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국 유학으로 2세부터 영국에서 자란 한수진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8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이후,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 늦게 시작했음에도 8개월 만에 런던의 소수정예 영재 음악학교인 예후디 메뉴인 학교에 입학했다. 유럽 여러 지역의 콩쿠르를 휩쓰며 15세에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콩쿠르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연소 수상자로 2위 입상과 함께 음악평론가상 등 7개의 부상을 석권하며 주목받았다. 콩쿠르를 통해 한수진을 눈여겨본 한국의 대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정명훈 지휘자에게 한수진을 소개했고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란 찬사와 함께 18세에 코리안 심포니와 정명훈 지휘로 한국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음악학을 수료한 한수진은 런던 왕립음악원과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의 국제 솔로연주자 과정까지 졸업한 재원으로 국내외를 종횡무진 활발하게 활약 중인 한국의 국가대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2023년을 뒤돌아보며

부산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충근 지휘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 2020년 6월
2024년, 새해를 맞아 국내 무대부터 활발하게 활약 중인 한수진을 만났다. 마치 작년은 1월 다음 달이 12월이었던 것 같다며 새로 맞이한 2024년은 느리게 ‘리타르단도’가 왔으면 좋겠다는 한수진. 1년 12달이 마치 2개월 같았다고 표현하는 한수진이 대단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애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곧 호기심이 생겨 바쁜 나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밝게 미소 지으며 두 개의 순간을 말하고 싶다며 작년, 2월 3일 뒤 있을 리사이틀을 위한 리허설 후 집에 돌아와 자정이 되어 휴식하려는 순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측에서 전화가 왔던 일화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바로 다음 날 있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 연주를 급히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약속되었던 연주자의 컨디션 난조로 대체 연주자가 하루 전까지 조정이 되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당혹스러웠지만 잠시 고민 끝에 다음날 한수진은 라일런트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였다.
“당일 무대 리허설이 처음이자 마지막 리허설이었지만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의 꼼꼼함과 배려 속에 한수진은 오히려 가장 자유롭게 즐기며 연주했고 그 덕분에 관중에게 더 좋게 다가갔던 공연으로 추억되고 있어요.”
한수진의 특출난 연주력과 그의 긍정적인 사고가 더해져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한수진은 대한민국 예술원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던 날을 꼽았다. 소감 발표를 위해 연주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 다소 떨렸지만, 자리에 함께 해주신 분들이 평소 존경 해오던 다양한 예술계의 거장들이었기에 더욱 영광스러운 마음에 한수진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무엇보다 산업디자인계의 1세대로 미술협회 소속이던 친할아버지와 바이올리니스트 외할머니 그리고 대를 이어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까지 예술적 감각이 유전을 타고 흘러 비로소 맺은 열매가 한수진인 듯,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사랑하고 추앙했다.
청천벽력 같았던 시련들 음악의 힘으로 극복
한수진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그래서인지 한수진의 연주는 다채로운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한수진은 자신의 다양한 모습이 연주할 때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기 때문이라 했다. 또한, 음악에는 생명력이 있어 애정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며 자세히 볼수록 정교함과 신비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역동적이라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적으로 파고들고 채울수록 밖으로 표현되는 것은 자연히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앞선 인터뷰에서도 많이 언급되었듯이 한수진의 풍부한 상상력과 호기심이 음악의 생명력을 찾아 본질적으로 파고드는 과정과 더해져 더욱 증폭 효과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남들과 다른 청력임에도 입체적인 시각으로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배양된 남다른 해석이 한수진을 세계적인 연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한수진이 스스로 깊은 공감이 일어남을 느끼며 연주하기 때문에 독보적인 해석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내용이 베토벤의 소나타에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소통하기를 원하던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생의 중반에 청력을 거의 잃어가며 혼자 짊어져야 했던 고통과 공포. 이로 인해 신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신이 주신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희망을 느끼는 대비를 한수진도 고스란히 느꼈기에 가장 노력을 많이 쏟은 작품이다. 하지만 한수진의 깊은 공감은 비단 청력에서만 온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다친 턱관절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으로 주요 무대를 앞둔 20대 중반에 시행했던 수술과 이어진 재수술은 6년의 공백을 만들었다. 