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평택아트센터 대공연장
프로그램: 바흐 ‘파르티타’ 1번 Bb장조, BWV 825, 쇤베르크 ‘모음곡’ Op. 25, 슈만 ‘빈 사육제의 어릿광대’ Op. 26, 쇼팽 왈츠 14곡 (앙코르: 슈만 ‘트로이메라이’, 쇼팽 폴로네이즈 No. 6)
조성진은 오늘날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던 그는 이제 서른을 넘긴 음악가가 되었고, 그 존재감은 일반적인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그는 명실상부하게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이끄는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월, 그는 모차르트의 미공개 피아노곡 ‘알레그로 D장조’(Allegro in D, K.626b/16)를 세계 초연하고 도이체 그라모폰을 통해 디지털 싱글을 발표해 음악사적 발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더니 이후에는 현대 무대에서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 알반 베르크의 소나타와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을 담은 음반을 내놓으며, 잊혀 가던 레퍼토리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전도사의 역할까지 자처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음악적 탐구와 지적 호기심의 자연스러운 결실이다. 기제킹에게 드뷔시와 라벨이, 루빈스타인에게 쇼팽이, 슈나벨에게 베토벤이, 케천에게 브람스가, 미켈란젤리에게 슈만이, 그리고 글렌 굴드에게 바흐가 있었듯이, 조성진 또한 어느 한 공동체나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음악가의 초연한 면모를 보여 준다.

평택아트센터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의 백미는 바흐와 연속적으로 이어진 쇤베르크의 ‘모음곡’이었다. 그것은 소리의 완전무결한 배열이자 시간의 치밀한 관리였으며, 음악적 공간을 미세하게 분할해 나가는 지성의 예술이었다. 바흐와 쇤베르크는 조성유무 차이만 있었을 뿐 연주자에게 절대적인 집중력과 통제력을 요구하고 구조적인 사고와 설계로 되어 있는 서양음악의 정수와도 같았다. 조성진은 열 손가락 하나하나가 서로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조율하며,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내듯 작품을 해체하고 다시 구축해 나갔다. 복잡한 구조일수록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쾌감은 더욱 커졌다. 음들의 위계와 기능을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던 쇤베르크의 의도는 조성진의 손끝을 거치면서 난해한 현대음악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되돌아왔다. 낯섦은 친숙함으로 바뀌었고, 청중과 작품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이처럼 쇤베르크를 온전히 이해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경험은 조성진 같은 음악가를 통해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하고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작품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그의 순수한 독법은 난해한 음악을 둘러싼 선입견과 경계를 허물어 주었다. 음악을 전하는 사도이자 동시에 작품을 섬기는 사제와도 같은 그의 태도에 깊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슈만과 쇼팽에게서는 또 다른 조성진의 진가가 드러났다. 그의 비르투오시티는 청산유수 같은 달변으로 난점을 얼버무리는 기교도 아니었고, 과장된 노력의 흔적을 드러내는 과시도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명민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음악적 능력이었다. 연주는 당당하고 명쾌했으며 힘이 있었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았고, 엄숙함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절제와 균형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청명한 울림과 섬세한 뉘앙스,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감성은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슈만에서는 다섯 번의 뚜렷한 분위기 전환을 통해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낙관과 불안,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를 오가는 변화무쌍한 심리를 숨 돌릴 틈 없이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의 정신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어진 쇼팽의 왈츠에서는 서로 다른 정서가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9번, 7번, 10번에서는 가슴을 저미는 애수와 우아한 아름다움이 깊은 여운을 남겼고, 6번, 11번, 8번에서는 날렵하면서도 황홀한 움직임이 경쾌한 생동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3번의 깊은 침잠에서 시작해 5번, 2번, 1번으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는 객석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끌어올리고 내려놓으며 압도적인 극적 긴장을 완성했다.
