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으로 한국 음악의 꽃을 피우다

국립합창단 단장 겸 예술감독 윤의중

선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편안하고 쉬운 길과 개척해야 하는 어려운 길. 많은 사람들은 편안하고 쉬운 길을 택한다. 결과가 보장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명감’ 하나로 어려운 길임을 알면서도 그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역사는 그 어려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있기에 발전해 왔다.

한국 음악계에도 한국 합창을 위해 사명감 하나로 어려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립합창단 단장이자 예술감독 윤의중이다. 음악계의 주류가 되어버린 대중음악에 편승하기보다, 세계적인 한국 창작곡을 만들고자 그는 기꺼이 그 길을 선택했다.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곡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 결과 국립합창단은 대략 9곡의 대곡을 남겼다. 우효원과 오병희 등 전임작곡가를 통해 우리말로 3.1절, 8.15 등 역사적 주제가 담긴 곡을 만들고 연주해 나갔다. 윤 단장의 음악적 열정과 단장으로서 계획을 실현하는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하는 국립합창단은 반세기 동안 한국음악계를 위해 쉼 없이 나아갔다. 한국음악계를 위한 사명감 하나로 달려온 그들이다. 그 걸음을 되돌아보고자 특별히 오는 6월 ‘창작칸타타 베스트 컬렉션’을 선보인다. 공연에 앞서 국립합창단 단장 겸 예술감독인 윤의중 지휘자를 만났다. 그동안 어떤 사명감으로 달려왔을까.

Q. 한국 합창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국립합창단이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면서,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발자취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국립합창단은 1973년 창단했습니다. 국립합창단이 생겨난 이후에 많은 시립 합창단들이 생겼습니다. 국립합창단을 모태로 프로합창단이 생기고, 뿌리를 내렸습니다. 프로 합창단의 성장과 발전이 국립합창단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는 발자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자체나 중앙정부를 통해서 능력 있는 성악가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도 많이 부러워합니다. 해외의 프로 합창단의 경우는 후원을 받아서 하는 법인단체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대, 국가를 불문하고 예술가들의 일자리 문제는 중요합니다.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예술 활동에만 신경 쓸 수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창단 50주년 기념한국합창교향곡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황필주

Q. 이번 6월 1일 개최하는 ‘창작칸타타 베스트 컬렉션’은 국립합창단에서 기존에 선보였던 창작 칸타타 대표곡을 한 데 엮어 무대를 꾸밉니다. 많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국립에 오게 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 중 하나가 ‘한국 합창의 발전을 위해서 창작곡을 활성화하겠다!’였습니다. 단순히 양적으로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손색없는 작품’을 요. 하지만, 한 곡의 창작곡이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초연 이후에 더 좋은 음악을 위해서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합니다. 4~5년 정도가 지나야 비로소 자리 잡게 됩니다, 생각보다 길죠?
사실, 국립합창단은 경영평가를 받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심사합니다. 경영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창작곡은 티켓예매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창작곡을 계속해서 선보이는 이유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이기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요. 베토벤 교향곡은 독일 사람들이 좋아하고, 드뷔시 곡은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자국 작곡가의 곡이 레퍼토리로 자리 잡혀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 작곡가의 작품들로만 꽉꽉 차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 많아야 합니다. 물론 윤이상, 진은숙 등 세계적인 작곡가도 있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세계적 작곡가들이 더욱 많아져야 합니다. 개인이나, 지자체 선에서는 창작이 활성화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더욱 저희가 발 벗고 그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Q. 어려운 길임에도 그 길을 걸어가시는 단장님과 국립합창단의 걸음이 정말 대단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오신 만큼 기억에 남는 성과도 많을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ACDEA 전미국합창지휘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컨퍼런스에서 한국 곡들로만 연주해서 전원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습니다. 전미국합창지휘자협회는 2만명 정도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해당 컨퍼런스에는 8천명에서 만명 정도 참석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창작곡으로만 무대를 꾸몄는데, 반응이 좋았던 것은 중요한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힘입어 9월에는 미국에 순회연주를 갈 예정입니다. ‘위튼 칼리지 아티스트 시리즈’에 초청을 받았고, 한류 확산 프로젝트로 시카고, 워싱턴 D.C., 뉴욕, LA 등에서 무대를 펼칠 예정입니다. 한국 창작곡을 해외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은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어는 이중모음이 많지 않고, 모음이 깨끗해서 듣기에는 좋으나, 음절 언어라서 음악과 연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선율에 한국어를 딱딱 맞게 하는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한국어로 잘 들리게 하는 작곡이 어려운데, 여러 무대를 통해서 이런 부분들이 잘 보완되었습니다. 이 부분도 기억에 남는 성과입니다.

국립합창단 ACDA 컨퍼런스 초청연주회_Aronoff Center for the Arts, Procter & Gamble Hall

Q. 꿈꿔오셨던 ‘세계적 한국 창작곡’이라는 목표가 머지않아 보입니다. 이번 공연 레퍼토리에 국악과 양악의 융합으로 풀어낸 곡들이 있습니다. 국악과 양악의 융합이 쉬워 보이지 않는데요. 단장님께서 이 둘의 조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국악과 양악은 튜닝시스템이 다릅니다. 음이 정확성에서 국악과 양악이 서로 다르죠. 이뿐만 아니라 국악기가 서양악기와 함께할 때 음향, 강약 조절 등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두 악기를 하나의 소리로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각자의 장점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국악기는 음 색깔. 분위기 반전에 사용할 때 장점이 부각됩니다. 이런 식으로 각 악기가 가진 특성을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합니다.

