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 사랑, 송탄에서 결실 맺다 - 평택과 도니체티가 만난 창작오페라 ‘1970 정미소 연가’

오는 10월 16일(금) 오후 7시30분, 17일(토) 오후 5시
평택시 남부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1970년 평택의 작은 정미소에서 시작된 한 청년의 순박한 사랑이 송탄 미군기지 장교클럽을 지나 뜻밖의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유쾌하고도 따뜻하게 그린 창작 오페라 ‘1970 정미소 연가’가 오는 10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과 17일(토) 오후 5시, 평택시 남부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평택시문화재단이 평택의 역사와 지역민의 삶을 소재로 직접 제작한 이번 작품은 도니체티의 대표적인 희극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음악적 토대로 삼되, 원작의 이탈리아 농촌을 1970년 평택의 안중 정미소와 송탄 미군기지 주변으로 옮겨와 지역의 기억과 시대의 풍경을 새롭게 담아낸 오페라 부파다.

 

왜 ‘1970년의 정미소’인가

 

평택시문화재단이 ‘정미소 연가’를 기획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민들이 자신이 살아온 지역의 이야기를 오페라 무대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역을 소재로 한 공연이 단순히 지명 몇 곳을 빌려오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욕망과 상처, 사랑과 선택을 음악극으로 되살릴 때 비로소 한 도시의 역사는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그런 점에서 안중의 정미소는 농촌 공동체의 기억을 상징하고, 송탄 미군기지 장교클럽은 전쟁 이후 급속하게 변해가던 도시의 현실과 새로운 문화가 충돌하던 공간을 상징한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송탄에 K-55 미 공군기지가 조성된 이후 이 기지를 중심으로 상점과 음식점, 숙박업소와 클럽 등이 들어서며 빠르게 도시화됐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미군기지와 관련된 일자리와 서비스업이 지역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었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농촌이었던 송탄의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작품의 배경인 1970년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때로, 평택은 전통적인 농촌의 생활과 미군기지를 통해 유입된 서구문화,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열망과 도시를 향한 욕망이 한꺼번에 교차하던 곳이었다.

작품 속 정미소와 장교클럽은 단순한 무대 배경이 아니다. 정미소가 땀과 노동, 고향과 공동체를 의미한다면 장교클럽은 새로운 세계와 성공, 불확실한 미래를 상징한다. 그 두 공간 사이에 놓인 한 여인의 선택은 곧 당시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의 선택이기도 하다.

 

사랑과 현실 사이에 선 청춘들
 

안중의 작은 정미소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 ‘나민호’. 그는 우연히 송탄 미군기지 장교클럽에서 일하는 ‘안도나’를 만나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안도나의 마음속에는 사랑만큼이나 절실한 꿈이 있다. 가난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미국 시민이 되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그런 꿈! 순수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나민호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안도나 사이에, 자신감 넘치는 미군 장교 ‘벨코어’가 등장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안도나의 마음을 얻을 방법을 찾지 못해 애태우던 나민호 앞에는 수상쩍지만 능청스러운 인물 ‘도난감’이 나타난다. 그는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묘약’을 내놓고, 절박한 나민호는 그것을 진짜 사랑의 약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장막단’과 마을 사람들의 소문, 질투와 오해, 미군 장교의 구혼이 뒤엉키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소동으로 번져간다. 안도나는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보고 벨코어를 선택할 것인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민호에게 마음을 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작품은 웃음과 해프닝을 이어가지만 그 바탕에는 사랑과 생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시대의 아픔이 놓여 있다.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안도나의 꿈을 허영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나민호의 사랑 또한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랑의 진실은 누군가의 꿈을 꺾어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두려움과 욕망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현대의 관객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오늘날 우리 역시 사랑과 직업, 성공과 관계, 고향과 더 넓은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정미소 연가’는 1970년을 추억하는 복고극에 머물지 않는다. 조건과 계산이 관계를 앞서기 쉬운 시대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묘약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동시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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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체티의 선율, 평택의 인물로 재탄생

 

