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를 팝아트로 구현하는 낸시랭, 낙소스까지 음원 후원
지난해 세계적인 음반레이블인 낙소스(Naxos)가 ‘버블코코 파고다’(Bubble Coco Pagoda)를 자사의 메인 웹사이트에 영상으로 전시 소개한 바 있다. 버블코코는 팝아티스트 랜시랭(NANCY LANG)의 작품이다. 세계적인 레이블 음반사가 미술 영상 작품 속에 클래식 음원 전체를 사용하도록 후원한 것은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국내 최초이다. 어떻게 음반사와 연결됐을까 궁금했다. 강남역 부근 마롱 갤러리에서 개최하고 있는 셀렉티드 마롱 전시회에 낸시랭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전언을 듣고 찾아갔다.
낸시랭은 사실 지난해부터 만나고 싶었다. 지난해 8월 서울 평창동 갤러리세줄에서 ‘버블코코 파고다’(Bubble Coco Pagoda) 초대전이 열린 적이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과 문화재에 대한 미학을 현대미술로 표현한 작품전이라고 할까. 유산에 대한 작가 세계관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감상자들에게 동양의 불교를 힐링의 대상으로 꾸몄던, 실로 신박한 작품들이었다.
낸시랭의 왕성한 활동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한 것은 ‘버블코코 파고다’ 초대전에서부터다. 갤러리세줄에서 한창 전시 중이던 9월 초, 키아프와 영국의 프리즈(FRIEZE)가 공동기획한 국제아트페어에서도 그의 초대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이어 9월 6일까지 개최된 ‘스타트 아트페어 서울’(StART Art Fair)에서는 솔로 부스 초대 작가로서 ‘버블코코 프렌즈’(Bubble Coco Friends) 시리즈를 선보였고 10월에는 세계적인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의 ‘스타트 아트페어 런던’에 솔로 부스 개인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코로나의 여진이 끝나지 않은 혼란 속에서도 광폭의 행보를 보였다. 물론 이런 활동은 최근 한두 해가 아니라 그가 미술계에 발을 들인 이후 달려온 여정 자체에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왕성했다.
최근 초대전들의 낸시랭 작품에는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재’를 담았다는 데 특징이 있다. 낸시랭의 독창적 시각으로 민화를 재해석한 유화작품 ‘버블코코 민화’(Bubble Coco Minwha)시리즈, 1300년 역사의 중요문화재 사사자 삼층석탑을 표현한 ‘버블코코 파고다’(Bubble Coco Pagoda) 조각품과 3D 영상작품, 보물인 국보 달항아리에 위트 가득한 버블코코를 입힌 ‘버블코코 꿀단지’(Bubble Coco Honey jar) 등이 그것들이다.
여기에 더해 독특한 영상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국보로 지정된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구층암을 배경으로 예술가 낸시랭과 구층암 덕제스님이 대화를 나누는 다큐도 그대로 작품이 되었다. 낸시랭이 덕제스님을 만나 선문답식 대화를 나누는 영상으로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으로 향하면서 석탑에서 얻은 깨달음과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여정 등이 클래식 명곡과 함께 담겨 있다.
그가 가는 길은 늘 최초의 길일지도...
“무엇보다 세계적인 레이블 낙소스 웹사이트에 제 작품이 전시 오픈한 것은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와 유산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현대미술로 문화를 재해석한 보람을 느껴요.”
2018년 말 이후 코로나 기간 동안 오히려 공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온 낸시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해 동안 개인전만 3차례나 치렀다. 개인전은 애초부터 신작들만 전시했지만 이번에는 150호 4개가 합쳐진 9미터 대작도 작업했다. 화풍도 변화하지 않으면 고인물이 되는 양, 낸시랭은 작품 내용에도 변화를 주었다. 동양화를 유화로 표현한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 동양화나 민화를 현대미술로 표현한 작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신윤복이 명품백을 들고, 선비가 스포츠카 타는 등 분명 창발적인 아이디어 작품이 있다. 이색적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그림들은 팝아트 형식이긴 하지만 결국은 ‘수묵 담채화’일 뿐이다. 즉 동양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저는 동양화의 정신과 화풍을 서양화법으로 표현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적인 동양화 작가들의 민화를 유화로 그렸어요. 이런 발상이 외국 화단, 특히 영국 사치갤러리의 세레넬라 대표가 이를 인상적으로 받아들여 사치갤러리에 초청했던 거예요. 당초 초청 작가 목록에 제 이름은 없었거든요.”
세레넬라 대표는 큐레이터를 대동하고 낸시랭 작업실을 방문한 뒤 갤러리세줄 개인전에 방문했다. 처음에는 버블코코와 스칼렛 시리즈 등 페인팅 작품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사사자 석탑인 ‘파고다 버블 코코’ ‘버블코코 꿀단지’ 등에도 놀라운 반응을 보이고 곧 이 작품들도 전시하자고 제의했다. 이로써 낸시랭은 사치갤러리 회장이 직접 초대한 한국 최초의 팝아티스트가 되었다.

