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으로 팬을 만나는 반클라이번의 감동

반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주니어부문 우승
피아니스트 홍석영

미국 댈러스마이어 심포니센터에서 가장 박수를 많이 받으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의 피아니스트 홍석영이다. 홍 군은 6월 17일 개최된 '2023 반 클라이번 주니어 국제 피아노콩쿠르' 결선에서 우승과 청중상을 거머쥐었다. '반 클라이번 주니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선우예권, 임윤찬이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주니어 버전으로 13~17세 연주자들이 경합을 벌인다. 이날 홍석영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를 열연해 극찬을 받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홍석영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다크호스가 아니다. 이미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에서 피아노와 작곡 두 과정을 모두 최초로 수료할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만 12세에 독주회로 데뷔, 금호영재콘서트, 프라임 필하모닉, 밀레니엄 심포니와 협연 무대를 갖는 등 국내에서 음악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가 오는 7월 31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홍석영 위드 트리오 모넬로'라는 주제로 국민들의 응원에 대한 감사 콘서트를 펼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 홍 군은 '쇼팽 발라드 2번'(F. Chopin Ballade No. 2 in F Major, Op.38), '에튀드 Op. 25'(12 Etudes, Op.25), 그리고 트리오 모넬로와 함께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F. Mendelssohn Piano Trio No. 1 in d minor, Op. 49) 등을 연주한다. 바이올린에 김수언, 첼로에 채지웅이 함께한다. 이참에 홍석영을 만났다. 그는 대체 언제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을까?


두가지 갈랫길, 오직 피아노만 선택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들으면 혼자서 장난감 피아노로 건반을 따라치는 아이였다고 해요. 처음에는 피아노학원에서 레슨을 받는 등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작곡과에 최연소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홍석영에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만든 것은 아무래도 이때부터가 아닐까? 그는 당초 작곡을 공부하려고 입학했지만 당시 담당 레슨 선생님은 홍 군의 탁월한 피아노 감각을 포착, 전문적인 피아노 교육을 권했다.
“그렇다고 작곡을 안한 것은 아니고요. 피아노를 같이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점점 피아노라는 악기의 매력에 빠져들다 5학년 때 전과했습니다.”
전과 후 막상 피아노에 몰입했을 때 아무런 장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홍 군이 살던 동네에는 모두 공부를 잘했다. 물론 홍석영 역시 ‘공부 못 한다’는 말은 듣지 않았을 만큼 공부 실력도 뛰어났다. 부모님은 그런 아들이 계속 공부를 하길 원했기에 처음에는 피아노 공부를 반대했다. 음악가로 살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홍 군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이후 피아노를 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미국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듀얼 프로그램’을 권하셨습니다. 일반대학과 음악원을 동시에 다니면서 공부와 예술 분야 두 가지를 전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어쨌든 공부를 병행하기를 원했던 부모님께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권유하셨지만 저는 ‘음악 공부만 선택하겠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 미국에서 생활하기란 상상 이상의 힘든 일이다. 부모는 부모 대로 아들이 기숙사에서 잘 견뎌낼지 걱정이 태산이다. 다행히 백혜선 선생님이 어머니 역할을 대신해주었다. 레슨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은 어떤지, 잘 먹고 다니는지 등 학업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케어해주었기 때문이다.
“맞아요. 백혜선 선생님은 어머니 같으신 분이셨어요. 제가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여러 인터뷰에서도 이 얘기를 언급했거든요. 저에게는 평생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주신 스승님이자 어머니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콩쿠르, 스타인웨이
이번 반클라이번 주니어 콩쿠르에서 입상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국내 콩쿠르는 어떤 것이 있을까? 홍석영은 가장 먼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스타인웨이 콩쿠르를 꼽는다. 국내 콩쿠르 대부분 2~3분 내외로 연주하고 끝나는데 스타인웨이 콩쿠르의 경우 20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짜서 연주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결선을 진출하게 되면 소나타, 낭만, 현대 각 한 곡씩 넣어 거의 리사이틀 수준으로 연주해야한다.
“일단 런스루(run-through)로 연주를 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콩쿠르로는 국내에선 유일하다고 볼 수 있어요. 중학교 1학년들까지 출연하는 부문이었는데 제가 1위를 했어요.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는데 수상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콩쿠르 중에서는 제대로 연주다운 연주를 하면서 입상한 것이기에 아무래도 의미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같은 해 스위스에서 열린 쇼팽콩쿠르를 출전했는데 그때 스타인웨이 콩쿠르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거든요. 이렇게 실전 형식의 콩쿠르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반클라이번 주니어 콩쿠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주니어 부문은 이번이 3회 째로 아직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모든 주니어 콩쿠르를 통틀어 이렇게 방대한 레퍼토리를 요구하는 곳은 없다. 보통 1~2 라운드까지만 치르는게 일반적이고 정말 많아 봐야 3라운드인데, 반클라이번은 총 4라운드로 이뤄진다. 게다가 콘체르트 전 악장도 준비해야 하니까 레퍼토리만 보아도 주니어 부문에서는 가장 스케일이 큰 국제 콩쿠르라고 할 수 있다. 홍석영은 1라운드에서 바흐의 평균율과 에튀드를 포함한 프로그램을 연주했고 2라운드에서는 소나타를 포함한 프로그램, 세미파이널은 현재 생존해있는 작곡가의 곡과 16분 이상 분량의 곡을 포함한 총 40분 프로그램을 연주했다. 그리고 파이널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를 연주한 것이다.
“사실 1라운드가 제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준비 기간이 짧기도 했고 또 이렇게 에튀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경우 참가자 대부분이 리스트 초절기교와 같은 고난이도 곡들로만 준비해오거든요. 그에 비해 저는 리스트의 ‘라 레지에레짜(La Leggierezza)’처럼 서정적인 곡을 골랐고요. 하지만 심사평은 예상치 못하게 1라운드에서 선보인 에튀드가 가장 좋은 평을 받았답니다. 백혜선 선생님께서 곡을 골라주셨는데 평소 저의 성향과 연주 스타일을 관찰하시고 추천해주신 것인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고 봐요.”