그 공백으로 연습과 연주도 할 수 없고 대중에게 점점 잊혀간다는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음악 외에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새로운 배움을 통해 음악의 터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발판으로 삼았다. 활발히 경력을 쌓아가던 젊은 음악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시련도 결국 음악의 힘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어진 달란트’라 표현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음악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늘 감사를 자아내는 큰 선물이며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음악에 모든 걸 쏟아낼 수밖에 없는 것은 제 힘으로 조절되지 않는 영역인 것 같다’는 한수진이다. 베토벤을 연주하는 한수진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을 비롯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 영상이 한수진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 되어 있으니 봄을 맞아 감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한수진이 선사하는 음악적 카타르시스
베토벤 외에도 한수진이 추천하는 자신의 연주 작품에는 하인리히 이그나츠 폰 비버의 파사칼리아가 있다. 이순열 음악평론가도 추천한 작품으로 비버는 바흐 이전에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이자 바로크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올해, 워너뮤직을 통해 발매될 한수진의 음반에도 비버의 음악이 담겨있다. 이번 앨범에 담긴 비버의 음악은 처음에는 구조적인 음악의 향연으로 가슴까지 바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한 순간 굉장한 평온함이 갑자기 찾아들며 순간적으로 마치 천국에 온 듯, 오직 평온함만 존재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곡은 다시금 구조성을 찾아 테트라 코드를 통해 화려하게 발전되는 듯하다가 곡선을 그리며 다시 하강한다. 정확한 틀과 그 속의 자유로움으로 대위적인 상반된 매력을 자아내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비버의 음악에서 한수진은 비버의 뜨거운 열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런 수직과 수평을 따로 또 같이 표현해야 하는 비버나 바흐와 같은 작곡가의 음악은 잔향이 좋은 장소에서 연주했을 때, 비로소 작곡가의 의도를 진정으로 표현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울림을 통해 합쳐지는 대위적 요소들은 배음의 매력을 너무나 매혹적으로 선사하기 때문이다. 한수진은 곧 발매될 음반을 통해 위와 같이 비버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공간감의 매력까지 감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시리즈 마지막 공연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롯데콘서트홀, 2021년 6월
작곡가의 마음을 읽는 연주자
이렇듯 한수진은 새로운 곡을 연습할 때도 가장 먼저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한다고 한다. 이후엔 협주곡이라면 총보부터 보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바이올린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판단하는데 이 과정은 마치 배우가 드라마 대본을 읽는 과정과 같다. 맡은 대사만 읽으면 극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먼저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 파악하고 상대 배우 대사도 살피며 나의 대사를 숙지하는 것이 극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일 것이다. 판단이 섰다면 어떤 파트랑 언제 어디서 협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는 다이나믹과 아티큘레이션 하나 하나 섬세하게 확인하며 클라이막스와 하이라이트까지 체크하고 작곡가의 생각과 의도를 계속 연관 지으며 같은 표현, 어법이라도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이지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구조를 암기하며 연습을 진행한다고 했다.
벨기에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지휘와 작곡까지 했던 외젠 이자이의 작품 같은 경우는 이자이가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어려워 보이고 화려해 보임에도 막상 연주해 보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친절한 악보라고 한다. 또, 이자이의 의도 역시 보다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작곡가의 의도나 생각은 보존하고 있는 일부의 자료를 통해 분석과 해석을 하고 거기에 상상을 더해야 하는 등 표현을 위해 구체적이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만큼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작품을 보는 시야를 더욱 깊게 파고드는 한수진에게 현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때때로 위로가 되어 준다. 작곡가의 의도와 뜻을 함께 직접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월 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앞둔 서울대학교 교수 이신우 작곡가와의 협연이 가장 가까운 일화다. 대화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인데 이신우 작곡가의 마음을 읽고 한수진은 리허설에서 이신우 작곡가의 음악을 정확히 표현 해내 작곡가로부터는 자신이 구상하고 상상하던 음악을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음악은 한 편의 소설 같은 여정
“팝송도 좋아하고 특히, 가수 정인의 호소력 짙은 음악도 너무 좋아해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소설을 대할 때와도 같은 여정을 느낄 수 있어 가장 추천합니다. 음악이 길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집중력이 더 필요해 인내심을 요하기도 하죠. 하지만 긴 호흡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여운은 그만큼 길게 가기에 생각과 감정까지 정리되는 효과를 선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시간의 예술이죠. 누구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클래식 음악이 더욱 사랑받고 활용되었으면 좋겠어요.”
