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에서 부는 바람의 울림
제주국제관악제 soundscape(소리의 공간)!
“1995년 도내 관악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주국제관악제는 국내 음악교과서(7종)에 영국 에든버러 국제음악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국내 전주세계소리축제, 통영국제음악제 등과 함께 대표 음악 축제로 소개될 정도로 위상이 높습니다. 야외 연주가 용이한 관악의 특성과 함께 제주가 갖고 있는 평화의 이미지와 섬이 주는 낭만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대표적 예술축제 중 하나입니다.”
올해로 28회째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제주국제관악제의 이상철 위원장은 올해 제주국제관악제는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가을 시즌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도한다고 밝혔다. 봄과 여름으로 나누어 기획했다. 지난 3월 ‘봄을 여는 팡파르’란 주제로 봄 시즌을 선보였다. 봄 시즌이 '재즈'를 주제로 새로운 무대를 선보여 동서양의 조화를 주제로 삼았다면 오는 8월의 개최하는 여름 시즌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주춤했던 움직임을 본격화하며 많은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지만 제주국제관악제에 아직 낯선 이들을 위해 그 유래를 부탁하자, 이상철 위원장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6ㆍ25전쟁 당시 피난민들과 도민들의 걱정을 위로하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전쟁 이전의 제주도에는 무당의 굿판에서나 장구 등의 악기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선율이라 할 것도 없었던 제주도 굿은 장구, 북, 징, 연물을 사용한 리듬 형태의 음악만이 존재했다. 그런데 엄청난 전쟁 피난민들이 제주도에 유입되면서 예술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중섭 화가, 박목월 시인, 작곡가 변훈 선생 등 예술가들도 제주에 거주했다. 전쟁으로 인해 제주도에 들어온 미국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길버트 소령이다.
“제주도에 서양음악을 자리 잡게 한 사람은 당시 미군주둔의 장교이자 최고의 마칭 밴드 지도자였던 길버트입니다. 우리에겐 ‘제주관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제주, 우리나라 관악의 효시
1950년 유엔군의 지원으로 서울의 ‘한국보육원’이 제주로 이전했다. 그 이듬해, 유엔민간협력기관의 제주지역 책임자로 부임한 길버트 소령은 이 머너먼 타국으로 이사 온 한국보육원에 관악대를 창단했다. 길버트 소령은 오현고등학교, 제주농업고등학교, 제주중학교, 구세군 보육원 등에 악기 및 악보를 기증하고 밴드 지도자들을 직접 교육해 지역 음악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그렇게 창설한 군악밴드는 유엔군을 위해 전국 순회 연주회를 다니기도 했다. 연주실력은 얼마나 많은 무대를 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군악밴드의 실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길버트 소령은 미국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귀국한 뒤에도 제주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The Baton'과 'The School Musician'지에 글을 기고해 한국과 제주, 전쟁 속 음악교육 실태를 미국에 알렸다.
한편 전쟁 이후 제주관악은 교악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발전했다. 제주관악 활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약 10여 년간 오현고 교악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1970∼80년대 꾸준한 교악대 활동과 전국적인 관악인의 움직임으로 1992년 제주에서는 최초의 전국 규모 관악축제인 제17회 대한민국 관악제가 열렸다.
1994년에는 일본 하마쓰시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태평양관악제에 한국 대표로 제주고교연합악대가 출전하기도 했다. 이어서 1996년에는 아시아태평양관악제를 제주에 유치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이는 제주 관악인들이 국제 규모의 관악제를 제주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제주가 우리나라 관악의 효시라고 불리게 된 역사의 시작인 1995년, 제주국제관악제를 처음으로 개최해 세계 관악인들이 제주를 찾게 된 것이다. 현재 제주지역 교악대는 6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관악대가 절반 이상인 약 40곳을 차지했고 전국 학교 관악대 대비로는 10%로 전국 최다 수준이다.