낸시랭은 연예인이 아니다
낸시랭은 방송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이지만 연예인은 아니다. 뭐 이런 글을 기사로 쓰기에는 다소 민망하지만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게 있다. 사대주의일지 모르지만 방송 프로그램에 의사, 변호사 등이 자주 출연해도, 그래서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누린다 해도 그들을 ‘연예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왠지 전문직 종사자들은 일반 연예인들과는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팝아티스트인 낸시랭에 대해서는 ‘연예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낸시랭이 20대에 방송 출연했을 때는 인식 부족으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20년 넘게 출연했을 뿐인데, 팝아티스트 작가인 낸시랭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예인으로 오해하고 있다.
“파인아트 분야의 작가가 방송 출연한 예는 제 이후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저를 연예인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게 문제가 좀 있어요. 최근에 진짜 연예인분들이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늘어나고 아트페어에 실제 출품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미술분야의 활성화로 보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그런 어디까지나 취미입니다. 그 유명세 때문에 개인전 한번 안 하신 분들이 작품 하나당 몇 천만원을 호가하곤 하죠. 전시하는 갤러리 입장에서는 돈이 들어오니까 나쁘진 않겠죠. 문제는 이거예요. 정통파 파인아트에서 20년 이상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펼쳐왔는데 취미로 시작한 연예인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보는 게 불편하거든요. 연예인인데 미술을 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팩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낸시랭은 예술 창조의 원형을 보여주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대가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활용해 새롭게 창조한다는 뜻이다. 낸시랭의 작품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팝아트란 특정한 소재를 현대미술로 입히는 작업이라고 표현해도 어긋난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가만히 살펴봤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아톰’, 마르첼리 뒤상의 변기 작품인 ‘샘’, 데미안 허스트의 ‘Hymn’(찬가), 앤디 워홀의 ‘통조림’, 김환기의 ‘달항아리’ 등을 오마주해서 창조한 작품들이 많다.
“맞습니다. 버블코코 시리즈는 일단 오마주 작업의 시작으로 보면 됩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마크 퀸’(Marc Quinn)과 함께 여러 장르를 작업했습니다. ‘마크 퀸 닷컴’(marcquinn.com) 작가가 여러 명인 줄 착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거든요. 제 작품은 모두 아날로그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 저의 시그니처는 터부요기니예요. 가장 많이 컬렉팅되고 또 지금도 컬렉팅되고 있는 아날로그 작품이죠. 캔버스에 페인팅한 뒤 오브젝트를 콜라주로 작업을 했죠.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 작업이 없습니다. 러시앤캐시 광고 배경으로 나왔던 스칼렛 시리즈도 마찬가지이고요.”
스칼렛 시리즈의 주제는 다소 무거운 편이다. 예컨대 전 세계 여성들의 불합리한 고통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다루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 포르노 리벤지 협박, 데이트 폭행, 이혼 등에서 여성들은 불합리한 고통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피해자임에도 여기에 더해 2차 3차 가해를 당하곤 한다. 낸시랭은 그 고통을 누구보다 핍진하게 깨닫고 있다. 그러기에 6년 전에 겪었던 그 상처를 아트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스칼렛 시리즈는 글로벌 퍼포먼스 프로젝트예요. 싱가포르에서는 빨간색 컬러로 페인팅 전시와 게릴라 퍼포먼스를 병행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다른 색상으로 전시하고,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도 스칼렛 페인팅을 했습니다. 아트페어 중 공식 일정이 없으면 핫한 곳을 찾아 게릴라 퍼포먼스를 개최하고 그걸 또 영상에 담는 작업도 했지요.”
러시앤캐시에 등장한 퍼포먼스가 바로 스칼렛의 연장이랄 수 있다. 파인아트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와 작품을 그대로 재현한 cf광고는 국내 최초다. 물론 그림을 직접 그린다거나 페인트를 붓는 행위는 있었지만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퍼포먼스 자체를 보여주는 방송광고는 낸시랭이 처음이다.
“대부업 광고지만 현대미술로 간주되어 지난해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이 광고가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오프닝도 노란색 컬러 퍼포먼스를 보여줬고요. 당연히 초청 작가죠. 스칼렛 페인팅 작품을 10m 길이의 벽에 걸어놨죠.”
낸시랭은 잭슨 폴러의 드리핑 기법에 영감을 받아 펌핑건을 개발해 퍼포먼스에 사용했다. 벽면에 물감을 쏘는 행위도 낸시랭만 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참여시켜 흩뿌리게 했다. 이런 퍼포먼스는 글로벌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완성한 기법으로 공연으로 따지면 파격적인 이머시브 씨어터(관객 참여형)라 할 수 있다.