한수진은 클래식 음악이 더욱 사랑받기 위해선 친숙한 음악과 그 배경 및 작곡가의 이야기를 통해 극적인 몰입감을 선사하고 청중이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개인적 경험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감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음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더불어 어린 시절, 디즈니 영화 ‘판타지아’를 보고 영감을 받아 10대부터 꾸던 꿈이 있다고 했다. 바로 ‘판타지아’와 같이 연주에 맞게 영상을 입히는데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보다 추가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그 영상을 보고 추억한다면 후에는 영상이 없어도 음악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디즈니 영화, 해리포터 등 또래와 다를 것 없이 영화와 소설을 보며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한수진의 어린 시절은 아이들이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던 영국의 분위기와 억지로 바이올린을 전공시키려 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이 더해져 있다. 다양한 학업 과정에서 바이올린 연습에만 몰두하지 않고 미술 수업, 발레 공연, 연극 관람 등 다양한 수업 외 자유 활동과 문화생활을 그녀의 어머니는 편안하게 지원해 주셨다고 한다. 요즘엔 취미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바쁘지만 가끔 공연장에 걸린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를 볼 때면 어렸을 적 처음 봤던 ‘마고트 폰테인’(영국 최고의 고전 발레리나)이 연기한 줄리엣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녀의 춤선과 음악과 무용의 조화로움을 보고 받은 감동은 아직도 한수진의 마음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의 기억과 감정이 쌓여 지금의 한수진이 있을 수 있고 계속해서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한수진은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음악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 현시대에 한국 음악 교육 시장이 평가 중심보다는 다양한 문화 속에서 음악의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위로를 주고받는 행복한 삶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좋은 도구를 갖고 있더라고 이 도구를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른다면 무용지물이라며 기술보다는 음악을 통한 행복을 강조하기도 했다.
팬들의 사랑에 더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고 파
다양한 장소와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요즘엔 스스로 ‘사람은 무엇일까?’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는 한수진. 질문이 맴돌면서 세계적 위치에서도 인간적으로 더욱 발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고민까지 하다니 존경스럽다. 또한,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깊고 단단한 내면을 간직하며 발전시키고자 하는 한수진이기에 가녀린 몸에서 뿜어내던 격정적인 열정의 연주가 가능했던 이유도 이해가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열정의 원천에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팬들의 사랑이 있다고 한다. 지칠 때도 팬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내서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힘을 낸다는 한수진은 SNS와 유튜브를 통해서도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음악이 가진 생명력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순수한 열정으로 자유롭게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 독보적인 표현력으로 대중을 음악 속으로 인도하는 한수진! 그녀는 앞으로도 국내외를 오가는 활발한 활동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우리 곁에서 함께 할 예정이다.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가장 가까이는 2월 7일, 예술의 전당에서 어린 시절부터 성장한 영국의 음악을 소재로 ‘아드리엘 김’과 함께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은 한수진의 정체성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중 하나기에 다소 대중적이지 않은 영국 음악을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주 할 작품들은 간단하면서 확고한 영국의 민족성과 영국의 자연이 많이 담겨있는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단순하면서도 지속된 반복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수학적인 공식과 도 같은 기법을 활용해 4계절의 뚜렷함을 더욱 강조한 막스 리히터의 ‘사계’와 동시에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를 통해서는 푸근하고 따뜻함까지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국은 지형 특성상 산 다는 낮은 동산이 많아 마치 파노라마 같은 넓은 자연을 감상할 수 있고 하루에도 모든 계절을 느낄 수 있는데, 본 공연에서 펼쳐질 영국 음악에선 영국 자연 특유의 오묘한 색채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글 이지원
사진 에스에이치 아트앤 클래식 제공