'금관'이 중심이 되는 특별한 음악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제 중 통영국제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와는 달리 제주국제음악제는 '금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악기군으로 구성된 여타의 그랜드 음악제와는 달리 '금관'만 고집하기 때문에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에는 전문가의 참가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고 국내 참가단체도 적었다. 세계적인 관악단의 종류 또한 교향악단에 비하면 적은 수에 그치는 형편이었다. 사실 공립 관악단이라고 해봐야 서귀포관악단이 유일한 기관에 속한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아마추어격인 초, 중, 고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것도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축제의 약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8년 동안 제주국제관악제만의 노하우를 통해 기틀을 마련하며 느낀 것은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한 곳에 있어야 서로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자부심으로 꾸준히 기획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제주국제관악제는 '앙상블축제'와 함께 '국제관악경연대회'도 마련했다. 젊은 관악인들을 발굴하고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한 것인데 그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더불어 축제와 콩쿠르, 동시 개최를 통해 관악의 대중성과 전문성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관악경연대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축제와 경연을 동시에 진행하고 만남의 장을 만드는 축제, 특히 관악만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은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금관악기 전 부문인 호른, 트럼펫, 테너트롬본, 베이스트롬본, 유포니움, 튜바, 금관5중주와 타악기 8개 부문을 진행한다. 경연 참가자 전원이 합동 캠프생활을 하며 참가자들의 음악적 교류를 돕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호혜적인 성격을 띤다. 이를 알게 된 유네스코는 2009년 산하기구인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s)에 가입하기도 했다. 엄청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처음 콩쿠르를 열렸을 때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져 일본의 참가 학생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국내 학생들의 참여가 급증하고 있다. 콩쿠르 동안 같이 숙식을 나누며 경쟁상대로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친우관계를 형성하는 분위기다. 또한 '마에스트로 콘서트'도 한몫하고 있다. '마에스트로 콘서트' 는 콩쿠르 심사위원들이 출연하는데 이는 낮에는 평가를 받던 학생들이 저녁에는 본인의 마에스트로를 감상하는 구조로 펼쳐지는 것이다.
"해마다 차이를 두고 신경 쓰는 부분이라면 프로그램에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씩이지만 매년 더 세련되어지면서도 전체적인 틀은 견고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난 28년 동안 제주국제관악제만의 노하우를 통해 기틀을 마련하며 느낀 것은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한 곳에 있어야 서로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자부심으로 꾸준히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역 문화향유의 솔선수범 '우리동네 관악제' & 'U-13 Band Contest'
"지역 주민이 먼저 즐기는 축제라야 그게 진정한 축제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제주국제관악제는 조화와 협력을 추구하며 '우리동네 관악제' & 'U-13 Band Contest'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동네 관악제'에서는 외국 연주단과 한국 연주단 혹은 지역 연주단과의 협연이 진행됩니다. 특히, 도두마을 공연장에서는 편곡된 해녀합창곡이 아닌, 진짜 해녀들의 순수한 노래를 스페인의 '알부익세츠 에슬라바 윈드오케스트라'와 협연합니다. 순수 그대로의 우리 지역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제주도민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고 지역과 지역축제 간 선순환적인 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8일 개막공연 전날인 7일에는 'U-13 Band Contest'로 초등학생으로 이루어진 관악단들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이상철 조직위원장은 그 어떤 행사보다 '우리동네 관악제' & 'U-13 Band Contest'에 애착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악대는 인성교육, 음악교육, 그리고 음악미학 차원에서 나름의 완벽이 있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 것에는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있는 법입니다. 초등학교 관악밴드 활동과 관악제 참가 활동은 스스로의 재능을 테스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본인의 의지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금관을 전공한다면 기본기가 탄탄한 플레이어가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학교악대'와 '아마추어 악대'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주국제관악제의 효과일까? 60~70년대만 해도 밴드활동을 한다면 집에서는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관악밴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부모와 조부모까지 함께 응원을 오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도교육청은 1950년대부터 역사를 이어온 교악대를 활발하게 운영하도록 장려 권장하고 나섰다. 악기구입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역대 최다 지원자,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희망!
코로나 이후에 처음 열리는 축제이니만큼 참가자들도 여느 해를 압도하고 있다. 특히 콩쿠르 참가자만 무려 28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관악인구만으로 따지면 역대 최다의 인원으로 8월 12일 결선 리허설을 거쳐 13일부터 15일 결선 당일까지 총 3일에 거쳐 진행된다.
