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하다

중국 성악가 刁刻(DIAO KE)

최초의 한국가곡이 세상의 빛을 본 지 100년이 지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은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로 1920년 4월 일제강점기로 힘들었던 시절에 탄생했다. 민중들은 일제강점기의 힘들고 아픈 날들을 가곡을 통해 위로받았고, 힘을 얻었다. 한국가곡은 다사다난한 한국 역사와 함께 험난한 길을 걸어온 친구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곡은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음악교육에서 가곡을 찾아보기란 어렵고, 가곡 공연도 대중음악에 밀리기 일쑤이다. 딱딱한 음악이라는 인식에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중국에서 한국가곡이 열풍이라는 것이다. 한국가곡을 배우기 위해 많은 중국의 성악가, 교수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있으며, 학업을 마친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한국가곡을 전하고 있다. 刁刻 교수도 한국가곡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부산의 동아대학교에서 한국가곡을 배우고 중국대학교로 돌아가 한국 가곡과를 만들고, 한국가곡집 출판하는 등 중국인으로서 한국가곡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음악을 통해서 한국과 중국의 다리가 되고 있는 그이다. 한국 가곡을 어떻게 만났을까? 그 이야기가 궁금해 그를 만나러 달려갔다.

살아가는 따뜻함 묻어 있는 한국가곡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해주니깐 그것에 힘입어서 더 열심히 했죠. 특히 배포가 크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무대가 별로 무섭지 않고 좋았어요. 무대를 좋아하니, 연주에 자신감이 붙었죠. 자연스럽게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후 음악의 섬세한 부분을 잘 알아야 전달력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부분을 채워가며 공부했습니다.”

성악을 전공할 때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의 성악곡을 많이 공부한다. 가곡도 이태리 가곡이나 독일 가곡, 프랑스나 미국 가곡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한국 가곡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사실 한국 가곡에 대해서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조금씩 유행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가곡의 현대적인 감수성과 섬세한 매력에 빠졌습니다.”

중국에도 좋은 가곡들이 많다. 웅장하고, 이백 등 유명한 시인들의 시로 가사도 수려하다.

“중국 가곡도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웅장한 가곡 가사들은 대부분 옛날 일들입니다. 신화적인 것들이요. 오페라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 사람들의 상황과는 조금 떨어져 있죠. 반면 한국가곡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당장 오늘이나 내일도 일어나는 그런 일들에 대한 묘사들이죠. 한국가곡에는 그런 따뜻함 묻어 있어요.”

언어가 달라도 정서를 느끼는 데 문제 없어

그렇다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가곡이 무엇일까. 질문을 들은 그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말 많아요. 뽑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한 곡을 뽑아보자면, 윤학준 선생님의 잔향을 좋아합니다. 마중도 좋아하고요.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이 아마 마중일 거예요. 선율이 정말 아름답죠.”

그가 마중을 불러주었다. 발음이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발음은 물론, 그의 노래는 심금을 울렸다. ‘사는 게 무엇인지’라는 부분에서는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섬세한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표현하는 그가 놀라웠다. 중국인들은 얼(儿)발음이 많아 혀가 말려 있는 편이다. 발음이 쉽지 않으니 감정 전달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언어는 다르지만 음악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내용은 똑같습니다. 그 부분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발음 공부는 저도 어려웠습니다. 특유의 발음으로 노래가 어색하게 느껴졌죠. 그래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독일어 등 외국어도 많이 공부했습니다. 여러 발음들을 익혔고, 그렇게 발음에서 조금 자유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표현에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감정에서 진심이 느껴지니 발음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가기도 하고요. 정서는 서로 통하니까요. 언어가 달라도 정서를 느끼고 전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가곡수업, 30분 만에 마감되는 인기 강좌

우한의 한 대학교 교수로 있는 그는 3년 전 한국가곡과를 개설했다. 학교에 독일어 가곡, 프랑스 가곡 강좌는 있는데, 한국어 가곡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 한국가곡 강좌를 열 수 있도록 기획하고 신청했다. 지금도 한국가곡 강좌는 30분 만에 30명이 마감되는 등 인기 있는 수업이다. 한번은 학생이 제발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찾아와 부탁했다. 한국가곡 수업을 듣고 싶어 수업을 드롭하는 학생을 기다렸는데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학기에 정원은 31명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한국 가곡을 중국에 알리기 위해서 중국에서 처음으로 한국가곡집을 만들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이번에 책을 내는 데 한국음악협회 이철구 이사장님과 동아대 교수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저작권 등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더욱 열심히 중국에서 한국 가곡을 전파하려고 합니다. 또한 한국가곡 음악회도 꾸준히 개최하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중국인은 한국가곡을 한국인은 중국가곡을 부르는 음악회도 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한국가곡협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차근차근 많은 준비를 해야겠죠.”

그는 음악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가장 가깝게 이어주기 때문에 국경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음악은 서로에 대한 장벽을 무너뜨린다. 전심이 담긴 그의 노래는 양국의 단단한 끈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인터뷰 김종섭
글 허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