아버지의 영국 유학으로 2세부터 영국에서 자란 한수진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8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이후,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 늦게 시작했음에도 8개월 만에 런던의 소수정예 영재 음악학교인 예후디 메뉴인 학교에 입학했다. 유럽 여러 지역의 콩쿠르를 휩쓰며 15세에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콩쿠르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이자 최연소 수상자로 2위 입상과 함께 음악평론가상 등 7개의 부상을 석권하며 주목받았다. 콩쿠르를 통해 한수진을 눈여겨본 한국의 대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정명훈 지휘자에게 한수진을 소개했고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란 찬사와 함께 18세에 코리안 심포니와 정명훈 지휘로 한국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음악학을 수료한 한수진은 런던 왕립음악원과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의 국제 솔로연주자 과정까지 졸업한 재원으로 국내외를 종횡무진 활발하게 활약 중인 한국의 국가대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2023년을 뒤돌아보며
2024년, 새해를 맞아 국내 무대부터 활발하게 활약 중인 한수진을 만났다. 마치 작년은 1월 다음 달이 12월이었던 것 같다며 새로 맞이한 2024년은 느리게 ‘리타르단도’가 왔으면 좋겠다는 한수진. 1년 12달이 마치 2개월 같았다고 표현하는 한수진이 대단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애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곧 호기심이 생겨 바쁜 나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밝게 미소 지으며 두 개의 순간을 말하고 싶다며 작년, 2월 3일 뒤 있을 리사이틀을 위한 리허설 후 집에 돌아와 자정이 되어 휴식하려는 순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측에서 전화가 왔던 일화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바로 다음 날 있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 연주를 급히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약속되었던 연주자의 컨디션 난조로 대체 연주자가 하루 전까지 조정이 되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당혹스러웠지만 잠시 고민 끝에 다음날 한수진은 라일런트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였다.
“당일 무대 리허설이 처음이자 마지막 리허설이었지만 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의 꼼꼼함과 배려 속에 한수진은 오히려 가장 자유롭게 즐기며 연주했고 그 덕분에 관중에게 더 좋게 다가갔던 공연으로 추억되고 있어요.”
한수진의 특출난 연주력과 그의 긍정적인 사고가 더해져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한수진은 대한민국 예술원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던 날을 꼽았다. 소감 발표를 위해 연주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 다소 떨렸지만, 자리에 함께 해주신 분들이 평소 존경 해오던 다양한 예술계의 거장들이었기에 더욱 영광스러운 마음에 한수진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무엇보다 산업디자인계의 1세대로 미술협회 소속이던 친할아버지와 바이올리니스트 외할머니 그리고 대를 이어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까지 예술적 감각이 유전을 타고 흘러 비로소 맺은 열매가 한수진인 듯,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사랑하고 추앙했다.
청천벽력 같았던 시련들 음악의 힘으로 극복
그래서인지 한수진의 연주는 다채로운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한수진은 자신의 다양한 모습이 연주할 때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기 때문이라 했다. 또한, 음악에는 생명력이 있어 애정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며 자세히 볼수록 정교함과 신비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역동적이라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적으로 파고들고 채울수록 밖으로 표현되는 것은 자연히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앞선 인터뷰에서도 많이 언급되었듯이 한수진의 풍부한 상상력과 호기심이 음악의 생명력을 찾아 본질적으로 파고드는 과정과 더해져 더욱 증폭 효과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남들과 다른 청력임에도 입체적인 시각으로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배양된 남다른 해석이 한수진을 세계적인 연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한수진이 스스로 깊은 공감이 일어남을 느끼며 연주하기 때문에 독보적인 해석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내용이 베토벤의 소나타에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소통하기를 원하던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생의 중반에 청력을 거의 잃어가며 혼자 짊어져야 했던 고통과 공포. 이로 인해 신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신이 주신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희망을 느끼는 대비를 한수진도 고스란히 느꼈기에 가장 노력을 많이 쏟은 작품이다. 하지만 한수진의 깊은 공감은 비단 청력에서만 온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다친 턱관절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으로 주요 무대를 앞둔 20대 중반에 시행했던 수술과 이어진 재수술은 6년의 공백을 만들었다. 그 공백으로 연습과 연주도 할 수 없고 대중에게 점점 잊혀간다는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음악 외에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새로운 배움을 통해 음악의 터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발판으로 삼았다. 