한편 콩쿠르 이외에 축제 참가단체도 부쩍 늘었다. 단체를 살펴보자. 스페인의 '스페니쉬 브라스' '알부익세츠 에슬라바 윈드오케스트라‘, 독일의 '심포닉 윈드 유스 오케스트라 쾰른' '중앙 라인강 윈드 오케스트라' '피닉스 파운데이션', 프랑스의 '생토메르 하모니 오케스트라', 태국의 '나콘라차시마 연극대학 윈드오케스트라', 대만의 '펑 치아 대학교 관악단' '대만 중산중학교 윈드오케스트라', 중국의 '중국 주해 청소년 관악 밴드' 등이며 특히 스페인의 '알부익세츠 에슬라바 윈드오케스트라'는 65명, 프랑스의 '생토메르 하모니 오케스트라'는 60명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 참가한다. 이만하면 제주국제음악제의 명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제주국제관악제는 위촉무대와 헌정무대를 비롯하여 세계초연 무대 또한 축제를 즐기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동안 관악기를 위한 다양한 합주 무대와 제주 민요를 소재로 한 곡들이 작곡되어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초연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연주되었다. 코로나가 종식된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었던 날개를 활짝 펼친다. 개막식에는 세계 초연 무대가 2개나 준비되었다. 세계적인 관악 작곡가 스페인의 페란페라의 헌정곡 ’트럼펫, 트럼본과 관악단을 위한 협주곡‘과 안효영 작곡가에게 위촉한 제주도를 포함한 우리나라 민요 모음곡이 그것이다.
한편, 스페인 작곡가의 곡은 2020년 제주국제관악제를 위해 헌정해 준 곡인데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초연 무대가 열려 관심이 모아진다. 이 밖에도 전통 재즈공연을 비롯하여 세계트럼본협회장인 프랑스의 '자크 모저'와 프랑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콩쿠르를 개최하는 저명 트럼페티스트 '에릭 오비에르'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제주의 지역적 특색을 살린 공연장
제주도의 서귀포 천지연 폭포는 자연폭포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이젠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이다. 그러나 제주국제관악제가 폭포 앞에서 연주하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제주국제관악제가 직접 개발한 공연장이기 때문이다.
”천지연 폭포는 관악기의 소리도 아주 자연스럽게 음향판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비행기 소음에 시달리는 제주 해변 공연장과 달리 자연이 선사한 완벽에 가까운 무대입니다. 처음에는 문화재 보호구역이란 이유로 사용을 금지했지만 주민들과의 교류와 관청을 끈질기게 설득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공연무대를 얻은 이면에는 이토록 제주국제음악제 직원들의 노고도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올해는 이런 자연무대뿐만 아니라 질 좋은 공연을 위해 최대규모의 실내 공연장을 비롯해 제주도의 좋은 실내 공연장까지 총 15곳의 다양한 무대에서 관악축제를 즐길 수 있다.
"이번 축제 중 무엇보다 7일에 열리는 'U-13 Band Contest'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공연이 마중물 역할을 하며 개막공연 전에 뜨거울 열기를 보여주거든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지만 심사위원도 수준 높은 대가분들로 학생들을 일일이 무대인사 시킵니다. 참가학생들과 가족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미래를 위한 무대이기 때문에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무대입니다.”
이상철 위원장은 어린 학생들부터 전문 금관인에 이르기까지 사기앙양을 위해 진력하지만, 한편으론 매년 참가하거나 새롭게 참가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조언도 아낌없이 활용해 이번 축제 발전에 반영해 왔다. 그러기에 더 큰 무대와 다양한 볼거리, 관악 중심의 소통의 장을 기대하고 있다.
제주국제관악제는 모든 공연을 무료입장할 수 있다. 8월 7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되는 동안 아르떼, 제주도립 유투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상철 위원장은 제주국제관악축제가 국제축제로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나라 관악의 위상도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세계무대에서 한국 기악악기 연주자들의 입지와 명성은 이제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관은 그러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는 타고난 실력의 유무보다는 관심의 정도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카라얀을 비롯해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모두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대중과 함께 즐기는 음악입니다. 어느 한 곳에 치중된 게 아니라 고르게 관심을 가져야 관악도 세계 최고가 되지 않을까요? 그 출발은 이런 국제관악제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입니다. 월간리뷰 독자들부터 이번 제주국제관악제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진행 김종섭
정리 이지원
사진 제주국제관악제
2014년에는 6ㆍ25전쟁 때 제주에 온 이승만 부부 앞에서 당시 열한 살 나이로 클라리넷을 불었던 한국보육원악대원 유인자 여사가 73세 나이로 제주국제관악제 무대에 섰고, 길버트 소령의 딸 아널드 여사 부부가 초청되기도 했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부는 바람의 울림
제주국제관악제 soundscape(소리의 공간)!