연출은 없다.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과 함께 나이 들다
낸시랭에게 퍼포먼스는 연출이 있어도 삶에는 연출이 없다. 그가 늘 대동하고 다니는 인형 ‘코코샤넬’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이쁜 인형으로 새롭게 바꾸면 좋으련만 낸시랭은 처음 만났던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과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제 인생 자체에는 연출이 없습니다. 낚싯줄인 코코샤넬의 수염도 지금은 다 닳아 없어지고 플라스틱 눈도 깨지고 스크래치투성이에요. 부드러운 명주실 털도 빠진 데다 물감 퍼포먼스 때 묻은 물감도 그대로 묻어 있잖아요.”
무남독녀 외동딸인 낸시랭에게 반려견은 가장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반려묘까지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예일대를 준비하다 여러 사정으로 귀국해 홍익대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와병 중인 어머니를 돌봐드리면서 반려묘에게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털이 많이 빠지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반대를 무릅쓰고 고양이를 덜컥 입양했습니다. 집안의 반대가 워낙 심해 입양한 다음 날 고양이를 바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펑펑 울면서 수소문 끝에 지인에게 넘겼어요.”
낸시랭은 헛헛했다. 떠나버린 고양이를 마음속에 담고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초청이 들어오는 전시회까지 패싱할 순 없어 일본전시회에는 참석했다. 짬이 날 때 찾아간 일본 수제인형 가게에서 바로 지금의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을 만나게 된다.
“포즈가 다양한 수제인형들이 즐비했습니다. 페르시안부터 이름 없는 삼색고양이 등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종자이름도 없는 들고양이 한 마리가 저와 텔레파시가 통한 거예요. 아휴! 10만원이면 당시 굉장히 비싼 편인데 덜컥 구매했습니다. 이후 전시나 여행, 어디를 가든 갖고 다녔습니다. 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죠. 마치 찍찍이를 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어깨에 올린 거예요. 방송에 나오기 한참 전입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패널로 인기를 얻을 때였다. 담당 PD가 ‘그 고양이 데리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낸시랭은 참 지혜롭게 설득했다. 일반 연예인분들이 모자 쓰고 선글라스에 브로치 착용하는 것과 코코샤넬을 어깨에 메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조금 큰 액세서리라고 생각하시라고 웃었다.
“무슨 마케팅 전략상 코코샤넬을 늘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에요. 저에게 코코샤넬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 같은 존재예요. 어딜 가든 같이 다녀요. 방송도 마찬가지일 뿐이죠.”
방송 탤런트 아닌, 진정한 의미의 탤런트 낸시랭
크든 작든 책을 저술해 본 사람은 그 수고로움을 안다. 책은 시간의 틈을 짜내 부지런함을 먹고 엉덩이를 찍찍이로 의자에 붙여야만 탄생하는 결과물이다. 여기에 더해 두뇌의 양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을 한다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이다. 낸시랭은 예술가로 활동하면서도 그 두 가지 일을 해냈다.
그 원동력을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미 10여년 전의 일이지만 ‘난 실행할 거야’ ‘엉뚱발랄 미술관’ ‘아티스트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 북디자인 ‘장미와 찔레’ ‘매거진 낸시랭’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는가 하면 쌍방울, 라하코리아, LG전자, KT, 삼성 등 굵직한 기업의 전속모델로도 활동했다. 또 세계슬로우걷기 축제, 국제아동돕기연합, 서울시청소년심리지원, 한국아동미술치료협회 등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한 바 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것은 제가 아티스트이기 때문이에요. 예술가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과 욕구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저는 단순히 미술 작업만 한 작가들보다 바이오그래피에서 보시다시피 훨씬 더 많은 작품을 창조해 내고 있어요. 개인전, 초대전, 기획전, 그룹전 할 것 없이 끝없이 작품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낸시랭은 이 모든 탤런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겸손해한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크리스천이다. 그간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토록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한때 끽연가(喫煙家)였던 낸시생은 어느 날 그 기호제품에서 역겨움을 느꼈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금연했어요. 기도를 열심히 했거든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려면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하는데, 오르막길로 홍대 미대를 등교할 때 숨이 차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미술을 우아하게 생각하는데 미술은 육체노동에 가깝습니다. 아니 완벽한 노동입니다. 20대에 이렇게 숨이 차고 힘들면 도대체 중년 말년 가서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간절히 기도드렸어요. 희한하게도 어느 순간 담배가 역겨워서 못 피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낸시랭의 열정은 그 이후 더욱 부스팅업, 젊은 시기에 더 많은 작품과 더 많은 도전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작품 활동만은 쉼 없이 정진하고 있다.