롯데콘서트홀, 쇼팽 발라드 2번과 에튀드 Op. 25 연주
홍석영은 이번 무대에서 1부는 오롯이 쇼팽으로만 채우기로 했다. 에튀드 같은 경우는 연습 기간이 너무 짧아 콩쿠르에서 가장 아쉬웠던 곡이었기에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고 싶었다. 콩쿠르 당시 그 에튀드를 연주하기 이틀 전날 제대로 연습을 해보지도 못했는데 바로 현장 학습을 나가야 하는 별도의 일정이 있었다.
“참가자 모두가 같은 조건이어서 불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제 스스로가 준비가 덜 되어있다 보니 마음이 불안해 연주 전날 연습을 너무 많이 해버렸어요. 결국 정작 연주 당일날 힘이 빠져서 실수도 많았고 생각했던 것만큼 기량이 나와주질 않아서 많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 곡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연주해보고 싶었습니다.”
2부에서 홍석영은 친구들과 함께 멘델스존 트리오를 연주한다. 콩쿠르에서 입상은 했다지만 이런 큰 무대에 혼자 선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 있다. 다행히 2부에서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무대라서 큰 위로가 된다는 홍석영.
“원래 반클라이번 이후에 참가하기로 했던 다른 콩쿠르가 있었는데 이 트리오 곡이 그 콩쿠르 결선에 올려질 곡이었거든요. 하지만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다음 콩쿠르는 좀 쉬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기권했지만 이제까지 연습한 게 너무 아까워 이번 무대에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트리오 멤버들은 예원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들로 바이올린 김수언은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할 예정이고 첼로 채지웅은 한예종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우선 이번 연주를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공부 할 예정이예요. 그래서 그 전에 친구들과 각자의 행보를 응원하는 의미에서 연주를 하고 싶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홍석영은 아직 학생 신분이기에 방학을 맞아야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다. 오는 8월에는 트리오 친구들과 함께 대관령음악제에 참가한 후 다시 도미, 오는 10월과 내년 1월, 3월 반클라이번국제콩쿠르에서 주최하는 세 번의 콘서트에서 미국 팬들 앞에 서게 된다. 가장 어린 나이의 차세대 K-클래식 주자로 활동하게 될 홍석영을 기대해본다.

글 민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