작품의 음악적 중심에는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이 있다. 나민호가 안도나를 바라보며 부르는 테너 아리아 ‘얼마나 아름다운가(Quanto è bella)’에서는 한 여인을 향한 순수한 동경과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벨코어의 등장 장면 ‘파리스처럼 멋지게(Come Paride vezzoso)’는 자신감과 허세가 넘치는 군인의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도난감이 사람들 앞에서 묘약의 효능을 떠벌리는 ‘들어보시오, 시골 사람들이여(Udite, udite, o rustici)’는 베이스바리톤의 빠른 말붙임과 능청스러운 연기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희극 장면으로, 한국적 장사꾼 혹은 떠돌이 약장수의 정서와 결합해 이번 공연의 큰 웃음 중 하나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작품의 절정은 예상하겠지만 나민호의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다. 안도나의 눈에서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을 본 나민호가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으로, 요란한 소동이 잠시 멈추고 한 사람의 진심이 무대 전체를 채우게 된다. 이어 안도나의 ‘받아요, 당신은 이제 자유예요(Prendi, per me sei libero)’는 상대를 시험하던 여인이 마침내 자신의 진심을 인정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장면이다. 관객은 익숙한 도니체티의 선율이 1970년 평택 청춘들의 언어와 감정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살아나는지 비교해 듣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더블캐스트 성악가들이 완성하는 인물의 온도
 

나민호 역은 테너 ‘김동원’과 ‘지명훈’이 맡는다. 김동원은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치고 프라이부르크시립오페라극장과 카셀국립극장 전속 주역가수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물의 순수함과 깊은 서정을 펼쳐 보인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최우수로 졸업하고 유럽 주요 극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지명훈’은 빛나는 고음과 생동감 있는 무대 감각으로 또 다른 나민호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안도나 역의 소프라노 ‘김예은’과 ‘임은송’은 현실적인 욕망과 사랑의 진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성의 복합적인 내면을 노래한다. 김예은은 밀라노와 프랑스에서 수학하고 ‘돈 조반니’, ‘세비야의 이발사’, ‘마술피리’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으며, 임은송은 피렌체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여러 국제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벨코어 역에는 바리톤 ‘이승왕’과 ‘김인휘’, 도난감 역에는 베이스바리톤 ‘박상욱’과 ‘김동섭’이 출연한다. 이승왕과 김인휘는 벨코어의 위압감과 허세, 미워할 수 없는 익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오페라 부파 전문 가수로 활동해온 박상욱과 세계적인 콩쿠르 및 오페라 무대에서 역량을 쌓은 김동섭은 도난감의 빠른 대사와 유머, 묵직한 성량을 통해 극 전체의 활력을 이끈다. 장막단 역의 소프라노 ‘윤나영’은 사건을 확산시키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연결고리로 등장한다.

 

김현동이 각색하고 김재희가 연출하며 김홍식이 지휘하는 이번 무대에는 POC평택오페라합창단 24명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40명을 포함해 모두 73명의 배우와 연주자가 참여한다. 특히 지역 합창단과 전문 성악가, 오케스트라가 함께 무대를 만든다는 것은 평택의 이야기를 외부에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과 시민의 역량으로 성장시키려는 제작 취지를 보여준다.

 

관객이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포인트
 

우선 안중 정미소와 송탄 미군기지 장교클럽이라는 두 공간의 대비다. 농촌의 노동과 공동체, 미군기지 주변의 화려함과 불안이 무대미술과 의상, 인물의 움직임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펴볼 만하다.

둘째는 ‘사랑의 묘약’의 인물과 음악이 평택의 이름과 언어를 만나 어떻게 변주되는가이다. 원작을 아는 관객에게는 비교의 재미가,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관객에게는 친근한 이야기의 즐거움이 있다.

셋째는 작품의 웃음 뒤에 자리한 시대의 그늘이다. 미군기지가 도시의 성장과 일자리를 이끌었던 한편, 기지촌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와 문화적 희생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안도나의 선택은 한층 더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평택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작품에 대해 “어렵고 무거운 오페라가 아니라 웃으며 보고, 사랑에 공감하고, 마지막에는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오페라 부파”라며 “평택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음악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만큼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2026 제작공연 시리즈 명작’의 네 번째 작품으로 선보이는 ‘1970 정미소 연가’는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는 지역 행사가 아니라 평택을 대표하는 지속 가능한 문화 콘텐츠를 지향한다. 공연은 8세 이상 관람할 수 있으며 약 130분간 진행된다. 티켓은 전석 2만 원으로 9월 17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예스24에서 예매할 수 있다.

문의 평택시문화재단 공연사업팀 031-669-0911.

 

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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