“박서보 교수님 90대이신데 이번에 루이비통과 콜라보하셨어요.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 역시 90대잖아요. 이분도 콜라보하셨고요. 앞으로 갈 길이 멀다지만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사고로 갈지 끝까지 다 살고 갈지, 중간에 어떤 이유로 갈지는 아무도 몰라요. 주님만 아시죠. 그렇기 때문에 젊은 에너지와 힘이 있을 때 정말 진하게 살아야죠.”

그가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이유
낸시랭은 단지 어떤 사건 때문에 젊을 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다진 게 아니라 어쩌면 태생적인 걸지도 모른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한국사람들로서는 센세이셔널한 퍼포먼스가 각 언론의 뉴스란을 장식했다. 낸시랭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못하자, 베니스 광장에서 아트 퍼포먼스를 펼친 것. 그게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한국인으로서는 낯선 광경이었다. 왜 이런 생경한 행동을 했을까?
“엄마의 사업도 쑥쑥 성장한 데다 외동딸로서 대학교 때까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어요. 그러다 엄마의 투병생활로 경영에서 물러나시면서 대학원 다닐 때는 가세가 완전히 기울기 시작했죠. 제 꿈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것인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거든요.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예술성이 탈락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사실 미술은 경제적인 서포트가 이뤄지지 않으면 힘든 예술입니다.”
낸시랭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교수가 될 것인가, 비즈니스우먼이 될 것인가, 아티스트로 살아갈 것인가 등 현재와 미래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미 대학원 때 구체적인 로드맵을 구상해 놓았다. 당시 가장 많은 학생들이 목표로 삼았던 교수가 되려면 낸시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조교부터 시작해 교수의 어시스트 작가가 되어 10년 동안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행위를 진정 좋아할까? 낸시랭은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위해 10년 동안 어시스트할 자신이 없었기에 교수를 패싱했다. 두 번째 대안으로 비즈니스우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기업에 입사해 이사진이 되기까지 몇 년을 일해야 할까? 그러면 그렇게 번 돈은 과연 얼마일까? 낸시랭은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았다. 게다가 기업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건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비즈니스 분야에 인생을 바치는 것은 낭비라고 판단했다. 그가 갈 길은 오직 아티스트였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다면 교수는 쉽게 될 것이고, 기업가 못지않은 수입을 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이에요. 다행히 ‘베니스 비엔날레’를 향한 퍼포먼스를 치르고 오자마자 오히려 방송 섭외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장은 생계형 방송 출연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병원비에 갑작스레 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집안 생활비까지 제가 감당했으니까요. 이미 20대에 광고분야에서 억대 계약까지 따냈죠. 저는 모든 게 빨랐어요. 그 큰 수익으로 생활비, 엄마 병원비를 채웠고 남은 돈은 다시 다른 작품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그 또래에서는 엄청 벌었죠.”
낸시랭은 20대에 이미 쌈지 감독 일도 해냈고 낸시랭 작품과 함께 유명 브랜드 패션 옷 구두 등을 런칭하는 ‘아트 콜라보레이션’ 등도 선구적으로 선보였다. 이전의 아티스트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아티스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에 관심 갖는 이유
낸시랭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신이 담긴 우리 문화를 주제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길이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던 낸시랭으로서는 이것 역시 ‘도전’이었다.
“파에타 하면 서양적인 주제, 서양적인 이미지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한국에도 한국적인 소재가 있을 텐데 그 문화를 탐색하면 불교 미술작품, 민화와 같은 민속작품이 나옵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려면 바로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를 담아 팝아트로 표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이 먹은 거죠.(웃음)”
그러나 현대미술이건 팝아트 건 우리 문화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가 녹록지 않다. 비주얼로 봐서는 왠지 모를 촌스러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낸시랭은 그 흔한 소재인 ‘한지’ 등을 극복하기 위해 상당기간 동안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다. 버블코코 파고다는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역시나 예상은 적중했다. 화엄사 등에서도 초청하는가 하면 사치갤러리 등 해외 갤러리까지 초대하지 않았던가.
낸시랭은 우리 문화를 사랑하게 되고, 또 2003년 이후 그가 치열하게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을 때 참 멀리 왔다며 ‘나이 먹었다’고 표현하지만 아직 젊어도 너무 젊은 아티스트다. 홍익대 대학원 시절 가졌던 미래상을 그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90세가 되어도 루이비통과 콜라보를 하는 예술가처럼 그 길을 가고 싶어 하기에 아직 젊다는 것이다. 낸시랭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도 없이 그가 가진 한가지 정신만으로도 그가 구현할 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저는 아티스트로서 아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시도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시도할 겁니다.”
그가 가는 길을 따라 동행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시도하는지 꾸준히 지켜보고 싶다.
