 지금까지 20년간 2개의 작품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임준희의 ‘천생연분’이고 또 하나는 최우정의 ‘1945’입니다. 그다음이 ‘빨간바지’하고 ‘레드슈즈’인데 이 작품들은 소극장용이기 때문에 별개로 치고요. 지난 20년간 이 여러 명의 단장들이 취임할 때마다 1순위로 내건 약속이 항상 창작오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거는 건 좋은데 우선 '창작'만 할 수 있는 예산을 별도로 책정해둘 수 있을 때 가능한데 예산도 없고 전문가도 없이 세월만 흘렀다는 얘기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작' 화두에 꾸준히 던졌지만 정작 그 환경은 창작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장 개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입니다.

창작오페라 '처용' 초연 포스터

박수길: 탁 선생님 말씀대로 단장들 모두가 “'창작'을 하겠다”라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나온 작품들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은 맞습니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새로 창작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점도 생각해봅니다. 사실 우리 한국오페라 역사상 공기관에서 했던 기존 창작물들은 꽤 많습니다. 그중에 정말 괜찮은 작품을 선별해서 작가와 리브렛토 등을 의논하고 재구성해서 재공연하는 쪽도 좋지 않을까요?

바리톤 박수길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이번에 신임 최상호 단장과도 얘기했던 부분입니다. 창작이라고 해서 자꾸 새로운 것만 고려하지 말고 옛 작품 몇 가지를 선택해 보는 쪽으로도 생각해보자고 권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처용’도 초연 이후 두 번째 공연했을 때 약간 각색해서 올렸었는데 개인적으로 초연 연출이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약간의 재구성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작품을 약간 다시 다듬어서 올리게 되면 상품의 질이 훨씬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가능성 있는 작품을 다시 고쳐서 최소 1년에 하나씩이라도 올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작곡가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 회장)

탁계석: 네 그 점도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가 5개 정도 창작한 경험에 의하면 창작물 하나 만드는 데 최소 10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단장 임기는 2년뿐입니다. 본인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실질적인 기간이 2년이라는 소리입니다. 새로 취임 후, 전임 단장이 이미 해놓고 간 것들을 먼저 마무리하고 그다음에 본인이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그 기간은 창작작품을 만들 시간이 안됩니다. 물론 창작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겠죠. 예컨대 민간 오페라단과 함께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하고, 안되면 규정을 고쳐서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간이 만든 작품도 작품성을 인정한다면 적극 수용해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죠. '이건 국립에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 안된다.' 뭐 이런 틀만 깨도 변화가 올 것입니다.

박수길: 맞아요. 민간오페라단에서 창작한 좋은 작품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도 객관적으로 전문가들이 검토한 후 괜찮다 싶으면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창작오페라 '황진이' (사진출처: 이영조 홈페이지)

탁계석: ‘황진이’ 같은 경우도 웰메이드 오페라입니다.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이 십몇 년 동안 다듬고 또 다듬어서 외국으로 진출한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들은 끌어들여야 합니다. 오페라를 쉽게 만들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시집가는 날’ 같은 오페라는 현재 한류로 보자면 밝고 건강한 분위기로써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연출가들은 본인의 아이디어를 너무 강하게 반영하려고 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연출만 튀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춘향전만 해도 서곡을 가져다가 모 지휘자가 너무 늘려 부풀려 놓았는데 서곡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면 춘향전이라는 오페라의 본질에서 어긋나게 됩니다. 그래서 애초에 계약할 때 특정 제작자 한 사람의 욕심이 지나치게 강조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악가들이 이미 만들어진 옷에 우겨 들어가는 꼴이 됩니다.

박정원: 요즘 가곡 작곡하는 젊은 작곡가들도 현대 감각에 맞게 작업을 참 잘합니다. 작곡도 오페라 전문 작곡가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런 분들에게도 의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오페라 작품에 특정 작곡가만 제한을 두지 않고 젊은 가곡 작곡가들도 참여하는 기회를 주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지요. 사실 옛날 시대로 보면 푸치니도 당시에는 좀 유치한 음악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의 수정을 거치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점점 발전했잖아요.

탁계석: 그럴 수도 있겠죠.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는 세대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옛날 사람들은 명조체를 좋아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이상한 글씨체를 좋아하듯이 입맛도 그렇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퓨전을 좋아하는데 우리는 그 음식을 시식해보면 이게 무슨 맛인가 하고 그 맛을 전혀 모르는 것과 같거든요. 이런 시대변화를 감안해서 젊은 작곡가들, 또는 전혀 분야가 다른 가곡 작곡가들에게도 기회를 준다면 젊은 층들은 오히려 더 열광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참작해서 의뢰해보자는 것인데 좋은 생각입니다.