활발히 경력을 쌓아가던 젊은 음악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던 시련도 결국 음악의 힘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어진 달란트’라 표현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음악과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늘 감사를 자아내는 큰 선물이며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음악에 모든 걸 쏟아낼 수밖에 없는 것은 제 힘으로 조절되지 않는 영역인 것 같다’는 한수진이다. 베토벤을 연주하는 한수진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을 비롯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 영상이 한수진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 되어 있으니 봄을 맞아 감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한수진이 선사하는 음악적 카타르시스
베토벤 외에도 한수진이 추천하는 자신의 연주 작품에는 하인리히 이그나츠 폰 비버의 파사칼리아가 있다. 이순열 음악평론가도 추천한 작품으로 비버는 바흐 이전에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이자 바로크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올해, 워너뮤직을 통해 발매될 한수진의 음반에도 비버의 음악이 담겨있다. 이번 앨범에 담긴 비버의 음악은 처음에는 구조적인 음악의 향연으로 가슴까지 바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한 순간 굉장한 평온함이 갑자기 찾아들며 순간적으로 마치 천국에 온 듯, 오직 평온함만 존재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곡은 다시금 구조성을 찾아 테트라 코드를 통해 화려하게 발전되는 듯하다가 곡선을 그리며 다시 하강한다. 정확한 틀과 그 속의 자유로움으로 대위적인 상반된 매력을 자아내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비버의 음악에서 한수진은 비버의 뜨거운 열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런 수직과 수평을 따로 또 같이 표현해야 하는 비버나 바흐와 같은 작곡가의 음악은 잔향이 좋은 장소에서 연주했을 때, 비로소 작곡가의 의도를 진정으로 표현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울림을 통해 합쳐지는 대위적 요소들은 배음의 매력을 너무나 매혹적으로 선사하기 때문이다. 한수진은 곧 발매될 음반을 통해 위와 같이 비버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공간감의 매력까지 감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작곡가의 마음을 읽는 연주자
이렇듯 한수진은 새로운 곡을 연습할 때도 가장 먼저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한다고 한다. 이후엔 협주곡이라면 총보부터 보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바이올린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판단하는데 이 과정은 마치 배우가 드라마 대본을 읽는 과정과 같다. 맡은 대사만 읽으면 극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먼저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 파악하고 상대 배우 대사도 살피며 나의 대사를 숙지하는 것이 극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는 방법일 것이다. 판단이 섰다면 어떤 파트랑 언제 어디서 협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는 다이나믹과 아티큘레이션 하나 하나 섬세하게 확인하며 클라이막스와 하이라이트까지 체크하고 작곡가의 생각과 의도를 계속 연관 지으며 같은 표현, 어법이라도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이지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구조를 암기하며 연습을 진행한다고 했다.
벨기에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지휘와 작곡까지 했던 외젠 이자이의 작품 같은 경우는 이자이가 바이올리니스트였기에 어려워 보이고 화려해 보임에도 막상 연주해 보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친절한 악보라고 한다. 또, 이자이의 의도 역시 보다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작곡가의 의도나 생각은 보존하고 있는 일부의 자료를 통해 분석과 해석을 하고 거기에 상상을 더해야 하는 등 표현을 위해 구체적이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만큼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작품을 보는 시야를 더욱 깊게 파고드는 한수진에게 현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때때로 위로가 되어 준다. 작곡가의 의도와 뜻을 함께 직접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월 초,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앞둔 서울대학교 교수 이신우 작곡가와의 협연이 가장 가까운 일화다. 대화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인데 이신우 작곡가의 마음을 읽고 한수진은 리허설에서 이신우 작곡가의 음악을 정확히 표현 해내 작곡가로부터는 자신이 구상하고 상상하던 음악을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음악은 한 편의 소설 같은 여정
“팝송도 좋아하고 특히, 가수 정인의 호소력 짙은 음악도 너무 좋아해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소설을 대할 때와도 같은 여정을 느낄 수 있어 가장 추천합니다. 음악이 길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집중력이 더 필요해 인내심을 요하기도 하죠. 하지만 긴 호흡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여운은 그만큼 길게 가기에 생각과 감정까지 정리되는 효과를 선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시간의 예술이죠. 누구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클래식 음악이 더욱 사랑받고 활용되었으면 좋겠어요.”