글 한숙현 (리음아트앤컴퍼니 이사, 음악감독)
우리 문화를 팝아트로 구현하는 낸시랭, 낙소스까지 음원 후원
지난해 세계적인 음반레이블인 낙소스(Naxos)가 ‘버블코코 파고다’(Bubble Coco Pagoda)를 자사의 메인 웹사이트에 영상으로 전시 소개한 바 있다. 버블코코는 팝아티스트 랜시랭(NANCY LANG)의 작품이다. 세계적인 레이블 음반사가 미술 영상 작품 속에 클래식 음원 전체를 사용하도록 후원한 것은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국내 최초이다. 어떻게 음반사와 연결됐을까 궁금했다. 강남역 부근 마롱 갤러리에서 개최하고 있는 셀렉티드 마롱 전시회에 낸시랭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전언을 듣고 찾아갔다.
낸시랭은 사실 지난해부터 만나고 싶었다. 지난해 8월 서울 평창동 갤러리세줄에서 ‘버블코코 파고다’(Bubble Coco Pagoda) 초대전이 열린 적이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과 문화재에 대한 미학을 현대미술로 표현한 작품전이라고 할까. 유산에 대한 작가 세계관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감상자들에게 동양의 불교를 힐링의 대상으로 꾸몄던, 실로 신박한 작품들이었다.
낸시랭의 왕성한 활동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한 것은 ‘버블코코 파고다’ 초대전에서부터다. 갤러리세줄에서 한창 전시 중이던 9월 초, 키아프와 영국의 프리즈(FRIEZE)가 공동기획한 국제아트페어에서도 그의 초대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이어 9월 6일까지 개최된 ‘스타트 아트페어 서울’(StART Art Fair)에서는 솔로 부스 초대 작가로서 ‘버블코코 프렌즈’(Bubble Coco Friends) 시리즈를 선보였고 10월에는 세계적인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의 ‘스타트 아트페어 런던’에 솔로 부스 개인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코로나의 여진이 끝나지 않은 혼란 속에서도 광폭의 행보를 보였다. 물론 이런 활동은 최근 한두 해가 아니라 그가 미술계에 발을 들인 이후 달려온 여정 자체에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왕성했다.
최근 초대전들의 낸시랭 작품에는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재’를 담았다는 데 특징이 있다. 낸시랭의 독창적 시각으로 민화를 재해석한 유화작품 ‘버블코코 민화’(Bubble Coco Minwha)시리즈, 1300년 역사의 중요문화재 사사자 삼층석탑을 표현한 ‘버블코코 파고다’(Bubble Coco Pagoda) 조각품과 3D 영상작품, 보물인 국보 달항아리에 위트 가득한 버블코코를 입힌 ‘버블코코 꿀단지’(Bubble Coco Honey jar) 등이 그것들이다.
여기에 더해 독특한 영상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국보로 지정된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구층암을 배경으로 예술가 낸시랭과 구층암 덕제스님이 대화를 나누는 다큐도 그대로 작품이 되었다. 낸시랭이 덕제스님을 만나 선문답식 대화를 나누는 영상으로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으로 향하면서 석탑에서 얻은 깨달음과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여정 등이 클래식 명곡과 함께 담겨 있다.
그가 가는 길은 늘 최초의 길일지도...
“무엇보다 세계적인 레이블 낙소스 웹사이트에 제 작품이 전시 오픈한 것은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와 유산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현대미술로 문화를 재해석한 보람을 느껴요.”
2018년 말 이후 코로나 기간 동안 오히려 공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온 낸시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해 동안 개인전만 3차례나 치렀다. 개인전은 애초부터 신작들만 전시했지만 이번에는 150호 4개가 합쳐진 9미터 대작도 작업했다. 화풍도 변화하지 않으면 고인물이 되는 양, 낸시랭은 작품 내용에도 변화를 주었다. 동양화를 유화로 표현한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 동양화나 민화를 현대미술로 표현한 작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신윤복이 명품백을 들고, 선비가 스포츠카 타는 등 분명 창발적인 아이디어 작품이 있다. 이색적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그림들은 팝아트 형식이긴 하지만 결국은 ‘수묵 담채화’일 뿐이다. 즉 동양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저는 동양화의 정신과 화풍을 서양화법으로 표현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적인 동양화 작가들의 민화를 유화로 그렸어요. 이런 발상이 외국 화단, 특히 영국 사치갤러리의 세레넬라 대표가 이를 인상적으로 받아들여 사치갤러리에 초청했던 거예요. 당초 초청 작가 목록에 제 이름은 없었거든요.”
세레넬라 대표는 큐레이터를 대동하고 낸시랭 작업실을 방문한 뒤 갤러리세줄 개인전에 방문했다. 처음에는 버블코코와 스칼렛 시리즈 등 페인팅 작품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사사자 석탑인 ‘파고다 버블 코코’ ‘버블코코 꿀단지’ 등에도 놀라운 반응을 보이고 곧 이 작품들도 전시하자고 제의했다. 이로써 낸시랭은 사치갤러리 회장이 직접 초대한 한국 최초의 팝아티스트가 되었다.