“1995년 도내 관악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주국제관악제는 국내 음악교과서(7종)에 영국 에든버러 국제음악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국내 전주세계소리축제, 통영국제음악제 등과 함께 대표 음악 축제로 소개될 정도로 위상이 높습니다. 야외 연주가 용이한 관악의 특성과 함께 제주가 갖고 있는 평화의 이미지와 섬이 주는 낭만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대표적 예술축제 중 하나입니다.”
올해로 28회째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제주국제관악제의 이상철 위원장은 올해 제주국제관악제는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가을 시즌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도한다고 밝혔다. 봄과 여름으로 나누어 기획했다. 지난 3월 ‘봄을 여는 팡파르’란 주제로 봄 시즌을 선보였다. 봄 시즌이 '재즈'를 주제로 새로운 무대를 선보여 동서양의 조화를 주제로 삼았다면 오는 8월의 개최하는 여름 시즌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주춤했던 움직임을 본격화하며 많은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지만 제주국제관악제에 아직 낯선 이들을 위해 그 유래를 부탁하자, 이상철 위원장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6ㆍ25전쟁 당시 피난민들과 도민들의 걱정을 위로하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전쟁 이전의 제주도에는 무당의 굿판에서나 장구 등의 악기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선율이라 할 것도 없었던 제주도 굿은 장구, 북, 징, 연물을 사용한 리듬 형태의 음악만이 존재했다. 그런데 엄청난 전쟁 피난민들이 제주도에 유입되면서 예술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중섭 화가, 박목월 시인, 작곡가 변훈 선생 등 예술가들도 제주에 거주했다. 전쟁으로 인해 제주도에 들어온 미국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길버트 소령이다.
“제주도에 서양음악을 자리 잡게 한 사람은 당시 미군주둔의 장교이자 최고의 마칭 밴드 지도자였던 길버트입니다. 우리에겐 ‘제주관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제주, 우리나라 관악의 효시
1950년 유엔군의 지원으로 서울의 ‘한국보육원’이 제주로 이전했다. 그 이듬해, 유엔민간협력기관의 제주지역 책임자로 부임한 길버트 소령은 이 머너먼 타국으로 이사 온 한국보육원에 관악대를 창단했다. 길버트 소령은 오현고등학교, 제주농업고등학교, 제주중학교, 구세군 보육원 등에 악기 및 악보를 기증하고 밴드 지도자들을 직접 교육해 지역 음악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그렇게 창설한 군악밴드는 유엔군을 위해 전국 순회 연주회를 다니기도 했다. 연주실력은 얼마나 많은 무대를 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군악밴드의 실력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길버트 소령은 미국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귀국한 뒤에도 제주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The Baton'과 'The School Musician'지에 글을 기고해 한국과 제주, 전쟁 속 음악교육 실태를 미국에 알렸다.
한편 전쟁 이후 제주관악은 교악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발전했다. 제주관악 활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약 10여 년간 오현고 교악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1970∼80년대 꾸준한 교악대 활동과 전국적인 관악인의 움직임으로 1992년 제주에서는 최초의 전국 규모 관악축제인 제17회 대한민국 관악제가 열렸다.
1994년에는 일본 하마쓰시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태평양관악제에 한국 대표로 제주고교연합악대가 출전하기도 했다. 이어서 1996년에는 아시아태평양관악제를 제주에 유치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이는 제주 관악인들이 국제 규모의 관악제를 제주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제주가 우리나라 관악의 효시라고 불리게 된 역사의 시작인 1995년, 제주국제관악제를 처음으로 개최해 세계 관악인들이 제주를 찾게 된 것이다. 현재 제주지역 교악대는 6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관악대가 절반 이상인 약 40곳을 차지했고 전국 학교 관악대 대비로는 10%로 전국 최다 수준이다.
