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처럼 번지는 선율, 이야기로 흐르는 피아노 – 이지은 피아노 독주회


2026년 4월 30일(목) 오후 7시반,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무대 위의 피아노는 때로 하나의 풍경이 된다.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사이를 오가는 손끝은 단순한 음의 배열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을 물감처럼 번지게 하는 행위이다. 오는 2026년 4월 30일 저녁 7시 30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 이지은의 독주회는 ‘음악의 색채’를 한껏 펼쳐 보일 무대다. 이번 공연은 고전과 낭만, 형식과 감정이 서로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음악적 스펙트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프로그램은 슈베르트, 하이든, 쇼팽이라는 세 작곡가를 통해 ‘음악이 어떻게 이야기로 변모하는가’를 보여주는 서사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Op.90, D.899)으로 시작되는 무대는, 제목과 달리 치밀하게 계산된 감정의 흐름을 담고 있다. 이 곡은 즉흥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내면을 조용히 파고드는 음악이다. 한 음, 한 음이 마치 고백처럼 이어지며, 듣는 이를 개인적인 기억의 세계로 이끈다.
이어지는 하이든의 F단조 변주곡(Hob.XVII:6)은 전혀 다른 결의 음악이다. 고전주의 특유의 균형과 구조 속에서, 하나의 주제가 끊임없이 변주되며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형식미를 넘어, 하이든 후기 작품 특유의 깊은 정서 – 어딘가 고독하고, 내면적인 울림 – 을 품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의 정점은 쇼팽의 두 개의 발라드다. G단조 발라드 1번(Op.23)과 F장조 발라드 2번(Op.38)은 각각 서사적 긴장과 극적인 대비를 통해 ‘피아노로 쓴 소설’이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다. 이 곡들에서 피아노는 더 이상 악기가 아니라, 인물과 사건, 갈등과 해소를 모두 담아내는 하나의 극장이 된다.
이처럼 이번 프로그램은 고전적 구조에서 출발해 낭만적 서사로 나아가는 흐름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형식’에서 ‘이야기’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어린 천재에서, 깊이를 가진 연주자로
피아니스트 이지은의 음악은 그 이력만으로도 하나의 설득력을 지닌다. 11세라는 이른 나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며 데뷔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무대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왔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피바디 음악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의 여정은 전통적인 엘리트 코스를 따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경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축적된 시간의 밀도다.
그는 국내외 주요 무대에서 수차례 독주회를 열었고,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뿐 아니라 실내악 활동에서도 활발히 움직이며 다양한 음악적 언어를 체득해왔다. Orford Music Festival, Vienna Music Festival 등 세계 각지의 음악제에서 쌓은 경험은 그의 연주에 국제적인 감각을 더해준다.
또한 조선일보 콩쿠르 1위를 비롯한 여러 콩쿠르 입상 경력은 그의 기량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지표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행보다. 현재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음악의 깊이를 더욱 확장해가고 있다.

이지은의 연주에서 기대되는 것은 단순한 테크닉의 완성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어떻게 음악의 구조를 해석하고, 그 구조 안에 감정을 배치하는가에 있다.
슈베르트에서는 호흡과 여백이 중요하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이 곧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하이든에서는 균형과 긴장이 요구된다. 절제된 형식 속에서 미묘한 변화들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쇼팽에서는 모든 것이 이야기로 귀결된다. 감정의 극단과 섬세함을 동시에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를 하나의 무대에서 소화한다는 것은 단순한 연주 이상의 과제다. 그것은 음악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작업에 가깝다.
이번 공연의 이미지는 유난히 인상적이다. 전단지 하단을 채운 색의 흐름은 마치 소리가 시각으로 번역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앉아 있는 연주자의 모습은, 그 모든 색을 만들어내는 근원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공연은 한 편의 그림과도 같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흐릿한 수채화에서 시작해, 하이든의 정교한 선묘를 거쳐, 쇼팽의 강렬한 유화로 마무리되는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
이 음악회에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만들어내는 색과 이야기를 ‘경험’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잔향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번져 남을 것이다.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