낸시랭은 연예인이 아니다
낸시랭은 방송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이지만 연예인은 아니다. 뭐 이런 글을 기사로 쓰기에는 다소 민망하지만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게 있다. 사대주의일지 모르지만 방송 프로그램에 의사, 변호사 등이 자주 출연해도, 그래서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누린다 해도 그들을 ‘연예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왠지 전문직 종사자들은 일반 연예인들과는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팝아티스트인 낸시랭에 대해서는 ‘연예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낸시랭이 20대에 방송 출연했을 때는 인식 부족으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20년 넘게 출연했을 뿐인데, 팝아티스트 작가인 낸시랭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예인으로 오해하고 있다.
“파인아트 분야의 작가가 방송 출연한 예는 제 이후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저를 연예인으로 보는 시각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게 문제가 좀 있어요. 최근에 진짜 연예인분들이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늘어나고 아트페어에 실제 출품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미술분야의 활성화로 보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그런 어디까지나 취미입니다. 그 유명세 때문에 개인전 한번 안 하신 분들이 작품 하나당 몇 천만원을 호가하곤 하죠. 전시하는 갤러리 입장에서는 돈이 들어오니까 나쁘진 않겠죠. 문제는 이거예요. 정통파 파인아트에서 20년 이상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펼쳐왔는데 취미로 시작한 연예인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보는 게 불편하거든요. 연예인인데 미술을 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팩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낸시랭은 예술 창조의 원형을 보여주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대가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활용해 새롭게 창조한다는 뜻이다. 낸시랭의 작품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팝아트란 특정한 소재를 현대미술로 입히는 작업이라고 표현해도 어긋난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가만히 살펴봤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아톰’, 마르첼리 뒤상의 변기 작품인 ‘샘’, 데미안 허스트의 ‘Hymn’(찬가), 앤디 워홀의 ‘통조림’, 김환기의 ‘달항아리’ 등을 오마주해서 창조한 작품들이 많다.
“맞습니다. 버블코코 시리즈는 일단 오마주 작업의 시작으로 보면 됩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마크 퀸’(Marc Quinn)과 함께 여러 장르를 작업했습니다. ‘마크 퀸 닷컴’(marcquinn.com) 작가가 여러 명인 줄 착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거든요. 제 작품은 모두 아날로그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 저의 시그니처는 터부요기니예요. 가장 많이 컬렉팅되고 또 지금도 컬렉팅되고 있는 아날로그 작품이죠. 캔버스에 페인팅한 뒤 오브젝트를 콜라주로 작업을 했죠.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 작업이 없습니다. 러시앤캐시 광고 배경으로 나왔던 스칼렛 시리즈도 마찬가지이고요.”
스칼렛 시리즈의 주제는 다소 무거운 편이다. 예컨대 전 세계 여성들의 불합리한 고통에 대한 사회적 관점을 다루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 포르노 리벤지 협박, 데이트 폭행, 이혼 등에서 여성들은 불합리한 고통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피해자임에도 여기에 더해 2차 3차 가해를 당하곤 한다. 낸시랭은 그 고통을 누구보다 핍진하게 깨닫고 있다. 그러기에 6년 전에 겪었던 그 상처를 아트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스칼렛 시리즈는 글로벌 퍼포먼스 프로젝트예요. 싱가포르에서는 빨간색 컬러로 페인팅 전시와 게릴라 퍼포먼스를 병행했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다른 색상으로 전시하고,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도 스칼렛 페인팅을 했습니다. 아트페어 중 공식 일정이 없으면 핫한 곳을 찾아 게릴라 퍼포먼스를 개최하고 그걸 또 영상에 담는 작업도 했지요.”
러시앤캐시에 등장한 퍼포먼스가 바로 스칼렛의 연장이랄 수 있다. 파인아트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와 작품을 그대로 재현한 cf광고는 국내 최초다. 물론 그림을 직접 그린다거나 페인트를 붓는 행위는 있었지만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퍼포먼스 자체를 보여주는 방송광고는 낸시랭이 처음이다.
“대부업 광고지만 현대미술로 간주되어 지난해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이 광고가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오프닝도 노란색 컬러 퍼포먼스를 보여줬고요. 당연히 초청 작가죠. 스칼렛 페인팅 작품을 10m 길이의 벽에 걸어놨죠.”
낸시랭은 잭슨 폴러의 드리핑 기법에 영감을 받아 펌핑건을 개발해 퍼포먼스에 사용했다. 벽면에 물감을 쏘는 행위도 낸시랭만 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참여시켜 흩뿌리게 했다. 이런 퍼포먼스는 글로벌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완성한 기법으로 공연으로 따지면 파격적인 이머시브 씨어터(관객 참여형)라 할 수 있다.
