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가면 비극의 얼굴, 오페라 ‘광대들’ – 서울오페라앙상블 2026년 6월 19일(금)~21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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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대극장)
198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되살아난 베리즈모 오페라

극과 현실이 무너지는 순간, 삶이 되는 오페라
1980년대 서울 변두리, 아직 완공되지 않은 고가도로 아래 먼지와 소음이 뒤엉킨 공터 위에 임시로 세워진 가설무대, 그 위에서 사람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 웃음은 가볍지 않다. 오히려 삶의 피로와 관계의 균열, 사랑과 배신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눈물에 더 가까워보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선보이는 K-Opera ‘광대들’(원작 팔리아티, 부제: 서울삐에로)은 바로 이 모순된 인간의 조건을 응시하며, 오페라라는 형식이 과연 어디까지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작품이다. 이번 무대는 단순한 번안이나 재현을 넘어, 오페라 장르 자체를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이기에 주목할 만한 공연이다.

오는 2026년 6월 19일(금 오후 7시 30분), 20일(토 오후 4시), 21일(일 오후 4시) 등 총 3회에 걸쳐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펼쳐지는 이 공연은 약 120분 동안 관객을 한 편의 인생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2003년 초연 당시 ‘오페라와 관객의 간격을 허문 공연’이라며 호평받았던 이 작품이 이번 무대화되기까지 무려 23년이나 걸렸다. 동시대적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 이 작품은 그 서사의 중심에는 이탈리아 베리즈모 오페라의 대표작인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Pagliacci’가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원작을 따르지 않는다. 무대는 더 이상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이 아니라, 산업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1980년대 서울로 옮겨지고, 등장인물들은 그 시대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적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변환은 단순한 배경의 이동이 아니라, 오페라가 특정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서사를 담는 형식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이 작품의 구조는 원작 ‘Pagliacci’가 지닌 ‘극중극’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그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대 위에서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지고, 연기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 구조는 고전적으로는 햄릿의 메타극(Metatheatre)인 ‘연극 속 연극’을 떠올리게 한다. 연극을 통해 진실이 드러나는 구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을 폭로하는 방식이 ‘광대들’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나아가, 예술이라는 형식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폭발시키는 장치가 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서사적 장치를 뛰어넘는다.
또한 질투와 배신, 사랑과 파멸이라는 주제는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를 떠올리게 하며, 웃음을 강요받는 존재의 비극성은 ‘리골레토’와도 맞닿아 있다. 이처럼 ‘광대들’은 서양 오페라의 전통적 비극 구조를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한국적 현실로 끌어와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예술감독 장수동은 이 작품을 ‘우리의 얼굴을 한 한국오페라’라고 말한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형식을 한국의 처용 설화로 치환하고, 서커스적 요소를 결합한 이 작품은 단순한 번안을 넘어 문화적 재창조의 성격을 지닌다.

광대의 웃음 뒤에 숨겨진 것, 그리고 우리가 마주할 얼굴
서사의 중심에는 떠돌이 유랑극단이 있다. 1막에서 광대패는 서울 변두리 건설 현장 공터에 무대를 세우며 공연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을 드러낸다. 곡예사 ‘애란’은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그녀와 ‘재준’ 사이의 사랑은 금지된 감정으로 긴장을 형성한다. 이를 지켜보는 단장 ‘태석’은 질투와 분노 속에서 점점 무너져 간다. 특히 광대 분장을 한 채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웃음을 강요하는 장면은 인간이 사회적 역할이라는 가면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2막의 극중극은 작품의 정점을 이룬다. 처용 설화를 바탕으로 한 가면극이 시작되지만, 그 연기는 점차 현실과 뒤섞이며 경계가 붕괴된다. 이는 다시 한 번 ‘Pagliacci’의 핵심 구조를 환기시키며, 동시에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극적 장치의 극단을 보여준다. 결국 “이제 광대극은 다 끝났소!”라는 외침은 극의 끝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 된다.

이번 공연은 음악적 완성도와 무대적 스펙터클에서도 기대를 모은다. 지휘를 맡은 우나이 우레초 주비야가와 장수동의 연출, 그리고 중견과 신진 성악가들의 조화는 작품의 긴장과 밀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여기에 서커스 요소까지 결합되며, 오페라는 더 이상 단일 장르가 아닌 복합 예술로 확장된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30여 년간 ‘대중을 위한 오페라’를 지향하며 다양한 실험을 이어온 단체로, 이번 작품 역시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웃는가, 그리고 그 웃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광대는 타인을 웃기지만, 그 웃음은 자신의 고통을 감추는 가면이기도 하다.
‘광대들’은 그 가면을 하나씩 벗겨내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객은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광대로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장수동 연출은 “오페라는 어렵고 먼 예술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웃음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길 바란다.”며 이번 무대를 통해 무대 위의 광대들이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번안 연출 장수동, 합창지휘 박용규, 음악코치 김보미, 윤빛나, 태석 김중일, 이규철, 애란 이소연, 강효진, 용만 장철, 이규석, 재준 장성일, 김지단, 모모 조철희, 최용석, 오케스트라/ 앙상블스테이지, 어린이합창단/ 위자드콰이어. 서울오페라앙상블 02-741-7389 www.seoulopera.org

글 김종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