'금관'이 중심이 되는 특별한 음악제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제 중 통영국제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와는 달리 제주국제음악제는 '금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악기군으로 구성된 여타의 그랜드 음악제와는 달리 '금관'만 고집하기 때문에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에는 전문가의 참가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고 국내 참가단체도 적었다. 세계적인 관악단의 종류 또한 교향악단에 비하면 적은 수에 그치는 형편이었다. 사실 공립 관악단이라고 해봐야 서귀포관악단이 유일한 기관에 속한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아마추어격인 초, 중, 고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것도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축제의 약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8년 동안 제주국제관악제만의 노하우를 통해 기틀을 마련하며 느낀 것은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한 곳에 있어야 서로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자부심으로 꾸준히 기획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제주국제관악제는 '앙상블축제'와 함께 '국제관악경연대회'도 마련했다. 젊은 관악인들을 발굴하고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한 것인데 그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더불어 축제와 콩쿠르, 동시 개최를 통해 관악의 대중성과 전문성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관악경연대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축제와 경연을 동시에 진행하고 만남의 장을 만드는 축제, 특히 관악만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은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금관악기 전 부문인 호른, 트럼펫, 테너트롬본, 베이스트롬본, 유포니움, 튜바, 금관5중주와 타악기 8개 부문을 진행한다. 경연 참가자 전원이 합동 캠프생활을 하며 참가자들의 음악적 교류를 돕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호혜적인 성격을 띤다. 이를 알게 된 유네스코는 2009년 산하기구인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s)에 가입하기도 했다. 엄청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처음 콩쿠르를 열렸을 때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져 일본의 참가 학생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국내 학생들의 참여가 급증하고 있다. 콩쿠르 동안 같이 숙식을 나누며 경쟁상대로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친우관계를 형성하는 분위기다. 또한 '마에스트로 콘서트'도 한몫하고 있다. '마에스트로 콘서트' 는 콩쿠르 심사위원들이 출연하는데 이는 낮에는 평가를 받던 학생들이 저녁에는 본인의 마에스트로를 감상하는 구조로 펼쳐지는 것이다.
"해마다 차이를 두고 신경 쓰는 부분이라면 프로그램에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씩이지만 매년 더 세련되어지면서도 전체적인 틀은 견고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역 문화향유의 솔선수범 '우리동네 관악제' & 'U-13 Band Contest'
"지역 주민이 먼저 즐기는 축제라야 그게 진정한 축제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제주국제관악제는 조화와 협력을 추구하며 '우리동네 관악제' & 'U-13 Band Contest'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동네 관악제'에서는 외국 연주단과 한국 연주단 혹은 지역 연주단과의 협연이 진행됩니다. 특히, 도두마을 공연장에서는 편곡된 해녀합창곡이 아닌, 진짜 해녀들의 순수한 노래를 스페인의 '알부익세츠 에슬라바 윈드오케스트라'와 협연합니다. 순수 그대로의 우리 지역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제주도민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고 지역과 지역축제 간 선순환적인 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8일 개막공연 전날인 7일에는 'U-13 Band Contest'로 초등학생으로 이루어진 관악단들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이상철 조직위원장은 그 어떤 행사보다 '우리동네 관악제' & 'U-13 Band Contest'에 애착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악대는 인성교육, 음악교육, 그리고 음악미학 차원에서 나름의 완벽이 있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 것에는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있는 법입니다. 초등학교 관악밴드 활동과 관악제 참가 활동은 스스로의 재능을 테스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본인의 의지로 전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금관을 전공한다면 기본기가 탄탄한 플레이어가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학교악대'와 '아마추어 악대'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주국제관악제의 효과일까? 60~70년대만 해도 밴드활동을 한다면 집에서는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관악밴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부모와 조부모까지 함께 응원을 오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도교육청은 1950년대부터 역사를 이어온 교악대를 활발하게 운영하도록 장려 권장하고 나섰다. 악기구입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역대 최다 지원자,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희망!
코로나 이후에 처음 열리는 축제이니만큼 참가자들도 여느 해를 압도하고 있다. 특히 콩쿠르 참가자만 무려 28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관악인구만으로 따지면 역대 최다의 인원으로 8월 12일 결선 리허설을 거쳐 13일부터 15일 결선 당일까지 총 3일에 거쳐 진행된다.