연출은 없다.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과 함께 나이 들다
낸시랭에게 퍼포먼스는 연출이 있어도 삶에는 연출이 없다. 그가 늘 대동하고 다니는 인형 ‘코코샤넬’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이쁜 인형으로 새롭게 바꾸면 좋으련만 낸시랭은 처음 만났던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과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제 인생 자체에는 연출이 없습니다. 낚싯줄인 코코샤넬의 수염도 지금은 다 닳아 없어지고 플라스틱 눈도 깨지고 스크래치투성이에요. 부드러운 명주실 털도 빠진 데다 물감 퍼포먼스 때 묻은 물감도 그대로 묻어 있잖아요.”
무남독녀 외동딸인 낸시랭에게 반려견은 가장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반려묘까지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 예일대를 준비하다 여러 사정으로 귀국해 홍익대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와병 중인 어머니를 돌봐드리면서 반려묘에게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털이 많이 빠지기 때문에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반대를 무릅쓰고 고양이를 덜컥 입양했습니다. 집안의 반대가 워낙 심해 입양한 다음 날 고양이를 바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펑펑 울면서 수소문 끝에 지인에게 넘겼어요.”
낸시랭은 헛헛했다. 떠나버린 고양이를 마음속에 담고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초청이 들어오는 전시회까지 패싱할 순 없어 일본전시회에는 참석했다. 짬이 날 때 찾아간 일본 수제인형 가게에서 바로 지금의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을 만나게 된다.
“포즈가 다양한 수제인형들이 즐비했습니다. 페르시안부터 이름 없는 삼색고양이 등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종자이름도 없는 들고양이 한 마리가 저와 텔레파시가 통한 거예요. 아휴! 10만원이면 당시 굉장히 비싼 편인데 덜컥 구매했습니다. 이후 전시나 여행, 어디를 가든 갖고 다녔습니다. 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죠. 마치 찍찍이를 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어깨에 올린 거예요. 방송에 나오기 한참 전입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패널로 인기를 얻을 때였다. 담당 PD가 ‘그 고양이 데리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낸시랭은 참 지혜롭게 설득했다. 일반 연예인분들이 모자 쓰고 선글라스에 브로치 착용하는 것과 코코샤넬을 어깨에 메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조금 큰 액세서리라고 생각하시라고 웃었다.
“무슨 마케팅 전략상 코코샤넬을 늘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에요. 저에게 코코샤넬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 같은 존재예요. 어딜 가든 같이 다녀요. 방송도 마찬가지일 뿐이죠.”
방송 탤런트 아닌, 진정한 의미의 탤런트 낸시랭
크든 작든 책을 저술해 본 사람은 그 수고로움을 안다. 책은 시간의 틈을 짜내 부지런함을 먹고 엉덩이를 찍찍이로 의자에 붙여야만 탄생하는 결과물이다. 여기에 더해 두뇌의 양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을 한다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이다. 낸시랭은 예술가로 활동하면서도 그 두 가지 일을 해냈다.
그 원동력을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미 10여년 전의 일이지만 ‘난 실행할 거야’ ‘엉뚱발랄 미술관’ ‘아티스트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 북디자인 ‘장미와 찔레’ ‘매거진 낸시랭’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는가 하면 쌍방울, 라하코리아, LG전자, KT, 삼성 등 굵직한 기업의 전속모델로도 활동했다. 또 세계슬로우걷기 축제, 국제아동돕기연합, 서울시청소년심리지원, 한국아동미술치료협회 등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한 바 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것은 제가 아티스트이기 때문이에요. 예술가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과 욕구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저는 단순히 미술 작업만 한 작가들보다 바이오그래피에서 보시다시피 훨씬 더 많은 작품을 창조해 내고 있어요. 개인전, 초대전, 기획전, 그룹전 할 것 없이 끝없이 작품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낸시랭은 이 모든 탤런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겸손해한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크리스천이다. 그간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토록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한때 끽연가(喫煙家)였던 낸시생은 어느 날 그 기호제품에서 역겨움을 느꼈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금연했어요. 기도를 열심히 했거든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려면 우선 몸이 건강해야 하는데, 오르막길로 홍대 미대를 등교할 때 숨이 차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미술을 우아하게 생각하는데 미술은 육체노동에 가깝습니다. 아니 완벽한 노동입니다. 20대에 이렇게 숨이 차고 힘들면 도대체 중년 말년 가서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간절히 기도드렸어요. 희한하게도 어느 순간 담배가 역겨워서 못 피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낸시랭의 열정은 그 이후 더욱 부스팅업, 젊은 시기에 더 많은 작품과 더 많은 도전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작품 활동만은 쉼 없이 정진하고 있다.