조성진은 독창적인 사운드와 명료한 스타일, 창의적인 리듬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집중력으로 연주라는 행위 자체를 넘어서는 경지에 도달한 음악가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만 머무르지 않기에 오히려 오늘의 시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특정 세대에 속하지 않기에 모든 세대에게 말을 거는 피아니스트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조성진이라는 음악가가 갖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
사진 제공: 평택시문화재단
2026년 7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평택아트센터 대공연장
프로그램: 바흐 ‘파르티타’ 1번 Bb장조, BWV 825, 쇤베르크 ‘모음곡’ Op. 25, 슈만 ‘빈 사육제의 어릿광대’ Op. 26, 쇼팽 왈츠 14곡 (앙코르: 슈만 ‘트로이메라이’, 쇼팽 폴로네이즈 No. 6)
조성진은 오늘날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던 그는 이제 서른을 넘긴 음악가가 되었고, 그 존재감은 일반적인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그는 명실상부하게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이끄는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월, 그는 모차르트의 미공개 피아노곡 ‘알레그로 D장조’(Allegro in D, K.626b/16)를 세계 초연하고 도이체 그라모폰을 통해 디지털 싱글을 발표해 음악사적 발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더니 이후에는 현대 무대에서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 알반 베르크의 소나타와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을 담은 음반을 내놓으며, 잊혀 가던 레퍼토리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전도사의 역할까지 자처했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음악적 탐구와 지적 호기심의 자연스러운 결실이다. 기제킹에게 드뷔시와 라벨이, 루빈스타인에게 쇼팽이, 슈나벨에게 베토벤이, 케천에게 브람스가, 미켈란젤리에게 슈만이, 그리고 글렌 굴드에게 바흐가 있었듯이, 조성진 또한 어느 한 공동체나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음악가의 초연한 면모를 보여 준다.
평택아트센터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의 백미는 바흐와 연속적으로 이어진 쇤베르크의 ‘모음곡’이었다. 그것은 소리의 완전무결한 배열이자 시간의 치밀한 관리였으며, 음악적 공간을 미세하게 분할해 나가는 지성의 예술이었다. 바흐와 쇤베르크는 조성유무 차이만 있었을 뿐 연주자에게 절대적인 집중력과 통제력을 요구하고 구조적인 사고와 설계로 되어 있는 서양음악의 정수와도 같았다. 조성진은 열 손가락 하나하나가 서로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조율하며,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내듯 작품을 해체하고 다시 구축해 나갔다. 복잡한 구조일수록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쾌감은 더욱 커졌다. 음들의 위계와 기능을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던 쇤베르크의 의도는 조성진의 손끝을 거치면서 난해한 현대음악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되돌아왔다. 낯섦은 친숙함으로 바뀌었고, 청중과 작품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이처럼 쇤베르크를 온전히 이해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경험은 조성진 같은 음악가를 통해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하고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작품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그의 순수한 독법은 난해한 음악을 둘러싼 선입견과 경계를 허물어 주었다. 음악을 전하는 사도이자 동시에 작품을 섬기는 사제와도 같은 그의 태도에 깊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슈만과 쇼팽에게서는 또 다른 조성진의 진가가 드러났다. 그의 비르투오시티는 청산유수 같은 달변으로 난점을 얼버무리는 기교도 아니었고, 과장된 노력의 흔적을 드러내는 과시도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명민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음악적 능력이었다. 연주는 당당하고 명쾌했으며 힘이 있었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았고, 엄숙함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절제와 균형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청명한 울림과 섬세한 뉘앙스,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감성은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슈만에서는 다섯 번의 뚜렷한 분위기 전환을 통해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낙관과 불안,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를 오가는 변화무쌍한 심리를 숨 돌릴 틈 없이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의 정신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어진 쇼팽의 왈츠에서는 서로 다른 정서가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9번, 7번, 10번에서는 가슴을 저미는 애수와 우아한 아름다움이 깊은 여운을 남겼고, 6번, 11번, 8번에서는 날렵하면서도 황홀한 움직임이 경쾌한 생동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3번의 깊은 침잠에서 시작해 5번, 2번, 1번으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는 객석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끌어올리고 내려놓으며 압도적인 극적 긴장을 완성했다.
조성진은 독창적인 사운드와 명료한 스타일, 창의적인 리듬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집중력으로 연주라는 행위 자체를 넘어서는 경지에 도달한 음악가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만 머무르지 않기에 오히려 오늘의 시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특정 세대에 속하지 않기에 모든 세대에게 말을 거는 피아니스트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조성진이라는 음악가가 갖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評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
사진 제공: 평택시문화재단