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왼손피아니스트 - 절망의 건반 위에 피어난 기적의 선율

‘왼손 피아니스트’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현장

 

건반을 마주한 침묵의 순간, 다시 태어난 왼손

 

피아니스트에게 오른손의 마비는 곧 음악가로서의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2012년, 촉망받던 유학 시절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졸중은 피아니스트 이훈에게서 오른편 몸의 자유와 언어를 단숨에 앗아갔다. 88개의 건반은 더 이상 그에게 성취해야 할 도전의 무대가 아니었다.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절벽이자 참혹한 침묵의 형벌이었다. 홀로 남겨진 왼손을 내려다보며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침잠하던 나날, 그의 세상은 완전히 암전된 듯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서광이 전쟁과 비극 등으로 손을 잃은 음악가들을 위해 탄생한 무수히 많은 ‘왼손을 위한 피아노곡’들이 음악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깨달음은 식어버렸던 그의 심장을 세차게 뛰게 했다.

오랜 번민과 두려움 끝에 그는 다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마비된 몸을 겨우 가누며, 오직 살아 숨 쉬는 왼손을 조심스레 건반 위로 뻗었다. 손가락이 차가운 건반에 닿는 찰나,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타고 내렸다. 건반 하나를 깊게 내리누른 순간, 텅 빈 공간을 울린 그 맑고 묵직한 첫 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의 벼랑 끝에서 ‘나는 여전히 피아니스트이며,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세상에 띄우는 선언이자, 다시 태어난 영혼의 첫 박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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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 밤을 적신 113분의 울림, ‘왼손 피아니스트’ 월드 프리미어

 

이 눈물겨운 인간 승리의 서사가 스크린 위에 오롯이 피어났다. 뇌졸중을 극복하고 다시 건반 앞에 선 피아니스트 이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편영화 ‘왼손 피아니스트’(상영시간 113분)가 제2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영화풍경 - 음악가의 초상’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월드 프리미어로 전 세계 관객 앞에 첫선을 보였다.

영화 ‘왼손 피아니스트’는 오랜 해외 유학 생활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 마비와 언어장애를 겪게 된 피아니스트 이훈이, 피나는 재활 훈련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왼손 피아니스트로서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고 밀도 높게 담아낸 작품이다.

지난 4일과 5일 제천문화극장에서 진행된 공식 상영은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 객석이 가득 찼다. 스크린 속에서 오른손의 도움 없이 왼손 다섯 손가락만으로 저음부와 고음부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주선율과 화음을 온전히 직조해 내는 이훈의 연주 장면마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상영관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상영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터져 나온 기립박수는 한 인간이 절망을 딛고 피워낸 기적에 바치는 가장 뜨거운 헌사였다.

 

레드카펫부터 눈물의 GV까지 주역들이 전한 진심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개막식 레드카펫과 관객과의 대화(GV) 행사가 함께 진행되어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개막식 레드카펫에는 메가폰을 잡은 김승주 감독을 비롯해 홍재일 제작자, 극 중 어머니 역을 맡아 깊이 있는 명연기를 선보인 정영숙 배우, 주인공 이훈 역으로 혼신의 열연을 펼친 이석준 배우, 그리고 특별출연으로 작품을 빛낸 이상이 배우가 함께 참석해 영화 팬들의 뜨거운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는 영화보다 더 진한 여운을 남긴 감동의 장이었다. 무대에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이훈과 그의 어머니 풍옥희 씨, 그리고 배우 이석준과 정영숙이 직접 올라 관객들과 마주했다.

아들의 마비된 손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까지 묵묵히 곁을 지킨 어머니 풍옥희 씨의 담담하면서도 애절한 이야기는 객석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실존 인물의 아픔과 부활의 여정을 온몸으로 체화해 낸 배우 이석준과 정영숙 역시 무대에서 진솔한 소감을 전했다. 두 배우는 연기를 준비하고 촬영에 임하는 동안 느꼈던 깊은 책임감과 감정의 파고, 그리고 이 작품이 전하는 희망의 무게에 대해 진심 어린 고백을 털어놓으며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뭉클함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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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기길'

 

영화 ‘왼손 피아니스트’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작품이 품은 따뜻한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 이들의 헌신이 있었다.

공동제작사인 사회적기업 (주)툴뮤직의 정은현 대표는 이번 영화의 탄생 배경과 제작 취지에 대해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정은현 대표는 “이 영화를 제작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이 함께 모여 진정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며 영화에 담긴 애정을 강조했다. 이어 “절망의 문턱에서 다시 일어선 이훈 선생님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소망이 되고, 상처받은 현대인들이 다시 꿈꿀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전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영화가 전할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에 깊은 기대를 표명한 것이다.

영화 ‘왼손 피아니스트’는 한 예술가의 역경 극복기를 넘어,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와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 그리고 결코 꺾이지 않는 인간 존엄의 가치를 묵직하게 웅변한다. 절망의 끝에서 피아노를 다시 만났던 그 첫 순간의 벅찬 떨림처럼, 왼손 하나로 건반 위에 아로새긴 이훈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건네고 있다.

제2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성황리에 마치며 올가을 최고의 화제작으로 자리매김한 영화 ‘왼손 피아니스트’는 오는 11월 전국 극장에서 정식 개봉하여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