“박서보 교수님 90대이신데 이번에 루이비통과 콜라보하셨어요.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 역시 90대잖아요. 이분도 콜라보하셨고요. 앞으로 갈 길이 멀다지만 언제 하늘나라로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사고로 갈지 끝까지 다 살고 갈지, 중간에 어떤 이유로 갈지는 아무도 몰라요. 주님만 아시죠. 그렇기 때문에 젊은 에너지와 힘이 있을 때 정말 진하게 살아야죠.”
그가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이유
낸시랭은 단지 어떤 사건 때문에 젊을 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다진 게 아니라 어쩌면 태생적인 걸지도 모른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한국사람들로서는 센세이셔널한 퍼포먼스가 각 언론의 뉴스란을 장식했다. 낸시랭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지 못하자, 베니스 광장에서 아트 퍼포먼스를 펼친 것. 그게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한국인으로서는 낯선 광경이었다. 왜 이런 생경한 행동을 했을까?
“엄마의 사업도 쑥쑥 성장한 데다 외동딸로서 대학교 때까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어요. 그러다 엄마의 투병생활로 경영에서 물러나시면서 대학원 다닐 때는 가세가 완전히 기울기 시작했죠. 제 꿈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것인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거든요.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예술성이 탈락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답니다. 사실 미술은 경제적인 서포트가 이뤄지지 않으면 힘든 예술입니다.”
낸시랭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교수가 될 것인가, 비즈니스우먼이 될 것인가, 아티스트로 살아갈 것인가 등 현재와 미래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미 대학원 때 구체적인 로드맵을 구상해 놓았다. 당시 가장 많은 학생들이 목표로 삼았던 교수가 되려면 낸시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조교부터 시작해 교수의 어시스트 작가가 되어 10년 동안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행위를 진정 좋아할까? 낸시랭은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위해 10년 동안 어시스트할 자신이 없었기에 교수를 패싱했다. 두 번째 대안으로 비즈니스우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기업에 입사해 이사진이 되기까지 몇 년을 일해야 할까? 그러면 그렇게 번 돈은 과연 얼마일까? 낸시랭은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았다. 게다가 기업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건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비즈니스 분야에 인생을 바치는 것은 낭비라고 판단했다. 그가 갈 길은 오직 아티스트였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다면 교수는 쉽게 될 것이고, 기업가 못지않은 수입을 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이에요. 다행히 ‘베니스 비엔날레’를 향한 퍼포먼스를 치르고 오자마자 오히려 방송 섭외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장은 생계형 방송 출연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병원비에 갑작스레 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집안 생활비까지 제가 감당했으니까요. 이미 20대에 광고분야에서 억대 계약까지 따냈죠. 저는 모든 게 빨랐어요. 그 큰 수익으로 생활비, 엄마 병원비를 채웠고 남은 돈은 다시 다른 작품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그 또래에서는 엄청 벌었죠.”
낸시랭은 20대에 이미 쌈지 감독 일도 해냈고 낸시랭 작품과 함께 유명 브랜드 패션 옷 구두 등을 런칭하는 ‘아트 콜라보레이션’ 등도 선구적으로 선보였다. 이전의 아티스트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아티스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에 관심 갖는 이유
낸시랭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신이 담긴 우리 문화를 주제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길이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던 낸시랭으로서는 이것 역시 ‘도전’이었다.
“파에타 하면 서양적인 주제, 서양적인 이미지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한국에도 한국적인 소재가 있을 텐데 그 문화를 탐색하면 불교 미술작품, 민화와 같은 민속작품이 나옵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려면 바로 한국적인 소재와 주제를 담아 팝아트로 표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이 먹은 거죠.(웃음)”
그러나 현대미술이건 팝아트 건 우리 문화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가 녹록지 않다. 비주얼로 봐서는 왠지 모를 촌스러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낸시랭은 그 흔한 소재인 ‘한지’ 등을 극복하기 위해 상당기간 동안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다. 버블코코 파고다는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역시나 예상은 적중했다. 화엄사 등에서도 초청하는가 하면 사치갤러리 등 해외 갤러리까지 초대하지 않았던가.
낸시랭은 우리 문화를 사랑하게 되고, 또 2003년 이후 그가 치열하게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을 때 참 멀리 왔다며 ‘나이 먹었다’고 표현하지만 아직 젊어도 너무 젊은 아티스트다. 홍익대 대학원 시절 가졌던 미래상을 그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90세가 되어도 루이비통과 콜라보를 하는 예술가처럼 그 길을 가고 싶어 하기에 아직 젊다는 것이다. 낸시랭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도 없이 그가 가진 한가지 정신만으로도 그가 구현할 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저는 아티스트로서 아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시도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시도할 겁니다.”
그가 가는 길을 따라 동행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시도하는지 꾸준히 지켜보고 싶다.
글 한숙현 (리음아트앤컴퍼니 이사,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