한수진은 클래식 음악이 더욱 사랑받기 위해선 친숙한 음악과 그 배경 및 작곡가의 이야기를 통해 극적인 몰입감을 선사하고 청중이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개인적 경험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감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음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더불어 어린 시절, 디즈니 영화 ‘판타지아’를 보고 영감을 받아 10대부터 꾸던 꿈이 있다고 했다. 바로 ‘판타지아’와 같이 연주에 맞게 영상을 입히는데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보다 추가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그 영상을 보고 추억한다면 후에는 영상이 없어도 음악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디즈니 영화, 해리포터 등 또래와 다를 것 없이 영화와 소설을 보며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한수진의 어린 시절은 아이들이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던 영국의 분위기와 억지로 바이올린을 전공시키려 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이 더해져 있다. 다양한 학업 과정에서 바이올린 연습에만 몰두하지 않고 미술 수업, 발레 공연, 연극 관람 등 다양한 수업 외 자유 활동과 문화생활을 그녀의 어머니는 편안하게 지원해 주셨다고 한다. 요즘엔 취미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바쁘지만 가끔 공연장에 걸린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를 볼 때면 어렸을 적 처음 봤던 ‘마고트 폰테인’(영국 최고의 고전 발레리나)이 연기한 줄리엣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녀의 춤선과 음악과 무용의 조화로움을 보고 받은 감동은 아직도 한수진의 마음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다양한 문화적 경험의 기억과 감정이 쌓여 지금의 한수진이 있을 수 있고 계속해서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한수진은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음악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 현시대에 한국 음악 교육 시장이 평가 중심보다는 다양한 문화 속에서 음악의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위로를 주고받는 행복한 삶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좋은 도구를 갖고 있더라고 이 도구를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른다면 무용지물이라며 기술보다는 음악을 통한 행복을 강조하기도 했다.
팬들의 사랑에 더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고 파
다양한 장소와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요즘엔 스스로 ‘사람은 무엇일까?’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는 한수진. 질문이 맴돌면서 세계적 위치에서도 인간적으로 더욱 발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개인적인 고민까지 하다니 존경스럽다. 또한,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깊고 단단한 내면을 간직하며 발전시키고자 하는 한수진이기에 가녀린 몸에서 뿜어내던 격정적인 열정의 연주가 가능했던 이유도 이해가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열정의 원천에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켜봐 주는 팬들의 사랑이 있다고 한다. 지칠 때도 팬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내서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힘을 낸다는 한수진은 SNS와 유튜브를 통해서도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음악이 가진 생명력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 순수한 열정으로 자유롭게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 독보적인 표현력으로 대중을 음악 속으로 인도하는 한수진! 그녀는 앞으로도 국내외를 오가는 활발한 활동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우리 곁에서 함께 할 예정이다.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가장 가까이는 2월 7일, 예술의 전당에서 어린 시절부터 성장한 영국의 음악을 소재로 ‘아드리엘 김’과 함께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은 한수진의 정체성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중 하나기에 다소 대중적이지 않은 영국 음악을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주 할 작품들은 간단하면서 확고한 영국의 민족성과 영국의 자연이 많이 담겨있는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단순하면서도 지속된 반복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수학적인 공식과 도 같은 기법을 활용해 4계절의 뚜렷함을 더욱 강조한 막스 리히터의 ‘사계’와 동시에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를 통해서는 푸근하고 따뜻함까지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국은 지형 특성상 산 다는 낮은 동산이 많아 마치 파노라마 같은 넓은 자연을 감상할 수 있고 하루에도 모든 계절을 느낄 수 있는데, 본 공연에서 펼쳐질 영국 음악에선 영국 자연 특유의 오묘한 색채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글 이지원
사진 에스에이치 아트앤 클래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