또한 국악하시는 분들은 한국 사람들의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우리에게는 한(佷)이라는 감정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런 부분들을 음악으로 표현해 냅니다. 이런 부분은 클래식 하는 사람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깊이 있는 소리, 여백을 두는 소리 등은 국악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함으로써 풍성해집니다. '우리의 것'을 지켜가면서 융합할 때 가슴을 울리는 우리 음악이 탄생합니다. 직접 와서 보시면 제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실 겁니다. 꼭 오셔서 보세요.(웃음)

Q. 국립합창단은 창작곡뿐만 아니라 클래식의 대중화, 아름다운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맞습니다. 첫 번째는 클래식 대작들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합창단들과 마찬가지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오랜 시간 사랑받은 음악을 전하는 것도 저희의 사명이자 역할이니깐요. 두 번째로는 좋은 곡이지만, 아직 한국에는 선보인 적 없는 초연곡들을 선보입니다. 지난 4월 엘가의 ‘더뮤직메이커스’처럼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지만 알았으면 좋겠거나, 세계 창작곡의 흐름들을 알 수 있는 곡들을 국민들에게 선물합니다. 세 번째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창작곡들을 연주합니다. 처음 듣는 창작곡이라 낯설 수는 있지만, 한국어로 듣다 보니 관객분들께서 편하게 들으십니다. 언어의 장벽이 느껴지지 않으니 합창의 매력에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영화 음악, 퓨전 음악 등으로 대중 친화적인 무대를 선보입니다. 하나의 종합예술로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기획합니다. 이때 나레이션, 연극 등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음악의 맛을 전하려고 하지만, 하나의 레퍼토리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국민들에게 전하려고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립합창단 기획공연 위대한 합창 시리즈 Ⅰ - 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예술의전당 콘서트홀리허설 컷 ⓒ황필주

Q. 다양한 활동으로 클래식 대중화에 앞서고 계신 만큼, 클래식 애호가들이 줄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실 것 같습니다. 음악가로서도 많은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클래식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클래식 매니아 아니고서는 낯설어하죠. 현대사회에 와서는 클래식이 침체된 이유는 무대 위에서만 고고하게, 고귀한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클래식 역시 새로운 변화와 혁신적인 행보를 걸어야 합니다. 새로운 문화에 따라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홍보와 마케팅, 교육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국립도 아카데미 등 교육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조화롭게 대중에게 다가갈 때 비로소 클래식 음악이 왜 중요하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교육적 깊이와 문화적 깊이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Q. 단장님께서는 클래식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첫 번째로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 운명 교향곡 등 귀에 익은 가벼운 클래식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도 쉬운 시부터 읽어가야 어려운 시의 참맛을 알게 되듯이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고 세련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을 듣고 넓혀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국립합창단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립합창단은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흥겨운 합창 여행’ ‘영화 음악 여행’ 등 해설과 함께 합창곡을 선보이며,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의 수록곡 'When I Fall in Love' 등을 아카펠라 합창으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클래식을 취미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쌓일 수록 그 깊은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이 고뇌하면서 듣기에는 클래식이 안성맞춤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클래식은 알고 듣는 만큼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영화 음악, 대중 음악 등 많은 음악들이 클래식을 모방해서 발전했습니다. 이런 부분도 클래식을 느끼고 공부하다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제작] Voices of Solace 중 새야새야(Saeya Saeya)

Q. 창작과 클래식의 대중화 등 다양한 부분을 신경 쓰고 계십니다. 지치실 만도 하실 텐데요. 계속 나아가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국립합창단을 이끌어 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음악계를 위한 ‘사명감’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실 프로그램들 하나하나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나갈 때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단원들 모두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원들도 계속 새로운 곡을 한다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모두 ‘사명감’ 하나로 해 오고 있습니다. 국립이라는 사명감, 대한민국을 위한 사명감으로요.

국립합창단을 이끌어 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도 ‘사명감’입니다. 오래전 미국 순회 연주에서 한 가정에 머물렀습니다. 호스트셨던 할머니께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말씀하시더군요. 이런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합창단으로서 일생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행운이고, 영광입니다. 한명 한명이 국가대표로서 중요한 자리에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단원들도 은퇴했을 때 정말 열심히 우리나라와 한국 합창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명감을 가지고 희생, 배려, 노력해 나가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힘들더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하고 희생함으로써 한국 합창의 비전과 미래를 남겨줘야 합니다.

Q. 앞으로 희망찬 100년을 기대하며, 앞으로 어떤 국립합창단이 되고 싶으신지 비전 소개 부탁드립니다.

국민들이 더 사랑하는 합창단이 되고 싶습니다.(웃음) 국립합창단은 국민의 사랑에 기반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국민이 알 수 있는 레퍼토리를 정립해서 국립합창단이 공연하면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에 한국의 아름다운 음악을 알리는 데 저희가 앞장서고 싶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경영적인 마인드를 지닌 합창단이 되고 싶습니다. 국립이지만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의 흐름에 맞춘 경영적 마인드를 지닌 합창단이요. 음악적인 활동과 성공적인 경영이 합쳐지는 국가 예술 단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봐 주세요.

윤의중 단장이 전하는 ‘사명감’이라는 말에는 단어가 지닌 묵직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진정한 지도자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의 말에는 그의 고뇌와 실천이, 걸어온 길이 담겨 있었다. 대의를 위해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윤의중 단장과 국립합창단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사명감을 몸소 느끼고 싶다면 6월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창작칸타타 베스트 컬렉션’ 공연에 함께할 것을 권한다. 우리말로 울려 퍼지는 합창대곡, 가슴 울리는 깊은 하모니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일깨워 줄 것이다.

글 허소원
사진 국립합창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