국립오페라단 오페라하우스는 국립의 위상과 직결

박수길: 여하튼 최근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타 언론사들과 인터뷰한 것을 쭉 보니까, 우리가 얘기한 부분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자리에서는 결정적으로 국립오페라단의 위상이 어떻게 바르게 서야 하는지도 의논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종섭 (월간리뷰 발행인)

탁계석: 그 위상에 대해서 극장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전용 극장을 갖는 문제입니다. 저는 아마 유인촌 장관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셨으면 합니다. 오페라하우스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얘기가 나온 것도 바로 이 문제입니다. 도데체 오페라하우스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왜 예술의전당이 오페라하우스를 관리하느냐는 문제입니다. 국립오페라단에서도 관리를 해야 하는데 당연한데 말입니다.

박수길: 제가 단장이었을 때는 국립오페라단이 상주 단체로 왔습니다. 아직도 그 계약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예술의전당 최종률 사장과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그 당시로는 국립오페라단이 상주하고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을 무조건 먼저 개최할 수 있도록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최 사장이 퇴직한 후부터는 그 약속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민간오페라단들이 왜 국립에게만 우선권을 주느냐고 계속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시끄러운 요구들이 국회로 넘어갔고, 국회에서는 왜 국립에서만 오페라하우스를 사용하느냐, 민간과 공평하게 사용하라 하면서 계약이 다 무효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일을 국립오페라단이 조율을 해야 하는데 예술의전당이 조율하면서 국립오페라단의 위상이 바로 설 수 없었단 말입니다.

탁계석: 그러니까 해결책을 다시 논하자면 예술의전당과 오페라하우스를 완전히 분리하는 쪽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예술의전당과 명백히 분리한 뒤, 그다음에 예산을 각각 따로 설정해야 합니다. 한국이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는데 오페라하우스 하나 제대로 운영을 못한다는 게 너무 창피한 일 아닐까요? 우리가 세계 콩쿠르에서 60% 이상을 석권한 셈인데 전용으로 사용할 오페라하우스 하나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시스템, 예술의전당과 오페라하우스이 하나의 예산으로 공존하는 것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 예술의전당 입장에서는 오페라하우스는 물먹는 하마와도 같습니다. 돈은 많이 들어가는데 본인들도 예산이 없다 보니 그런 것이죠. 그래서 더더욱 분리시켜야 합니다. 예전에 유인촌 장관이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뮤지컬을 올리지 않는 게 좋다'고 했죠. 각 극장별 캐릭터를 제대로 만들어서 독립성을 부여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장르가 섞여 특정 장르만 확장되는 것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유인촌 장관의 정책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얘기가 나온 김에 오페라하우스를 국립오페라단이 운영하는 동시에 국립무용단과 국립합창단도 다 통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명실공히 제대로 된 국립오페라단이 되는 것이에요.

박수길: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 재임 시, 국립오페라단과 모든 재단들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신문에까지 보도되면서 '국립오페라단을 없앤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라며 항의하는 내용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청와대를 찾아 국립오페라단의 발전계획서를 갖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해 낸 것이 미국의 링컨센터였어요. 미국의 링컨센터라는 공간 안에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 뉴욕필하모니, 뉴욕시티발레단, 드라마센터 등이 다 속해 있거든요. 링컨센터는 그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산만 관리하는 것이 아닌 전체 공연을 관리하는데 특별히 후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을 리포터로 작성해 강하게 설득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을 없애는 일은 우리나라의 오페라를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주장을 신중하게 경청해주더니 종국에는 ‘없던 일로 하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이 존폐 위기에 처했던 적이 딱 두 번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고학찬 사장의 발언이 있을 때였고 또 한번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갑자기 기획원에서 모든 정보 조직 및 문화계까지 전부 축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정식 단원이 없는 단체였던 국립오페라단을 없애는 게 좋겠다며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대 국장과 굉장히 심하게 싸웠습니다. '당신 오페라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보러 온 적이 있는지, 외국의 K오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알고 하는 소리인지, 오페라의 문화적인 위상이 어떤지를 알고나 있는지' 질문을 퍼부었거든요. 결국에는 잘 해결되어서 마무리가 되었지만 하마터면 한국 오페라가 사라질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탁계석: 이제 우리가 큰 카드로 쓸 수 있는 것은 바로 K콘텐츠입니다.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큰 명제인데 정부가 여전히 특정 아젠다에만 붙잡혀있어 걱정입니다. 이제 BTS는 할 만큼 했습니다. 이미 최고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다음 버전이 필요하겠죠. 그게 바로 오페라라는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오페라를 움츠러 있을 게 아니라 이번에 한 번 르네상스의 차원에서 기존 방식이 아닌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전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오페라 컨텐츠는 전부 외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이는 전세살이도 아닌 월세살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립오페라스튜디오 수업 장면 (사진출처: 국립오페라단)

박정원: 이런 점에서 박형식 전 단장이 ‘국립오페라스튜디오’에 대한 예산을 크게 따와서 다시 존속시킨 점은 너무 잘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프라노 박정원 (한양대 교수)

박수길: 옳은 일입니다. 젊은 성악가들을 무턱대고 주연을 맡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스튜디오 공연을 통해서 검증한 다음에 공개적으로 큰 공연을 시키자는 정책으로 스튜디오를 만든 것이었죠. 달라진 것은 과거에는 수강생들이 돈을 냈었는데, 이제는 시스템화가 잘 되어 오히려 돈을 받고 배우잖아요. 어쨌든 돈을 주던 받던, 이 오페라스튜디오 안에서 한번 걸러지는 셈입니다.