한편 콩쿠르 이외에 축제 참가단체도 부쩍 늘었다. 단체를 살펴보자. 스페인의 '스페니쉬 브라스' '알부익세츠 에슬라바 윈드오케스트라‘, 독일의 '심포닉 윈드 유스 오케스트라 쾰른' '중앙 라인강 윈드 오케스트라' '피닉스 파운데이션', 프랑스의 '생토메르 하모니 오케스트라', 태국의 '나콘라차시마 연극대학 윈드오케스트라', 대만의 '펑 치아 대학교 관악단' '대만 중산중학교 윈드오케스트라', 중국의 '중국 주해 청소년 관악 밴드' 등이며 특히 스페인의 '알부익세츠 에슬라바 윈드오케스트라'는 65명, 프랑스의 '생토메르 하모니 오케스트라'는 60명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 참가한다. 이만하면 제주국제음악제의 명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제주국제관악제는 위촉무대와 헌정무대를 비롯하여 세계초연 무대 또한 축제를 즐기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동안 관악기를 위한 다양한 합주 무대와 제주 민요를 소재로 한 곡들이 작곡되어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초연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연주되었다. 코로나가 종식된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었던 날개를 활짝 펼친다. 개막식에는 세계 초연 무대가 2개나 준비되었다. 세계적인 관악 작곡가 스페인의 페란페라의 헌정곡 ’트럼펫, 트럼본과 관악단을 위한 협주곡‘과 안효영 작곡가에게 위촉한 제주도를 포함한 우리나라 민요 모음곡이 그것이다.
한편, 스페인 작곡가의 곡은 2020년 제주국제관악제를 위해 헌정해 준 곡인데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초연 무대가 열려 관심이 모아진다. 이 밖에도 전통 재즈공연을 비롯하여 세계트럼본협회장인 프랑스의 '자크 모저'와 프랑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콩쿠르를 개최하는 저명 트럼페티스트 '에릭 오비에르'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다.
제주의 지역적 특색을 살린 공연장
제주도의 서귀포 천지연 폭포는 자연폭포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이젠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이다. 그러나 제주국제관악제가 폭포 앞에서 연주하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제주국제관악제가 직접 개발한 공연장이기 때문이다.
”천지연 폭포는 관악기의 소리도 아주 자연스럽게 음향판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비행기 소음에 시달리는 제주 해변 공연장과 달리 자연이 선사한 완벽에 가까운 무대입니다. 처음에는 문화재 보호구역이란 이유로 사용을 금지했지만 주민들과의 교류와 관청을 끈질기게 설득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공연무대를 얻은 이면에는 이토록 제주국제음악제 직원들의 노고도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올해는 이런 자연무대뿐만 아니라 질 좋은 공연을 위해 최대규모의 실내 공연장을 비롯해 제주도의 좋은 실내 공연장까지 총 15곳의 다양한 무대에서 관악축제를 즐길 수 있다.
"이번 축제 중 무엇보다 7일에 열리는 'U-13 Band Contest'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공연이 마중물 역할을 하며 개막공연 전에 뜨거울 열기를 보여주거든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지만 심사위원도 수준 높은 대가분들로 학생들을 일일이 무대인사 시킵니다. 참가학생들과 가족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미래를 위한 무대이기 때문에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는 무대입니다.”
이상철 위원장은 어린 학생들부터 전문 금관인에 이르기까지 사기앙양을 위해 진력하지만, 한편으론 매년 참가하거나 새롭게 참가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조언도 아낌없이 활용해 이번 축제 발전에 반영해 왔다. 그러기에 더 큰 무대와 다양한 볼거리, 관악 중심의 소통의 장을 기대하고 있다.
제주국제관악제는 모든 공연을 무료입장할 수 있다. 8월 7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되는 동안 아르떼, 제주도립 유투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상철 위원장은 제주국제관악축제가 국제축제로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나라 관악의 위상도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세계무대에서 한국 기악악기 연주자들의 입지와 명성은 이제 정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관은 그러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는 타고난 실력의 유무보다는 관심의 정도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카라얀을 비롯해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모두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대중과 함께 즐기는 음악입니다. 어느 한 곳에 치중된 게 아니라 고르게 관심을 가져야 관악도 세계 최고가 되지 않을까요? 그 출발은 이런 국제관악제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입니다. 월간리뷰 독자들부터 이번 제주국제관악제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진행 김종섭
정리 이지원
사진 제주국제관악제
2014년에는 6ㆍ25전쟁 때 제주에 온 이승만 부부 앞에서 당시 열한 살 나이로 클라리넷을 불었던 한국보육원악대원 유인자 여사가 73세 나이로 제주국제관악제 무대에 섰고, 길버트 소령의 딸 아널드 여사 부부가 초청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