탁계석: 그래서 이번에 화두를 이렇게 잡는 게 좋겠습니다. 박지성급의 선수들은 깔렸는데 뛸 운동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거의 맨땅에 헤딩하던 옛날 1960년~70년대 만든 돌멩이 운동장에서 뛰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박정원: 사실 우리나라 성악하는 아이들이 외국에 분포되어있는 퍼센테이지나, 콩쿠르에 입상하는 퍼센테이지를 보면 한국이 굉장히 우수합니다. 오죽하면 중국에서는 아예 대놓고 ‘성악을 배우려면 한국에 가라’고 하겠습니까?

탁계석: 오페라는 단순 소모성 콘텐츠가 아니라 생산 확장 가능한 콘텐츠라는 것을 정부에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불러오는 부가적 가치가 어마어마한데 우리가 K팝 하나에만 눌러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문화강국이라면 그건 그대로 발전시키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특히 오페라는 개인이 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정부가 과감한 투자에 앞장서야 합니다.

박수길: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국립오페라단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립오페라하우스’를 만들거나 예당에서 분리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국격에 맞는 오페라의 위상을 세우고 동시에 문화적 위상도 갖게 됩니다.

탁계석: 우리가 밖에서 응원하고 박수 보내면서 동시에 여론도 형성해야 하겠죠. 월간리뷰와 같은 오페라 관련 매체들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해외 제작진에만 의존하는 관행 버려야

박정원: 과거부터 내가 국립오페라단에 바라는 것은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자문위원회나 이사진들이 의견을 모아줄 수 있는 세력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는 국립오페라단에 ‘단장’만 있는 구조입니다. 뮤직 디렉터, 제너럴 디렉터, 캐스팅 디렉터와 같은 전문가가 전무한 상황이거든요. 시스템화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들은 국립오페라단의 미래를 위하여 꼭 필요합니다. 월급은 못 주더라도 명실공히 위에 언급한 세 명의 디렉터는 기본적으로 구축돼야 해요.
또 단장과 예술감독을 분리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경우 제너럴 디렉터가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예컨대 음악감독이 어떤 가수를 추천해도 제너럴디렉터가 거절하면 무대에 세울 수 없거든요. 이런 이원화된 구조가 필요합니다.
지금 외국인들 제작자들을 보면 본인의 아이디어를 한국에 와서 실험하는 식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거든요. 지난번 나부코의 배경을 일제강점기를 바탕으로 연출한 적이 있었죠. 한 번도 안해본 작품을 너무 실험적으로 하는 게 문제입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현대적인 연출이 많지만, 그곳은 이미 곳곳에 극장이 많이 분포되어있고 먼저 정통 연출로 된 고전 오페라들을 이미 수없이 올린 작품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작품 원작대로만 하면 애호가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모객의 일환으로 보다 참신한 연출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연출가들이 아이디어를 맘껏 펼치기 위해 엉뚱한 짓을 하는 면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 경지가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외국의 연출가나 극장장을 데려와서 키우게 되면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화’를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극장이 필요한데 그럴 극장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탁계석: 당장 눈앞에 이익을 보는 것을 장사라고 합니다. 반면 먼 안목에서 보는 것을 경영이라고 하고요. 현재 원본만 가지고 작품을 하다 보니까 우리 연출가나 지휘자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태리 작품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바로 이태리와 같은 서양 제작자들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출가, 지휘자 또는 무대 장치 등 캐스팅까지 다 들여옵니다. 물론 그것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이게 과해지게 되면 일방적인 수입 오페라로 고착되어버립니다. 우리의 것이 없다는 말이에요. 우리만의 기술력과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매일 노예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르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문화 식민지입니다.

박수길 탁계석 박정원: 대한민국의 ‘국립오페라단’이라고 하면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확실히 검증된 가수들이 서는 곳으로, 제작에 필요한 기본 시스템이 확실히 갖춰져야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오페라단이 되어야 하죠. 감독, 스태프, 가수 등을 갖춘 오페라단... 언제까지 우리 극장 없이 전세살이로 살아야 합니까? 한국오페라 역사 70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국가도 국가지만 역량 있는 분들이 함께 후원회도 적극 구성하는 등 발 벗고 나선다면 1년에 오페라 10편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